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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 - 일본 제국의 기초를 닦다 : 인물로 보는 일본역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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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진우
  • 출판사 : 살림
  • 발행 : 2019년 08월 30일
  • 쪽수 : 1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224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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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메이지 천황,
    ‘위대한 군주’라는 찬양과 미화에 가려진
    그의 실상은 무엇인가


    메이지 천황의 ‘실상’과 근대 이후 신격화된 ‘허상’의 관계를 추적한다.

    출판사 서평

    메이지유신 이후 신격화된 인간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메이지 천황의 면면


    메이지유신으로 시작되는 메이지시대의 최고 권력자이자 시대 그 자체로까지 평가받는 메이지 천황. 정작 ‘메이지 천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이 책에서는 어리고 무력하던 소년이 근대국가 군주로 탈바꿈하게 되는, 그 이면에서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일본역사에서 메이지 천황이 어떤 인물인지 눈앞에 그릴 수 있게 한다.

    목차

    머리말·신격화에 가려진 메이지 천황의 ‘실상’

    제1장 일본이 기억하는 메이지 천황

    제2장 메이지유신의 시대적 배경

    제3장 메이지 천황의 탄생과 메이지유신

    제4장 천황친정운동의 전개와 좌절

    제5장 근대천황제 국가와 메이지 천황

    제6장 천황의 군대

    제7장 메이지의 종언

    맺음말·‘5개조 서문’의 유산

    본문중에서

    실제로 메이지 천황은 고메이 천황의 죽음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메이지유신으로 시작되는 메이지시대 최고 권력자 메이지 천황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 p.4)

    오늘날 메이지유신이라고 일컫는 ‘왕정복고’는 실로 정치적 격동기의 권모술수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이러한 권모술수의 와중에서 이제 16세의 나이로 즉위한 메이지 천황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이 요동치는 세상에 대응해갔을까.
    (/ p.35)

    소년시절의 메이지 천황은 후세의 전기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호걸형은 아니었다. 심지어 16세의 나이에 부왕이 요절하고 즉위할 당시에는 신경쇠약 증세로 고통스러워했다고도 한다. 소년시절의 메이지 천황이 연약한 성격이었던 것은 여성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도 있을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의 측근들이 가장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안은, 그에게서 이러한 여성성을 벗겨버리고 그를 남성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일이었다.
    (/ p.42)

    천황을 실제로 ‘불세출의 영재’에 걸맞은 군주로 키우기 위해서는 군덕 함양을 위한 교육이 필요했다. 특히 아직도 권력 기반이 취약한 신정부로서는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천황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지만 현실의 천황은 아직도 미숙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 p.59)

    천황은 추밀원 회의에 감기로 한 차례 결석한 것을 제외하면 매번 참석하고 있었지만 전혀 발언하지 않았다. 이토는 천황 앞에서 자신이 유럽에서 배운 헌법학 내용을 천황에게도 직접 가르쳐 천황을 근대적 군주로 재교육하려 했던 것이다.
    (/ p.87)

    대일본제국헌법(일명 메이지헌법)은 1889년 2월 11일 ‘기원절’을 기해서 흠정헌법으로 발포(發布)되었다. 메이지헌법은 외견상으로는 입헌군주제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신화를 근거로 천황주권과 신성불가침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모든 권력을 천황에게 집중시킨 것이었다.
    (/ p.88)

    메이지헌법에서 모든 권력이 천황에게 집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천황은 헌법의 틀 안에 갇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다.
    (/ p.90)

    이를 계기로 전국의 각 현청에서도 청원이 잇달아 같은 해 11월에는 모든 지방 관청에 ‘어진영’ 하사가 결정되었다. 1874년 신문기사에는 천장절 등의 축일에 “천황의 사진을 우러러보고 만세를 부르며 참배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초상 사진 하나가 국민의 천황에 대한 경애심과 숭배심을 심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p.96)

    메이지 천황은 장년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일본의 천황이라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게 되었다. 술을 즐겼다는 증언은 많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정무를 소홀히 했다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다. 집무에 대한 의무감이 강해서 국사를 소홀히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유신 원훈들과 시강·시종·시보 등 측근들의 군덕 함양을 위한 노력의 성과이기도 했다.
    (/ p.101)

    메이지 천황의 정치 자세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어느 한쪽에 편파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이다. 천황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토막파와 막부의 충돌과 내전, ‘정한론’ 분열과 세이난전쟁, 시보와 내각의 대립, 의회 개설 이후 정부와 야당의 대립 등을 목격하고 군덕 함양의 수련 과정에서 상반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절충과 분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 p.102)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0종
    판매수 771권

    계명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학교에서 지역학 석사, 히토쓰바시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근현대사가 주 전공이며 주로 근대 이후 현대까지의 일본 천황제를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연구과 특별연구원, 리쓰메이칸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일본사학회 회장,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장,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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