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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 로망의 대표 작가 미셸 뷔토르의 '신화적 사실주의' 작품

미셸 뷔토르는 알랭 로브그리예와 더불어 누보 로망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나간 작가이다.

빠르게 변해 가는 세계에서 전통적인 소설 기법들로는 이 세계의 새로운 관계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그는 소설의 형식 탐구를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소설(누보 로망)'은 현대의 복잡한 현실을 그 총체성 속에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며 또 그 현실을 의식화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형식 탐구가 잘 드러난 그의 대표작 [변경]은 가정과 직장이 있는 파리의 한 중년 남자가 이제까지의 삶과 결별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애인을 데리러 로마로 떠나는 스물한 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에서 뷔토르는 시간과 공간이변경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 지리적 매각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한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총체적 변모의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영웅들의 시대였던 고대로부터 소시민의 시대로 탈바꾸해가는 현대에 대한 역사적 조망을 담아내고 서사시에서 소설로 변경되어가는 장르 자체에 대한 형식 실험의 전형을 제시한다.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지속되던 새로운 소설에 대한 찬반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에 발표된 본 소설은 르노도 상의 수상뿐 아니라 비평가들과 일반 독자들로부터도 상당한 호응을 받으며 누보 로망을 대주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일상적 삶의 혼돈이 세밀한 주변 묘사와 심리 묘사를 거쳐 한 올 한 올 풀려나가면서 소설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허구에 관한 이야기 [변경], 여기에서 우리는 잊고 싶었던 우리의 진면목을 도리어 선명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변경]은 '당신'이 매일 매일 해치워야 하는 갖가지 일상의 요구에 떠밀려 적당히 잊고 있거나 두루뭉술하게 처박아놓았던 그 혼돈과 정면 대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하여 소설속에서 '당신'으로 지칭되는 남자는 사랑과 젊음, 해방을 갈구하며 희망에 가득차 기차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이 여행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고통스러운 '죄수대'에 가까워진다. '당신'은 차창 밖을 바라보거나 주위 승객들을 바라보며 삶의 이런저런 정황을 되새겨보거나 상상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 스무 시간 넘게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 여행은 '당신' 자신에 이르게 하는 총체적인 인식의 공간이 된다.

뷔토르는 이 여행에서 드러나는 '당신'의 과거, 현재, 기차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꿰뚫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집어넣을 수 있는 소설의 '통합 능력'을 통해 현대인의 복잡한 내적, 외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또한 소설을 총체적으로 현실 인식 파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인식의 도구라고 보았다.

전통적으로 소설이란 화자를 통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몇몇 등장인물들이 펼쳐나가는 행동이나 사건, 또는 그들의 내적 갈등을 이야기해주는 형식이었으며 소설의 모든 구성 요소들에 의한 서술 과정은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변경]은 그와 반대로 서술 과정 그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핵심 주제인 '변경'을 유도한다.

따라서 350여 쪽에 이르는 이 소설의 서술 공간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소설 장르의 특성, 즉 외양과 실상의 차이인 '변경'의 과정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공간, 즉 '당신'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한 스물한 시간 삼십오 분에 이르는 이 로마행 여행은 도리어 '당신'의 꿈을 변경시키는 매커니즘 자체가 된다.

현대는 소설의 원형에 가까운 영웅 신화와 환상의 서사시를 벗어나 환멸 속의 소시민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이다. [변경]은 바로 고대의 영웅 시대로부터 소시민의 시대로 탈바꿈한 우리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드러내는 소설이자 서사시에서 소설로 변경되는 장르 자체에 대한 소설이다. 또한 '당신'이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전 여행의 끝에서 자신의 존재에 생긴 균열을 메우기 위해 책을 한권 쓰기로 결심했듯 이 책의 독자 역시 책을 읽으며 새로운 책을 구상할 수 있게끔 실마리를 던지는 '미래의 책'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1부

2부

3부


옮기이 해설 - 인식의 도구로서의 소설, 그리고 소설에 대한 소설

작가 연보

기획의 말

당신의 기차는 바닷가를 따라갈 것이고 누군가가 불을 끄자고 할 것이므로, 만약 당신이 객실 한 구석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당신은 관자놀이 가까이 있는 커튼을 조금 들어올림으로써, 대낮의 그 멋진 날씨에 이어 여전히 맑을 밤하늘 아래 파도에 비치는 달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오가고 모든 일이 결정되어, 모든 준비가 이루어질 것이며 날짜까지도 거의 정해질 것이다. 당신들은 완벽하게 서로 화해를 할 것이며, 아니, 화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히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온갖 이유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이 초조감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