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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삭제, 하시겠습니까? : 남세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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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네가 달고 있는 소켓이 내가 볼 땐 좀 특별해 보이거든.
그걸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8권이 출간되었다. 108권 『기억 삭제, 하시겠습니까?』는 마치 게임 속을 모험하는 것 같은 SF 판타지로, 주인공 수현과 친구들이 사람들의 눈앞에 씌워진 보이지 않는 필터를 벗겨내 ‘진짜 세상’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전 국민이 귀 뒤에 뉴럴 소켓을 시술하고 살아가는 근미래의 어느 도시. 부모님 없이 혼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유수현은 종종 소켓의 오류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곤 한다.
어느 날, 수현은 유명 그룹 디바인 대표의 딸 서혜나, 혜나와 함께하는 백소희, 고민중과 만나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의 이면을 발견한다. 또 자신의 소켓이 가진 특별함 때문에 아이들의 ‘혁명 계획’에 함께하게 된다. 왜 수현의 소켓만 계속 오류를 일으키는 걸까? 그리고 수현과 수현의 친구들은 과연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출판사 서평

지금 세상은 거대한 인지 장애를 겪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이 불만 없이 평온하고 안온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런데, 이 평화로움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걸까?

과학이 진보된 미래, 주인공 유수현이 사는 도시의 시민들은 귀 뒤에 뇌로 정보가 바로 전달되는 뉴럴 소켓을 단 채 생활한다. 소켓에 넣는 시냅스 칩을 통해 많은 것을 쉽게 배우고 얻을 수 있기에, 모두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수현도 마찬가지다. 소켓 오류 때문에 종종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준 미션을 수행하던 수현은 한 여자애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다시 보니 골목길은 온데간데없고 담장만이 서 있다. 방금 본 것이 가끔 보았던 허깨비인지 확인하고 싶어진 수현이 직전 상황을 계속해서 떠올리자, 담장이 사라지며 골목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충격에 홀린 듯 골목길을 따라간 수현은 길 안쪽 깊숙이 숨겨진 건물, 아지트에서 같은 학교 학생인 백소희, 고민중과 서혜나를 만난다.

“기분이 어때?”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내려다보며 서혜나가 물었다. 옆에서는 백소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많았다.
“이거 대체 뭐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한 건 우리가 아냐. 우린 그걸 바로잡으려는 거고.”
“어떻게 뻔히 눈앞에 있는 길이 안 보일 수 있어?”
“초등학교 내내 연습한 게 그거잖아. 뇌를 믿지 않고 소켓을 믿는 거. 뇌 대신 소켓으로 생각하는 거.”
“말도 안 돼.”

_본문 중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없으면 세상은 평화롭고 평온해져.
우리가 하려는 일은 그런 세상을 깨는 거야.”

셋은 뉴럴 소켓을 처음 만들어낸 그룹 디바인이 소켓을 이용해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고 삭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혁명’을 통해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수현의 눈에만 보이던 허깨비는 사실은 허깨비가 아니라 ‘진짜 세상’이 잠시 보인 것이었다.
이 집중하면 진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수현은 반강제로 혁명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소희, 정보를 분석하고 컴퓨터를 해킹하는 실력이 뛰어난 민중과 함께 혜나가 준 미션들을 수행하면서 세상이 정말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원래 디바인은 인간의 기억력을 극도로 향상시키기 위해 뉴럴 소켓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여 어떤 기억을 떠오르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디바인이 조작한 정보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 그렇지만 적어도 운석 충돌만큼은 사실이야.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자연재해였고 그게 하필 디바인의 연구소에 떨어진 건 지독한 우연이지.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우연이 아니야. 모든 일이 철저하게 디바인의 계획 아래 진행되었으니까.”

_본문 중


세상의 어두운 모습 또한 우리의 일부분임을 깨닫고
미래로 향하는 아이들의 행진

지금 우리는 마치 뉴럴 소켓을 시술한 것처럼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며 무한히 지혜로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의 이면에 쌓이고 있는 불행과 고통에도 그 지혜로움을 쓰고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받은 상자를 열기 전의 모습처럼, 타인의 힘듦과 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상자 속에 숨겨둔 채 열어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에피소드는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일입니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죠. 우리가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시선에서 치워 버리거나 보고도 무시해 버리고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도 추모를 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며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워 버리려 하죠.

_작가의 말 중

이처럼 『기억 삭제, 하시겠습니까?』는 청소년들에게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안온하기만 한, 그래서 더 판타지적으로 느껴지는 미래 도시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현실을 찾게 만든다. 아주 또렷하기에 더욱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의 흐름은 청소년들이 밝은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는 그림자를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소설이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세상의 어둠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아주 작은 불이나마 들어올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목차

토끼 굴에 빠지다, 제 발로
분리된 사람들과 기억 삭제
유령들이 하는 일
림보와 룬 문자
혁명이라는 말
에필로그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지금 내 소켓에는 중학교 3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이 들어 있는 칩이 꽂혀 있다. 중학교 때 배운 모든 정보가 이 칩 안에 들어 있다. 말하자면 교과서인 셈이다. 교과서를 넘기며 글을 읽는 대신 칩을 꽂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를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힘들게 외우지 않아도 된다. 만세! 처음 뉴럴 소켓이 개발되었을 때 학생들은 이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환호성을 질렀단다. 뉴럴 소켓을 통해 시냅스 칩의 정보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과정이 책에서 필요한 정보가 있는 페이지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_9쪽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엉뚱한 일을 해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주어진 미션을 완료하다 보면 저절로 시간이 간다. 가끔 소켓이 오류를 일으키면 무시하고 다시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마 지금도 소켓 오류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도에 없는 길로 왔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들어왔잖아. 그럼 실제로 길이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럼 내가 맞고 소켓이 틀린 건가? 그럴 수도 있나?
_24~25쪽

“지금 네 상태가 건망증이야. 뭔가를 떠올리려고 하는데 기억나지 않는 거. 하지만 인지 장애는 달라. 아예 떠올리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아. 자신이 무언가를 잊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 거지. 그게 우리가 말하는 ‘기억 삭제’야. 지금 세상은 거대한 인지 장애를 겪고 있는 거야.”
“세상이, 뭘 잊고 있는데?”
“몰라. 나도 대부분 잊었으니까. 하지만 몇 가지는 알아.”
_46쪽

“이렇게까지 할 거면 왜 사람을 쓰는 거야? 그냥 로봇을 쓰는 게 낫지 않아?”
“그야, 사람이 더 싸니까.”
“사람이 더 싸다고?”
“싸지. 사람이 얼마나 싸고 하찮게 다뤄지는 줄 알면 깜짝 놀랄 거야. 이용당하고, 무시당하고, 지워지고.”
“사람이 사람을 왜 그렇게 대해? 같은 사람이잖아.”
“같은 사람, 이라고 학교에서 배우지. 바로 그래서야. 저 사람들을 우리 눈에 안 보이게 하는 이유. 같은 사람이 그런 취급을 받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으로 그리고 뇌로 똑똑히 본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다시는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_57쪽

“잠깐, 잠깐만. 혜나 너 지금…… 우리 부모님이 그때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거야? 운석이 충돌했을 때? 그러니까 십 년 전에? 그때 나만 살아남은 거고? 그런 거야?”
“사망자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삭제되었어. 그러니 백 퍼센트라고 말할 순 없어. 하지만 유수현 네 상황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해야겠지. 너뿐만이 아냐. 6구역에 부모님이 안 계신 애들이 유난히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
해 본 적 없다. 따져 보니 같은 반 친구 중 절반 정도가 혼자 산다. 다른 학교도 다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슬퍼해 본 적도 없고 아쉬워해 본 적도 없다. 아예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살았다. 그게 다 디바인의 생존자 회복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_92쪽

장근형은 도시가 그런 식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장근형뿐만 아니라 37구역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기억을 더듬으면 도시에 12구역이 존재하고 거기에 부자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할 일도 없고 그곳을 궁금해하거나 가 보고 싶다는 욕구조차 생기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이 사는 곳에 만족한다. 그렇게 도시는 평화롭고 평온하다.
_132쪽

“다음번엔 분명하게 선택해야 할 거야.”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민중이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디바인이 사람들의 기억을 더 이상 조작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다 돌려줘야 할까. 나는 어떨까. 기억을 되찾고 싶은 건가?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떤 부모님이었는지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되면 바로 어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견딜 수 없이 슬퍼지는 건 아닐까. 나도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사람들에게 기억을 무작정 되돌려 줘도 될까. 민중이처럼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_156쪽

부모님을 잃은 직후에는 세상이 다시는 내게 웃어 주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나의 절반은 그렇게 느낀다.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의 기억을 당장이라도 지워 버리고 싶은 마음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허덕인다. 그런 나를 다른 절반이 다독인다. 나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과거를 깨끗하게 잊고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과거를 잊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나는 아버지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말을 해 주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십 년이 지난 지금, 기억을 지운 삶을 살아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게 아버지가 꿈꾸던 뉴럴 소켓의 기능이었다.
_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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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남세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연구원으로 살아가다 문득 글을 쓰게 되었다. 브릿G에서 ‘노말시티’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다수의 작품이 편집부 추천을 받았으며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독자우수단편 심사에서 〈살을 섞다〉가 2018년 4분기 우수작, 〈만우절의 초광속 성간 여행〉이 2019년 최우수작에 선정되어 필진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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