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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싱크 하이웨이 : 박지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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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나의 마지막 목격자”

다시 쓰는 이름들로 수없이 선언되고 부정되는 ‘나’
밤을 헤매며 읊조리는 희미한 기록의 탄생

그의 시는 상태가 아니라 동작이다.
-김행숙(시인)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지일의 첫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데뷔 당시 “정물적으로 보이면서도 또한 움직이는 시 세계”를 “고유한 호흡”으로 드러낸다는 평을 받은 박지일이 시 63편을 『립싱크 하이웨이』에 담았다. 수록 작품 가운데 「휴일」 외 3편은 올해 신설된 문지문학상 시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며 “기존의 서사를, 문법을, 이름을 언어로 해체하겠다는 패기”와 “모국의 오래된 곳과 먼 곳의 말을 찾아 나서는” “종횡무진”함에 신뢰가 간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시인 이원). 박지일의 시에서 기이한 꿈속 같은 어딘가를 다양한 몸짓으로 배회하는 ‘나’와 이름들은, 끝없는 파도처럼 그 모든 행동과 시간과 장소로부터 지속적으로 밀려나면서도 또다시 태어난다. 총 4부로 나뉜 이 시집의 시들은 처음에 뚜렷한 기준으로 분류되었다가 원고를 다듬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재배치되었다. 명료함에서 스스로 멀어지면서, 규정될 수 없다는 규정조차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시적 고민들 안에서 기꺼이 뒤섞이기를 자처하는 영원한 나선, 그것이 “지나가버린 분명함에서 불분명함을”(「립싱크 하이웨이」) 추출해낸 박지일의 시를 상징하는 형상일 것이다.

출판사 서평

“나는 나의 마지막 목격자”

다시 쓰는 이름들로 수없이 선언되고 부정되는 ‘나’
밤을 헤매며 읊조리는 희미한 기록의 탄생

그의 시는 상태가 아니라 동작이다.
-김행숙(시인)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지일의 첫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데뷔 당시 “정물적으로 보이면서도 또한 움직이는 시 세계”를 “고유한 호흡”으로 드러낸다는 평을 받은 박지일이 시 63편을 『립싱크 하이웨이』에 담았다. 수록 작품 가운데 「휴일」 외 3편은 올해 신설된 문지문학상 시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며 “기존의 서사를, 문법을, 이름을 언어로 해체하겠다는 패기”와 “모국의 오래된 곳과 먼 곳의 말을 찾아 나서는” “종횡무진”함에 신뢰가 간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시인 이원). 박지일의 시에서 기이한 꿈속 같은 어딘가를 다양한 몸짓으로 배회하는 ‘나’와 이름들은, 끝없는 파도처럼 그 모든 행동과 시간과 장소로부터 지속적으로 밀려나면서도 또다시 태어난다. 총 4부로 나뉜 이 시집의 시들은 처음에 뚜렷한 기준으로 분류되었다가 원고를 다듬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재배치되었다. 명료함에서 스스로 멀어지면서, 규정될 수 없다는 규정조차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시적 고민들 안에서 기꺼이 뒤섞이기를 자처하는 영원한 나선, 그것이 “지나가버린 분명함에서 불분명함을”(「립싱크 하이웨이」) 추출해낸 박지일의 시를 상징하는 형상일 것이다.

『립싱크 하이웨이』가 공유하는 전제는 세상의 모든 우연을 하나의 논리, 하나의 진리로 수렴하는 간단하고 손쉬운 대처법이 아니다. 이곳, 일인용 숲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자리가 끝내 마련되지 않은 장소다. 한 사람을 위한 숲에서조차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나’는 과연 나의 마지막 목격자가 될 수 있을까. 하나의 정황을 둘러싼 채로 수없이 비껴가는, 그래서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이야기인 것은 아닌가. 시집은 이 곤란한 물음의 자리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채로 그것의 의미를 느리고 깊게 들여다보는 일에 열중한다. 최가은(문학평론가)

“나는 너의 가장 먼 제자리”
씌어진 나와 쓰는 나의 사이에서

맞잡은 손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고 하나는 우리가 아니다.
-「큐브」 부분

지금도 똑같은 이름 매번 다른 글씨체로 벽 위에 겹겹이 새겨놓고 있어
-「0347」 부분

어떤 시에서 박지일의 화자는 빈방에 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소리를 지속하라.” “지속하고 또 지속하라”(「연습」). 재촉과 반복으로 지쳐버린 화자는 선잠에 든다. 그러나 꿈속에서도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들었던 것 자백하라”(「뱀사골」). “저 목소리 좀 어찌해달라고 이 시에게 부탁하면서”(「0347」) 간청하고 “저는 이 문장과 무관한 사람입니다”(「단막극」)라고 부정해보지만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0347」 「립싱크 하이웨이」)라는 답변만 번번이 어디선가 들려올 뿐이다. 결국 목소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화자는 “다만 네게 어울리는 별명이라도 지어주려”(「빈방은 나의 정원 그네 하나 끝없이 흔들려야만 했어요」)고 목소리들에 이름을 붙여본다. “버티고” “세잔” “숙희” 등 무수한 이름이 친구나 동료처럼 빈번하게 호명되며 화자와 어울린다.
이때 목소리는 여러 타인이 단일한 화자의 입을 잠시 빌리는 ‘영매’ 형태의 발화가 아니라, ‘씌어지는 나’가 ‘쓰는 나’와 시차를 좁히며 함께하는 ‘립싱크’처럼 느껴진다. 박지일 시의 화자는 자신이 “표절당한 책”(「책; 달로 가는 버스」)이며 “납치된 것 같”(「휴일」)다고 주장하지만 표절과 납치 모두 실체 없는 ‘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멈추지 않는, 누구도 뛰어들 수 없는”(「패킹」) 저주는 강제된 것인 동시에 자발적이다. “중얼거림으로써 확신하기” […] “모든 걸 잊기 위해 중얼거리기”(「이름들」), 스스로의 의미를 부정하는 취소선이 그어진 문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려야 해. 직전의 풍경 떠올려야 해”(「오드아이 신드롬」)라며 ‘나’가 강박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또한 받아 적는 곳은 이제 빈방이 아니라 “목적 없어 죽어도 끝이 없고 끝장내도 죽음이 오지 않는”(「못질하기 좋은 해안가」) 어딘가이다. 기이한 꿈속이나 일인용 숲, 혹은 늦은 밤 “종로삼가”나 “아현 가구거리”(「이바구」) 같기도 한 그곳에서 독자는 마침내 “네가 달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달이 너를” “어쩌면 달을 상상하는 너를 달이 그려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른다”(「Selfie」).

혼돈 속 질서를 탐구하는 미학
지켜보는 눈으로 확장되는 시

상상을 헛디디며 너는 시작한다

내게서 멀어지는 풍경과
나를 덮쳐오는 풍경
-「빈방은 나의 정원 그네 하나 끝없이 흔들려야만 했어요」 부분

“우리는 질서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혼돈을 사랑한다.” 네덜란드의 화가 에셔의 말이다. 박지일의 시는 에셔의 판화를 떠올리게 한다. 아래의 손을 그리는 위의 손, 동시에 그 손을 그리는 아래의 손이 구현된 에셔의 작품 「그리는 손 2」처럼 쓰는 나를 재촉하는 씌어지는 나, 씌어지는 나의 말을 받아 적는 쓰는 나는 영원히 멈추지 못하고 저주에 걸린 듯 쓰고 씌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시작할 수 없다 너를 떠올리면 망가지는 확신 때문이다”라고 머뭇거리던 화자는 “지시한 공간이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확신을 무너뜨린 자리에서 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저수지」)하고 “형용할 수 없는 이인칭”을 탄생시킨다(「빈방은 나의 정원 그네 하나 끝없이 흔들려야만 했어요」). “미러볼”이 끝없이 회오리치는 박지일의 알 수 없는 “물결 하는 클럽”에서 “홀로 탱고 하”던 ‘나’는 “내가 탱고 하는 것인지 탱고가 나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립싱크 하이웨이」). 주체가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이 주체가 되는 것은 박지일의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혼돈 속 질서이다.
박지일은 이번 시집에서 관점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다. 그중에서도 그래픽 디자이너 김재영과 함께한 〈이 내가 나는 정말 좋아〉 연작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원본 사진을 확대하거나 방향을 바꾸고 여러 효과를 주어 네 가지 다른 ‘나’로 그려내는 이 작업은 실체 없는 ‘나’라는 대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영원한 반복을 포착하고자 했던 시인의 미학적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바라보는 주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보는 각도 따라” 다르게 보이는 “렌티큘러”이미지처럼(「0347」), 지켜보는 눈이 있어야 의미와 재미가 완성되는 에셔의 판화처럼, 진정한 마지막 목격자의 자리는 숲속에 문득 들어선 독자들의 몫으로 비워놓는다. ‘나’ 외의 제3, 제4의 목격자의 개입을 상정한 박지일의 시는 또 다른 눈들에 의해 끝없이 재구성되면서 한없이 다르게 쓰일 것이다.삼각형 고속도로에 드러눕기를 반복한다. 나는 그가 되어 오함마 내려치고 타국의 저무는 태양 바라보며 모래 섞인 바람 얼굴로 맞고 있지는 아니하는데 이곳의 내가 저곳의 그를 쓰는 것 아니고 이곳의 그가 저곳의 나를 읽지는 또 아니한다는 사실만이 오갈 데 없던 나를 이제는 가만있을 수도 없게 하더라.

목차

시인의 말

1부
사카린 프로젝트
크로마토그래피
연습
아기 새
휴일
사카린 프로젝트
해파리 유영;
설중매雪中梅
모나리자
일점일오 센티미터
복도 책걸상 강의실 안으로 옮기라 하시니
이 내가 나는 정말 좋아
못질하기 좋은 해안가

2부
0347
뻐꾸기 들어갈 수 없는 제목
후보 선수와 참여자들
목동의 탄생
저수지
감상 시절
빈방은 나의 정원 그네 하나 끝없이 흔들려야만 했어요
펜션 말고 펜숀
말할수록 빵빵해지는 풍선
단막극
이 내가 나는 정말 좋아
Selfie
오드아이 신드롬
뱀사골
렌티큘러
립싱크 하이웨이
Lip synchronization Highway(1992)

3부
너의 이름 처음 잘못 불러준
사카린 프로젝트
현기증
목동의 탄생
연필 깎는 사람
가설과 후보 선수
필경사
새와 열차와 외국인
휴일
이름들
빠비안
메종 드 순덕
저기… 눈송이를 한 알씩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는 나의 앤에게
세잔과 용석
이바구
큐브

4부
부러지는 구름
패킹
굴착기와 굴 찾기
군락지에서 불낙지
이 내가 나는 정말 좋아
사카린 프로젝트
지극히 의미 없는 문
책; 달로 가는 버스
사랑니
부동시
바구니에 바게트
이 내가 나는 정말 좋아
휴양가설
종로 가구거리 들어서며
3’47
머멀리거
후보 선수 없는 팀은 출전할 자격 없다

해설
일인용 숲의 마지막 목격자ㆍ최가은

본문중에서

정체 모를, 립싱크 하이웨이와 비슷한
그러니까 영상, 흰 유령 전속력으로 달리던

그러니까 가드레일 옆면에 뿔 갈며 마콘다라 불리는 영물을, 은빛 드릴을
[…]
아 그러니까 나와 전혀 관계 아니하는 구름이 어찌 나와 상관해보겠다는 듯 꿈틀대는 저 하늘을, 빌딩, 혜화, 신촌 거쳐 어데 립싱크 하이웨이를, 미치지 아니하고야 어디 한번 미쳐볼 생각에 매초 미쳐 있는 이 나를.
-「립싱크 하이웨이」 부분

모토; 나는 나와 교환한다
[…]
이것은 잠든 나를 대신하여 그가 스스로에 관해 남겨놓은 기록의 일부였다
[…]
때때로 시간이 그를 앞섰다
[…]
숨바꼭질을 끝낼 방법은 하나라네 너와 나와 화가가
동시에 뒤돌아보는 얼굴 찍힌 사진을 가져올 것
-「후보 선수와 참여자들」 부분

아마 납치된 것 같습니다.
[…]
실패한 장난감입니다. 나는 트랙에 강제로 삽입된 멜로디 같습니다. 한쪽 귀로 동시에 파고드는 비단잉어와 미꾸라지의 궤적입니다. 공터를 원했을 뿐인데 돌과 돌의 돌이 돌담 쌓아 올리고 슬레이트 슬레이트 지붕과 화약 냄새 풍기는 눈동자들 나를 둘러쌉니다.
[…]
잊으라 흔들리던 징검다리, 뒷덜미 낚아챈 손, 집의 설계도 다 잊으라. 잊고 잊음으로써 경주마들 일제히 달려오는

트랙 한복판으로 곧 납치될 것 같고. 두 눈 더듬을 때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자꾸만 이곳에서 저를 훔쳐냅니다. 아아 배고파 부엌에서 접시 쥐고 거품과 거품의 거품 만들어내면서 나는 자꾸만.
-「휴일」 부분

나는 지금 막 태어나는 열두번째 물결
[…]
내가 돌고 있으니 너는 지금 막 태어나는 첫번째 물살. 그렇다면
…나는 너의 가장 먼 제자리
-「연필 깎는 사람」 부분

주인 없는 요람이랄까. 내가 거주하고 있으므로 발견될 수 없는 아지트랄까.
이곳에서 너는 쉽게 시작되라.
-「Selfie」 부분

뒤표지 글(시인의 글)
불붙었다 공중에 매달린 저 삼각형. 가케무샤와 가케무샤의 가케무샤는 삼각형 안으로 끌려온다. 시간은 세 꼭짓점을 옮겨 가며 흘러내린다. 나는 넷 여덟 다섯 순서 개수 상관 아니하는 발로 삼각형 통과하기를 반복한다. 각각의 꼭짓점을 무개성하게 퉁 치고 넘어가는 것은 자칫 무뢰배로 인식될 수 있으니 그것을 현재-미래-과거로 분리하여 부르기로 약조한 것이 조금 후겠다. 하지만 나의 우유부단함이 현재를 과거 하게 하다가 돌멩이를 애벌레 하게 하지는 아니하고 글쎄 광대 하려는 빨랫줄은 용납을 또 아니하더라 같은… 생각은 오늘도 저 높이 치솟아 나를 감싼 하늘 흉내 낸다. 삼백이 번 가케무샤와 이백칠십구 번 가케무샤는 마그네슘 알약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자기네 제조사의 것이 최고라고 다툼 한다. 이것은 지금 타이핑 위하여 내가 귀 기울이는 녹취록의 한 대목인데 도통 비논리 하면서 논리 하고 논리 하지 않으면서 정당하지도 아니한 이 대목을 팔십네 번 세 번 그러니까 대충 열댓 번은 들었다 퉁 쳐본다. 녹음된 목소리를 십 초 뒤로 가지치기하고 전방으로 과거 하면서 듣고 있으나 또 수확하지는 아니하면서 삼각형 구석에 주저앉았다가 삼각형 고속도로에 드러눕기를 반복한다. 나는 그가 되어 오함마 내려치고 타국의 저무는 태양 바라보며 모래 섞인 바람 얼굴로 맞고 있지는 아니하는데 이곳의 내가 저곳의 그를 쓰는 것 아니고 이곳의 그가 저곳의 나를 읽지는 또 아니한다는 사실만이 오갈 데 없던 나를 이제는 가만있을 수도 없게 하더라.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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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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