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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시집 『모든 입체들의 고독』. 한지혜 시인의 시 작품을 수록한 이 책은 '토마토', '슬픔', '진화' ,'숲', '포진', '토마토 사이 나팔꽃', '자작의 숲', '찻물', '일탈' 등 한지혜 시인의 주옥같은 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35>
한지혜의 네 번째 시집『모든 입체들의 고독』은‘대니’로 명명되는 광대한‘대지’와 그‘대지’를 구성하는 수많은‘색채’들이 조화와 부조화의 상반된 이미지로 탄생한다.
그것은 시를 포함한 ‘예술’의 우울과 극단을 ‘색채’라는 미학적 구분을 통해 "기이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색채’를 통한 시인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 잘 반영되어 있는 이번 시집은, 시의 의미가 다만 ‘문자’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보다 확장된 ‘예술’의 지점을 보여주려 한다.
이는 시인이 일상에서 종종 맞닥뜨리는 회화와 음악 그리고 차향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소용돌이치는 마음과 대면하려는 시인만의 예술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너의 머리와 내 뇌에 이어진 구조가 같아
존재하는
너와 나의 감정

너는 계단이 필요하고
나는 부드러운 한 잔의 포도주가 필요해

이현호(시인)
한지혜는 마음결의 무늬가 다채로운 시인이다. 마치 수채화(水彩畵) 같다. 그 무늬로 쓴 시는 정갈하기 그지없어서 읽는 이의 마음속까지 투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꾸 눈길이 간다. “한 아이가 저녁이 오는 수채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부러움」)는 정경(靜境) 위에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덧입힌 색채의 문체는 오직 한지혜의 시에서만 볼 수 있는 기술(技術)이다. 그 기술은 그의 분신일 터,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빛깔”(「기이하고 부드러운」)이 자꾸 머릿속을 파고드는 이유는 나 또한 그의 기술에 동화되어 가기 때문이리라. 지리멸렬한 시의 오늘이 일순 밝아지는 느낌! 『모든 입체들의 고독』이라는 이 낯설고 기이한 제목의 시집은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끈다.

시인의 말
제1부
토마토 13
슬픔 14
틈 16
진화 18
숲 20
센서 22
포진 24
해바라기 26
토마토 사이 나팔꽃 28
대니 30
일탈 32
찻물 34
자작의 숲 36
부러움 38

제2부
풀빵 41
하프 42
기이하고 부드러운 44
새 46
산책 48
불꽃 50
정원 52
단백질 54
중력 55
별명 56
톳지가 돌아오는 길 58
덜 그리워하는 것들에 대해 60
장미가 있는 담장 62
원형 점토의 인식 64
레버와 물집 66

제3부
테크닉 69
내레이션 70
흑과 백 72
부엉이와 집 74
그늘 76
정체 78
섬 80
채광 82
두 개의 방 84
중독 86
담요 88
빗물의 대칭 90
성채 92
동강 처녀 94

제4부
암기 97
이동 98
구조 : 말이 없는 남자 100
입체 102
목소리 104
태양과 거미 106
세한도 1 108
세한도 2 110
세한도 3 112
게임 : 공간 114
불면 116
골목 118
굴절 120
말림 122
해설 | 시의 색채를 찾아서 123
전해수(문학평론가)

시의 색채를 찾아서

한지혜의 네 번째 시집 『모든 입체들의 고독』는 “대니”로 표상되는 ‘대지’와 수많은 ‘색채’들이 조화와 부조화의 상반된 이미지로 탄생한다. 물론 “대니”는 ‘대지’가 아닌 온갖 ‘색채’들이 머무는 ‘화선지’가 될 수도 있고, 꿈꾸는 리듬의 ‘음악’이거나, 찻잎의 향으로 다가오는 (오감)의 ‘동경’이 될 수도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타자’가 아닌 ‘나’, 바로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자아’의 표상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다만 그것은 시를 포함한 ‘예술’의 우울과 극단을 ‘색채’라는 미학적 구분을 통해 “기이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예컨대 시인이 표상하는 여러가지 빛깔은 조화와 부조화를 함께 불러들여 나 자신을 포함하여 진정한 예술(가)의 화해를 도모하려는 듯 이리저리 자유롭게 (방황하듯) 유합(類合)을 일삼는다.

‘색채’를 통해 예술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잘 반영되어 있는 이번 시집은 시의 의미가 다만 ‘문자’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빛’과 ‘색’을 통해서 좀 더 확장된 ‘예술’의 한 지점에 닿을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이는 시인이 일상에서 종종 맞닥뜨리는 회화와 음악 그리고 차향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한 편과 은밀하게 조우하고 대면하려는 시인만의 예술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한지혜 시인에게 시는 고유한 문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예술성을 발견하는 ‘문(입구)’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그 문을 통해 간구하는 일상과 타 예술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표현되는 어떤 세계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간 한지혜 시인이 표출했던 여성적인 섬세한 이미저리를 이번 시집은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집 『두 번째 벙커』이후 시인은 좀 더 확장된 색채의 미학을 농밀한 관심과 형상화로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가령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토르소’나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강렬한 붓 터치와 색채감으로 미학적 전율을 이끌어내는데, 회화가 전달하는 구도와 색은 한지혜 시인의 시상(詩想)을 돋우는 매개 역할을 한다.

토르소의 까만 눈동자
천장에 붙어서 빛나는 작은 몸체
두 팔이 없는 너에게
내가 나의 눈을 가릴게
눈을 가려도 눈이 뜨거워
빨강은 금성
사과를 갈라 낮의 반으로 맞출래
빨강에게
가장 어두운 검정이고 싶은데
나는 검정에 흰색의 포스트컬러를 섞어
흑백
잠을 청하지만
명도를 가르며 화성은 떨고 있어
?「센서」 부분

“천장에 붙은” 작은 “몸체”(센서)에게 이토록 다양한 ‘색채의 꿈’을 입히고 있는 한지혜 시인은 다양한 색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충동하는 색의 미학이 시인에게는 시상(詩想)이 되어 흘러넘치는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입김으로 빈센트는 색채를 배우지

나처럼 해봐

나는 빨간 물병을 마실게
너는 파란 물병을 마실래
대지인 나와 나의 애인은 애니이니까 대니라는 이름으로 부르자

함께 가보자

애니의 말랑한 젤리 심장에 스트로우를 꽂아 초록빛의 용기를 먹을게
?「대니」 부분

외젠 들라크루아와 빈센트 반 고흐의 대비는 색감의 대비로 구분된다. 빨강과 파랑은 그 극단적 대비로 구상된 이질적인 색감이다. “대지”는 대지의 애인인 “애니”와 구분되는데 “애니”는“말랑한 젤리 심장”을 가진 “여인”으로 제시된다. “대니”가 품은 초록빛의 용기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열정과 장엄함을 닮아 “빨간 물병”에 채워지고 있다.

푸른 밤이 자주 죽는 이유같이 슬픈 기다림
나는 창밖의 검은 지붕과 지붕을 건너 붉은 십자가 앞에서 양초같이 녹아버려요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빛깔

그녀와 연결된 나의 핏줄에서도 빛들이 흘러요
내 심장이 아주 조금 흔들려요 빛같이 닉의 날을 고정시키는 순간

파란 길에 밤마다 붉은 새들이 모여 만든다는 네모의 환상 흩어지고
머리의 불빛을 가르면 생겨나는 둘레, 하얀 둘레 길을 돌아서 그녀가 와요

칼의 날같이 기이하고 부드러운
?「기이하고 부드러운」 부분

‘대니’처럼 ‘닉’은 이국적인 이름이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스크린에서 본 적 있는 익숙한 “빛깔”로 “기이하고 부드러운”것들의 대명사가 된다. “그녀(한지혜 시인으로 본다면)와 연결된”것들은 이처럼 “대니” 혹은 “닉”, 그러니까 “날아가는 닐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의 방랑처럼 그렇게 “대니”로, “닉”으로, 마침내는 ‘시’가 되어 머문다. 그들처럼 “기이하고 부드러운” ‘시’란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너에 대해 생각한다
아껴두었던 빛깔
?「슬픔」 부분

결국 시는 ‘빛깔’이라 부를 수 있는 “너”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