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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렐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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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보르헤스와 함께 아르헨티나 소설계의 대부였던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 언어적 고안품으로서의 소설, 세계의 비밀을 밝히는 소설


    비오이 카사레스가 [모렐의 발명]을 발표한 1940년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매우 의미가 깊은 시기였다. 라틴 아메리카 문단이 전통 소설, 즉 사실주의 소설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소설을 추구한 분기점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바로 이때 [모렐의 발명]을 통해 줄거리와 모험에 관심을 보이며 현대 문학에서 가장 과감하고 혁신적인 작업을 감행했다. 다시 말해 “교묘한 언어적 고안품”으로서의 진정한 소설(보르헤스―[서문] 참조)의 시대를 연 것이다. 한국어 판에도 실려 있는 보르헤스의 서문에 따르면(이 서문은 소설 자체만큼이나 라틴 아메리카 문학비평계에서 매우 중요한 글로 평가된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기존의 심리 소설과 사실주의 소설을 과감히 거부하고, 모험 이야기, 즉 “합리적인 상상력의 소설”을 스페인 문학에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사물들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을 모험하기 위해, 혹은 당혹할 때 느끼는 흥분과 현기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나는 환상 소설을 쓴다.”

    “세상은 고갈되지 않는 보고이다. 그것은 러시아 인형처럼 무한한 수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문학의 출발점이 환상에 있다는 점에서 그는 보르헤스와 자주 비교가 되고, 또 실제로 평생 동안 문학적 교감을 나눈 지기(知己)로서 다수의 작품을 공동으로 집필한 탓에 보르헤스풍의 작가로 오인되기도 했으나, 그의 문학 세계는 추리 소설 식의 탄탄한 플롯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주로 남녀 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영생과 죽음, 시간 등 삶에 밀착한 명제들과 결부해 한 차원 높게 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보르헤스와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비오이 카사레스의 문학에서는 신중하게 구성된 환상적 내용이 현실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사의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환상 문학의 대표자이지만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치밀한 구조를 갖도록 소설을 다듬고 만들어 낸 그는 1990년 스페인어권의 노벨 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았으며, 사후 카밀로 호세 셀라(노벨 문학상 수상자)로부터 “보르헤스와 더불어 우리 시대 문학의 위대한 장인이다.”라는 헌사를 받은 바 있다.
    이렇게 보르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인데도, 생전에 그는 보르헤스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우선 워낙 부유한 가정 출신이기에 자기 작품에 걸맞은 물질적 보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보르헤스와 개인적, 문학적으로 너무나 가깝게 지냈다는 점 또한 그 또 다른 이유이다. 보르헤스가 비평계와 출판계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동안 그는 항상 보르헤스의 이름 뒤에 묻힌 채 그의 절친한 친구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독자들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관심들은 이제야 비로소 그가 자신의 문학성에 걸맞은 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만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 SF와 판타지 그리고 미스터리의 삼중주로 짜인 완벽한 플롯


    비오이 카사레스의 문학 세계는 데뷔작이었던 [모렐의 발명]에서부터 이미 성공적으로 드러났다. 20여 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또한 알랭 로브그리예가 각본을 쓴 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nnee derniere a Marienbad)](1961)에 영감을 주기도 한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나는 목숨을 걸고 노를 저어 바다 한복판 ‘빌링스’라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섬으로 도망을 쳐 왔다. 살인적인 기세로 덮치는 파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명할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되게 보내던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섬에 나타났다. 나를 잡으러 온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다가, 매일 오후면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한 여인을 보았다. 구불거리는 짙은 머리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두 손.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발각돼 잡혀간다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이 가도 그녀는, 그리고 사람들은 내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는 매번 똑같은 대화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호기심과 공포가 한꺼번에 나를 짓누른다. 어찌된 일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여인의 곁에서 살기 위해 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외로운 망명자 ‘나’가 끊임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에 직면한다는 이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 추리 소설, 환상 소설의 측면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 숨은 비밀을 캐 나간다는 점에서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 같고, ‘이상한 사람들’의 정체가 모렐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영사기에 의해 투사된 영상, 즉 이미지/환영이라는 점에서는 공상과학 소설로도 볼 수 있으며, 그 영사기에 찍히면 반복해서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영원의 삶을 획득하고 현실 너머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판타지로도 볼 수 있다.
    소설의 출발은 이렇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만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 포스틴은 모렐이 발명한 영사기로부터 재생되어 나온 영상이다. 그녀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몇 주 전, 혹은 몇 년 전 이 섬에서 여름을 보냈고, 그때의 일상이 모렐의 영사기에 찍혀 조수 간만의 주기에 따라 규칙적으로 재생된다. 피사체를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적으로도 완벽하게 재현하는 영사기에 힘입어 그들 모두는 영상 속에서 행복했던 여름 한때를 영원히 반복해서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완벽한 현실로 구성된다.
    자신이 사랑했던 눈앞의 여인이 그녀의 실체가 아니라, 다만 영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그 자신 역시 영사기에 찍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인데, 그도 그럴 것이 영사기에 찍히는 순간, 피사체는 서서히 죽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영상 속에서의 영원한 삶이라는 ‘불멸’을 얻기 위해서는,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불멸의 대가로 실체는 파괴된다. 이러한 섬뜩한 사실에도,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여자와 함께 영원히 상영되기를 택한다.
    이 기괴한 사랑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상황 묘사와 그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통해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설명했던 섬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의 비밀은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무릎을 탁 칠 만큼 아귀에 들어맞게 훤히 밝혀진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 덕에 이 소설은 독자를 완벽한 플롯 속으로 끌어들인다. 바로 이것, ‘고안되고 구성된 이야기’로서의 순수한 소설이 비오이 카사레스가 추구했던 문학이며, 보르헤스가 극찬했던 문학이다.

    영혼을 기록하고 영원이라는 꿈을 창조할 수 있는 기계
    ― 덧없는 삶과 불안한 사랑보다 더 확고부동한 환상의 세계


    이 작품은 시간과 환상, 그리고 사랑이 빚어낸 가상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과 소유하고 싶은 대상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기술의 힘으로 실현되었을 때, 그리고 다가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공상 과학, 판타지와 미스터리로 잘 버무려 보여 주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시간 개념에 대한 거부와 불멸의 탐구, 사랑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누구든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만한 가정, 모두의 삶의 감정과 사건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기계 장치로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부터 출발해 정교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소설은 죽지도 않고 행복도 잃지 않으려는 인간 욕망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이는 보다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에 대한 관심, 즉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개인이란 대역 혹은 잃어버린 원본의 복제품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독자들에게 이런 상상적 존재들로 가득한 세상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상상적 존재들과 접촉하거나 의미 있는 교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실체인 줄 알았던 세계가 환상임이 밝혀졌을 때, 그것은 다만 놀랍기만 한 사실이 아니다. 삶 자체가 덧없고 또 사랑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환상일지라도 확고부동한 불멸이 되기를 택하는 편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

    이미지와 환상, 비현실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예견
    ―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품들로 가득 찬 세상


    본질적으로 이 책은 복제품이 실재하는 것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원본에 가까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상상한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무성영화배우인 루이스 브룩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집필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텔레비전이나 스크린 위에 복제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결국 우리에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유명인들(연예인들)에게 사랑이나 집착 같은 감정을 느낀 경험이 있다. 환영을 사랑한 것은 [모렐의 발명]의 주인공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환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 오래된 흑백 영화에 나오는 매혹적인 여배우, 이제는 죽고 이 세상에는 없거나 늙어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을 여배우조차, 우리는 스크린 위의 그 모습, 젊고 아름다웠던 때의 모습만을 보고 사랑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전인 1940년에 쓰인 이 소설은 환상과 가상현실에 대한 집착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예견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환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조차 그 영상들 속에 삽입하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실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영상으로 기록된 순간은 영원성을 획득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그것은 실재일 수 있다.

    세계의 확실성에 회의를 제기하는 문학
    ―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환상 문학의 선구자


    비오이 카사레스가 추구한 환상 문학은 이렇게 있을 법하지 않은 비현실을 그리지만, 사실은 오히려 더욱더 ‘완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애초 그가 환상을 추구한 것이 구체적 현실로부터의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 탐구를 위한 비현실 추구. 환상은 엄연히 현실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그는 어느 순간까지는 완전히 현실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가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을 슬쩍 접목시킨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함을 역설적으로 묘사하면서,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비오이 카사레스는 사실주의 문학이 간과했던 세계의 진실을 포착했다. 세계에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비오르헤스'(비오이+보르헤스)라고 불릴 만큼 늘 보르헤스와 함께 묶여 언급되던 작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바로 이런 점에서 보르헤스와는 변별되는 문학을 추구했고, 어느 면에서는 보르헤스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목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서문
    모렐의 발명

    작품해설
    작가연보

    본문중에서

    포스틴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흘러가고 있었다. 무릎을 꿇어 나의 사랑을 고백하고 나의 삶을 들려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여자들이란 그 어떤 종류의 찬사나 칭찬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놔두는 편이 나았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갑자기 자기가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그의 삶의 이유라는 말을 한다면, 우리는 그를 매우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아메리카의 해방자 볼리바르 1783~1830' 라는 글귀가 새겨진 만년필을 팔거나 아니면 모형 배가 떠 있는 술병을 팔려고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바보 같은 정신 이상자처럼 심각하게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개의 태양과 석양을 좋아하는 우리 두 사람의 취향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내게 질문하기를 잠시 기다리면서, 적어도 나는 늘 무인도에서 살고 싶어 했던 작가라고 밝히고, 그래서 그녀의 친구들이 섬에 왔을 때 분노가 치밀었다는 말도 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이유로 나는 거의 항상 물이 차 오르는 섬의 한쪽 편에 있어야만 했다고 설명하면서 (이것은 저지대와 그곳의 재앙에 관해 기분 좋은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이곳을 떠날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고 그러면 매일 오후 이곳으로 와도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 p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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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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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2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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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콜롬비아 카로이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픽션들], [알레프], [거미여인의 키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모렐의 발명], [천사의 게임], [꿈을 빌려 드립니다],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 [염소의 축제],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 등이 있다.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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