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이소율 시집 [익명적 중얼거림]. 《단풍이 죽어라 뽐낼 때》, 《승차위치선의 독백》, 《추억 서랍을 열다》, 《고수레 고수레 가난이야》, 《왕버들, 주산지에 이어폰을 꽂다》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소율 시인은 삶의 무의미한 회전 속에서 유리문을 깨고 삶의 쇄신을 이루고 자신의 구원을 도모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삶의 보람이자 자신의 분신인 작품들을 모아 시집을 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집은 단순한 작품 묶음이 아니라 투명한 몸으로 엮어낸 허공의 청정한 집이요 거기서 직녀와 접신하여 이룩한 비단 피륙이다. 회전문에 갇혀 뱅뱅 도는 순환의 공간에서 유리벽을 분쇄하고 진정한 자아를 자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구원의 결실이다. 이것이 이 시집의 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깊이 축하해야 하는 이유다.
― 이숭원 문학평론가

제1부
가시연꽃 012
슈퍼문 013
등 014
나무계단 016
누름돌 018
누에 020
죽음의 한 연구 022
단풍이 죽어라 뽐낼 때 023
밥 024
복사꽃 고문 026
줌인 028
조각보 030
마침표 없는 애인 있어요 032
피에타 034
모닥불 036
바람 흉터 038

제2부

안개 스웨그Swag 040
봉인된 시간 042
보자기 044
밤새 빌었다 045
저수지 참사 046
폐광 048
고욤 050
불나방 051
익명적 중얼거림 052
승차위치선의 독백 054
실패 또는 실패 056
대나무 058
얼음땡 059
사이프러스 060
자운영 꽃잎 한 잎 061
달우물역 062

제3부
이력서 064
위조하는 버릇이 있다 066
종이컵 068
연산홍 070
망월동에서 071
집어등 072
추억 서랍을 열다 074
혼자 가야 하는 길 076
바보처럼 나는 078
세 바위 080
신건축학 개론 082
사랑의 기술 084
나무 다비식 086
문은 없다 087
신발 한 켤레 088
파이 사랑법 090
시인 괘卦 092

제4부
왕버들, 주산지에 이어폰을 꽂다 096
메밀꽃 098
회전문 100
보폭이 넓은 남자 ― 이성선 102
보폭이 넓은 남자 ― 박용래 103
보폭이 넓은 여자 ― 황진이 105
보폭이 넓은 여자 ― 매 창 106
보폭이 넓은 여자 ― 전혜린 108
보폭이 넓은 여자 ― 나혜석 110
보폭이 넓은 여자 ― 천경자 111
보폭이 넓은 여자 ― 최승자 112
보폭이 넓은 여자 ― 이은미 114
항소이유서 116
오이도烏耳島 118
고수레 고수레 가난이야 119

해설
푸르도록 하얀, 허공의 집을 위한 헌사 | 이숭원 124

익명적 중얼거림

고독을 애완견으로 끌고 다닌다

줄줄이 따라오는 그리움
마디마디 새겨지는 외로움
빌어먹을 가슴
웃자란 오만과 소심을 가지치기한다
말을 삼킨 침묵 속에서는
열정이 야생으로 자랄 것이다
자발적 소외로 무성해질 것이다
시간의 관절을 꺾고
죽은 언어들의 무덤을 판다
제자리를 못 잡고 달그락거리는 말들의 뼈
종이 들판으로 이장을 한다
샘솟는 고독의 수액으로 먹물 삼아 비문을 쓴다

내부로만 망명을 하던
두려움과 분노가 꺼지고 의미가 켜진다
그림자를 등지고 영혼이 긁히는 소리를 듣는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한 사르트르
지옥보다 감옥쯤 되지 않을까?
영혼의 휘발성이 빠른 강남대로에서
감옥 사이를 걷는다
바람의 터럭만큼이나 재바른 상술
사랑을 사고파느라 분주하다
필연을 능가하는 우연으로
영혼이 맑은 사람을 만나면 맨발이고 싶다
단추도 몇 개쯤 풀어놓고 싶다

가시연꽃

열아홉 청상 은장도로
어머니 가슴 찢고 피어난 꽃
이른 서리 맞아
시린 인연의 끈 잡고 있다
말들이로 쏟아내도
다시 고이는 서러움
되들이로 퍼내어도
줄지 않는 청춘
가시 뽑아 허벅지를 찌른다
딸아 이생을 잊자
아주 잊어버리자
뭇 사내 붉은 유혹에도
가신 사람 사랑으로
봉인된 보랏빛 입술
어림없다 어림없다
어머니는 잎잎이 가시 세워
멍석말이 가시 멍석을 편다
속울음으로 반쯤 피다 시드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