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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의 미들 : 황혜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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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외롭지 않은 날에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마주하고 싶은 순간을 향해
마음속 아름다운 겨를을 향해
눈 감고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는 시

깊이 파고들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 시인 황혜경의 세번째 시집 『겨를의 미들』(문학과지성사, 2022)이 출간되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문학과지성사, 2018) 이후 4년 만의 시집으로 3부로 나뉜 62편의 시가 담겼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 “나는 언제나 늦되는 아이였다”(신인상 당선 소감)라던 시인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시를 쓰며 시집 3권을 출간해왔다. 이 시집들에는 “소통이 아닌 독백에, 맥락이 아닌 오차에, 단 하나의 언어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나의 몸들, 그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언어들 위에 위태롭게 서 있”(박혜경)는 독자적인 문법으로 씌어진 시가 페이지 가득 들어차 있다. 첫 시집에서 “고요하고도 부드럽게” 스스로를 격리하길 선택했고 두번째 시집에서 내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바깥으로 손을 내밀며 소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시적 진폭을 넓혔던 황혜경은 이번 시집에서도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마음의 궤적을 되새기면서 기억 하나하나를 봄의 새순처럼 현재의 시로 피워 올린다.

추천사


본 것이 다는 아니듯이

귀가 오랫동안 태어나고 있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던 순간도 있고

해日가 나무木에 걸렸다고, 동東

나는 오랫동안 태어나고 있다.

떠오르다가

시간 안에 옮겨질 것이다.

2022년 봄
황혜경

성동혁(시인)
황혜경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 시는 결과로써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를 보며 ‘쓰고 있는’ 과정 자체가 시라 느낄 때가 많다. 그에게 시는 세계를 감각하고 이곳을 살아가는 당연한 태도이다. “외롭지 않은 날에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시인 황혜경이 쓸 수 있는 가장 완곡한 고백이다.

목차

I
철거
모르는, 집요하다
겨를의 미들
이혼하는 아침에는
것의 앞면과 뒷면과
낮의 증거
설령
모로
그날의 음정은 허탄虛誕

동東
발설의 자세
Open
제비야, 그 위에
선명한 밤
그래,
변명의 자리의 변명의
1
녹색 커버
상실 언니에게
쓴 럭키

II
믿고 싶은 말
아는 어부
실험실
되레
전前
핑, 붉,
동질의 서
정처 없이
파란 방울을 달고 오고 있는 것이 있어
매달기 직전
모국

Tone & manner
극성極盛
알지 모를지
흰 강낭콩이라 부르면
나(너)는 너(나)와
역력歷歷하다
아니다風으로
파랑에서 내려 원래의 깊은 파랑

III
뼈가 있으니 살이 있으니
A day in the life
곤욕의 감정사는 정 氏를 안다

체리의 성장 묘사
Ghost note
보이지 않는 氏
Gloomy september 民 , 國
그랑 유랑流浪
향상向上과 항상恒常과
오뚝이
왕왕
름다운,
See

직면하는 은신隱身
Or


인물의 동작
그러그러하다

발문
아니야 계속 사랑하겠다는 말이야ㆍ성동혁

본문중에서

“아니야 계속 사랑하겠다는 말이야”
친애하는 흔적들에게
어떤 스무 살은 마흔 속에 가 있고
어떤 마흔은 스무 살 속에 와 있다.
-미수록 시 「핵核」에서

이 시집에 아름다운 발문을 선사한 성동혁 시인의 말처럼, 황혜경은 ‘시인’이라는 수식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시인의 의무는 저무는 풍경을 모른 척하지 않는” 것(성동혁). 더 섬세하고, 더 일찍 울며, 더 오래 기억하는 이, 잊지 못할 순간과 살아가는 마음을 언어로 새기는 이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부른다. 시인 황혜경은 자신만의 언어로 “죽은 벌레도 치우지 않고 죽은 개도 치우지 않고 때때로 보듬”(「이혼하는 아침에는」)는 마음을 말한다. 두번째 시집 표지 산문에 적힌 것처럼 그의 시는 “먼저 산 사람을 생각한다./먼저 운 사람을 사랑한다./먼저 간 이름을 불러본다”. 흔적만 남아 사라져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을 그러모아 매일매일 되새기면서 삶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힘겹게 밀어낸다. 시인에게도 “지나친 마음은 오래 무”겁고(「파란 방울을 달고 오는 것이 있어」),“여기 있는데 못 보는 것”(「것의 앞면과 뒷면과」)을 혼자만 보는 일은 쓸쓸할 것이다. 태어나 사라져가는 유한한 생명과 시간과 관계를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시를 쓰는 일에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시로 빚기까지 그 모든 마음을 간직하고 품어낼 용기 말이다. 황혜경에게 시는 ‘결과로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며, 세계를 감각하고 이곳을 살아가는 당연한 태도’이다(성동혁). 다시 말해, 가늠할 수 없는 마음으로 기억을 견디며 쓰고 있는 과정 자체다.

“당신의 슬픔이 나에게 들킬 수 있기를 바라요”
돌보는 마음에게

발도 싫고 손도 싫은 잃은 요일
가장 어두운 것을 기념하며 아는 소리를 다 내고 있는 어둠
굴복한 사람이 아니라 극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힘든 대상과 계속 늙어가도 되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東」 부분

지난 시집들에서 엿보였던 황혜경의 시가 독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겨를의 미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타인의 기척에 민감한 문장들과(“우는 자의 처소를 찾아 더 일찍 가서 울었어야 하는 것”, 「난」), “사람이 싫다는 사람을 소리 없이 좋아해보려는 사람”(「Ghost note」)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바깥으로 손을 내미는 태도를 수록된 시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집 속 부제에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 시는 두 편뿐이지만, 부제 없는 시들에서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이름을 품고 있는 듯 읽힌다.
저물어가는 것들을 품고서 시인은 끝내 스스로 저물 것 같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이 여자 앞에서는 모조리 죽은 것이어야 모처럼 가능해”(「이혼하는 아침에는」)진다는 고독한 문장을 앞두고 황망해지다가도 이것이 “굴복한 사람이 아니라 극복한 존재”(「東」)가 되기 위해서라면 황혜경의 “집요한 채록”(「멍」)은 마침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나 있을 빛나는 시절을, 슬픔과 기쁨과 그리움과 아픔과 고통을, 그 저마다의 ‘겨를의 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집을 멀어진 누군가의 안부를 묻듯이 문득 꺼내 읽어보기를.

시집 속으로
울지 마, 너 백 살 때까지 내가 생일 축하해줄게
닮은 달이 많았다 달이 해인지 모르게 스쳐 갔다
고개를 하나 넘고 나서 아파 누워 있을 때 아무도 부르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오지 않을 걸 제일 잘 알면서도 더 새롭게 한 번 안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 말고 우는 자의 처소를 찾아 더 일찍 가서 울었어야 하는 것이다
-「난」 부분

사람의 시간으로 개와 산 게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개를 보내고 개의 시간으로 산다 데리고
-「A day in the life」 부분

움직이는 네가 있어서 좋아 움직일 수 없었던 시간에
너무 사랑한다는 말이지?
아니야 그냥, 사랑한다는 말이야
[…]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지?
아니야 계속 사랑하겠다는 말이야
-「나(너)는 너(나)와」 부분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한가운데에서도 친구가 맞는 걸까 거기 끝에 누가 있다고 믿어서 여기서부터 누가 또 간다 있을 무엇 때문에 있는 무엇이 움직이려고 해본다 쪽을 지으려고 비녀를 꽂는 뒤의 그날의 미들

내가 좋아하는 그동안의 내 얼굴이 있지 자기가 좋아하는 그동안의 자기 얼굴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자기의 미들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내 얼굴의 중앙 말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고 돌아온 날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있게 하도록 인정하게 하는 겨를의 의미들 완전한 거짓말도 되지 못하고 완전한 말도 되지 못하는 하지 못하는 나는 장난감 병원에 맡긴 망가진 장난감을 장난감 박사님들이 고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느슨해진 중간의 나사를 조이고 있다고

그러는 동안의 중심에서

아주 천천히 밥을 먹고
아주 천천히 몸을 씻고
아주 천천히 옷을 입고
-「겨를의 미들」 전문

결혼을 한 적 없는데 희미한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러한데 이혼하는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에는 오늘의 아침인지 미래의 아침인지 결혼을 한 적이 있었는지 헤어진 것들의 해진 자락을 붙잡고 있는 나만 모르는 것들이 마지막인 듯 필사적으로 끝자락 어디쯤 붙잡고 에워싼다
[…]
이혼하는 아침에는
같이 일어나지 않거나
같이 밥을 먹지 않거나
같이 섞었던 것들을 하나씩 따로 공들여 떼어내면서
-「이혼하는 아침에는」 부분

뒤표지 글(시인의 글)
혜경아, 밥 먹었어? 한없이 포근한 표정으로 묻는다. 남영이가. 몇 해 전부터 잘 먹지 않던 날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깨어보면 매번 한겨울의 꿈이었다. 유명인의 아내 이전에 송남영은 나의 친구였다. 우리는 남산 언덕 학교에 다녔고 동아리 ‘모션Motion’에서 만났다. 이렇게 쓰고 보니 너의 얼굴 윤곽, 움직임, 통통한 볼살과 함박웃음까지도 보이고 마주칠 때마다 밥 먹었냐고 묻던 너의 그 뉘앙스가 무엇이었는지 오롯이 느껴진다. 낯선 서울에 적응하느라 매일 주춤거리던 마음에 검고 딱딱하게 자리 잡던 불안. 너는 나의 그것을 일찍 다 감지한 듯했다. 내가 기억하는 사랑의 실루엣이다. 슬로모션으로 따뜻하다. 진술아, 밥 먹었어? 어느 날에는 동아리 친구들이 붙여준 그때의 내 이름을 부르며 남영이가 다시 묻는다. 벌써 네가 떠났다는 걸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나는 스무 살로부터 지금까지 평소에는 하지도 못하고 웅얼거리던 말을 시를 통해 ‘진술陳述’하느라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걸까. 그때의 별명은 어쩌면 예견이었는지도 모른다. 밥 먹는 일과 시 쓰는 일 사이에 이제 무슨 가능성이 남아 있을까. 단어들은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활발하게 다정하게 다 하고 있구나.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보고 싶은 것은 아름답다. 내 청춘의 중심에 한껏 웃어주는 네가 있다.

어떤 스무 살은 마흔 속에 가 있고
어떤 마흔은 스무 살 속에 와 있다.
-시 「핵核」에서.

저자소개

황혜경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시인 황혜경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모호한 가방」 외 4편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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