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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아 곰아 : 진동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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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초월적 공간으로의 안내!

진동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곰아 곰아』.1978년 《시와 의식》을 통해 등단한 저자가 등단 36년을 맞아 펴낸 이번 시집은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계의 새로움과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화적 상상력과 새로운 서사 욕망, 초월된 세계를 그려낸 ‘소리청’, ‘소나기성 그리움’, ‘백제금동대향로’, ‘은행나무들의 축제’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편지를 받고 사랑이 무르녹는 서동와 선화공주의 이야기, 인간이 되고자 백일 참회 기도를 들어간 곰을 사랑한 다람쥐의 이야기 등 옛 설화를 빌려 신화에 새로운 서사를 더해 풀어내며 생생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더불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혼연일체가 된 경지에 이른 저자가 펼쳐낸 자연 속에서 약동하는 생명력까지 가까이 느껴볼 수 있는 시편들을 담아냈다.

출판사 서평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보는 초월적 세계
자연과 일체된 감각으로 피워내는 생명의 대향연


1978년 『시와 의식』을 통해 등단한 진동규는 등단 36년째를 맞는 2013년 새봄 문학과지성 시인선 425 『곰아 곰아』를 출간하였다. 2011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등장하여 더욱 주목을 모았던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1999, 문학과지성사)의 저자이기도 한 진동규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계의 새로움과 매력이 두드러진다. 또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혼연일체가 된 경지에 이른 시인이 펼쳐 보이는 생생한 생명력이 독자들을 초월적인 공간으로 인도할 것이다.

신화적 상상력, 새로운 서사 욕망과 초월된 세계

다람쥐는 곰이 걱정이다. 무엇을 따라 한다는 것부터 문제였다 이것저것 마구 먹어치울 때부터 무슨 사단이 나지 싶었다 백일 금식 참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문제다
[……]
모아둔 갈참나무 도토리 창고를 헐었다 힘들지만 묵을 쑤고 묵국수를 만들었다 가지 끝에 감긴 바람이 국수 말리는 일을 도왔다 다람쥐야 오독오독 방아나 찧었지만 올깃쫄깃 맛은 밤새워 흐르던 물소리가 도왔다
긴 잠에서 깨어나는 날, 고로쇠나무 등걸을 죽국 긁어대는 날 고로쇠물에 말아내는 묵국수 해장국
달라붙은 속 함께 달래자 곰아
-「곰아 곰아」 부분

표제작부터 심상치 않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단군신화」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지지만, 잘 들여다보면 다람쥐와 곰의 사랑이 하고자 했던 뒷이야기다. 두 동물의 종·속·과·목·계를 따지는 것은 이 시에서 무의미하다. 시인에게는 자연 속 구성원은 모두 통일된 생명의 총체이고, 그의 상상력에 따른 애틋한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연구자이자 평론가 우한용은 이 시에 대해 “어쩌면 이승에서 받을 수 있는 위안과 배려의 맨 꼭대기 요람 같은 게 아닐까. 그런 경지에 이르렀으니 동화면 어떻고 신화면 무슨 상관일 것인가”라고 평했다.

황금이 언덕처럼 쌓였다던 지모밀 옛날도 이랬던가 보다 지평선 끝까지 넘실거리는 황금빛 서동이 지은 노랫말 선화 공주는 남방 담로의 배소 완함을 즐겨 탔다지? 북소리 피리 소리 뒤따르며 악사들이 오른쪽 머리를 매만지며 나온다
-「백제금동대향로」 부분

서동이 노랫말을 짓고 선화공주가 악기를 타며 노래를 한다. 기존 설화처럼 서동이 노래를 지어 선화공주가 쫓겨나는 형식이라면, 시에서 제시된 상황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시집 『곰아 곰아』에는 이런 식으로 엣 설화를 빌려 새로운 서사들을 풀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편지를 받고 사랑이 무르녹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 인간이 되고자 백일 참회 기도를 들어간 곰을 사랑한 다람쥐의 이야기 등, 신화에 새로운 서사를 더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물아일체의 경지, 생동하는 생명력의 현현

길 떠나지 않은 해오라기 백로와 함께 겨울을 살았다. 오월에 왔던 놈들인데 지난 시월 이민청에 가 출국 서류를 날려버린 놈들이다.
[……]
지난겨울은 추웠지만 새들과 나는 참으로 따듯했다. 왜가리가 제 조끼를 벗어주었고 나는 아직 가을 햇살을 말아 쥐고 있는 낙엽을 몇 가려서 보내주었다.
-「뒤표지글」 부분

시집의 마지막을 맺음하는 「뒤표지글」에서 시인은 자신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모래무지를 몰고 다녔던 시물강에 해오라기와 백로가 가득한 풍경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자연을 감상하는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왜가리에게서 따뜻함을 얻고 자신도 햇살 쥔 낙엽을 보내주는 동반자이자 일체된 존재이다. 이러한 합일감은 아래 시에서처럼 ‘미륵’과 연결되어 깊은 깨달음을 동반하기도 한다.

고도리 돌 부부상, 섣달그믐 지척 분간 없이 다 지우는 눈보라 속에서 만나는 백제 부부를 역사책은 부부라 적지 않고 ‘부처님 가운데쯤’이라고 했다는데 언젠가 그들이 말문을 여는 날이면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
[……]
‘입추운-’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생강나무꽃 살피는 걸 보았다고도, ‘입추우-’하면서 말복날 바람 한 채반 뒤적거리는 것 똑똑히 보았다고도, 부처님 가운데쯤으로가 아니라 입술이 터져라 부비더라는 숭헌 소문에 이른 것

때가 이르렀다 어둠을 나누고 떡을 나누었다 살을 나누었다 징그러운 종살이도 나누었다
-「고도리 부처님 말씀」 부분

언뜻 보기에는 성(聖)스러움을 상(常)스러움으로 표현해버리는 듯한 이 시는 사실은 그 둘의 차이가 전혀 없음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연에서 ‘어둠’과 ‘떡’과 ‘살’을 나누는 행위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일인 동시에 생명을 이어가는 가장 고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움으로 통한다는 것, 성(聖)과 속(俗)의 간극을 메워버리는 인간성human nature의 긍정으로 오히려 자연 속에서 약동하는 생명력을 무척이나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이번 시집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풋국
소리청
모래 밥상
뒤꼭지에 딱따구리 굴집을 지을 때
채송화
반딧불이 떼 지어 오르는
곰아 곰아
바람광장
꿩밥
꽃밥
서울 아까시꽃

제2부
소나기성 그리움
팽기꽃 뒤뚱뒤뚱 피어나는
광장
소리판
나비는 꿈을 나누지 않는다
라면을 먹으면서
담양 가는 길
갈매기 치는 길동이
세한도
무지개
느닷없는 풍경 하나
초막
삐쫑새

제3부
은백양나무 숲
자국눈
백제금동대향로
꽃관
지모밀 하늘 아직 그 빛깔이지
꽃소문
손을 놓다
은행나무들의 축제
대바람 소리
쑥부쟁이

제4부
풀피리
실뜨기
감나무 시
물꽃 물의 꽃
솔바람 소리
연이 돌아왔다
선운사 꽃무릇
고도리 부처님 말씀
추신
우표청 여자
丁石, 石假山

제5부
꽃밭에서
보리밭
워낭 소리
회문산 아재
매실을 담그면서
노을밭
갈대밭에서
우렁각시 홍도
귀뚜라미 편곡
석화
석류
동백꽃

해설 생명의 용틀임과 역사ㆍ우한용

본문중에서

달빛 듬뿍 찍어
창호지에 물오른 감나무 가지

감꽃 떨어지던 봄밤의
바람 감기던 거기
가지째 뚝 끊어지는데
익어가는 진양조의 오리발 시리게 누르고
기러기 몇, 하늘에 그림자를 새긴다

먹을 갈아 갈아
깊어가는 밤 추적추적 걷어다가
까맣게 굵어지는 감나무
-「감나무 시」 전문

겨울을 감 잡아내는 보리밭

얼었다 녹고 헐어 부풀어 오른 땅
지그시 밟아 부스럼 같은 것들
가만가만 땅바닥에 다독인다

땅맛을, 땅맛을 알아야 하지

발등을 덮어오는 황토 부풀었던 것들
보리밭에 보릿대로 나를 세운다

덧나지 말아야지, 잔등을 넘어
푸른 이내 마을로 내린다
-「보리밭」 전문

[뒤표지 글]

길 떠나지 않은 해오라기 백로와 함께 겨울을 살았다. 오월에 왔던 놈들인데 지난 시월 이민청에 가출국 서류를 날려버린 놈들이다 폐렴 예방주사 한 대롱이면 독감쯤 간단하다고 싸이 춤을 선보인 놈들이다. 날개를 예각으로 꺾는 회전무도 보여주었다. 전에는 내가 물장난하며 모래무지를 몰고 다녔던 시물강이 이제는 저놈들 것이 되었다.

주말에는 명사십리 바람공원을 자주 찾았다. 앞바다에 떠오르는 모래 언덕의 매력에 이끌려서다. 조선의 어려운 시기에 우리 장군께서 바다 위에 펼쳤다는 학익진처럼 쇠피리를 불어댔다. 새날의 출발인 새로운 사구의 융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리라. 몇 날, 몇십 날, 몇백 날을 바다는 제 깊은 속에서 이 역사를 이어왔던 것이 아닌가.
저 황금빛 모래 턱에 밤이 오면 조개들의 춤이 이어질 것이다. 날개 달린 미리내의 조개들이 별자리를 따라 작은 나래를 파닥이며 내릴 터이다.

지난 겨울은 추웠지만 새들과 나는 참으로 따뜻했다. 왜가리가 제 조끼를 벗어주었고 나는 아직 가을 햇살을 말아 쥐고 있는 낙엽을 몇 가려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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