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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회 발코니 : 박세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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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 앞에 펼쳐진 것은 그저 바다. 아름답고 무섭고 아득한 사회의 바다.
파도가 밀려오면, 발코니가 흔들거립니다.”

친애하는 나의 이웃들에게
‘다정한 이웃집 시인’ 박세미가 부치는 전언
오늘과 사회와 발코니에서 늘 안전한 항해이기를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고 파편화된 이 시대에, 오로지 현재만을 휘발시키며 살고 있는 나에게 어딘가로 치켜들 손가락 따윈 없다. 나는 다만, 하루하루 주먹을 쥐고 생활과 겨룰 뿐이다.
-산문 「다만 나는 오늘의 맥락이 된다」,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2년 여름호에서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다정한 이웃집 시인’ 박세미의 두번째 시집 『오늘 사회 발코니』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94번째로 출간되었다. 2019년 첫 시집 『내가 나일 확률』을 펴낸 지 4년 만에 돌아온 시인은 그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시적 풍경을 펼쳐 보인다. 이번 시집에 해설 대신 수록한 인터뷰는 그 공백에 대한 궁금증을 채워줄 가장 흥미로운 선택이다. ‘되고 싶은 것’이 되었느냐는 물음에 ‘전혀’라고 답하면서도, 아니 오히려 더 멀어졌다고 말하면서도, 무수한 지금을 지나 한 시절을 단락 지은 시인의 얼굴이 여기에 있다. 체념과 용기 같은 것을 한데 섞은 미묘한 표정, 그런데 어딘지 성숙하고 단단해진 느낌, 그러나 여전히 사랑스러운 표정을 잃지 않은 채로.
시집을 짓는 일을 집짓기에 비유한다면, 3부로 나뉘어 수록된 51편의 시는 그간 시인이 하루하루 성실하게 고르고 다듬어 쌓아 올린 재료일 테다. 이 집은 화려하기보다 단정하고, 남들 눈에 띄지 않지만 견고하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이들도 집과 꼭 닮았다. 첫 시집에서 혼자 견딜 수밖에 없는 슬픔을 고백하면서도, 이내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 “깊고 연약해 보이는 땅”(「뜻밖의 먼」, 『내가 나일 확률』)으로 향하던 박세미의 화자들은 뚜벅뚜벅 걸어 지금 여기, 오늘 사회에 도착했다. 그리고 발코니에 올라서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기별을 전한다. 오늘과 사회와 발코니에서 늘 안전한 항해이기를 응원한다.
그러므로 『오늘 사회 발코니』는 이 땅 위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당신, 눈앞의 오늘을 살아가는 데 열중하는 당신을 위해 마련한 선물이다. 이 시집에는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이 불현듯 출현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의 사람, 다음 역으로 가는 사람, 사라진 동료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사람, 무의미를 위해 노동하는 사람, 술을 삼키고 웃는 사람, 기어코 쓰려는 사람……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가는 인물들을 호명하는 사이 당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이 시집을 덮는 순간 자신만의 유일한 발코니를 갖게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모두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걸음걸이를 가졌지”
─걷고 뛰다가 멈춰 서서 생각하기

시의 화자들은 어느덧 제법 안정적이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게 된 듯하지만, “절대 상하지 않겠다”(「일조권」)는 다짐을 되새기듯 끊임없이 걷고 뛴다. “늪에/빠지지 않기 위한”(「현실의 앞뒤」) 걸음걸이로, “두 팔목이 잡힌 채로”(「사회의 시간」)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아슬아슬하고 숨 가쁘다. “팔다리를 효율적으로 가동”해 “최대한의 속도를”(「육상선수」) 내는 법을 훈련하지만 누군가를 제치거나 결승선에 닿는 데 그 목적을 두진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한 발자국씩 뒤로”(「뒤로 걷는 사람」) 가거나, “스툴의 다리 끝에 올라서는 연습을”(「기능」) 하며 시간을 유예한다.
‘시간’은 박세미식 세계에서 사회를 주관하는 개념이다. 시인은 과거와 미래의 양 끝을 연결한 고리에 현재의 몸이 묶여 있다고 느끼며, “다른 존재들과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감각한다. 매일같이 걷고 뛰는 동작을 반복하는 인물들이 이러한 시간의 자장에서 벗어나는 공간은 오직 ‘발코니’뿐이다. “안에도 속하지 않고 밖에도 속하지 않은, 안과 밖의 자장에서 벗어난 무중력의 시간”(인터뷰)이 흐르는 곳이다. 「Balkon」에서 ‘나’의 딸 리자는 안온한 발코니 위에 선 채로 “아름답고 무섭고 아득한 사회의 바다”를 항해한다.

나의 딸 리자는 발코니를 건물의 정면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라고 한다
오늘도 리자는 작은 배를 타고 항해 중이다
등 뒤에서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하든 말든, 집 안 청소를 하든 말든, 노랫소리가 들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앞에 펼쳐진 바다만을 경험한다
뒤돌아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방금 돛을 펼친 사람처럼
-「Balkon」 부분

앞선 시의 제목은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의 사진집 『Balkon』에서 따왔다. 파무크는 반년간 매일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을 8천5백여 장의 사진으로 남겼고, 그중 5백여 장을 책으로 엮었다. 소설 쓰기가 막힐 때마다 발코니에 서서 바깥 풍경을 찍고 그 꾸준한 기록을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파무크처럼, 『오늘 사회 발코니』에는 성실한 생활의 포즈를 묘사한 시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년간 화이트 셔츠 공장에서 일해온 ‘나’는 “마흔 가지가 넘는 와이셔츠 제작 공정에서 칼라와 커프스를 다는” 작업을 수행한다(「생산 라인」). 1인 운영 국숫집의 주인인 ‘그’는 “국수 한 그릇이 손님에게 나가기까지 필요한 모든 과정”을 도맡는다(「일」). 생각이 끼어들 틈 없는 반복적인 일상을 멈추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사고다. “검붉은 피가 번지”고, “노릇하게 구운 냄새가 나”고, 얼굴도 모르는 “옆자리의 동료가 사라”(「생산 라인」)지는가 하면, “기계가 그의 손을 반죽인 양 빨아들인”(「일」)다. 사고(事故)가 일어난 순간에서야 사고(思考)가 시작된다.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가끔씩 “스스로를 인질 삼아 겁박”(「일 앞에서」)한 후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를 얻는다.

“나의 사회와 너의 사회가 만나는
촉촉한 뽀뽀”
─오늘의 맥락 위에 지어 올린 ‘실시간 시’

「모빌」은 시인이 처한 일상, 노동, 예술의 균형감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그림자처럼 살던 한 사람이 전시를 열기로 한다. 그는 “몸에서 가장 먼 곳부터/아프지 않을 만큼” 오려 실에 걸지만 “그림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잘라”내자 “전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탄생하는 ‘실시간 예술’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시인에겐 “아무것도 예술 작품이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이 예술 작품”(「가난한 미술 수집가를 위한 방」)이다. 출근하고, 노동하고, 웃거나 울고, 저녁을 먹고, 잠드는 생활인인 동시에 곧 시를 쓰고 그림을 보고 전시를 관람하는 예술인이다.

(중요한 것은)
그는 매일 한 권의 도록을 꺼내는 사람
그날그날의 기쁜 페이지를 펼쳐 테이블 한가운데에 두는 사람
전화를 받다가 정확히 거기에 커피를 쏟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회화 작품을 프린트해 벽에 붙여두는 사람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시를 쓰는 사람
필요하다면 그것을 떼어 바닥에 깔고 짜장면을 먹는 사람

침대에 누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을 바라보는 사람
이윽고 코를 고는 사람
-「가난한 미술 수집가를 위한 방」 부분

이 시의 화자는 생활과 예술이 서로를 간섭하고 침범하는 공간 속에 놓여 있다. 이십대를 통과하며 엮은 첫 시집이 일상에서 분리해낸 시적 순간들을 영감으로 삼았다면, 그다음 10년을 지나고 있는 시인은 다만 오늘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지어 올린다. 생활의 토대 위에 시적 풍경을 건설한다. 시인이자 직장인, 한 집안의 맏딸이자 한국에 거주하는 삼십대 여성으로서, “오늘 나의 노동에 관해, 오늘 읽은 책에 관해, 오늘 걸은 도시에 관해, 오늘 만난 사람에 관해, 오늘 꾼 꿈 위에 시적 언어를 대응시키고, 중첩시키고, 충돌시키고, 균열을 발생시키면서”(인터뷰) 충실하게 다음 보폭을 내디딘다.
누군가는 한집에 모이기보다 발코니 너머로 안부를 전하는 시인에게 모종의 거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박세미는 그런 의문에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즐거운 사회’는 이해받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애써 욕심내지 않는 것,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각자의 내면에서 “고요하게 타오르는 불”(「짐작 속」)이 쉬이 꺼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봐주는 일이라고. 「빈집에 갇혀 나는 쓰네」의 화자는 “빈집에 초대되”어 “스스로를 가두고” 다만 “쓰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너무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그저 발코니로 나가봐도 좋을 것이다. 그곳에 서면 맞은편에도 발코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어떤 순간에는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구하기도 할 것이다.

추천사


무수한 오늘마다
사회의 바다에 맨몸으로 던져졌다

유일한 발코니에 올라서면
오늘은 항해이기를

2023년 11월
박세미

목차

시인의 말

1부
생활 전선
현실의 앞뒤
생산 라인
순환세계
장식
일조권
육상선수
뒤로 걷는 사람

선택권
서프라이즈 박스
실수
기능
Balkon
현관
외출
보이드

2부
빈티지
우는 몸
점의 위치
얼굴 무거운
사회의 시간
나는 터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기원전 3억 5천2백만 년경부터 살아온
밤의 인터체인지
밥과 술
짐작 속
백내장
나와 그녀
표면으로 낙하하기
살아 있는 작은 안개가 하는 일
리액션
매거진
가난한 미술 수집가를 위한 방
벽 없는 집
새로운 생활

3부
부정적 유산
미술관을 위한 주석
11 구역
잠의 마천루
파사드
일 앞에서
거울 앞에서
어떤 키스
구라마온천 가는 길
접속
사치
꿈의 형벌
무심코
모빌
빈집에 갇혀 나는 쓰네

인터뷰
이웃한 발코니의 사람들로부터 · 박세미

본문중에서

안전해지려고
들어오는 열차의 머리에 다리를 내민다

다음 역으로 가는 동안에
다리 한쪽이 뜯긴
매미 울음소리를 듣는다
-「생활 전선」 전문

우리는 모두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걸음걸이를 가졌지
얼마나 각자가 위태로운지

나의 경우, 손을 최대한 부산스럽게 흔들어
발의 게으름을 위장하는 식이란다

친구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발에게 들려주는 애원

[……]

친구의 흥얼거림을 나는 아직 듣고 있어
두 다리가 점점 길어지는데
새와 나, 누가 더 필사적인가
누구의 다리가 먼저 붙잡힌 것이며
숲과 늪 중 무엇이 무엇을 가린 것이며……
-「현실의 앞뒤」 부분

선수는 땅을 짚는다
선수는 신호탄을 기다린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어 걸음을 떼고 몇 개월 뒤엔 뒤꿈치를 이용해 걸을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잘 걷고 잘 뛰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사의 모든 화근이 아닐까 선수는 생각했다 선수는 걷고 달리는 일 너머의 것들은 하고 싶지 않다 결승선 너머에 아무것도 없듯이

뛴다
오로지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한다
-「육상선수」 부분

나의 딸 리자는 발코니를 건물의 정면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라고 한다
오늘도 리자는 작은 배를 타고 항해 중이다
등 뒤에서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하든 말든, 집 안 청소를 하든 말든, 노랫소리가 들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앞에 펼쳐진 바다만을 경험한다
뒤돌아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방금 돛을 펼친 사람처럼

어느 날 리자가 말한다
사실 발코니의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빠 그렇지요?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할지, 무언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때?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를 계속 찍으면 무엇이 보일까? 그건 나도 모른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코니 아래
끊어진 닻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Balkon」 전문

저자소개

박세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가 나일 확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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