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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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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를 통해 떠나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여행,
인도, 티베트,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스 등 각 나라의 풍경과 우리네 일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11년의 오랜 기다림 안에서 건져 올린 이철성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시집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여행’과 ‘일상’이라는 상반되지만 항상 붙어 다니는 두 가지 주제를, 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시인은 감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들로 하나하나 펼쳐낸다. 여행의 풍경을 시인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일상의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그려낸 시들을 만나보자.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77편의 시를 수록했다. 인도, 티베트, 중국, 이집트, 이스라엘, 예루살렘 등의 여행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1·2부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여행지의 풍경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까지 담아낸다. 3부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애시를 풀어내고, 4·5부는 일상을 시인만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출판사 서평

지친 시를 일으켜 세워 향기로운 시로 고쳐내는 치유의 여행

“끼익끼익” 글자들의 비명으로 시를 쓰던 시인이 있었다. 첫 시집에서, 슬픔과 아픔을 오랫동안 연기하며 전략으로서의 언어를 펼쳐왔음을 독자에게 고백했던 시인. 그리하여 글자들은 그를 멀리했지만, 그럼에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채찍질로 글자들을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한 존재자의 고통과 고독이 거기에 있었다. 그가 힘에 겨워할 때 그 시간들을 함께 견뎌준 것은 오직 종이와 연필뿐이었으므로, 그들을 직공 삼아 시로써 자신을 위로하고 저주한다고 했던 시인 이철성. 그러나 그렇게 펴낸 첫 시집 이후, 그가 다시 시집을 내기까지는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철성 시인이 첫 시집 『식탁 위의 얼굴들』 이후 11년 만에 두번째 시집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한 권의 시집을 남겨둔 채,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의 두번째 시집은 ‘여행’과 ‘일상’이라는, 상반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 두 가지 단어로 시인의 11년 시간을 말해준다.
총 77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2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여행시이다. 이철성 시인 특유의 자연스럽고 쉬운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이 시편들은 인도, 티베트, 중국, 이집트, 이스라엘, 예루살렘, 요르단, 그리스 등의 여행지 모습을 독자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성기완 시인은 이 여행시들을 읽는 방법으로 “여행 사진을 들여다보듯 찬찬히 들여다보시라”고 권한다. “풍경의 물결이 아스라이 치고 나면 그 안에 ‘시인’이 있다”는 것. 표면으로 드러난 풍경의 안으로 더, 더 들어가보는 것이, 이 겹구조의 여행시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원래의 보이는 풍경을 시인의 시선으로 다시 짜놓은 시들 안에는 일상에 없던 이미지의 구조들이 만들어지는 법. 안도 밖도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짓고서 발걸음을 옮기는 시인의 유유자적을 감상하는 것도 이 시집을 읽는 좋은 방법이라고 성기완은 덧붙인다.
이어서 3부는 연애시, 4,5부는 일상에 관한 시 들로 이루어져 있다. 편수로 보면 여행시보다 나머지 시가 조금 더 많다.

여행보다는 일상이 ‘조금’ 길다. 여행의 시간 속에는 고향의 따스함을 그리워하고, 고향의 밋밋하고 지루한 시간은 다시 강렬하고 두렵고 새롭고 찬란한 여행의 시간을 꿈꾸도록 한다. 긴 일상의 끝에 여행이 있고 돌아오면 다시 일상이 있다. 여행지의 이미지는 일상 속에서 반복된다. 그것은 마치 ‘거울’ 속의 나와 그냥 나 사이의 관계처럼 같고도 다르다. 이중 자아, 분신, 거울, 호수, 비춰보다─반복과 반영의 이런 테마와 이미지와 동사들, 이것은 이철성 시를 틀 짓는 중심 요소들이다.
─성기완, 해설 「숨 쉬는 거대한 시간」에서

한때 시인은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위에 서 있었다. 음악이 사라진 그 거리는 “지친 시”의 거리였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지난 11년 동안의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여행에서 시를 다시 건져 올린다. 그림을 닮은 시로 “낮은 집들과/아름다운 문양의 창틀과/붉은 기와들을 그”리고, 음악을 닮은 시로 “마당을 뛰어가는 아이의 짧은 고함과/그 붉은 볼과/너른 들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떨어지는 사과의 시큼한 순간을/적는다.”(「시의 향기」) 시인은 ‘지친’ 시를 일으켜 세워 ‘향기로운’ 시로 고쳐내는 ‘치유’의 과정을 여행을 통해 수행한 것이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이철성의 시를, 성기완 시인은 “자유롭고 외로운 영혼, 방랑의 테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바이런이나 키츠, 네르발의 주변에” 놓을 수 있는 낭만주의 시가 아닐까, 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이 시집을 덮을 즈음 독자들은 이 물음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형식과 사회와 의무와 시에 칭칭 감긴 정신들, 그것들을 훌훌 털고 떠나는 낭만주의자. 이철성 시의 한국 시단에서의 의의는 그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런 낭만주의는 한국에서는 예외적이다. 물론 이철성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본래 낭만주의자는 한 번도 낭만적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비관하고 아름다움에 순종한다.
─성기완, 해설 「숨 쉬는 거대한 시간」에서

시인은 뒤표지 산문에서 “내 평생의 숙제는 여행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일상에서도 늘 여행을 꿈꾸었고, 그러자 아내도, 아이도 낯설게 느껴지며 일상의 공간이 여행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종이와 연필”이 유일한 위로였던 시인은 이제, “여행”을 통해 다시, 시를 만난다. 여행지가 어디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여행하기 참 좋은 이 계절에, 독자에게 치유의 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시인의, 그 긴 여행이 활자가 된 이 한 권의 시집을 추천한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붉은 꽃
검은 새
비, 내린다
비가 왔다
일편의 몽
베이징, 거지
소들의 땅에 들어서다
인력거는 달린다
흰 소와 마주치다
물속의 돌
천둥
멋진 위구르 요리사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얼굴
바위산
호텔 연가
책 없는 여행
달, 깨지는 얼굴

제2부
황금 꽃
예루살렘, 2002년 4월
예루살렘-눈동자
예루살렘-그. 녀.
나무의 시간
나무의 정신
물속의 깊은 구멍
버려진 사원
시의 향기
호수
여행자
한밤에 일어나 창을 열다
나의 얼음들
그림자와 달
불의 요리사
배고픈 버스
행복한 마사지
노년의 정원
여행의 끝

제3부
사랑
벙어리 혀
우리들의 사랑
소리 소문 없이 그것은 왔다
사랑은 달콤하고……
눈은……
꽃잎
너는 복숭아 같고
너의 눈
체리 향기

외사랑
향기
숲 속에서
가난한 손

제4부
삶은 정원을 뛰는 아이처럼
꿈꾸는 사람
유령
광대1
광대2
내게 삶의 비밀을 알려주세요
지친 시1
지친 시2
지친 시3
봄비
오늘도 걷는다
오후1시, 서울 신림 병원
검은 뿌리

제5부
싼 것 예찬
아기
오래된 수레
황금 물고기
딸아이의 시계
늑대의 옷
달 없는 등산
오늘 몸이……
나무 의자에 고인 물
예술과 음식
차 향기

해설ㅣ숨 쉬는 거대한 시간 · 성기완

본문중에서

때는 밝은 아침
새들이 푸른 하늘서 내려올 때
나무 그늘에 앉아 시를 쓴다.

시는 그림을 닮아
낮은 집들과
아름다운 문양의 창틀과
붉은 기와들을 그린다.

시는 음악을 닮아
마당을 뛰어가는 아이의 짧은 고함과
그 붉은 볼과
너른 들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떨어지는 사과의 시큼한 순간을
적는다.

시는 중심에서 피어나는 향내처럼
모든 것들 속에서 피어나고
너른 하늘에 가득하고
내 얼굴과 코끝을 쓰다듬는다.

시는 가난한 연필이 훑고 지나간
작은 일기장 위에 있다.
일기장을 덮으면
시는 마개로 닫힌 과일향이 된다.
시는 내일 아침 아내가 몰래 열어보기 전까지
배낭 깊은 곳에 놓여진 때 묻은 작은 일기장이다.
-그리스, 메테오라
-「시의 향기」

지친 몸
지친 마음
지친 시
펜이 끌어다 놓은 글자들이
머리칼 같고
지문 같고
줄 맞춰 널어놓은 빨래 같다.
-「지친 시 1」

길고 긴 밤
짙고 검은 밤
잠결에 눈을 뜰 때마다
아이의 머리 방향이 바뀌어 있다.
밤새
모두 눈 감은 어둠 속에서
아이의 머리는 방향을 바꾼다.
시곗바늘처럼
검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별들의 우주를 헤엄치는 우주선의 방향타처럼.
땀에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주의 시계에 자신의 시계를 맞추기 위한
그 끊임없는 노력을 안쓰러워하며
생각해본다.
생명이 우주를 듣는 소리
갈매기가 육지를 맡는 냄새
눈먼 수캐가 횃대에 올라 바라보는
우주의 시계.
길고 긴 밤
짙고 검은 밤
아이의 젖은 이마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검은 바다
그 속에 떠 있는 작고 빛나는 물병
우주의 시간.
-「딸아이의 시계」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0

1970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6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식탁 위의 얼굴들'이 있다. 현재 극단 '비주얼 시어터 컴퍼니 꽃'의 대표로 다양한 대안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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