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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을 시작한다 : 이린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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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이라 쓰고 꺼내 먹는 노래로 가요”

유연하게 경계 위를 흘러 넘어가
그 너머에 닿는 힘센 사랑의 노래
★ 이린아 첫 시집 출간 ★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린아의 첫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시 「돌의 문서」로 “진실한 증언이 요구되는 이 시대의 이야기”라는 평을 들으며 데뷔한 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이린아는 뮤지컬 배우, 재즈 보컬리스트, 작곡가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여러 분야를 폭넓게 오가며 활약하는 시인을 닮아 다채로이 빛나는 69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한데 묶었다.

‘경계境界’라는 표현은 흔히 무언가를 구분 짓는 금이나 넘어서는 안 될 한계를 연상시키지만, 이린아의 시 세계에서 이는 면과 면이 맞닿아 생기는 따뜻하고 물렁한 선이다. 시인은 경계를 통해 ‘나’의 바깥에 ‘너’가 있음을, 나아가 ‘너’와 연결될 수 있음을 감각한다. 그리고 경계 너머의 그를 위해 손을 내미는 마음으로 “사랑이라 쓰고 꺼내 먹는 노래”(「불안의 사생활」)를 부른다. 바람을 타고 너울대는 노래에게는 경계도 소용이 없다. 이 힘센 사랑의 노래는 무대와 객석 간의 경계도, 기쁨과 슬픔 간의 경계도, 사람과 사람 간의 경계도 가뿐하게 흐리며 울려 퍼진다.
시를 쓰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모두 경계를 무용하게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그러므로 이린아는 “사랑하는 사람”이고, “당신이 어떻게 물어보아도” “그렇게 대답할 것”(「귀신같은, 귀신같은」)이다.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첫 시집을 품에 안고서,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랑의 시인 이린아가 당신에게로 간다. 당신과 흔흔히 연결되기 위해.

정확히는 특정한 ‘상태’에 가까울 사랑은 ‘나’가 경계 너머 ‘너’에게로 건너가고 연결되는 감각을 뜻할 것이다. 이 에로스는 ‘나’와 타자, 종간의 경계도 넘어서는 힘이다. [……] 고통과 자기부정을 넘어서는 에로스는 이린아의 시 세계에서 더 많은 존재와 연결되는 힘으로 확장된다.
-김보경, 해설 「에로스의 시학」에서

출판사 서평

기다림의 의자를 놓아두고
무대를 누비는 생生의 퍼포머

우리는 불가능을 담보로 공연을 계획했다.

무대는 벌판이어도 좋고 지평선이어도, 간이 정류장 또는 당근밭이어도 좋았다. 중간에 무산된다 해도 우리의 목표는 사실, 거기까지였음을 주제로 공연을 했다. 빈 의자가 있는 데면 어디라도 좋았다.
-「여름 공연」 부분

시적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시인이자 독특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좌중을 압도하는 음악인인 이린아는 그야말로 ‘퍼포머performer’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보경은 이에 주목하여 “이린아의 시에서 무대는 삶 자체의 은유”이며 그 무대 위의 배역은 “외적 강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증명을 위한 필연적인 일”임을 짚는다. 수다한 가면을 바꿔 써가며 무수한 페르소나를 선보이되 결코 ‘진짜’ 얼굴은 잃지 않는, 유려한 퍼포머 이린아의 공연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이때 무대의 형태는 아무러하여도 상관없다. 누군가 앉았다 갈 빈 의자만 있다면, 관객의 자리만 마련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 관객의 유무 또한 상관없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언제나 기다리는 역할”(「언니의 노래」)이고,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연주자”(「양동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토록 결연한 태도로 정성껏 꾸린 무대에 매료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독자라는 이름의 관객들은 곧 천천히 객석을 채워나간다.


한껏 끌어안은 기억으로 단단해진 몸
빗줄기 아래서도 이어지는 완전한 춤

나는 인간이 자신의 신체 능력을 정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이건 선천적인 것들에 대한 잔인한 비평은 아니에요. 내가 말하려는 건, 정말로, 자기 몸에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것도 자기 몸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두 자기 자신만 결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비가 오기 전 춤을 추는 새」 부분

이린아에게 시는 “붕붕거리던 노래가 다 빠진 그때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던 것”(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소감)이다. 노랫소리가 사그라진 뒤에도 무대 위에 여전히 남겨지는 것은, 마지막까지 “배역을 벗어나선 안”(「최초의 공연」) 되는 것은 ‘몸’일 터. 이린아의 시는 곧 몸의 시이기도 하다.
우리 몸은 “1층을 단단하게 안정”시켜야 하는 “집”(「필라테스 언니」)이어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경험이라는 재료를 골고루 쌓고 다져나가며 손보아야 한다. 보드랍고 연한 경험만으로 세워진 집은 오래 버틸 수 없기에, 다루기 까다롭고 위험한 재료라고 해서 내던질 수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재료를 적극적으로 주무르는 방식인 ‘기억’이며, “나의 몸에 어떻게” 좋고 나쁜 경험들을 “기억할지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비가 오기 전 춤을 추는 새」). 이에 “정말로 잊을 수 있다면,/네 상처를 포기할 수 있”(‘시인의 말’)느냐는 시인의 물음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편식하지 않고 “기억하기 좋은” 단맛도 “기억하기 싫은”(「별안간의 팬케이크」) 쓴맛도 전부 삼켜 단단해진 몸으로, 시인은 노래가 다 빠져나간 뒤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고 춤을 춘다. 이 몸짓은 “비가 오든 말든 마음껏”(「비가 오기 전 춤을 추는 새」) 계속된다. “아프지 않으면,/빗방울은 으스러지는 고통이 되고 말”(「아픈 공기」) 테지만, 시인은 이미 상처마저 껴안았으므로 괜찮다.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노래가 끝난 뒤에도 끝까지 춤추는 것. 이것이 삶이라는 무대를 향한 이린아의 사랑이다. 이제, 또 한 번 이린아의 사랑을 시작한다.

추천사


정말로 잊을 수 있다면,
네 상처를 포기할 수 있니?

2023년 9월
이린아

목차

시인의 말

1부 방 안에 숨겨놓은 타인
노을
숨기는 옷
최초의 공연
동물원
양동이
겹겹이의 방식
작은 풀들은 미끄러지며 자란다
언니의 새벽
엄마의 지붕
물웅덩이를 발음하려다
서니사이드 업Sunny-side up
귀신같은, 귀신같은
아홉 개의 채널과 엄마의 보자기
욕조

2부 이 구역은 이제 중성이야
비가 오기 전 춤을 추는 새
엄마는 날지 못하고
주사위
텀블위드Tumbleweed
언니의 거위
잘린 귀
헌터 타임Hunter Time
무릎에서 민들레가 자라면
꼬리 언어
생식
바스락거리는 셈법
12시와 울음
산책
그림책
도그 바이트Dog Bite
별안간의 팬케이크
올드패션드 러브Old-Fashioned Love
처음 입은 인간
2인용 요람
쉽게 열리는 무릎
불안의 사생활
신월
여름 공연

3부 혼자 마를 줄도 아는걸요
비치 러버Beach Lover
폐어肺魚
버드 세이버Bird Saver
분장실
엄마의 엄마에게
필라테스 언니

그림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
일렉트리컬 프로미스Electrical Promise
타임키핑Timekeeping
거짓말
구애, 구애
당신의 집
원더랜드 페르소나Wonderland Persona
영장류처럼 긴 팔을 사랑해
뒤집힌 파라솔

4부 나는 복숭아를 좋아해요
나비 정원
돌의 문서
뺨 맞은 관계들
벌룬의 저주
언니의 노래
꽃 없는 열매
아픈 공기
풍선 부는 사람
수레 무대
항아리 마을
불면증
오렌지 섹션Orange Section
절취선
코끼리
그룸Groom
복숭아

해설
에로스의 시학ㆍ김보경

본문중에서

왜 발돋움은 키의 역사에 끼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모두 뒤꿈치를 든 키가 있잖아요

[……]

나의 한 뼘은 복숭아예요
한 뼘이란 넘겨다보기 위한 것이지요
뒤꿈치를 드는 발돋움 하나로?
남의 집 담장 안을 모조리 빼앗을 수 있어요

그곳엔 뒤꿈치가 매끈해진 사람들이 살아요 마루에 앉아 복숭아씨를 뱉으면 내 손등도 복숭아처럼 보슬보슬해지고요 축축한 지붕으로 머리를 말린다면 또 다른 담장으로 날아갈 수도 있어요
-「텀블위드Tumbleweed」 부분

아무리 똑같은 물을 줘도 새싹이 뿌리째 마르는 나무들이 있지 그건 분명히 책이 아니었을 거야 흙 없이 깡통에 새어 들어온 빗물로도 쑥쑥 자라는 나무들이 있으니까, 그것이 책이었다면 그는 나에게 질문을 해서는 안 돼

침묵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아무도 살아 있지 않고 뾰족하게 식은 잎들을 서성거리며 문지르는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은 책을 읽기 전 날카로운 상처를 약속하지 그것이 오목해지도록 둬 동그랗게 부풀다가 그것이 터지면 오목하게 주저앉거든 나는 얼룩땅다람쥐의 작은 바구니가 될 거야

이따금 등이 굽은 노목들을 보았다
울타리가 될 때까지 아주 멀어졌다
-「그림책」 부분


인중을 늘이고
눈썹을 치켜드는
나를 마음껏 내려다보는 일
들여다보는 일
이곳에서만 흔하다

고개를 돌려가며 나를 흘기면
가장 하찮은 부분이
가장 중요해지고

구겨진 티슈 한 장으로
태어나는 이름들,

나는 나의 이름을
다섯 살 때부터 알았고
그 이전의 나의 이름은 나를 자꾸
다시 지우게 했겠지만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흘겨보았겠지만

브러시를 들면 나는 빨강 보라 분홍
간지럼을 태우며 얼굴 밖으로 흩어졌다

[……]

뭉개지고 번져도 묵묵히
나를 다시 그려내는 일
이곳에서만 흔하다
-「분장실」 부분


수도를 틀면, 때로는 역겨운 것들만 지우고 싶을 때 오늘 처음 닿았던 네 두 가슴마저 지워져 환해지는 기억들은 깜깜해지지 우린 푹 파인 모래를 움켜쥐면서 물도 발자국도 아닌, 모래 속으로 숨은 작은 게처럼 옆으로 휘청거리고. 그래 죽음은 그런 거니까, 차갑게 식어가는 게 싫은 그런

죽음은 피복의 한 종류야
양발은 여기서 타다닥, 깜깜해지는

마냥 들어오기만 하는 약속이지
-「일렉트리컬 프로미스Electrical Promise」 부분

■ 뒤표지 시인의 글

하루 종일 설쳤어요. 멍하니 앉아 있으면 졸음이 쏟아졌다가 자리를 펴고 누우면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거든요. 밤잠을 설치는 건 밤에만 있지 않고, 다시 밤이 올 때까지 있죠. 다른 밤이 올 때까지 한낮을 허둥대다 보면 하루의 계획들은 잠시 잠깐의 영감처럼 갑자기 내 머릿속에 떴다 별똥별이 되어 사라져요. 텔레비전의 채널을 마구잡이로 돌리다 잘려 나간 고전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꼭 그렇게요.

나는 내가 유일하게 또렷이 해내던 일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단 사실을 알아채요. 밤잠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이 증상에 관해 더 분명해지려 노력하죠. 멍하니 응시하는 내 눈앞, 보이지만 보지 않는 이 진공의 공간은 별을 보듯 별을 보지 않아야 별을 볼 수 있어요.

그건 살아 있을까?

당신은 언제나 살아 있죠. 어떻게 단순하면서도 나를 가질 수 있어요? 당신이 그랬죠, 어떤 밤은 날 기다려주기도 할 거라고.

밤안개 속 흐릿한 이파리들이 내 얼굴에 저릿저릿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알아채듯 말이에요.

낡은 의자와 비에 젖어 구불구불해진 책들, 쓱쓱거리며 바람을 타는 몇 안 되는 화분들을 봐요. 모든 것이 별이 되면, 비로소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없지만 읽을 수 있는 나를 사랑하죠. 그러다 반가운 졸음……

나는 물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번뜩, 정신을 차려요.

-밤에 물을 주는 사람에겐 반드시 암호가 있다고 믿는
내 사랑에게

저자소개

이린아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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