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로맨스소설의 남자주인공은 거의 완벽하다. 엄청난 외모와 재력을 갖추고 있는 그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현실에서 일어나기에는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남몰래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뒷표지의 사회성 제로, 연애 DNA 제로라는 문구는 소소한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기대를 가지고 펼친 <로지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39세라는 로맨스소설의 남주인공 치고는 많은 나이의 돈 틸먼. 그는 유전학 교수에 매우 똑똑하고 요리를 즐겨하지만 세세하게 짜여진 계획에 따라 살고, 엄청난 기억력과 지식으로 모든 일을 분석하며, 사회성에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어 사랑은 커녕 대부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결혼상대자를 찾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완벽한 여성을 걸러내기 위한 설문지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반면, 로지 자먼은 돈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다.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 일을 돈과 하게 된 그녀는 그의 규칙적이고 분석적인 삶을 휘저어 놓는다.
대략의 줄거리는 매력적일지 모르나 내가 이 책이 '심각'한 상태라고 규정한 이유는 번역 때문이다.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문장들부터, 표기법으로 인해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문장, 직역을 한 듯 어색한 문장들까지 소위 '난장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돈의 분석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문체부터 사교적 활동에 서툰 그의 모습들까지 모두 유쾌했다.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이 과정에서 평범한 로맨스소설에 긴장감을 더해보려고 한 것 같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보다 이 책의 유쾌함이 완독을 하게 이끌어 준 힘이었다. 솔직히 <로지 프로젝트>에 설렘이나 달콤함이 있지는 않았다. (네 번째 말하지만) 유쾌함과 독특함이 이 책이 유일하게 내세울 점이다.
꽤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기에 이 책은 기대이하였다. 후반부에서 웃어가며 책을 읽어가기 전까지 내 최악의 책 리스트에 추가할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중고서점에서 몇 천 원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했으니 큰 후회는 없다. 다만 추천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남는 시간에 소소한 웃음을 머금은 채 읽는건 고려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