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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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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변영희
  • 출판사 : 문학의전당
  • 발행 : 2016년 09월 04일
  • 쪽수 : 12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896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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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정면으로 보여주는 비참한 삶의 현장

    [문학의전당 시인선] 233. 2010년 계간 [시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변영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변영희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적지 않은 시편들에서 비참한 삶의 현장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전망과 희망이 부재하는 사회 현실에서 문학의 대사회적 요청을 시가 외면한다면, 정작 인간을 향한 순정한 위로가 가장 필요한 이들은 시를 비웃게 될 것이다. 일종의 ‘사회시’가 요청되고 있는 시점에서 변영희의 시집은 그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그러나 변영희 시인은 민중시의 리얼리즘적 전통보다는 모더니즘적인 깊은 감수성의 토대에 뿌리를 두면서도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놓지 않는, 일관된 시작(詩作) 태도와 정신을 시집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 전체 속 개체들에 대한 주목만이 개체에 묻어 있는 세계의 지문을 읽어내게 하며, 그때 환경과 사회의 문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남을 시인은 내밀한 시의 표정들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개체가 살면서 품게 될 열망과 고통, 희망과 절망 등에 대한 그의 이러한 ‘진술’은 고유하고 가치로운 개체의 삶-현재의 이 사회에서는 고통이 전경화 되고 있는 삶-에 대한 일종의 기록 작업이며, 그것은 또한 죽음이 지배하는 현대 세계에서 삶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구제하여 부활시키는 작업이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배제와 폭력의 세계에서 부활을 꿈꾸는 시

    1.

    변영희 시인의 첫 시집인 [y의 진술]을 읽으면서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이 시집의 적지 않은 시편들이 비참한 삶의 현장을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겠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병들고 부패했다. 청년의 미래는 보이지 않으며 빈부 격차는 심화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채로 연명하는 사회가 되었다. 여러 사회 집단들의 상호 혐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어떤 전망도 보이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의 문제에 대해 문학인들은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학의 대사회적 요청에 대해 시가 외면한다면, 그만큼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시를 비웃게 될 것이다. 일종의 ‘사회시’가 요청되고 있는 이 시기에 변영희의 시집은 그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그렇다고 변영희 시인이 민중시의 리얼리즘적인 전통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모더니즘적인 감수성이 이 시집에는 더 짙게 드러나고 있다.

    어떤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 그 시인의 시론이 드러나는 시를 우선 찾아보게 된다.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과 시작(詩作)에 대한 태도를 읽어내면 시집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신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놓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모더니즘적인 감수성을 보여주는 변영희 시인의 시론을 드러내는 시는 무엇일까? 나는 [나무를 볼래]가 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의 전문을 옮겨본다.

    숲을 보라고?
    아니 나무를 볼래

    바람의 지문 공기의 지문
    꽃의 지문 우체통의 지문
    그림자의 지문
    지문, 지문이 통과하는

    휘파람 같은 시간은 꼬리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

    직립의 고독 직립의 지루함
    눕고 싶은
    엎드리고 싶은
    낭창 구부리고 싶은 나무들이 우두둑

    햇빛이 있는 집을 갖고 싶어
    빛이 망토처럼 드리우는 방
    빛의 세례란 그런 거

    우울이 곰팡이처럼 번지는
    e편한세상이 덮쳐버린 방
    그건 슬픔의 씨앗이 되기도 해
    the 편한 세상 아래 사는 청춘은
    잠이 많아 참 다행스럽지

    졸음에 겨운 나무를 거느린
    이 편한 세상, 안녕하신가?

    위의 시에서 시인은 전체를 보지 않고 개체를 보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 선언이 개체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를 무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환경과 사회가 개체가 직면하고 있는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주목하겠다는 것이다. 전체를 통해 개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에 대한 관찰을 통해 전체를 알아 나가겠다는 것, 즉 개체를 모나드(단자)로서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하나의 모나드에는 세계 전체가 비추어지고 있다. 모나드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전체를 비추어낸다. 저 세계의 ‘지문’이 통과하는 나무에는, 세계의 흔적이 남게 될 것이다. 하나의 개체인 나무로부터 그러한 세계의 흔적을 읽어낼 때, 환경과 사회의 문제가 드러난다. 하지만 모나드로서의 개체, 저 한 그루의 나무를 살펴보는 일은 개체에 묻어 있는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바로 개체가 살면서 품게 될 열망과 고통, 희망과 절망 등에 대해 진술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모나드가 작은 우주라고 할 때, 모나드로서의 개체는 그 무엇에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정념을 갖고 삶을 살아나간다. 개체에 대한 조명은 이러한 고유한 개체의 삶-현재의 이 사회에서는 고통이 전경화 되고 있는 삶-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위의 시의 ‘나무’는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가? 지루하고 고독하게 직립해야만 한다는 고통과 ‘빛의 세례’를 받고 싶지만 "햇빛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고통을 겪고 있다. 나무가사는 방은 햇빛이 아니라 "e편한세상이 덮쳐버"린 것. ‘e편한세상’은 물론 중의적이고 반어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알다시피 ‘e편한세상’은 모 아파트 전문 브랜드 이름이다. 그 이름은 이 시대의 유토피아-편한 세상-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유토피아란 "우울이 곰팡이처럼 번지는" 장소(아파트)를 도시 공간에 꽉 채운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햇빛이 아니라 "망토처럼 드리우는" 우울이 "슬픔의 씨앗이 되"는 "이 편한 세상"에서 지루하게 서 있어야 하는 나무들은, "졸음에 겨"워 하면서 눕기만을 바라면서 살아간다. 위의 시는 현재를 살아가는 개체들의 삶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서, 현대 문명과 이 문명을 생산하는 ‘e편한세상’과 같은 자본이 삶을 어떻게 무력하게 만드는지 암시하고 있다.

    2.
    어떤 개체의 삶을 조명하면서, 현대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암시하고 비판하는 방식은 아래의 시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의자1 눕고 싶어
    의자2 바보 같은 소리
    의자3 누워 있는 의자?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양말을 가진 발은 따뜻해 보여
    노숙의 날이 차가운 문양으로 박힌 맨발
    깊은 밤을 건너는 힘 충전 중이야
    열 개의 발가락이 오지 않는 행운처럼 슬퍼
    자꾸, 자꾸만 발이 시려
    포장박스는 치우지 말기로 해
    각진 구석은 더 많아져야 해

    새벽 네 시의 한우 더블팩
    푸른 눈을 빛내는 노마드족의 에너지원이야

    고요의 무덤이어도 좋을
    새벽 다섯 시는 제한시간이었어
    똑 똑
    몸에 닿는 노크에 자동인형처럼 일어나
    어디론가 쏘옥 쏙 사라지는 갯벌의 게들

    노마드족이 사라진 시간도 그즈음이야

    떠나는가 하면 돌아오는 역전의 시간
    기차의 운행은 계속되어야 해
    (/ '변주(變奏)' 전문)

    위의 시 역시 사회 비판을 보여주고 있는 시로, 한밤중에 좀 더 따듯한 곳을 찾아 기차역으로 숨어들어오는 노숙자들의 개별적 모습에 대해 진술하면서 진행된다. 이 노숙자들은 시의 초반에 ‘의자’로 사물화 되어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나무를 볼래]의 나무들처럼 눕고 싶어 하는 존재자다. 눕는다는 것이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면, 나무들이나 저 노숙자들-의자들-은 타나토스의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저 노숙자들의 모습은 나무보다 더욱 처절하다. 이들은 ‘노마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가 운행되는 새벽 다섯 시가 되면, 그들은 기차역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다. 현대는 ‘노마드족’의 시대라고 사회학자들이 주장한 바 있는데, ‘노마드족’의 전형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벽이 되면 "자동인형처럼 일어나/어디론가 쏘옥 쏙 사라지는 갯벌의 게들"과 같은 저 노숙자들임을 위의 시는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배제되고 추방되어 유랑해야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현대를 가장 잘 상징하는 이들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덮고 있는 포장박스-상품을 ‘보호’하고 있었던 박스-와 양말 없이 "노숙의 날이 차가운 문양으로 박힌 맨발"이 비교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버려진 포장박스만이 그래도 이 노숙자들의 친구처럼 옆에 놓여진다. 이 사회에 쓸모가 다한 이들-상품 가치가 없어진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버려진 포장박스에 상품 대신 들어가 유령처럼 살아간다. 또한 새벽이 되면 "고요의 무덤"에서 유령처럼 사라져야 하는 이 노마드족은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기차의 운행과 대비된다. 저 노마드족이 어슬렁거리면서 ‘게들’처럼 천천히 사라짐과 동시에 운행이 계속되어야 하는 기차-현대의 상징일-는 이곳으로 질주해 들어온다. 이러한 사회적 주제는 [헐]과 같은 시에서도 강하게 전개된다. 이 시는 "백일 지난 아기의 하루는 기저귀 값 포함 칠천 원 시간당 최저 임금을 넘어선 액수"인 세상에서 둘째 아이를 가졌으나 낳을 수 없어서 낙태해야 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낙태되는 아기는 저 "박스에 담겨"진 노숙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 낙태아처럼 노숙자의 영혼 역시 산산이 찢겨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핸들의 은유]는 질주를 향한 현대인의 열망이 육화되어버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어이 찾아낸 직선의 길 가속의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싣는" "질주를 향한 열망"은, "코드의 진화는 더디고 문명의 걸음은 빠르"기 때문에 곧 파탄으로 끝나버릴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 시인의 전망이다. 그 "어긋난 불협화음에 난무하는 로드킬"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졸음을 피하러 자동차는 가속도를 불러내"는 현실은 더욱 빨리 일을 진행해야만 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유래한다. 더 많은 이윤을 내기위해서는 자본의 회전을 빨리 해야 하고,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질주는 로드킬을 불러올 것이며 ‘막다른 골목’에 부딪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러한 ‘로드킬’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문어우체국]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고통 받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시화(詩化)하고 있다.) 부를 빨리 쌓아올리려는 한국 자본주의의 탐욕은, 추방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살필 준비도 마련하지 않은 채 삶의 터전을 함부로 무너뜨리면서 화려한 빌딩을 새로이 짓는 폭력성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아래의 시는 그러한 탐욕과 폭력이 관철되고 있는 철거 현장을 포착하고 있는 시다.

    버려진 구두에 꽃이 피었다
    꿈을 잃은 자전거 바퀴에
    나팔꽃이 악착같이 손을 뻗는다

    꿈은 양철북을 두드리는 막대 같은 거
    희망은 영리하게 채색한 폭력
    흔들리는 걸음을 자꾸만 강요하지

    골목을 미행하는 걸음 멈출 수 없다
    골목이 나를 뒤쫓게 할 수는 없는 일
    반전은 허락할 수 없어

    발목이 피로감으로 부푼다
    아무래도 발목을 잘라야 할까 보다
    어쩌면 골목을, 막다른 골목을

    희망만이 아니라
    꿈만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은 더욱 폭력적이다

    선홍빛 피가 뚝뚝 떨어져도
    다시 싹트는 봄날의 씨앗
    (/ '철거촌을 걷다' 전문)

    위의 시는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시는 아니나, 서로 공명하면서 일관성을 이루어나가는 시의 이미지들을 주목하면 해석의 열쇠를 잡을 수 있다. 가령, 첫 행의 "버려진 구두"와 마지막 행의 "잘린 발목"의 이미지가 공명하면서 시의 특정한 공간을 형성한다. 버려진 구두는 아마 철거민의 구두일 것이다. 철거민 역시 노숙자와 마찬가지로 이 자본주의 세계의 주류로부터 배제되고 추방된 사람이다. 잘린 발목은 버려진 구두의 환유라고 할 수 있으므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철거민의 처지를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의 전개를 통해 볼 때 어떤 희망을 가지고 ‘철거촌’ 골목을 미행하고자 했던 시적 화자의 좌절을 표현하기도 한다. 즉 잘린 발목은 철거민과 시적 화자의 운명이 공명하고 중첩되고 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의 공명과 중첩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시적 화자가 "골목이 나를 뒤쫓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마음먹고 "골목을 미행"하는 행동을 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은 "양철북을 두드리는 막대 같은" 희망을 품었기에 행할 수 있었는데, "흔들리는 걸음을 자꾸만 강요"했다는 그 희망이란 "영리하게 채색한 폭력"이어서 "발목이 피로감으로 부"풀고 "발목을 잘라야 할까 보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고 시인은 말한다.

    ‘희망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결국 막다른 골목과 부딪치게 될 때, 그 절망감의 낙차는 더욱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희망이나 꿈 역시 폭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아가 "막다른 골목은 더욱 폭력적"이라고 위의 시의 시인처럼 말할 수 있다. "골목을 미행하는 걸음 멈출 수 없"다는 시적 화자의 말은, 시인으로서 저 철거되는 삶의 현장을 뒤쫓아서 기록하고자 하는 윤리적 결단을 보여준다. 그 결단은 저런 폭력적인 현실에서 그래도 삶이 구원될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과‘희망’을 품고 이루어진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철거민처럼 시적 화자 역시 막다른 골목에 폭력적으로 부딪치게 되었으며, 꿈과 희망 역시 그에게 채색된 폭력이었음이 드러나면서 그는 더욱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는 철거촌으로 이끌었던 자신의 발목을 잘라내야 했던 것, 잘린 발목은 철거민의 버려진 구두처럼 철거촌에 버려졌을 테다. 하지만 시인은 어떤 자연적인 치유력에 대한 믿음을 버리진 않는 것 같다. 이모든 폭력과 비탄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구두에 꽃이 피었"으며 "꿈을 잃은 자전거바퀴에/나팔꽃이 악착같이 손을 뻗"고 있다고, 잘린 발목에서 "선홍빛 피가 뚝뚝 떨어져도" "봄날의 씨앗"은 다시 싹튼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미타암 가는 길]도 현대의 도시 문명이 훼손한 세계에 대해 진술한다. 그런데 이 시는 그 훼손을 자연의 힘이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어떤 기적에 대한 믿음을 은연 중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세상은 끊임없이 공사 중을 끌고 다니"고 "도시의 첨탑에 하늘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시인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에 따르면 "공사 중, 을 뒤집을 아무런" 연장이 우리에게는 없다. 즉 우리가 훼손한 세계를 다시 고칠 수 있는 방안이 우리의 손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아침"은 온다. 아침에는 "참나무의 살갗을 두드리"며 "가지를 더듬는 새"가 나무에 암호를 새기고 날아가고, "길게 눕"는 종소리가 "새들의 날갯짓에 실려"오는 아날로지(analogy)의 세계가 펼쳐진다. 만물이 소통하고 공명하며 반응하는 아날로지의 자연 세계는 첨탑에 훼손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자신 안에 품고 있다. 이 자연에 내장된 아날로지의 힘 덕분에, 이 세계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부활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3.
    변영희 시인이 무덤의 이미지에 천착하는 것도 부활의 가능성을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시집의 첫머리에 실린 시 [소풍]은 ‘엄마’의 무덤을 방문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늙은 아이가 소풍을 왔다

    땅에 엎드려 지문을 찍을 때마다
    둥글게 자라는 무덤

    다시 품어보겠다는 양
    다시 들어가겠다는 양

    엄마는 다시 배가 부르다
    (/ '소풍' 전문)

    위의 시에서 ‘엄마’의 무덤은 새로운 생명을 품는 엄마의 자궁이 된다. 죽음의 공간은 새로운 탄생의 씨앗을 품는 것이다. 어떤 씨앗인가? 바로 "늙은 아이"인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다시 들어가겠다는 양", 엄마의 무덤을 쓰다듬으면서 지문을 찍는다. 그럴 때마다 무덤은 임산부의 배처럼"다시 품어보겠다는 양",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다. 늙은 아이가 된 시인은 지문을 통해 엄마의 무덤과 서로 연결되고 공명하며 안고 안긴다. 그리하여 저 무덤의 장소는 자연의 아날로지 공간으로 변한다. 이 아날로지 공간에서 죽음은 재생으로 변모하면서 죽은 엄마는 "다시 배가 부르"기 시작한다.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과 자연이 지닌 모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 차갑고 무서운 세상을 견뎌내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봄 지나 또 봄]을 보면 "노란 잎을 자꾸 떨군다는 이유로" "대문 밖으로 버려"진 "고무나무는 버려진 이유를 새기며/괜찮아, 봄 지나 또 봄이 올 거야"라면서 "가까운 듯 먼 죽음"을 견디어낸다. 이 폐기된 존재인 고무나무에 시인이 동일화되고 있다면, 그를 견디게 하는 희망은 죽음 이후에 다시 재생의 봄이 오리라는 믿음이다. 자연은 겨울의 죽음을 품었다가 봄에 다시 세계를 낳는다.

    죽음과 재생을 중첩한 자연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 위의 [소풍]에서 ‘엄마’의 무덤이라고 할 때, 그 무덤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하얀 알뿌리로 증식"([병아리눈물])하는 화초 ‘병아리눈물’이 무성할 것이라고 시인은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죽은 자는 좀처럼 재생하지 않는다. 시인은 낭만주의자나 초월주의자는 아닌 것이다. [플리즈]는 "무덤들 사이 휘어진 길"에서, 아마도 무덤 속에 계실 아버지에게 "잠깐만 나와 봐요"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간절한 부탁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긴 호명이 새끼줄처럼 풀리며 소란이, 큰 소란이" 일어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소란이야말로 변영희 시인이 생각하는 시 아닐까? "다이어리에 짙은 눈썹처럼 새겨진 문장"에 대해 "스스로를 묶는 동아줄"([동아줄에 관한 개인적 설화])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새끼줄처럼 풀리"는 소란이란 어떤 문장을 가리킨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생을 향한 간절한 부탁이 동아줄이나 풀린 새끼줄과 같은 시의 문장을 낳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부탁이 죽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일으키는 소란이 바로 변영희 시인에겐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재생에의 호소와 죽음이 맞부딪치면서 형성되는 시는 정적의 세계를 소란스럽게 변화시킬 것이다. 그래서인지 변영희 시인은 몇 편의 시편들에서 언어의 소란에 대해서 깊이 사색한다. 이를 보면 그가 세계에 떠돌고 있는 소란스러운 언어들 즉, "무서워라, 떠다니는 너무 많은 문장들([동아줄에 관한 개인적 설화])을 붙잡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령, [구음(口吟)]에서 시인은 "한 남자가 웅얼웅얼 허공을 향해 텅 빈 눈동자로" "여보, 당신이 나를 낳아줘서 고맙고 사랑해, 사랑한다고"라고 읊조리고 있는 말을 붙잡는다. 이 쓸쓸한 읊조림의 "웃음기 없이 순환선에 올라탄 언어들"은, 시인에 따르면 "통통 튀어 오르지도 못한 채 하얗게 부서져 내리며 무덤을 쌓"고 있다. 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말들, 땅에 떨어져 죽어버리게 될 말들을 시인이 애써 시에 담아내는 것은, 어쩌면 저 남자의 현재 삶이 응축되어 담겨 있을 ‘구음’을 죽음으로부터 구제하여 재생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일 테다. 그런데 말들이 저렇게 땅에 떨어져 사라진다는 것은 그 말들이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여보’에게 가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 남자의 ‘구음’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되는 것이며, 그토록 쓸쓸하게 들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 뿌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고유명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현대 사회의 언어생활 때문이기도 하다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는 듯싶다. 그는 [몽타주]에서 "쇠락한 소읍을 지날 때 손을 잡아당기던 이름들 배고픔과 갈증을 풀어주고 구부정한 영혼의 안식까지 안겨줄 고유명사들"에 대해 언급한다. 하지만 그는 곧 "스쳐가는 차들의 경적 소리에 놀라 몸을 뒤집"는 "좌판대의 물고기들"을 그 고유명사에 ‘몽타주’시킨다. 그것은 현대 문명의 공격성과 불안을 상징하는 경적 소리가 고유명사들의 부드러움이 시인에게 준 안식과 평온을 뒤집는다는 의미일 터, 현대인의 일상어에서도 역시 "몸을 뒤집"게 만드는 현대의 경적 소리가 말을 점령하여 우리를 존재에 안착시키는 고유명사를 파괴하고 있을지 모른다. 고유명사로부터 탈각된 말들은 존재로부터 괴리되어 떠돌아다닐 것이다. 하여, 말들은 "삼천포로 빠"져서 우리는 서로 오해하게 되는 것일 터인데, 시인은 "향기도 모양도 없는 그 말의 연원"([말의 연원을 묻다])에 대해 생각해보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고 만다.

    그런데 돌연 시인은 무엇인가 발견했다는 듯이 "삼천포 삼천포로 가자"고 외친다. 시인은 떠돌아다니면서 삼천포로 빠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현대인의 말들을 회피하지 말고 마주치자고 마음먹은 것일까. 이러한 마음을 먹었기에 그는 쓸쓸히 뿌리를 잃고 눈발처럼 흩날리는 사람들의 ‘구음’을 받아 적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4.
    ‘삼천포’로 빠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현대인의 말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시인을 ‘거짓말’을 긍정하는 데로 이끌 것이다. 거짓말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끔 일부러 꾸미는 말인데, 그 말은 다음과 같이 사랑의 교배를 하게끔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암말벌을 흉내 낸 거울난초의 속임수에 수말벌이 바쁘다 경쟁에서 진 말벌은 꽃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고 다른 난초에게 날아간다 야호, 매춘부난초의 책략은 완벽하다 달콤한 거짓말에 속는 것은 파랑도 분홍도 아니다 그저 별난 색깔의 사랑일 뿐

    사랑해? 사랑해. 사랑? 사아랑? 맨몸이 드러나는 판타지가 혀를 빼물고

    유사페로몬에 빨대를 꽂는 엑스와 와이의 수고에 거울난초는 매춘부난초라는 이름을 얻는다 다섯 가지 디저트를 한꺼번에 굽는 듯한 꽃향기는 너무 달콤해 흠, 흠 난초는 동종교배를 원하지 않는다네 이종을 향해 날아, 날아, 날아라

    사랑해? 사랑해. 사랑? 사아랑? 알몸이 드러나는 판타지가 혀를 묻고

    식물인간에 붙은 植物이란 저 수식어 어디로 옮겨야 하나앗, 거울난초의 향기로운 한방이다
    (/ '달콤한 거짓말-거울난초' 전문)

    위의 시에 따르면, 말은 인간만이 고유하게 소유한 매체가 아니다. 저 거울난초도 말벌에게 말을 던진다. 그 말은 언어가 아니 라페로몬 향기다. 그것은 "암말벌을 흉내 낸" "달콤한 거짓말", 매춘부가 건네는 것과 같은 유혹의 말이다. 그 말은 "알몸이 드러나는" 사랑의 ‘판타지’를 낳으며 말벌이 난초의 몸에 "빨대를 꽂"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난초에는 자신과 이종인 말벌의 물이 심겨진다(植物). "동종교배를 원하지 않는" 거울난초의 거짓말, 그것은 "이종을 향해 날아"가는 말이다. 이렇듯 달콤한 거짓말(꽃향기)은 종이 다른 존재의 사랑을 이끌어낸다. 이 사랑의 거짓말이야말로 문학을 구성하는 허구의 말 아니겠는가? 시의 말이란 이러한 달콤한 거짓말이며 그것은 이종끼리의 "별난 색깔의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변영희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저 거울난초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겸손한 시인이다. 자신의 시가 사랑의 판타지를 생성하는 달콤한 거짓말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시인이자 시의 독자로서, 시의 이상을 위의 시에서 펼쳐본 것이다. 그는 자신을 거울난초가 아니라 사랑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벌’로 생각한다. 그래서 ‘벌집’이 그의 방인 것인데, 그는 자신의 "벌집엔 오래도록 꿀이 차지 않았다"([방(房)])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벌집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시인이 "푸른 작업복을 벗고 대학생이 되고 알바생이 되고 악처가 되고 일꾼이 되고 엄마가 되"고"영어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외우지 않"아도 되는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언제까지라도 "사라지지 않을"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벌집이란 시인의 전 생애를 따라다니는 육체의 기관과 같은 것, 시인은 벌집을 채우기 위해 꿀(시)을 얻으려고 돌아다녀야 하는 벌과 같은 운명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시의 향기를 알게 된 시인은 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항상 채워지지 않은 벌집(방)을 마음에 안고 다닌다. 변영희 시인은 아래의 시에서, 시의 매력을 알게 된 자신의 그러한 시인으로서의 운명을, 시로 채워야 하는 방의 벽에 자신이 박혀버렸다고 전도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방이란 지하 묘지, 즉 카타콤이다.

    돌에 박힌 물고기야 어디로 가니
    푸른 동백이 묻는다
    이제 그만 지고 싶어

    아랫길 붉은 꽃이 투덜거린다

    낮은 담장에 시가 그려졌다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시를 읽은 물고기 차마 떠날 수 없어
    돌에 깊이깊이 박힌 거야
    흡 착 흡 착

    담장이의 발자국을 눈으로 따라가지
    꽃섬길 더듬어
    구절초 피어나는 순넘밭넘 찾아간다
    바람아 시간의 밧줄을 늘려라

    한 마리, 한 마리, 한 마리

    돌에 박힌 물고기는
    낚싯대 드리우고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굳건한

    저, 저 물고기?
    (/ '카타콤의 물고기처럼-하화도' 전문)

    위의 시에 등장하는 "돌에 박힌 물고기"란 바로 방(벌집)의 벽에 박혀버린 시인을 가리키지 않겠는가? 그 물고기는 일차적으로 "초기 기독교 시대 비밀 지하 묘지"에 새겨진 그림을 가리킬 것이다. 시인은 그 그림에 대해 "시를 읽은 물고기 차마 떠날 수 없어/돌에 깊이깊이 박힌 거야"라고 추측하여 해석한다. 나아가 시인은 여수 하화도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문태준의 시[섬]-위의 시에서 "캐내지 않은 바위처럼/누구든 외로워라"라는 그 시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그 물고기가 읽었다고 상상한다. 그리하여 하화도의 풍경은 지하 묘지의 카타콤과 겹친다. 그런데 카타콤은 예수의 정신이 부활하는 죽음의 장소(무덤)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하화도는 시의 정신이 부활하는 장소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곳에는 "이제 그만 지고 싶"어 하는 푸른 동백꽃이 거주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동백꽃의 죽음은 시로서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활(시)을 읽어낸 물고기는, "시간의 밧줄을 늘"린 바람을 맞으며 시를 낚아채고자 "낚싯대 드리우고" 그 섬에 틀어박힌다. 하여, 변영희 시인이 난초의 향기와 같은 시를 포착하고 옮겨 적을 때, 그의 시 "y의 진술"은 탄생할 것이다. 그것은 죽음이 지배하는 현대 세계에서 삶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구제하여 부활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리라.

    [시인의 말]

    이제 그만, 도둑질을 멈춰야겠다.

    추천사

    시를 짓는 행위를 요리에 비유한다면, 변영희 시인은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연구가다. 그녀는 도저히 음식 재료가 될 것 같지 않는 재료를 가지고, 놀라운 음식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녀가 차린 만찬은 언제나 낯설고도 새롭다. 예를 들면 ‘끼야이씽가족의 사람고기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우리들 상상력 바깥의 재료로, 예상하지 못했던 시를 차려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변영희는 시에 관한 한 순혈주의자다. 오직 시만 남기고 다른 것은 지운다. 시를 찾는 그녀의 노력은 탐험가에 가깝다. 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아니 시의 재료가 될 만한 것이 있는 곳이 있다면, 그녀는 반드시 그곳으로 간다. 그곳이 지옥이라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재료로 빚은 그녀의 시를 보면, 눈이 부시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보석이 아니다. 피가 돈다. 그녀의 시에서는 무엇이든, 누구든 카멜레온이 된다.
    - 이대흠 / 시인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소풍
    好전망을 팝니다
    초록의 악수
    길들이기
    천막사원
    변주(變奏)
    마법의 종이와 등대 그리고

    철거촌을 걷다
    해제(解除)
    금섬슈퍼, 날다
    슬로우, 퀵
    나무를 볼래
    플리즈
    꼬리별을 잡고

    제2부
    레시피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영수증
    독산동 말미 코카콜라
    프랑스식 정원
    떠도는 언어
    말의 연원을 묻다
    달콤한 거짓말
    누룩꽃빵 피는 마을의 느티나무
    백일, 백 일
    꽃집 앞
    문어우체국
    보건소
    기억의 행성
    하루

    제3부
    사랑
    방(房)
    무서운 책
    주전자를 찾습니다
    지겨운 소설
    트라우마
    핸들의 은유
    봄 지나 또 봄
    미녀
    유리알 도둑의 진술
    꿈과 칼의 수미상관
    날아가는 새똥에 맞을 확률은 얼마일까
    만능간장처럼
    어떤 방문
    책상은 달을 노래하고

    제4부
    구음(口吟)
    베이비 인 뉴욕
    몽타주
    카타콤의 물고기처럼
    새로 태어나는 빗방울의 출처
    자발적 포로가 되다
    베니스 모텔
    미타암 가는 길
    엎치락뒤치락
    오, 오공(蜈蚣)
    뉘른베르크에서 만난
    병아리눈물
    방어
    헤이, 헤이
    동아줄에 관한 개인적 설화

    해설 배제와 폭력의 세계에서 부활을 꿈꾸는 시
    /이성혁(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청주 출생
    동국대학교 (문학석사). 동방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시와 시론] 소설 등단(1984)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마흔넷의 반란](3부작), [황홀한 외출]
    소설집 [영혼 사진관], [한국소설베스트선집 2](공저)
    수필집 [비오는 밤의 꽃다발], [애인 없으세요?][문득 외로움이]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인터넷 실버넷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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