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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며 산다 : 이영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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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영순
  • 출판사 : 지혜
  • 발행 : 2017년 09월 25일
  • 쪽수 : 12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728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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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태풍이 지난 후
    서있는 나무들 부르르 떨이를 한다

    생으로 넘어져
    시뻘건 뿌리 하늘로 뻗친 채
    창백한 얼굴로 흙더미 끌어안고
    보내오는 싸늘한 침묵

    쭉쭉 뻗던 가지들, 오늘은
    어깨를 낮춰 고개를 숙이고
    누운 나무 위에 후두둑 뿌리는 눈물

    마르겠지, 또 내일이면
    천지를 흔들던 바람도 잊고
    오늘 죽어간 이웃도 잊고

    하늘 향해 손을 뻗을 나무다
    삶에 신들린 가여운 몸짓이다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태풍에 뿌리가 뽑힌 나무가 있다. 시뻘건 뿌리를 하늘로 뻗친 채 쓰러진 나무 앞에서, 하늘을 향해 쭉쭉 가지를 뻗던 다른 나무들이 어깨를 낮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누운 나무 위로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더불어 생을 보낸 나무 하나가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다. 창백한 어굴로 흙더미를 끌어안은 저 나무는 지금 “싸늘한 침묵”에 빠져 있다. 죽는 걸 기뻐하는 존재는 없다. 때가 되어 죽는 것도 아니고 태풍에 생목숨이 뽑혀 죽는 것이다. 당연히 죽은 나무를 향한 애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태풍이 지난 후/ 서 있는 나무들 부르르 떨이를 한다”라고 시인은 적고 있다.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죽어가는 나무를 위해 몸을 떨고, 눈물을 뿌린다.
    이 시의 제목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이 시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해 묻고 있다. 죽어가는 친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가는 일이 삶과 이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게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한 손에는 삶을, 다른 한 손에는 죽음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거센 바람에 뿌리가 뽑힌 나무를 보고도 다른 나무는 눈물 한 방울 떨구고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 오늘 하루는 슬프지만 내일이면 “천지를 흔들던 바람도 잊고/ 오늘 죽어간 이웃도 잊”어야 한다. 그래야 나무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다. 산 자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죽은 자가 가야 할 길이 있다. 산 자는 하늘로 가지를 뻗쳐야 한다. 그것이 죽은 자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시인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산 자들의 삶에서 “삶에 신들린 가여운 몸짓”을 읽어내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사실 가여운 생명들이다. 언젠가는 죽음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죽어가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면 우리는 왜 살기 위해 이토록 “가여운 몸짓”을 해야 하는 것일까? 「못 빼는 여자 에서 시인은 공사장 한편에 퍼질러 앉아 못을 빼는 여자에게 주목하고 있다. 농을 치는 사내들 틈에 섞여 그녀는 “푸르죽죽한 고달픔 잠시 풀어내고/ 또 못을 빼는” 일을 계속한다. 못을 빼는 게 그녀에게는 살아가는 일이다. 못을 빼지 않으면 그녀는 그 살아가는 일마저 지속할 수 없다. 살기 위해 그녀가 벌이는 “가여운 몸짓”은 노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일상=비극과 맞닿아 있다. 죽은 자는 노동할 필요가 없다. 죽었기 때문이다. 산 자는 못 빼는 여자처럼 끊임없이 못을 빼야 한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산더미 같은 해일에
    마을이 온통 쓸리던 날

    자동차들 바람의 낙엽처럼 몰리고
    집채들이 휴지처럼 꾸겨져 부서질 때
    나무토막에 매달려 울부짖는 소리

    그날 이후

    천지신명님!
    굽어 살펴주십시오
    할머니처럼 빌면서 산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절하며 산다
    ('절하며 산다' 중에서)

    이번에는 산더미 같은 해일이 마을을 온통 쓸어버렸다. 자동차들은 바람에 낙엽처럼 내몰렸고, 집채들은 휴지처럼 구겨졌다. 나무토막에 매달려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삶의 풍경이 아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풍경이다.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다. 그렇게 착각할 뿐이다. 만물의 주인인 인간이 해일 하나에 이리 뒤흔들릴 수는 없다. 시인은 해일이 마을을 쓸어버린 그날 이후 할머니처럼 천지신명에게 빌면서 산다고 고백한다. 할머니는 두 손 모아 천지신명에게 빌고 또 빌었다. 밤이면 장독대에 정한수를 올려놓고 천지신명을 향해 진심어린 기도를 올렸다. 미신이라고 말하지 말자. 지금 우리는 미신이냐 아니냐 하는 그런 문제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천지신명께 비는 할머니의 그 마음을 우리는 어느새 잊고 살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천지신명은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할머니들의 기도를 미신으로 내몰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자연을 천지신명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너무 쉽게 저질렀다. 자연이라고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수많은 생명들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이 자연 전체를 파괴하려고 한다. 산더미 같은 해일은 자연이 인간에게 내보이는 본보기이다. 지구 곳곳에서 펼쳐지는 자연 재해는 자연이 더 이상 인간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을 거라는 선언과 다름없다. 말 그대로 “천지신명님! 굽어 살펴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해졌다. 시인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외친다. “날마다, 날마다, 절하며 산다”라는 간절한 외침을 통해 시인은 우리가 자연 앞에서 취해야 할 근본적인 태도가 무엇인지 새삼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뱀에게 쓴 반성문 에서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묻고 있다. 외진 샘터에서 시인은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만났다. 그녀는 움칠 뒷걸음치다 털썩 주저앉는다. 나뭇잎 한 장이 손에 잡힌다. 뱀은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 시인이 지레 놀라 넘어져서는 나뭇잎 한 장을 집은 것이다. “감탄사 하나 적어 놓고” 시인은 흘낏 뱀을 바라본다. “그 말똥말똥한 눈 속에/ 내가 고요히 갇힌다”. 순간 시인은 생각한다. “소름 돋도록 징그러운 것은/ 뱀이 아니었다”. 뱀이 징그러운 게 아니라, 그 뱀을 징그럽게 보는 시인의 마음이 징그럽다. 뱀은 뱀일 뿐인데, 우리는 뱀을 항상 인간의 시선으로 본다. 시인은 뱀에게 반성문을 쓴다. 뱀을 뱀으로 보지 못한 미안함을 시로 표현한다. 뱀이라는 자연을 ‘인식하는’ 인간 이성의 문제점을 이 시는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이영순 시인은 대전에서 태어났고, 2001년 월간 {문학세계}로 등단했으며, 2010년 첫 시집 {길은 어디에}를 출간했다. ‘꿈과 두레박동인’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사)대전문인협회 이사, 꿈과 두레박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영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절하며 산다}는 삶의 공포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이 세상의 삶을 찬양하는 ‘생명사상의 개화’라고 할 수가 있다. 삶도 두렵고 죽음도 두렵다. 절을 한다는 것은 그의 이웃들과 모든 생명체들과 태양과 달과 별들과, 물, 불, 바람, 흙에게도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며, 이 세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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