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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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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성례
  • 출판사 : 지혜
  • 발행 : 2015년 05월 15일
  • 쪽수 : 1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7282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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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조성례의 시는 이미 지나간 기억의 세계에 시작(詩作)의 근거를 두고 있다. ‘이미 지나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시인에게 기억은 ‘현재 진행되는’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 과거이면서 현재인 기억의 세계는 ‘노모(老母)’를 비롯한 다양한 시적 대상과 어울려 조성례의 시 세계를 수놓고 있다. ?가을을 수선하다?라는 시를 먼저 보도록 하자. 이 시는 “어느 집, 오랜 비와 바람으로 한쪽이 씰그러진 담장을 수선”하는 한 사내를 화자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지금 오랜 비와 바람으로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고 있다. 오랜 비와 바람으로 허물어진 담장이므로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의 흔적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의 화자는 “크고 작은 사연들이 모여서 완만한 생을 이루는 돌담”을 수선하며 “그 옛날 비밀스런 월담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그곳에서 새색시는 시집살이가 힘들어 저 담을 넘었고, 어떤 사내는 이웃집 청상과부의 속살이 그리워 저 담을 넘었다.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던 순이가 봇짐을 안고 집안을 기웃대며 서성이던 곳 역시 바로 이 돌담이었다.
    시인의 말마따나 돌담은 지금 “우리들의 과거를 모두 함구한 채, 함께 그렇게 등이 굽어간다”. 돌담을 스쳐간 시간은 그곳에서 풋내 나는 추억을 쌓은 이들의 시간으로 그대로 되돌아온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제는 등 굽은, 동네 처녀총각들의 무수한 도발을 오래 묵인해 온 태양” 밖에 없다. 태양이라고 해서 변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새파란 청춘이 등 굽은 노인으로 변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태양은 지금도 여전히 제 빛을 내며 묵묵히 동네 청춘들의 무수한 도발을 지켜보고 있다. “능청스레 허리를 펴며 저녁 먹으러 서산을 넘는, 저녁마을”의 풍경은 태양이 지고 뜨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진다. 그곳에는 태양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의 순환성을 따라 그들은 ‘뜨고 지는’ 저마다의 삶을 살며 저마다의 추억을 쌓았다. 조성례의 시작(詩作)은 무엇보다 해가 지는 저녁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돌담을 고치는 사내의 이 마음에 근본적인 정서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가을을 수선하다’라는 시의 제목은 이런 점에서, 가을에 이른 존재가 바라보는 생의 어떤 지점을 예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가을에 돌담을 고쳐야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인 이유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돌담에는 무수한 기억의 흔적들이 스며들어 있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렀으니, 가을을 수선하는 존재의 마음에는 이미 봄과 여름의 흔적들이 아름드리 쌓여 있을 것이다. 가을을 수선하는 것은 그러므로 지나온 봄과 여름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행위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한쪽으로 기운 돌담의 현재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결과이다. ?폭우, 그 끝?을 따른다면, 이러한 돌담의 현재는 어머니의 “주름진 저 손”과 다르지 않은 시적 의미망을 형성한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에 드리워진 고통의 흔적들은 그러나 돌담처럼 ‘수선’할 여지가 전혀 없다. 가을을 수선하는 시인이 어머니의 이 손을 시의 중심에 배치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조성례의 시는 어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긴 소리의 끈들”(같은 시)을 따라 가을을 수선하는 존재의 내면을 하나하나 드러내기 시작한다. 돌려 말하면 그녀가 살아낸 봄과 여름의 기억들은 어미의 주름진 손과 더불어 ‘주름진 채’ 한쪽으로 기운 돌담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가을을 수선하다
    폭우, 그 끝
    올빼미
    일곱 마디 ―입관식
    보리, 분얼의 가계家系
    바람에게 세놓다
    음지식물
    기억을 복원하다
    생을, 분실하다
    바다 고물상
    꽃문양 팬티
    아가미
    할복
    거룩한 탄생
    불면증
    부딪친다는 것은
    영광, 대한민국
    깻잎을 재우며
    송판

    2부
    기억의 힘
    벽 속의 사막
    새만금으로 가는 버스
    수면 무호흡증
    대추
    우화羽化
    저녁의 흘레
    사흘
    바람의 뿌리들
    드라이플라워
    서리 거듬
    먹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주전자
    뼈의 집

    치어들을 위하여

    선풍기
    꽃을 지우던 날

    3부
    세월을 담는다
    바퀴의 기억
    나는 햇살과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다
    전생
    그들은 어리다
    전선수리공 ―아멘
    벽화
    초복
    옹도
    귀가 밝다
    가벼워지는것들에 대하여
    검은장미꽃
    국화
    모자母子
    밥심
    가시
    들깨를 털며
    벌초

    4부
    환절기
    달항아리
    모르스부호
    천상 음악회
    질량 계산법
    어떤 죽음
    맹삼숙 씨
    유채꽃
    모든 소리는 직선으로 온다
    겨울 연밭
    밤비
    떡 두꺼비
    바람의 통로
    강구항
    친환경 볍씨의 말씀
    출입금지에 대한 상상
    소낙비
    용접

    해설세상 밖의 때를 씻어내는
    수류水流의 언어오홍진

    본문중에서

    가을햇살에 잘 익어 구수해진 볏짚으로 토담을 수선한다
    이제는 오래된 장처럼 곰삭아 정겨운 늙은 아내의 잔소리도
    몇 가닥 솎아 함께 볏짚사이에 밀어 넣고 촘촘하게 이엉을 엮는다

    토담 위 용마루가 황룡처럼 넘실넘실 헤엄쳐 오르면
    팔짱끼고 구경하던 아낙들의 웃음이 맷돌호박만큼씩 달게 퍼질러지고
    오래전 속내가 투박했던 한 사내를 따라 무작정 뛰어넘었던, 저기 저 담
    댕기머리 풋사랑 혐의들이 하나 둘 갈볕 아래로 구수하게 풀어진다

    노인은 담 위로 올라앉아 왼새끼 꼬듯
    그 옛날 비밀스런 월담의 이야기까지 속속 끼워 지붕을 얹는다
    크고 작은 사연들이 모여서 완만한 생을 이루는 돌담,

    누구는 새색시 적 시집살이 힘들어 저 담을 넘었다 하고
    또 누구는, 이웃집 청상과부의 속살이 그리워 군침을 다시기도 했다던
    돌담은 우리들의 과거를 모두 함구한 채, 함께 그렇게 둥이 굽어간다
    햇살이 먼저 낸 길로 담배 한 대 문 노인의 엉덩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바람의 모퉁이로 툭, 툭, 떨어져 내렸던 감꼭지가 오후의 시간을 끌어 덮는
    그런 날 장독대는 목화솜 같은 햇살을 깔고 앉아 오래도록 졸았다
    그 꿈 언저리, 설거지물 내다버리던 어무니의 토담집 너머에서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던 순이가 봇짐을 안고 기웃, 서성이기도 했으리

    어느 집, 오랜 비와 바람으로 한쪽이 씰그러진 담장을 수선한다
    그 곁에서 여인들은 풋내 나는 추억들을 솎아내며 벙싯벙싯 싱거워지고
    이제는 등 굽은, 동네 처녀총각들의 무수한 도발을 오래 묵인해 온 태양이
    능청스레 허리를 펴며 저녁 먹으러 서산을 넘는, 저녁마을
    ('가을을 수선하다' 전문)

    주방에서 무심코 과일을 깎는데
    거실, 그녀의 등 뒤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나보다

    주름진 저 손안에서 흘러나오는 긴 소리의 끈들
    산골 작은 도랑의 얼음을 껍질처럼 과도로 벗겨내면
    샘물의 속살에서도 저런 소리가 날까?

    칠월, 태양이 꺼진 잿빛 허공 어디쯤
    구름들의 모서리에서 뛰어내린 이슬비가 폭우로 변하던
    어느 여름의 우기였을 것이다,
    산골도랑의 바위를 굴리고 화전 밭을 뭉개고
    산 아래 마을을 초토화 시켰던 폭우도,
    그랬다 붉은 울음들이 삼키고 떠난 자리들은 모두
    길 아닌 길을 허옇게 포태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녀의 사내가 저녁밥상을 내던지듯
    골절된 세상의 꿈들을 부셔버렸을 때도
    어머니, 그녀의 가슴 안쪽으로 붉은 물이 범람했었다

    맥없이 뿌리 뽑힌 계절도 소화불량에 걸린 하늘도
    상처 입은 것들 모두를 안쓰럽게 끌어안고 이제껏 살아온
    저 고요한 뒷모습은, 얼마나 무수한 체념들을 안으로 삼킨 것일까
    어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고
    밖은 어느 새 찬바람 부는 시월,

    나는 붉게 익은 사과 속 단물이 그리워 다시 과도를 든다
    문득, 껍질이 잘려나간 속살마다
    노모의 침묵이 벌레처럼 웅크린 채 쓸쓸히 돌아누워 있다
    ('폭우, 그 끝' 전문)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조성례 시인은 2015년 [애지]로 등단했고,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으며, [가을을 수선하다]는 조성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가을을 수선하다]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인간과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의 산물이자 그 옛날의 시적 이야기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가 있다. 언어 역시도 아름답고 싱싱하게 살아 있으며, 고전적인 미학을 뽐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오랫동안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쳐왔음을 뜻하게 된다.
    시는 고통의 꽃이며, 이 꽃은 사상으로 그 열매를 맺게 된다. 너와 내가 우리로서 하나가 되는 꽃, 이 꽃의 열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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