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오래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초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선

박미라의 세 번째 시집『안개 부족』. 백내장을 앓는 어머니를 안개의 부족에 비유하고 있는 표제작 〈안개 부족〉을 비롯하여 모두 51편의 시가 담겨 있다. 이전의 시집들이 상처를 헤집으며 끝없는 말 걸기를 시도했다면, 이번 시집에는 모든 것을 쓸어 덮으며 고개 끄덕이는 시인의 떨림이 가득하다.

이 시집에는 사라져 없거나 잊혀진 존재를 생각하며 초록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시선이 담겨 있다. 시인은 온몸을 두드리는 몸의 언어를 통해 우리 몸을 울림통으로 만드는가 하면, 자신의 기원을 더듬거나 지난 세월의 흔적을 쫓는다. 또한 앓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딸의 마음도 풀어내고 있다. [양장본]

박미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백내장을 앓는 어머니를 안개의 부족에 비유하고 있는 아름답고 슬픈 시 〈안개 부족〉을 표제작으로 총 51편이 묶여 있다. 이전의 시집들이 상처를 헤집으며 끝없는 말 걸기를 시도했다면 이번 시집에는 모든 것을 쓸어 덮으며 고개 끄덕이는 중인 시인의 떨림이 가득하다.

“저녁마다 기침에 시달”리는 시인은 “가슴을 탁탁 두드려 숨 고르면/ 눈물 솟구치”는 때가 있다. 이러한 경험이 낳은 시 ‘두드리다’를 통해 시인은 “두드린다는 건 막막한 것들끼리 건네는 잠깐의 위로”이자 “어둠 속에서 더 잘 들리는 은밀한 말”이라 전한다. “밤새도록 목울대를 두드려 갈비뼈까지 흔들고야 마는” 기침은 힘이 세지만 사실 몸이 없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가만가만 혹은 격렬하게/ 두드리며 살았다// 떨림으로 가득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온몸을 두드리는 몸의 언어를 생성하여 우리 몸을 울림통으로 만드는가 하면, “숨소리를 다스리는데 백 년이 걸리고/ 눈과 귀를 버리는데 천 년이” 걸리는 ‘고인돌’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원을 더듬는다든지 텅 빈 항아리에서 그물을 치던 거미의 행적을 쫓으며 지난 세월의 흔적을 쫓는 시인의 상상력은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연자차를 마시며 아직은 흑백인 우주이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지금 막 초록으로 건너가려던 중”인 것을 발견하고 있는 시 ‘연자차’를 인용하며 이경수 평론가는 “박미라의 시선은 낡고 오래되고 사라져가는 것에 초록 우주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그리고 “죽어가는 몸을 “다음 생”으로 옮기는 초록 우주의 생명력이야말로 박미라의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라고 해설에서 말한다.

박미라의 시는 천천히 고요해지는 찻물을 따르듯, 서녘에 서서 붉게 번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듯 참한 호흡으로 읽으면 그윽한 맛이 우러난다.


■ 추천글

몽돌 같다. 노래가 아니라면 울음이다. 살이 다 닳아야 노래의 심줄 팽팽해진다. 울음의 뼈가 탁탁 튄다. 몽돌은 젖어야만 운다. 알몸으로만 노래한다. 노래와 울음 사이에 그의 시가 있다. 먼 곳에서 시작된 노래가 나를 지나 울음으로 터진다. 청승도 씻김을 안으면 맥놀이로 감돈다. “숨소리를 다스리는데 백 년이 걸리고/ 눈과 귀를 버리는데 천 년이” 걸린다. 제 노래를 버려야 바다의 울음을 얻는다. 제 눈과 귀를 다 지워야 심해의 울음을 퍼 올린다. 그게 바로 몽돌의 생애다. 천년만년 젖어야 곡비의 문양 선명해진다. 몽돌의 안창에 “태아처럼 웅크린 꽃눈”이 있다. “온통 싱거운 것들뿐”인 세상에 “여기/ 질기고 짭짤한 기록 하나” 내놓는다. “작살이 꽂히는 순간/ 평생토록 빚어온 거대한 꽃 한 송이 활짝” 피어나리라. 몽돌은 검은 꽃봉오리다.
- 이정록(시인)

시인의 말

1부 거미가 다녀갔다
연자차/백악기를 읽다/혀/거미가 다녀갔다/작살나무/검은 피 한 잔/새여,/病에게/슬픔/아빠하고 나하고/층꽃나무 이야기/이불 혹은 구름/풍장/검은 염소가 매애애 운다

2부 억새꽃 내 언니
억새꽃 내 언니/그는 키가 작다/열애일기 2/단풍나무가 있는 풍경/고인돌/목련꽃 어머니/수상촌 이야기/고혈압/숭어/오래된 밥솥/내 눈 속의 찌르레기/도미 小傳/치매

3부 상처의 배후를 기록하다
작고 구부러지고 새파란/상처의 배후를 기록하다/낮달 2/어떤 병은 모르는 길처럼 사납다/수면내시경/꿈/바다로 가는 길/봄날은 간다/오만과 편견/푸른 미라/불면증/환절기/단단한 잠

4부 부레옥잠 그 여자
개복숭아/화순 고인돌/방황하는 닭/다시 장마/아직 몸이 남아 있다/만리포 연가/부레옥잠 그 여자/적멸寂滅/황사/안개 부족/두드리다

해설│천년의 흔적을 새긴 몸의 언어_ 이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