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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전순영 두 번째 시집. 전작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려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과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긍정하게 되면, 아름답고 행복한 삶과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간은 허무한 시간이 아니라 영원불멸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70여 편의 시들과 문학평론가 이성혁의 해설, 김지하 시인의 짧은 평이 수록되어 있다. <양장본>

☞오늘의 시 한 편!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먹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
어느새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와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 버리는 시간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쭉쭉 뻗어나간 열두 가지에
너울너울 매달린 삼백예순 이파리 다 먹어치우고
이제 다섯 잎이 남아 있다
퍼렇게 얼어붙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제 또 초록 뽕나무 한 그루
내 앞에 설 것이다
나는 한 잎씩 깨물어 삼키고
한 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고 매일 매일
그 똥의 색깔은 다르다
열두 가지에 매달린 삼백 예순다섯 이파리 퇴비되어
내게로 되돌아올 대
꺼풀을 벗은 누에가 번데기 되듯 그 바깥 둘레에 나를
싸주는 집, 명주실 얼굴은? 몇 개나 될까

험난한 세월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을 뼈를 찾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시 뼈를 찾는 민들레,
사막과 같이 살벌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삶의 새순이 잘리는 고난을 딛고 시인은 삶을 버티는 힘, 뼈를 찾아가고 있다. (이성혁 평론 중에서)

전순영 시인의 시속에는 몸이 서 있다. 몸속에 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속에 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속의 산물이아니라 필시 운명이다. 뜨지 않은 시,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시 새하얀 그림자들의 끝없는 환영이 몸속에 운명으로 서 있다. 전시인의 하늘이다.
시속에 몸이 있다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물이 시화될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전순영 시인의 시 세계가 개인의 주변 감정의 표출을 넘어서 폭넓은 즉, 사회적 환경적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쓰여 지는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친필 표사)

시인의 말

1부
유리조각
마지막 눈빛
햇볕 싸먹던 날
연꽃 속으로
황홀한 죽음
黃色人
2001년, 독수리
녹슨 눈물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쇼팽 기념관에서 - 스페인 기행1
알암브라 궁전 - 스페인 기행2
꼬르도바에서 - 스페인 기행3
구겐하임 미술관 - 스페인 기행4
마드리드의 밤 - 스페인 기행5
大芩소리
가을 한 잎
걸어오는 이빨

2부
건널목에서
찢긴 오늘, 어디를 기워야 하는가
와인과 나눈 이야기
빛과 어둠이 가고 오는 길목
동양란
나룻배
言語의 江
고슴도치 겨울나기
뼈를 찾는 민들레
겨울 철쭉
별
속초항 가는 길
도배를 하며
라일락 뿌리 내리기
길
십이월
그사내

3부
뼈가 말을 하고 있다
훨훨 날아가는 팔공산
3월 1일, 비석으로 서 있다
약수터 가는 길
항구의 밤
시월을 물들이고
젖은 행주
너 어디 있니
외발 비둘기
강아지
호미
孤雲님
그는
蘭
연꽃 흰 기도
혼자, 혼자를 먹는다
무명천 울음

4부
웅덩이2
춘경 산수화
벤지의 흰 눈
4월 윤중로에는
사십여 년 전 시간이 서 있다
썰물
벽을 뚫으며
산머루에게
소풍
겨울 仙巖寺
땀 흘리는 생각
풀 울음
뒷모습
젖
빨간 지갑
이대로 흙이 되었으며 - 폐수의 강5
옹달샘

해설_ 기억과 사랑으로 짜깁는 시 텍스트 (이성혁-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