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밌고, 드라마 번역을 생각해보고 있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번역가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 번역을 외국어를 매끄럽게 해석하는 작업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작자의 문체, 작품이 창작된 배경 등도 고려하는 더 고차원의 작업이란 게 놀라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번역이란 게 누군가의 직업이고, 번역학이라는 학문도 있는 분야인데 ‘번역’ 그 자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게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외국어로 된 글을 읽으라면 읽을 수 있지만 그걸 일일이 한국어로 바꿔가며 읽는 건 힘들다. 언어마다 그 언어가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번역하는 건 한 사람분의 한국어가 아닌 여러 사람분의 한국어를 해야 한다. 그걸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번역한 티가 안 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인 것처럼 통용되는 현재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읽고 충격 받았다.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 정식으로 논의가 되기도 전에 비전문가인 대중에 의해 번역이 정의되고 있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앞으로 번역본을 읽을 때 단순 해석에만 신경쓰지 말고 번역의 느낌을 더 면밀히 살피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범죄를 다룬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암울한 현실에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제목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여러 부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종종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란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만난 수많은 범죄자들은 적어도 일반적인 범주의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뇌구조 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이코패스부터 비틀린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 여러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묻지마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긴 절망과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이 범죄현장 혹은 피해자에게 남긴 흔적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를 추측해 범인검거를 돕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범죄심리는 이미 검거된 범인이라도 그들의 심리와 동기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또다른 범죄의 발생을 막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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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명 묻지마범죄를 단순히 ‘묻지마’ 혹은 ‘무동기’ 범죄라고 명명해버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안일한 일이라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묻지마’범죄자들은 보통 장기간에 걸친 좌절을 경험했고 특정 사건으로 인해 내재된 감정이 폭발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그들의 범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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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이 잘 짜여진 소설이라는 말에 도전한 책이었다. 하지만 역시 책은 어려웠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책이었다. 우선 작가가 지나치게 똑똑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신학적 논쟁과 방대한 주석들은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번 적응하고 나니 책장은 쉽게 넘어갔다.

수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수사하는 걸 큰 이야기 줄기로 삼은 채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계속 밀고 나가서 그나마 스토리의 힘으로라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많은 종교적 내용들을 소화하지 못하고 읽었지만 종교에 대해 더 알고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서는 신과 지식에 대한 그릇된 신념과 집착이 불러온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중세에 종교로 인해 지식의 암흑기가 찾아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주위의 의견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을 신념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신념을 가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신념의 옳고 그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신과 지식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하지만 그게 내 현실이 아니라서 좋아할 수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