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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현 시집 『영산전이 생생하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매우 섬세하고 예리한 시인의 촉수로 일상생활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전혀 낯선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 놓는다는 평을 받았다.

이숙현은 1960년에 태어났고,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계간 《시와사람》으로 등단했으며, ‘시목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년간 은행에서 근무를 했고, 광주광역시 문화(문학)예술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광주대학교 한국어 교육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영산전이 생생生生하다》는 이숙현 시인의 첫 시집이며, 그는 매우 섬세하고 예리한 시인의 촉수로 일상생활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전혀 낯선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 놓는다. 이숙현 시인의 반성과 성찰이 ‘낯설게 하기의 기법’으로 이어지고, 《영산전이 생생生生하다》는 이숙현 시인이 창조해낸 새로운 세계라고 과언이 아니다.

추천사
이숙현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상 속에 스며든 자본의 논리를 드러내고, 또 여기서 벗어나려는 소망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태도와 소망에 쓰라린 통증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통증이 더 커질수록 시는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다름이 하나 되면/ 서로 썩지 않고 하나 되는”(「불이(不二)」) 것에 대한 발견이나, “바람이 있어야/ 꽃도 열매도 맺을 수 있다”(?흔들림을 위하여?)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소박한 깨달음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베인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반짝거림에 대하여?) 아프게 얻는, “눅눅한 생”(?어떤 일광욕?)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지가 더 필요한 일이다. 반성적 자아란 상처 위에 뿌리를 내리고 고개를 내밀고 가지를 벋는 식물과 같다. 일상의 각질을 벗기고 비집고 들여다보는 시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숙현 시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신덕룡 시인, 광주대 교수

시인이란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전도사이자 영원한 행복의 전도사이다. 그러나 그는 자유와 평등과 사랑과 행복을 노래하기에 앞서서, 그것들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들과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친숙한 것, 익숙한 것, 예컨대 모든 역사와 전통과 가치관들은 낡은 것이고, 그것은 순식간에 전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인은 ‘불쾌한 바보와 위험스러운 물음표’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따라서 그는 영원한 이단자이자 반항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적금은 아편 같은 희망의 둥지/ 눈앞에 죽음이 와도 심어 보는/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적금 통장/ 생을 화대로 한 최고의 포주/ 희망이 살기엔/ 둘도 없는 서식지다([
적금론積金論])라는 이숙현 시인의 ‘반적금론’이, “오늘은 길목 사과밭에/ 가지의자마다 불그죽한 얼굴/ 수줍은 사과 나한으로/ 미리 영산전 차렸다(영산전이 생생生生하다 ])”라는 영산전의 오백 나한을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날의 사과밭으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새로운 세계의 창조자이며, 영원한 행복의 전도사이다.
-반경환 《애지》 주간, 철학예술가

시인의 말 5

1부 뒤집어서 세상 보기
, 불현듯 13
겨우살이 14
황금 낚시 16
적금론積金論 18
시각장애 안마사 20
천사 22
안경점에서 24
씨앗장수 할머니 26
아웃사이더 28
매트릭스 호박 30
그곳엔 새가 산다 32
벌집 풍경 34
어떤 일광욕 36
어떤 생生 38

2부 나를 찾은 길
은목서 스토리 43
날개 수리공 44
LIVE 46
시경詩經을 읽다가 문득 48
그 섬에 가고 싶다 50
물 위에서 52
사소한 아침 54
고로쇠 56
도미노 58
나이라는 무기 60
영산전이 생생生生하다 62
고향집 64
조양문朝陽門 앞에서 66
용서 68
제 철을 잡다 70

3부 상처로 만든 뗏목
춘수春瘦 75
완자 무늬 76
노파老婆의 시간 78
세상에, 근다고~ 80
타임thyme 82
오래된 고백 84
요가원에서 86
벚ㆍ꽃ㆍ이ㆍ 피ㆍ었ㆍ습ㆍ니ㆍ다 88
복암리 고분古墳 병원 90
자웅동체 92
용천사 석등 94
어떤 항해 96
도배를 하다 98
고구마 선사禪師 100

4부 가볍고 쓸쓸한 반짝임
불이不二 105
거울을 보며 106
흔들림을 위하여 108
산악자전거 타다 110
유혹 112
반짝거림에 대하여 114
말차 116
가족 118
적벽가를 듣다 120
마이너리그 신화 122
감탄 교습소 124
개선사지 석등 126
베르누이 효과 128
부처님 오신 날 130

해설ㆍ일상의 틈새 비집기ㆍ신덕룡 134

영산전이 생생生生하다
사람마다 메고 온 부탁에 눌려
키 작아진 거조암* 오백 나한
오늘은 길목 사과밭에
가지의자마다 불그죽한 얼굴
수줍은 사과 나한으로
미리 영산전 차렸다
따끈한 해의 살로
단살을 만드느라
사과나한, 손 없이 분주하다
대웅전 주인 혼자 두고도 무사태평
저마다 생긴 그대로
얼굴까지 붉어져 파안대소다
탱탱한 과육 한 입 깨물면
오싹한 향법 아마 내 오금을 저밀게다
모를 접어 둥글게 익어 가는 말
아직 내 것은 아닌 말들이
사방에서 시끌벅적 기분 좋게 익는다
오백에 오백, 몇 곱절의 나한들로
이곳엔 이쯤이면 야단법석이 열린다
*거조암: 경북 영천, 오백 나한이 모셔진 영산전이 유명, 국보 제 14호임

적금론積金論
행인들 하나씩 올려 쌓은 애기 돌탑
돌마다 모양 다른 희망이 쌓이듯
적금 부으러 오는 얼굴마다
아무리 눌러도 다시 뜨는 비치볼처럼
숨기지 못해 불거진 희망을 본다
만기가 될 때 까지
미리 발목 잡은 희망이
색색의 조각보로 숨어 있는 적금 통장
가끔 중도에 자퇴하는 희망은
가슴 먼저 뽑힌, 벌건 적금이 된다
부어서 뿌리 내린 희망과
덜 채워서 부푼 희망이
적금을 붓는 만큼
키를 바꾸며 동숙한다
꽉 찬 적금으로 받았던 생이
어릴 적 설탕과자 같을수록
적금을 넣어 보며 채워 보려는 지도 모른다
한 치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있는 한
적금은 아편 같은 희망의 둥지
눈앞에 죽음이 와도 심어 보는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적금 통장
생을 화대로 한 최고의 포주,
희망이 살기엔
둘도 없는 서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