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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허밍을 한다 : 강혜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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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상상할 수 있다면 모두 가능한 이야기”
뉴 노멀New Normal이 될 서머-핑크의 미래

‘밤팔러’들이여, ‘허밍이’들의 행렬로 오라
죽음에서 건너온 사랑의 얼굴
‘폴짝’ 미래로 향하는 강혜빈 두번째 시집 출간

미래와 시는 닮았다. 종결되지 않는 상태로서, 미완의 상태로서 다만 거기 있다.
-산문 「미래, 가능성, SF, 미완성, 뉴 노멀, 바이러스, 연결과 단절」, 『시 보다 2021』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자 빛과 색감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여온 사진작가 ‘파란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는 문단계의 ‘프로 N잡러’. 그리하여 ‘뉴 노멀이 될 양손잡이’. 강혜빈의 두번째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87번째로 출간되었다. 2020년 첫 시집 『밤의 팔레트』를 펴낸 지 3년 만이다. “속으로 버석버석 우는 토끼”(「하얀 잠」, 『밤의 팔레트』)가 되어 세계의 비밀을 수집하던 시인은 이제 “토끼처럼 가볍게” “폴짝”(「미래 돌연변이」)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로 향한다 “블루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어떤 시절의 기분과 세계”(박상수)를 통과해 산뜻하고 경쾌한 서머-핑크의 미래를 펼쳐 보인다.
대부분 팬데믹 시기에 씌어졌을 시편으로 가득한 이번 시집은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써 내려”간(‘프롬 강혜빈’) 문장들로 이뤄져 있다. 『밤의 팔레트』는 지난 3년간 10쇄를 거듭하며 일명 ‘밤팔러’라 불리는 팬덤을 만들어냈다. 두터운 호응에 힘입은 첫 시집 이후에도 시인은 여덟 권의 앤솔러지에 참여했고 메일링 서비스 ‘프롬 강혜빈’을 운영했으며, 팀 ‘분리수거’ 활동을 이어왔다. 단절의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결되고자 노력했던 시인은 이제 “우리는 다른 풍경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잡은 손은 따뜻하”(「시향기」)다고 말한다. 다채로운 상상력과 함께 재편된 세계를 새로이 감각하는 미래를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아니, 자신이 가진 양손을 모두 내밀며 스스로 먼저 다가올 시대의 새로운 표준, ‘뉴 노멀’이 되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양손잡이 사랑 발명가
곳곳에서 그러모은 희망의 부스러기

죽음에서
죽음에서

안녕
내가 왔어
-「낮의 예고편」 부분

이 시집의 맨 앞자리에 놓인 「낮의 예고편」은 시인 강혜빈이 독자에게 건네는 첫인사다.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아들을 한자리에 소환하며 “끈적이는 손바닥의 시간”을 예고한다. 절망의 반죽에서 건져 올린 손으로 사랑의 세계를 지어 올린다. 잔느 드 뉘망, 시인의 다른 이름인 ‘잔망’은 “무엇이든 손으로”(「잔망과 무튼」) 만들어낸다. 말랑말랑한 재료를 빚어 연인도 만들고 미래의 아기도 만든다. “왼손으로 아기를 씻기고/오른손으로는 연필을 깎”는(「내가 아는 연희」) 시인의 손은 분주하다. “손이 부족하면/발로”(「잔망과 무튼」), “손이 닿지 않”으면 “몸을 앞으로 푹 숙”여(「잘 모르는 호두」) 곳곳에 남겨진 사랑의 부스러기를 그러모은다.
사랑의 요리사 같기도, 사랑의 마법사 같기도 한 이 시인을 ‘사랑 발명가’라고 명명해도 좋겠다. “셔터가 눌릴 때마다/새로운 얼굴이 되어”(「열과裂果」) 나타나는 강혜빈의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다. 앞선 시 「잔망과 무튼」의 연인 ‘잔망’과 ‘무튼’은 호숫가에 앉아 물비늘을 관찰한다. 풍경을 바라보던 잔망은 샌들을 벗고 물 가운데로 발을 담가 “무튼의 아킬레스건을 움켜쥔다”. 그들은 “풍경에 관여”하며 “분명한 의도”로 물비늘을 “조작”한다. 뒤이어 그들은 “슬라임 캠프로 향”하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다. 흔들리는 물비늘, 모습을 바꾸는 슬라임, 그슬리는 마시멜로…… 잔망과 무튼이 함께 발명한 사랑의 모양은 시시각각 변한다.
사랑의 모양에 변형을 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일상의 순간들이다. 「딩동댕 지난여름」의 화자인 ‘나’는 아내와 두부면을 삶아 먹고 아직 없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보고 함께 스쿼트를 하며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장대비처럼 내리는 사랑”을 기다리던 ‘나’가 후반부에 이르러 “지금쯤/장대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겠죠”라고 추측하는 장면은 이처럼 예사로운 일상이 사랑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짐작게 한다. 통속적인 사랑 노래를 흥얼거리며 유구한 혐오의 역사를 이기고자 한다(“더러운 세상은 사랑해버려요/다정하게 맞서는 법을 배워요”).

SF 세계를 모험하는 인류세의 선각자
디스토피아 시대를 준비하는 사랑의 실험

마지막이겠군요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어요

생선 파는 사람으로
생선 아래 깔린
얼음 가는 사람으로
잘못 갈린 얼음
배달하는 사람으로
-「옥수」 부분

“옥상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다시 태어”난(시인의 말, 『밤의 팔레트』)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생선 파는 사람에서 출발한 상상은 몇 차례의 연상을 거쳐 얼음을 배달하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 팔리기 위해 죽어 있는 생선과 끝내 녹아 없어질 얼음의 이미지는 ‘나-너’ 사이의 공동체 감각을 ‘인간-비인간’을 넘어 ‘물질-비물질’로 확장시킨다. 화자는 잠든 낚시꾼 주변에서 강변을 바라보며 피자를 먹는다. 강혜빈의 시에서 ‘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랑의 속성을 상징한다. 그것은 때론 눈물처럼 직접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때론 호수나 강변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만약 정말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는 무엇보다 비가 되고 싶어 할 것 같다. “긴 비, 둥근 비, 뾰족한 비, 달아나는 비, 가로지르는 비”, 바로 “이 비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시인은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물방울에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 물방울은 “지붕이 반만 달린 주차장”에 세워진 “찌그러진 자동차의 보닛”(「이 비」) 위로 내려앉는다. 파랗고 축축한 어둠의 시간이 그에게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초능력을 준 것일까(“무엇이든 사랑해버려요/무엇이든지……”, 「먼지와 질서」). 뼈와 근육의 이음새가 헐거워지면 비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듯, 그의 예고된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들에게 평등하게 내려앉는다.
이번 시집에는 특히 “숙아/숙아”(「숙아, 하고 부르면」), “오, 줄리아”(「줄리아」), “지가모토/지가모토 씨”(「지속 가능 모드 토이」)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강혜빈 시의 화자들은 “오늘 같은 날에는 아무나/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익선동」)다고 생각하며,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자신의 이름을 알지 못했”던 “그”를 찾아가 “나의 다정한 아내, 당신의 이름은 미도리……”(「녹음과 미도리」) 하고 속삭인다. 사랑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둘’이라는 것을 아는 시인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이 세계를 “감시하”는(「지속 가능 모드 토이」) 일을 기꺼이 자처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박신현 평론가는 물리적인 이동이 제한된 비대면 시기에 “시인의 의식은 오히려 미래와 사이버 공간과 저 멀리 우주로 확장해 나가며 비인간과 디지털 세계의 실존을 적극적으로 탐색”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3부의 시들을 엮어 읽는다. 「0.00」은 퇴근 후 캔 맥주를 마실 때조차 “멀리서/빙산 녹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현실적 딜레마를 담아낸다. 「대저 짭짤이 토마토의 미래」는 첨단과학 기술의 발달로 획일화된 인간의 마음을 염려한다. 「슈뢰딩거의 상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사고실험을 빌려, 상자에 담긴 반사반생의 고양이 상태에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을 빗댄다.
강혜빈은 두번째 시집에서 자신의 시가 씌어지는 시공간을 한층 확장하지만, 이러한 배경이 단순히 현실을 대체하는 유토피아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계가 점점 정교해지는 세상에서 납작해진 인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디스토피아 시대의 지속 가능한 사랑을 실험하고자 한다. 따라서 시 속의 인물들은 “토마토 박스로 살아가는 일이/인간의 삶보다 근사하다면” “기꺼이/덩그러니” 남고자 하고, 차라리 “아날로그 기계가 되고 싶은/디지털 인간”(「익선동」)으로 살아간다.

세계의 끝에서 나아가는 허밍의 합창
빈 괄호를 채우는 강혜빈식 세리머니

20미터 아래에서는
아포칼립스의 시나리오를 준비해

기계들의 웃음소리가
벽에 부딪힐 때

빗소리보다
작은 노래를 줄게

[……]

지상의 나는
허밍을 멈추지 않을게
-「미래는 허밍을 한다」

표제작 「미래는 허밍을 한다」에서 인류는 다가올 아포칼립스를 대비하여 기계로 가득한 “빛의 벙커로 내려간다”. 이 또한 미래를 기약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겠으나, 시인은 “차가운 밀실 안에서/인류를 구하”는 대신, 지상에 남아 “빗소리보다/작은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첫 시집의 “내가 너의 용기가 될게”(시인의 말)라는 전언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대의 빈집이 될게”라는 약속이 미래에 접속하기 위한 초대장이란 사실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그가 마련한 이 빈집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 「리미널 스페이스」의 연인은 “불 꺼진 건물들”과 “텅 빈 마트와 호텔/식당과 놀이터”를 지나 “경로를 이탈”하며 어두운 도로를 질주한다. 익숙하고도 낯설게 느껴지는 도시의 풍경은 같은 공간의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이벤트 호라이즌」에는 ‘트루퍼’라는 가상의 모자가 등장한다. 트루퍼는 “넓은 귀를 가”졌으나 “과묵하”여 바깥에서는 모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다. 이 기이한 모자는 작지만 온전한 미지의 영역을 구축한다. 빈 공간은 “아내의 잠 속”(「슈크림 토마토」)에도 “깍지 낀 손안”(「녹음」)에도 “양말 구멍”(「슈톨렌」)에도 있다. 시집 곳곳에 남겨진 빈 괄호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채워질 이 자리는 소멸의 미래를 종말이 아닌 희망의 목소리로 가득 채운다.
디스토피아의 도래가 머지않게 느껴지는 이 땅 위에서, 강혜빈이 “미리 보기로 슬쩍”(「미래에서 온 편지」) 내다본 미래는 허밍을 하며 나아간다. ‘허밍’은 입을 다물고 부르는 콧노래로 합창에 많이 쓰이는 창법이다. 가사를 알 수 없고 큰 발성을 내기 어려우며 음정과 박자도 제멋대로인 듯하지만, 함께 부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의 미래가 함께 허밍을 할 때, 그 노래는 슬픔과 절망, 죽음까지 모두 껴안은 채 폐허의 낭떠러지로 울려 퍼진다. “미래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시인의 말’)는 단언 뒤에는 어떤 희망이 숨어 있다. 이를테면 이런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끝에서 허밍을.” 그렇다면 이 시집을 ‘사랑 발명가’ 강혜빈이 한여름의 초입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불러도 될까. 시집을 덮고 이 편지의 바깥으로 걸어 나갈 당신의 이름은 “미래”일 것이다.

당신이 편지의 바깥으로 걸어 나갑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입력합니다

총총,
제 이름은 미래입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부분

추천사


미래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2023년 여름
강혜빈

목차

시인의 말

1부 햇빛 생활자
낮의 예고편
먼지와 질서
이 비
모조 새
익선동
겨울나기
검은 문
희망 없는 산책
불 꺼진 집들
참외주스가 있는 테이블
폴의 생활
재구성
숙아, 하고 부르면
잘 모르는 호두
다가오는 점심
망고와 성실
시향기
여름의 형식
사과의 분위기
내가 아는 연희
오야소의 기쁨

2부 비물질 실험-사랑 발명가
미래는 허밍을 한다
녹음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
열과裂果
대공원
프랑스 사람 수잔
딩동댕 지난여름
슈크림 토마토
돌아오는 우연
줄리아
잔망과 무튼
체리와 사건
신도시新都市
호두 정과正果
퐁피두센터
녹음과 미도리
가스등
신비와 뼈
리미널 스페이스
옥수
슈톨렌

3부 뉴 노멀
사이퍼텍스트Ciphertext
낙과落果
오늘 밤은 신비로움이 너무 없어서 하나만 만들고 싶어요
버추얼 스쿨
케이크 자르기
옛날 사람
딥 러닝
늘 같음 상태
미래 돌연변이
지속 가능 모드 토이
이벤트 호라이즌
딕테Dictee
대저 짭짤이 토마토의 미래
슈뢰딩거의 상자
미래 아기 얼굴
0.00
데드 포인트
멀티버스의 지은이
미래에서 온 편지

해설
미학적 현존과 감각적 계시 · 박신현

본문중에서

영수증의 글씨들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날에는
따라 해보세요

따뜻한 샤워와
오로지
나를 위한 수프 한 접시
단단한 쿠키와
어떤 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준비해요
-「먼지와 질서」 부분

뚝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

흐려지는 말끝처럼
눈이 내린다

다음 열차는 곧 도착해
다음 희망은 우릴 기다려줄 거고

[……]

뚝섬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만났던 사람이 된다면 좋겠어

도시의 기다림은 짧고 눈부시잖아

그러니까 등 뒤에
따라붙은 눈송이처럼
-「겨울나기」 부분

폴은 걷는다
성실한 산책자의 자세로

걷는 행위에는 목적이 없고
단지 걷는 감각만이 필요하다고

폴은 생각한다

운동화 안에서
작은 돌멩이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알아챘을 때

폴은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나뭇잎의 떨림처럼
그저 맞이하는 것
-「폴의 생활」 부분

너는 단 하나의 옳음
진창 같은 세계 속
가장 깨끗한 부분일 텐데

그러니까 부서지지 않는
무구한 눈 덩어리야

굴러라
굴러라
계속 굴러라

아무도 밟지 않은
조용한 마음이
캄캄해지지 않도록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 부분

저자소개

강혜빈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의 팔레트』가 있다. 사진가 ‘파란피(paranpee)’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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