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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엄이 사라진 시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을 그리다!

김경선 시인의 첫 번째 시집『미스 물고기』. 2005년 ‘시인정신’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우리들의 마비된 삶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그로 인한 충격과 파국의 세계를 폭로하고 거기에 동참하기를 요청하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에서 인간존재의 허무뿐만 아니라 역사의 허무, 나아가 문명의 허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며 묵시록적인 세계 속에서 잃어버리거나 어긋난 꿈과 희망의 날개를 깁고자 한다. 이처럼 여기의 세계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바로 지금 여기의 희망을 일깨우고자 하는 서사로 구성된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쥐구멍에 대한 편차’, ‘과거로 가는 단축키’, ‘나는 저 사막을 건너야 한다’ 등의 시편을 모두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마비된 삶의 실상 폭로하며 야유와 풍자하는 김경선의 첫시집『미스 물고기』
김경선의 첫 시집『미스 물고기』의 시들은 우리들의 마비된 삶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그로 인한 충격과 파국의 세계를 폭로하며 야유와 풍자까지 내뱉는다. 신의 위엄이 사라진 시대, 인간다운 가치가 급속히 사라져 가는 21세기 한국, 혹은 신자유주의 세계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
유명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서 온갖 위험과 범죄에 맞서 싸우는 ‘철의 사나이’ “슈퍼맨”의 전락과 왜소화가 대표적이다. 오늘의 한국사회 속에서 슈퍼맨은 이제 진리와 정의의 수호자가 더 이상 아니다. 어떤 시련이나 위험에도 굴하지 않던 “천하무적”의 불사신 “슈퍼맨”은 “모래언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방어할 무기라곤 겨우 “삼각팬티 한 장이 전부인 백수건달”에 불과하다. 더 이상 “이제 아무도 슈퍼맨”의 출현과 구원을 “믿지 않는”(「슈퍼맨의 꿈」), 한 사회 문화적 이상으로써 영웅적인 삶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전설의 새 “불새” 역시 슈퍼맨의 운명을 닮아 있다. “불 속에서 태어난 불 속에서 죽는 동안 딱 한 번 운다”는 불사조(不死鳥)인 불새는, “잉태” 자체부터 “유전적 결함”을 가진 돌연변이이다. 또한 그 “불새”는 “죽은 어미의 살점을 잡아먹고도” 양이 차지 않아 “날마다 죽은 영혼을 찾아”나서는 괴조(怪鳥)이자 흉조(凶鳥)이다. 이제 불새는 영웅적인 불사(不死)나 부활의 상징이 아니라 음산하고 공포스런 죽음과 어둠을 상징하는 평범한 새임을 보여준다.
그러한 ‘슈퍼맨’이나 ‘불새’와 같은 영웅 부재의 시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피터팬’의 환상이다.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한 사내가 손을 잡아챈다 그 남자는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우긴다 잠결에 웬디 손을 잡고 다른 페이지로 도망간다 검은 터번을 쓴 꿈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후크 선장의 왼손 갈고리는 늙지도 않는다 팅커벨 수다는 여전하다 정적을 깨는 숨소리가 다가온다 전갈의 꼬리가 피터팬을 가소롭다는 듯 쏘아본다 (…중략…) 팅커벨, 가끔 내려와 인적 없는 모래언덕에서 깃털을 가다듬고 뒤숭숭한 꿈자리를 신기루처럼 털고 날아간다 모래 속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발자국 하나가 벙어리 흉내를 낸다 신기루를 핑계로 날아든 불온의 사유 하나가 꿈속을 점령한다 금빛 신기루 한 주먹을 입에 털어 넣는다 음모를 철회하지 않는 꿈은 끌어당길수록 달아난다 손을 놓친 웬디가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이가 빠진 피터팬 잠꼬대 중이다
―「피터팬, 사막을 가다」일부

외국 고전동화 피터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위 시에서「피터팬」은 더 이상 자아도취적 영웅이 아니다. 여전히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우”기지만, “전갈의 꼬리”가 그 말을 “가소롭다”고 “쏘아”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후크 선장의 왼손 갈고리는 늙지도 않”은 채 여전히 활약하는 것에 반해, “늙고 이가 빠진 피터팬”은 “불온한 사유가 점령한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잠꼬대 중”이라고 말한다.

예언자적 또는 깊은 모성의 울림으로 왜곡된 꿈과 희망 깁거나 수선해
김경선의 시들은 자신이 살아왔거나 살아갈 세계를 종말론적 상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절정의 한 때,/ 온 세상을 삼킬 듯한 해일”(「오르가슴」)의 혁명적 세계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온갖 “두려움에 넉살만 늘어 비대해진 절망”의 “9회말 투 아웃 만루”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사라진 “희망의 안타”(「9회말 투아웃」)를 치기 위한 집요함과 진지성을 보여주고 있다.
“명품을 걸치는” 것을 “최대의 꿈”으로 여기는 “봉이 김선달”식 “마케팅 전략”과 “짝퉁제품이 난립”(「新 봉이 김선달 마케팅 전략」)하는 세계 속에서 “다른 동네에서 퇴짜맞은 봄” 또는 희망을 “도로변”에 “주섬주섬 꺼내 질펀하게 늘어놓”(「봄이, 소쩍소쩍」)을 줄 아는 인간적이고 따스한 사회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살아 있다.
이렇듯 김경선의 시들은 묵시록적인 세계 속에서 잃어버리거나 어긋난 꿈과 희망의 날개를 깁는 시인을 자처하며 때로 예언자적 목소리로, 때때로 깊은 모성의 울림을 빌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재난이나 개인적 고통의 종말이 아니라, 그 종말을 향한 인간적 노력이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고 간곡하게 말하고 있다.
이런 묵시록적 세계 인식은 이중적이다. 지금 여기의 세계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바로 지금 여기의 ‘희망’을 일깨우는 게 묵시록적 서사가 지향하는 바인 까닭이다. “종일 미싱 페달을 밟고 달려도 늘 제자리”인 삶의 “반경” 속에서도 “어디론가 가고 싶다”며 “나를 풀어달라고” 우는 “수선집 물고기”인 “풍경소리”가 그 좋은 예이다. “몸값을 지불해도 풀리지 않는” 구속과 “저주” 속에서도 그 물고기가 “힘껏 꼬리”(「미스 물고기」) 치는 것은, 세계의 파멸을 기정 사실화하거나 절실하게(?) 희망하는 가운데서도 은연중에 다른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할 때 발생한다.
진정한 의미의 묵시록적인 시적 인식은 단 한 세계의 종말이나 파국을 그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은폐되고 왜곡된 꿈과 희망을 깁거나 수선하는 일과 깊게 맞물려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自序
해설_묵시록적인 세계 인식과 날개 깁는 여자 · 임동확

1부 - 박쥐論
出안산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라라라, 법원에서
박쥐論
구름 제조공장
미스 물고기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드라큘라
벽걸이 온풍기
40년, 광야를 헤매다
쥐구멍에 대한 편차
스트레스 증후군
기타 등등
한 뼘
미자믹 댄스파티

2부 - 과거로 가는 단축키
불새에 대한 미공개 X파일
슈퍼맨의 꿈
예스마트
과거로 가는 단축키
新 봉이 김선달 마케팅 전략
장맛비
피터팬, 사막에 가다
거울의 정체
외로움의 면역체계
칼의 후예
말 한 마리 잡는 법
나비효과
디지컬 초상화 갤러리
스마일 케이스
나는 휘파람의 어미예요

3부 - 새들의 본적
세공의 기술
새들의 본적
노을의 키스
바람의 행적
나는 저 사막을 건너야 한다
가뭄에 들다
턱걸이
포테이토 필러
자귀나무의 정체
삼각관계
오르가슴
순두부
9회말 투아웃
바람의 동거인
산밤나무, 쿠테타

4부 - 날개를 깁는 여자
얼룩무늬 그 남자
누드화가
바람부리에서 서다
처녀 공주
미세스 두루뭉술
봄이, 소쩍소쩍
제3병동
사이보그
잠자는 숲속의 미녀증후군
신종제비
오래된 소파
날개를 깁는 여자
행복설계사
붙어먹다
가지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