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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면이라는 무대 위에서 언어들이 펼치는 한 편의 연극!

김경주 시집『기담』. 첫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로 극찬을 받았던 김경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2007년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에 선정된 <무릎의 문양>을 포함하여 총 42편의 시를 묶었다. 이번 시집은 '부'가 아닌 3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에서 희곡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시인은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시인은 시도 극도 아닌, 하지만 시도 극도 아직 실현해보지 못한 장르 미상의 어떤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향한 욕망을 보여준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시인이 사용하는 무기는 바로 언어이다. 시인의 작품들은 지면이라는 무대 위에서 언어들이 펼치는 일종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극이 끝을 맺을 때 그의 시는 가장 자유로운 활공을 시작한다.

미로와 멀미 속에서 활공하던 언어들이 지면 속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지면을 걸어다니다가 허공에 대사를 읊는다. 이어서 반대편에서 등장한 다른 언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긴 사이를 두고 우리가 모르는 수면으로부터 시가 들려온다. 그것이 시인이 풀어놓는 '기담'이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기담>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어 들어가서야
다시 흘릴 수 있는 피가 있다

출판사 서평

손을 떨고, 몸을 흔들고, 말을 할 수도, 눈을 맞출 수도 없었던 자폐아가 IQ185의 천재 시인이 되기까지! 오로지 아들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껏 현대과학조차 풀지 못한 자폐증의 비밀을 한꺼풀 벗겨낸 엄마의 위대한 사랑의 기적!

“숨이 찬 인어(人語)들의 멀미로 울렁이는” 이상한 이야기

그는 2003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라는 심사평을 들었던 그는 다음 해인 2006년 첫 시집을 냈다.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던 그 시집은 현재까지 만 부가 훌쩍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많은 독자에게 그를 알렸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54 김경주 시집 『기담』이 출간되었다. 그의 두번째 시집이다.
첫번째 시집을 향해 쏟아진 무수한 감탄과 탄식만 미루어보더라도, 그의 두번째 시집에 대한 문단과 독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클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김경주 시인의 두번째 시집 『기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는 어쩌면 보기 좋게 빗나갈지도 모른다. 2006년, 그의 첫 시집이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던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김경주 시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타고난 직관으로 자기 앞에 놓인 새로움이 미지의 것이며, 자신이 온몸으로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정체가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간파하며 움직이는” 시인. ‘이 세상에 없는 계절’에서 온 심미적 모험가가 펼쳐놓는 ‘이상야릇 재미있는 이야기[奇談]’가 이 가을, 독자들을 낯선 시간과 공간 속으로 안내한다.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향한 언어들의 향연

‘2007년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에 선정된 「무릎의 문양」을 포함하여 총 42편이 묶인 이번 시집은 3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가 아닌 ‘막’으로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이 시집이 희곡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김경주 시인은 ‘혜화동 1번지’에서 자신의 시 제목이기도 한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라는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그러나 시집이 희곡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을 터. 그곳엔 우리가 생각하는 시도, 우리가 알고 있던 희곡도 없다.
‘제1막 인형(人形)의 미로’는 희곡의 지시문과 같이 시작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 시집 안은 “어둠 속에서 언어들만이, 지면 속에서 떠올라,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연을 떠돌아다니듯이 부유하고”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암전”뿐이다. 또한 시인은 이것이 “들리지 않는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음악극”이면서 “언어들이 지면에서 빚어내는” 언어극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로와 멀미 속에서 활공하”던 언어들이 “지면 속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지면을 걸어 다”니다가 허공에 입을 벌려 대사를 읊는다. 이어서 반대편에서 등장한 다른 언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긴 사이를 두고 “우리가 모르는 수면으로부터” 시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이 기담이다.
“시도 극도 아닌, 하지만 시도 극도 아직 실현해보지 못한 장르 미상의 어떤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향한 욕망을 시집 『기담』은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시인 김경주가 사용하는 단 하나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언어이다.
자신의 태몽을 꾸는 그 잠을 화술로 이식하여 만든 무덤(「기담」), 기어이 새가 되고 마는 떠내려가는 빛을 문장으로 이장하여 치르는 장례(「풍선의 장례」), 공포로 세계를 견디는 제물이 되어 그 참혹 속에서 미혹에 붙들린 채 자신의 형신(形神)이 어디로 바쳐지는지 모르고 추는 가장 연연한 춤(「프리지어를 안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 지면이라는 무대 위에서 언어들이 펼치는 연극이자 시다.
제2막에서 그것은 ‘멀미’로 나타난다. 인어(人語)가 일으키는 멀미. 내부에서부터 우루룩 밀려 올라오는. 한편으로 멀미는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무릎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김경주 시인이 들려주는 기담은 “무릎이 멀미를 하며 말을 걸어오는 시간”에 펼쳐지는 “시간의 관절에 대한 이야기”(「무릎의 문양」)인지도 모른다. 시집 전반에 걸쳐 ‘틈’ ‘사이’ ‘구멍’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3막에 이르러 ‘구멍’은 활공한다. “구멍을 갖고 싶어 책을 몇 권”(「구멍」) 낸 시인이 도착한 곳은 ‘기록’이다. 그곳은 “흔들리고 살기에 참 좋은 무덤”(「우리들의 변성기」), ‘시’다. 결국 ‘구멍’과 ‘기록’은 ‘시’의 다른 이름일는지 모른다. 이 한 편의 극이 끝을 맺을 때에 이르러서 그의 시는 정지된 듯 보이지만 가장 자유로운 활공을 시작하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꾸는 꿈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이오네스코의 ‘부조리 언어’를 언급하며,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존재 자체가 이미 페르소나이기에 발설되자마자 극(劇)의 몸을 갖는 말,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시가 되려는 말, 그러한 말의 꿈”으로서 탄생된 “프랑켄슈타인-어(語)”로 김경주 시를 이야기한다. 김경주 시인의 이 프랑켄슈타인어는 “언어의 부조리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언어 스스로가 완전한 자율체로 거듭나는 지점을 찾으려는 시적 꿈의 소산”으로서 “꿈의 언어이며, 언어의 꿈,” “그리고 지금까지 없었지만 앞으로 있을 시, 이 세상에 없었으나 이제 곧 생겨날 미래태(態)”라는 것이 그의 설명. 그리하여 그는 “프랑켄슈타인어는 미래의 시를 지칭하는 다른 표현이”라고 단언한다.
강계숙은 여기에 덧붙여 “인조 인간을 만들어낸 박사의 이름이자 동시에 그가 만들어낸 기괴한 괴물의 이름이기도” 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형상을 띤 인형”이지만 ‘인형’으로서의 정체를 자유롭게 누리려 하는데, 그것은 다시 말해 “언어와 언어 사용자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 즉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언어 너머의 언어로 존재하려 한다는 점에서 아직 없었던 미지의 시를 계시한다”고 설파한다. “그것은 일종의 초(超)-언어이며, 언어가 자의식적 존재로 화(化)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언어이자 그 언어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그 프랑켄슈타인이 독자에게 프리지아 꽃을 바친다.
“이 꽃을 받아주시겠습니까?”(「프리지아를 안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목차

시인의 말

제1막 인형(人形)의 미로
기담(奇談)
짐승을 토하고 죽는 식물이거나 식물을 토하고 죽는 짐승이거나
주저흔
풍선의 장례
장 콕토
팬옵티콘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도 저녁은 찾아온다
자두는 무슨 힘으로 외풍을 막는가
이꼬르들의 천식
구름이 백 년 전을 지나갔던 것일까?
연필의 간
(오름)8½ 팔과 이분의 일
미음, 미음을 먹어요
다섯 개의 물체주머니를 사용하는 자연 시간
프리지어를 안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환풍기

제2막 인어의 멀미
무릎의 문양
물-질
당신의 눈 속엔 내 멀미가 산다
빵 굽는 타자기
내 이름은 연애
내장기 에반게리온
아귀(餓鬼)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분홍 주의보
어느 날 우리는 우는 일밖에 없는 것인데
어그야 혹은 파롤
피아노가 된 나무 2
릴리 슈슈의 모든 곳 1
쇄골이 닮은 가계(家系)

제3막 활공하는 구멍
꾸꾸루꾸 꾸꾸꾸 꾸꾸루꾸 꾸꾸꾸
추상에 대한 명상
물새의 초경
사랑해야 하는 딸들
내시경(內視鏡)
저수지
구멍
입속의 성(城)에서 그가 어두운 거실을 왔다 갔다 한다
우리들의 변성기
곤조 GONJO
연출의 변
구운몽(口雲夢)

해설 | 프랑켄슈타인-어(語)의 발생학 / 강계숙

본문중에서

하늘에 포르말린 흩어진다

구름이 하늘에서 풍선 속을 통과한다
그건 구름이 풍선의 장례를 치르는 일

저녁은 공중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
내려온 공중에 가득 찬 수면을 바라보는 일
다른 선으로 빛이 떠내려가는 일

떠내려가는 빛이 기어이 새가 되고 마는 일이 있다
그 빛을 문장으로 이장하는 일 그건 내가 이 세상에서 바꾸어
부르기로 한 일, 문장의 일

구름이 허적허적 게워내고 있는 풍선

혁명. 다른 피를 밴 구름
연필이 마신 등고선들
떠오르는 순간 장례를 치르는 문장
음울한 한 짐승의 물방울

죽은 다음에야 풍선을 비울 수 있는 육체,
그건 내 나비의 실내에 부검이 못 들어오는 일
나는 배다른 구름의 일

표본실엔 물방울 짐승

─『풍선의 장례』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60714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면서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고, 이 시집으로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다'라는 평과 함께 문단과 대중에게 큰 바람을 일으켰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시절 친구들과 만든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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