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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드 : 윤지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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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심한 듯 꾸준히 시와 당신에게 다가가는 윤지양의 첫 시집
시와 시 아닌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 모음집

시가 되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를 써왔습니다.
-윤지양, 비시각각 프로젝트 프롤로그에서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적 착지점에 닿은, 혹은 닿으려 하는” 시를 쓴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아온 윤지양의 첫 시집 『스키드』(문학과지성사, 2021)가 출간되었다. 윤지양은 웹진 〈비유〉에서 연재된 비시각각(非詩刻刻) 프로젝트와 텀블벅 펀딩으로 진행된 시시각각(詩詩刻刻) 프로젝트 등을 통해 ‘시 아닌 것(非詩)’을 동료/독자와 함께 발견하고 수집하는 방법으로 시란 무엇인지 질문해왔다. 시집 『스키드』는 비시인 동시에 시가 될 가능성을 계속 물어온 윤지양의 성실한 대답이며 존재 증명이다. 그럴듯한 규칙들을 쌓아 올렸다가 일부러 무너뜨리는 사이 떨어져 나간 파편들은 시집 제목처럼 우연히 미끄러지며skid 새로운 의미를, 시라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윤지양은 전능한 설계자이기보다 어딘가에 몸을 숨긴 탐정이나 이 사건들을 증언하는 목격자 가운데 하나인 채로 독자들을 불러 세운다.

출판사 서평

좌초된 기억을 수집하는 최초의 목격자
따라 웃었어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대나무 숲」 부분

윤지양의 시는 관습에 의문을 갖는 데서 시작하는 듯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설명을 듣는 척하며 “물에 대한 몇 가지를 읊을 수 있게” 된다. 많은 아이가 물 모양이 별 모양이었다고 왜곡해 기억하지만, 선생님은 그저 별 모양의 그릇에 물을 담았을 뿐이다. 그릇을 깨뜨린 아이는 자신이 ‘물을 죽였다’고 생각하는데, 물이 쏟아진 바닥에 엎드려 울고 나서야 물이 별 모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물 배우기」). 또 다른 시에서 아이들은 함께 구멍을 판다. 구멍은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깊은 우물”이지만, 다른 아이에게는 두레박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뜬금없게도 양철로 보인다. 시에서 알게 되는 것은 모든 아이가 우물을 우물로 기억하지는 않으며 “우물은 어쩌면 그렇게 깊지 않을지도 모른다”(「작은 이야기에서 만난 작은 사람들」)는 것이다. 이 시들은 관습적인 시 쓰기와 읽기 방식에 대한 비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시를 쓰는 방법에 정답이 있다는 환상, 시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착각이 시의 자리를 너무 좁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윤지양은 그간 ‘시’와 ‘시 아닌 것’을 정하는 것은 개인의 기준, 읽는 사람의 개입이라는 나름의 방향성을 확고히 했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독자의 자리를 넓게 둔 시집 『스키드』에서 윤지양은 창작자/설계자이기보다는 시인의 말에서 이야기하듯 (이것이 시라고 증언하는) “하나의 목격자”이기를 자처한다. 이것이 시인가, 시가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머지 답들은 또 다른 목격자,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서.


사건을 해결할 생각이 없는 탐정

1 별 상관없는 이미지의 나열
2 별 상관없는 소리를 나열
3 변주하기
3 앞선 것 반복
2 오독을 유도하기
4 별 같잖은 생각을 그럴싸하게 별일인 양
5 대단한 생각을 같잖은 것처럼 쓰기
-「50가지 시작법」 부분

윤지양은 규칙을 무너뜨리기 위해 규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 「50가지 시작법」에서 ‘시작법’이라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차례로 읽다 보면, 당연히 1부터 50까지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문장 앞 숫자가 다른 규칙성을 띠고 있음을 문득 발견한다. 한참 다른 규칙의 의도를 찾다 보면 이번에는 시작법의 나열인 줄 알았던 문장들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하거나(“28 방금 나 쳤냐?/29 아닌데”) 숫자가 문장 안에 편입된다(“40일간의 금식기도”). 이렇게 윤지양의 시에서 규칙이라고 예상됐던 부분은 금세 무너지면서 읽는 사람을 배반한다. 분명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교묘한 혼란을 안겨주는 이런 구성은 시의 내부뿐만 아니라 시집 전체에도 적용된다. 도형이 삽입된 시, 세로쓰기가 적용된 시, 건물 모양으로 쌓인 시, ‘복숭아’라는 말을 서른다섯 번 사용한 시, 시인이 직접 그린 귀엽지만 조금은 어설픈 그림이 시를 대신하는 시 등이 곳곳이 배치됨으로써 시집의 성격 혹은 규칙을 즐겁게 망가뜨린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홍성희의 말처럼 “글자를, 단어를, 종이 위의 세계를 놀이하듯 활용하면서 그의 시는 무언가를 꽁꽁 숨기는 듯, 동시에 숨겨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의 ‘목격자’들이 멈춰 서서 힌트를 찾을 수 있도록 붙잡아둔다.

미음의 기쁨과 슬픔
윤지양의 시에는 돌멩이가 자주 등장한다. 큰 암석에서 해체되고 탈락된 돌멩이들. 시인은 자음 ㅁ의 형태를 빌려 “미음의 마음”을 생각한다. “모난 돌” 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는 “완벽한 단 하나의 ㅇ”이 너무나 부럽다. 그러나 ㅁ은 아무리 몸을 구부려 굴러보려 해도 부러지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ㅁ의 울음소리가 천장에 부딪치고 ㅁ은 무너져 내려 ㅂ이 된다(「ㅂ」).
시인은 규칙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파편들을 통해 전체의 거대함을 상상하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떨어져 나간 것들이 모여 예기치 못한 조합을 이룰 때, 그 광경은 재미있기도 슬프기도 해요. 어쩌면 모든 시들이 그런 식으로 어긋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ㅁ이 무너져 ㅂ이 되어도 그것이 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저에겐 희망처럼 들리거든요”(시인 인터뷰). 그러므로 ㅁ의 여정은 슬프지만은 않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함께 나누고 싶어”(「돌멩이 동화」) 하던 돌멩이는 ㅂ이 되어 또 다른 세계를 채운다. 사소한 착상을 확장시키며 마음의 틈을 건드리는 윤지양의 우연한 세계를 목격하길 바란다.

기쁨과 슬픔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자의 언어를 향한 욕망과, 언어를 휘두르며 타인과 자신을 규정하려는 자의 시선을 무력하게 만들어 보여주려는 언어 작업과, 언어를 욕망하는 마음이든 언어가 폭력이 되는 장면이든 지금 여기의 언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끝내 다시 ‘쓰는’ 자의 피로, 그리고 사랑으로든 미움으로든 쓰기를 계속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찾는 마음의 어찌할 수 없음까지. 윤지양의 시에는 언어를 둘러싼 다양한 마음과 태도가 통일되지 않은 방식으로 엮여 있다. 그 모든 언어를 신뢰하고 미워하고 부러뜨리고 그리워하는 장소가 바로 이 시집인지도 모른다. 홍성희(문학평론가)

목차

시인의 말


공룡섬

누군가의 모자
14마일
초록 알러지
사고실
네가 말하기를
비스킷(28)
X
돌멩이 동화
작은 이야기에서 만난 작은 사람들
50가지 시작법
별들에게
주공 아파트
숨은 그림 찾기
당신은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순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고
가방 비평

목수

중정이 있는 집
호수가 사랑한 오후
가위
글루미 선데이
대나무 숲
다섯 가지 단어 설명서
민트의 집
K끼리의 시대
생각이 나서
못쓰모: 못 쓰는 사람들의 모임
귀가 셋인 고양이
물 배우기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사람
기억 비평
미음의 마음
아 복숭아

물장난
봄, 벼랑, 발가락
붙잡는 거지 그럼에도 걷지

석수
환상열차분야지도
One day, the couch believed herself to be a poet
망령이 군산 앞바다를 배회한다
사과를 던진다
어느 날 소파는 자신이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가. 나. 다.
현대미문의 사건
전원 미풍 약풍 강풍
뮤즐리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을 때
무소식의 방문
모서리 놀이
바퀴

박하사탕


해설
마크ㆍ홍성희

본문중에서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걱정이 어른스럽게 말했다

너 문단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어떡하냐

그러게
쓰고 싶은 대로 쓸 거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도 들을 사람도 없고

사랑하는 것만 쓸 수도 없고
미워하는 것만 버릴 수도 없네
무엇을 담으면 넘치지 않을까

세수를 했다
양치도 하고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무엇을 담으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글쎄
고아도 자라면 어른이 된다니까
-「생각이 나서」 전문

쓰는 것은 바나나를 마주하는 것
까먹은 일에 대해 미끄러지는 것
노랗게 질리는 것
하지만 맛있게 우는 것
-「뮤즐리 그러나」 부분

지붕 위로 오렌지가 떨어진다
다 떨어진 붉은 벽돌 대신
오렌지 벽돌
틈틈이 끼워진다

멋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박수를 쳤다

대단해요
어쩜 그런 생각을 했어요
-「投」 부분

미움이 어둡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그것은 오히려 쨍한 햇빛과 같다 찌르는 말은 눈이 부시며 나는 미움으로 가득 찬 글들이 때로 찬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온하다면 쓰지 않을 것이다 평화롭다면 읽지 않을 것이다 말들이 함부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을 용서할 수 있다면
갉아먹는 것들
무책임하게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미워해야 할까
-「환상열차분야지도」 부분

시인의 글(뒤표지 글)
나의 뒷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등을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타인뿐이므로. 누구더러 부탁해서 대신 말해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내 등이 목격담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은 더욱 터무니없다.

분명한 것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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