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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시를 쓰는가

나는
시를 그린다네

화폭이 작은 거야
내 마음밭 탓이지만

비움의 여백이야
섭리를 따르면 되는 게지

김송배(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김종웅 시인이 제6시집 『묵호등대』를 상재한다. 그는 『시인정신』 봄호(2004)에 황금찬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을 하기 전에 이미 소설 창작에 매진하여 『문학21』에 단편소설 「사중주 오케스트라」로 소설창작에서도 그의 열정이 인정되어 데뷔를 한 전형적인 문학인이다.
또한 그는 시집 『시, 요리하다』 등 5권과 장편소설 『Six & Nine』 등을 우리 문단에 내놓아 그의 문학성과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중견 문인이다. 그의 문학정신과 열정으로 다시 결실을 본 제6시집이 탄생하는 쾌거는 그가 지향하는 시의 위의(威儀)와 본령(本領)을 확고하게 정립하면서 새로운 작품세계를 통해서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명징(明澄)하게 나타내려는 인생철학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을 비롯하여 많은 문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이육사문학상과 천상병문학상도 수상하는 등 그의 문학적인 성과와 업적은 5권의 시집에 함축된 그의 메시지가 우리 인간과 시와의 대칭적인 상관성에서 잘 정리된 그의 인품과 함께 높이 회자(膾炙)되고 있는 것이다.
김종웅 시인은 친자연적 서정시인이다. 그가 취택하는 소재나 주제의 함의(含意)는 대체로 일상적인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탐색하고 있어서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순리를 잘 접맥하면서 시의 상황이나 전개를 보편적인 우리들의 정서와 사유가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다.
그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그린다는데 화폭이 작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이 시집에서 심도 있게 추구하려는 것은 바로 ‘비움의 여백이야 / 섭리를 따르면’ 된다는 「서시」에서의 어조와 같이 그는 작품 「삶」에서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 세상 훔치는 요, 야릇한 맛으로’라고 하는 사회적인 고뇌와 난제(難題)들을 스스로 긍정하고 거기에 순응하는 연습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어떤 무리수가 주어져도 다 소화시키며 / 오로지 / 자신에게 의지하는 법 세웠다(「고목」 중에서)’는 자성(自省)과 동시에 삶에 대한 철학이 명민(明敏)하게 적시되고 있다. 시는 어차피 자신의 체험에서 발상되고 그 상황설정과 전개가 시인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서가 발현하는 것으로 우리 시인들은 시정신이 제시하는 인본주의(humanism)에 시적 원류를 두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삶의 행로에서 ‘노여움도 / 삭이고 삭이다 보면 / 시나브로 / 환한 미소를 머금게 되는 걸(「묵은지」 중에서)’과 같이 그의 시적 염원이 진실로 현현되고 있어서 김종웅 시인이 갈망하는 희원(希願)이 인생론을 넘어서 철학의 경지까지 도달하려는 그의 의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에서 그는 ‘네게도 내게도 / 숨어있어 / 찾는 사람이 주인이다(「행복」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는 존재의 의미를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도 자아의 인식에서부터 만유(萬有)의 자연 사물과의 정감(情感)으로 인생을 창조하려는 그의 내면에 깊숙이 잠재한 시혼(詩魂)을 이해하게 된다.
김종웅 제6시집 『묵호등대』 발간을 축하하면서 모든 독자들께 공감을 확대하기 위해서 탐독(耽讀)을 권하면서 감히 추천하는 것이다.

묵호등대


2 추천사_김송배(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5 서시

1부 젖은 채로 마르고 싶은 날

12 물억새
13 대립(對立)
14 감
15 동백
16 바람의 언덕에서 보다
17 가을비와 나그네
18 새싹보리를 먹다
20 묵은지
21 길 밖의 길
22 젖은 채로 마르고 싶은 날
23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
24 바람 소리 맑으면 풍경도 곱게 운다
26 파사산성에서
28 행복
29 묵호등대
30 7번 국도
32 남이섬
33 삶
34 탓, 그 비상의 카드
35 무
36 욕망을 타다
37 꽃
38 가을 단풍
39 비빔밥
40 가을비


2부 그대 이름에 젖는 날

42 초승달
43 횡단보도
44 외길
45 목련
46 그대 이름에 젖는 날
47 산죽
48 해국에게
49 파도
50 환선굴에서
51 마음
52 대둔산에서 첫눈 만나다
53 궁금하다
54 망양정에서 눈을 감다
55 사랑의 깊이를 재다
56 절벽
58 가을에게
60 해국의 사랑을 훔치다
62 결국, 호흡이다
63 망상해변에서
64 길 위의 마돈나
65 해국
66 배추
67 산수유


3부 바람의 노래

70 장미와 크리스마스
71 1월
72 숙명
74 닻
75 노을
76 이웃
77 연탄
78 논골마을
80 숲
81 등
82 벽
84 선술집에서
86 손맛의 이력
88 와불
90 오늘도 오발탄을 장전한다
92 고목
93 별에게
94 조팝나무꽃
95 제비꽃
96 봄볕에, 우리


4부 타인의 이름

98 가마와 장작
99 변증법
100 자작나무
101 라면
102 길, 아닌 길
104 계획을 지우다
105 행복
106 파지와 할머니
107 눈물
108 생긴 대로
109 사랑하니까
110 타인의 이름
111 그림자
112 바람의 집
113 함박눈
114 플라타너스와 신호등
115 기억의 단면도
116 길
117 자물통
118 연
119 펄
120 소나기
121 삼강주막에서
122 회룡포에서
123 영지꽃
124 흰젖제비꽃
125 보리의 꿈
126 큰개불알풀꽃
127 염원

■ 서시

그대는
시를 쓰는가

나는
시를 그린다네

화폭이 작은 거야
내 마음밭 탓이지만

비움의 여백이야
섭리를 따르면 되는 게지

■ 본문 중에서

*물억새

더 이상 강해질 수 없을 때
비로소
부드러워진다

떠나는 것들을 위하여, 안녕!
밋밋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강변의 하루하루가 소란을 떨던 때도
결코, 단정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강해져야만
지킬 수 있는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무섭게 두드려대는 폭풍의 망치질에
조심스레 벼리며 폭우 속에서 담금질했다

모든 것은 부드러워지고
이제는 떠나야 할 때
태양도 게슴츠레 제 눈을 감는데
우리는 하얗게 떠날 때 ‘안녕’이라 한다

*묵은지

노여움도
삭이고 삭이다 보면
시나브로 환한 미소를 머금게 되던 걸
스스로를 다스려
다독다독 빛이 바래기를 기다리면
세상 모든 아픔은 곪고 곪아
스르르 녹아내리고
새살의 물결로 벅차서 차오르던 걸
수양의 경지에 도달하고픈
저 몸짓
헤설퍼서 복장이 터져도

희망이 있는 한 결코,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더라고

저 묵은지
제 독을 박차 나오며 헤죽거려 웃는다

*봄볕에, 우리

그래요, 우리
엇대고 있던 서로의 생각들
자박자박 걸어 나오는 저 새싹들처럼
터놓고 얘기해 봐요
밝은 조명에 잠시 어리둥절하겠지만
곧 익숙해질 거예요
보세요
톡톡, 터지는 이 말문
겨우내 움츠려
얼마나 저리고 아팠겠어요
이제는
아무 걱정 말아요
어둡던 그대의 생각에
꽃단장을 시켰으니
그 어떤 나빈들
절로 찾아들지 않겠어요

봄볕에 우리
말씨를 말리고 화장을 시키면
향기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