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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비밀은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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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공동 창작의 새로운 시도로 이루어 낸 흥미로운 앤솔러지 프로젝트!
세 명의 작가 x 모두를 위한 테마

세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 발 가까이 세계를 마주하는 책폴 청소년문학 ‘저스트 YA’ 시리즈 두 번째 책 『우리의 비밀은 그곳에』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공동 창작’에 관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안고 범유진, 최유안, 길상효 세 명의 작가가 인물, 사건, 배경의 설계도를 함께 그려 나가며 1년여에 걸쳐 이야기를 완성한 소설집이다. ‘앤솔러지’라는 협업의 과정을 따로 또 같이 구축해 낸 서사는 시종 고른 호흡으로 촘촘히 흘러간다.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단단한 완결성을 갖는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앤솔러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범유진, 최유안, 길상효 세 명의 작가가 가닿은 키워드는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10대들이 찾아낸 ‘비밀 공간’이다. 하루가 다르게 실감하는 생태 환경의 위기, 방식이 달라질 뿐 끝없이 되풀이되는 폭력, 오해와 미움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작가들이 찾아낸 희망은 어떠한 모습일까?

2000년의 해진, 2018년의 하연, 2039년의 제니를 잇는 수상한 마을의 비밀은 마침내 또 다른 가능성이 된다. 2000년의 해진이 발견한 ‘음모와 은폐의 공간’은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전해져 끝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2018년의 하연이 간직한 ‘나만의 비밀 기지’는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과 구원의 상징이 되며 2039년의 제니가 맞닥뜨린 ‘반전과 배신의 공간’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삶에 다가오는’ 용기와 가능성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렇듯 나보다 더 큰 ‘우리’를 의연하게 확장해 나가는 10대들의 이야기는 어제와 오늘을 지나 내일에 다다른다. 책의 각 장 도입에 담은 그림작가 비깔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좀 더 생생하게 분위기를 이끌며, 작품이 끝나고 이어지는 작가 이자연의 ‘첫 번째 리뷰’는 독자의 이해를 한층 도우며 작품 안팎의 의미를 되새긴다.

출판사 서평

하나의 공간 x 세 개의 시간 x 무거운 비밀
시간을 이어 온 세계 끝에서 발견한 비밀과 진실 그리고 희망

『우리의 비밀은 그곳에』는 ‘소설’이라는 이름의 모험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책이다. ‘앤솔러지’라는 협업 과정을 처음부터 같이 직조해 낸다면? 각자 풀어 나간 서사가 하나의 세계로 책을 관통한다면? 그리하여 범유진, 최유안, 길상효 작가는 이야기의 얼개를 처음부터 함께 구상해 나갔다.
범유진 작가는 『아홉수 가위』『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등의 소설과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등 앤솔러지 소설집에도 활발히 참여하는 등 해가 갈수록 작품의 깊이와 넓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최유안 작가는 단편집 『보통 맛』과 장편소설 『백 오피스』 등의 소설을 쓰고,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국제 정세를 가르치고 있다. 길상효 작가는 그림책과 동화, 소설을 쓰고 번역도 하며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제10회 비룡소문학상, 제5회 웅진주니어그림책상을 수상하는 등 장르와 독자를 넘나드는 전천후 이야기꾼이다.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딱히 세 작가의 ‘공통분모’라 여길 지점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고, 마감을 하며 살아가는’ 작가의 삶을 연대하는 이들은 공통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고 첫걸음을 뗐고 그 어떤 작업보다 꼼꼼하게 서사를 설계하고 끈끈하게 서로를 독려하며 작품을 지어 올렸다. 범유진 작가는 2000년 7월을, 최유안 작가는 2018년 10월을, 길상효 작가는 2039년 8월을 배경으로 어느 가상의 마을에 10대들이 찾아낼 수 있는 공간을 숨겨 놓은 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살아 숨 쉬는’ 비밀을 독자들이 무리 없이 발견해 가도록 한다.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우리의 비밀은 그곳에』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생태적 환경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지속적인 갈등이 어떻게 우리를 뒤흔들고 다시 일으키는지에 관한 탐구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왕따, 폭력, SNS, 비밀과 소문, 배신, 혐오-이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섬세히 다루고 있고 지금 우리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가장 긴급한 이슈인 ‘생태 환경 문제’도 주요하게 전제한다.
2000년에서 2018년, 2039년으로 해가 갈수록 생태 환경과 기후는 점점 위기에 처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은 당장 눈앞에 닥친 일상적 고민과 갈등에 뒤흔들린다. 숨 쉬고 살아가는 데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 ‘뭔가 조금씩 엇나가고 있음’은 서서히 직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 개발에 혈안이 되어 끝내 환경을 파괴한 댐 건설, ‘장마’라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거센 비, 바짝 마른 호수와 더는 피지 않는 꽃들과 죽어 가는 나무들……. 그러나 세상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지지 않는 무형의 흔적들은 사람의 마음에 깊이 남는 법”이라는 작품 속 노인의 말처럼, 한순간 우리를 무너뜨리지만 끝내 다시 일으키는 존재들. 사랑이자 구원이자 희망일 수도 있는 그것을…… 우리는 마침내 무어라 부르게 될까.

10대의 비밀이 반짝반짝 빛나는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당한 일을 고발하기 위해. 아이들이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_범유진 작가의 말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연을 따라가며 어쩌면 우리가 세상과 사람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저 역시 여러분과 함께,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생각과 감각 들이 세상에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세상이 더 넓고, 무엇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_최유안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아픔을 넘어 사촌과 아랑의 아픔까지 마주해야 했던 해진에 이어 에피아의 아픔을 멀리서 안타까워하다가 자신의 곁에도 오래도록 위로받지 못한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손 내밀던 하연이 일으킨 파도가 제니를 떠밀어 어디론가 나아가게 했습니다. 이야기를 짓는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늦기 전에 제니에게 희망을 쥐여 주면서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_길상효 작가의 말에서


‘그곳’을 알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된 세 주인공은 결심한다.
물러서지 않기로, 모른 체하지 않기로.

소설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대가 변해도 낡은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2000년, 2018년, 2039년 총 세 개의 시간이 흘러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1장 ‘2000년 7월’은 여름 방학을 맞아 삼촌의 집에서 지내게 된 열여섯 살 해진의 이야기다.
해진은 자라면서 삼촌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고 삼촌과 엄마아빠의 사이도 썩 가깝지 않다. 그럼에도 삼촌 집에 내려오게 된 까닭은 엄마아빠가 해진에게 ‘손사래 칠 만큼’ 실망하게 된 사건 때문이다. 학업과 성적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강요해 온 엄마아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해진을 늘 못마땅해했다. 그러다 ‘원치 않는 사건’까지 개입하였다는 사실에 질색하고는 해진에게 잠시 혼자 떨어져 지내라는 유배 아닌 유배를 보낸 셈이다.
해진은 아빠에게 삼촌 집에 가면 또래의 사촌이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막상 가 보니, 꽤 오랫동안 삼촌 혼자 지내온 듯 보인다. 마을 사람들도, 삼촌의 눈빛도, 구조가 독특한 집 구조도. 왠지 심상치 않은 동네라고 느끼는 가운데 해진이 무엇보다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건 물이다.?평소처럼 손을 씻고 수건에 닦는데 어디선가 악취가 풍긴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맞은편 빈집도 수상하긴 마찬가지. 분명 삼촌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하면서 왜 ‘절대 저곳엔 들어가면 안 된다’고 못 박듯 말한 걸까. 이 모든 건 부모가 생각하듯 그저 ‘심약한 정신 상태’인 해진 개인의 문제인 걸까?
앞에서는 한없이 친절하다가도 동네 여기저기에서 삼촌을 흉보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해진에게도 들려온다. 각자의 이익에 따라 철저히 경계를 짓는 사람들, 끼리끼리 경멸과 혐오를 주고받는 사람들,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 때문일까, 애써 잊으려는 해진의 상처는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맞은편 빈집에 들어간 해진이 ‘비밀 공간’에서 의문의 쪽지를 발견하면서 일상이 뒤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겹겹이 쌓아 올린 퍼즐을 하나씩 풀 듯, ‘현재’의 해진과 ‘과거’의 해진과 해진이 발견한 ‘빈집의 아주 오래된 비밀’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는 입체적 서사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2장 ‘2018년 10월’은 현실 안팎의 그림자를 알아 가면서 ‘비밀 공간’을 구해 내는 열여섯 살 하연의 이야기다.
하연에게, 모든 것의 시작은 인스타그램의 ‘하트’다. 이웃에 사는 단짝 은지가 갑자기 하트를 많이 받을 즈음이었다. 하연은 호기심에,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질투 어린 마음에 ‘자기만의 콘텐츠’를 골똘히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려 올린 것이 바로 비밀 기지 입구다. 사실 이 공간은 하연의 집 지하에 있는데, 누가 봐도 평범한 지하실은 아니다. 비밀스러운 마법의 공간으로 가는 것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 어둠 안에 숨어 있는 곳. 하연은 비밀 공간을 그저 모티프로만 가져와서 동굴처럼 처리하고 이것을 그림으로 활용해 보기로 한다.
아이돌 가수의 ‘하트’ 한 번으로 하연의 콘텐츠를 급속히 인기를 얻게 된 어느 날, 라이베리아라는 낯선 나라의 한 소녀가 하연에게 메시지를 보내온다. ‘Hello’라고 투박한 인사를 건넨 에피아가 궁금해서 하연은 아프리카를 찾아보았지만 낯설고 멀기만 한 곳이다. 사실 낯선 일들은 하연의 주변에도 끊이질 않는다. 가을인데 한여름 장마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이렇게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건 사실 예사롭지 않다. 온난화로 곳곳에 빙하가 녹으면서 살 곳을 잃었다는 북극곰들, 잔뜩 열이 오른 지구, 점점 가라앉는 나라들. 하연과 에피아의 일상 안팎에는 지금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머릿속 가득 물음표를 띄우고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하연은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수상한 노인을 발견한다. 노인은 하연의 가족관계를 줄줄이 꿰뚫고 있는 것도 모자라 ‘하연만이 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곳, 지하 공간에 대해서 묻는다. 분명 남몰래 숨겨 놓은 보물처럼 여겼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복잡한 의문이 늘어가는 하연에게, 에피아는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고 아픈’ 자신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비밀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연의 비밀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다고. 에피아는 언젠가 하연에게도 자신이 그런 선물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이 두절된다. 에피아와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우연히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서로 다른 비밀을 간직한 하연과 에피아는 ‘안전한 내일’에 가닿을 수 있을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하연과 에피아가 소통하면서 ‘지금 이곳’의 테두리를 넓혀 가는 이야기가 깊은 공감을 전하는 작품이다.

3장 ‘2039년 8월’은 새로운 희망을 안고 이사한 마을에서 상상 못했던 비밀을 맞닥뜨리는 열일곱 살 제니의 이야기다.
할머니네로 이사를 가면 제니는 덩굴장미 앞에서 사진부터 찍을 생각이었다. 덩굴장미가 가득한 그곳은 이제 제니가 살게 될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탁 트인 시야와 함께 드넓은 호수가 나타나는 순간, 제니는 낯선 풍경에 당황한 채 말을 잃는다. 어릴 적 보아 온 호수는 간데없고 주위를 에워쌌던 초록도 생기를?잃고 바래 있는 것이다. 호수 반대편에 펼쳐지던 기억 속의 시골 풍경도 사라진 대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악취만이 호숫가에서 풍겨 오는 듯하다.
예상과 다른 일은 호수 말고도 더 있다. 자기만의 방이 생기는 줄 알고 좋아한 제니 앞에 ‘이모’라는 존재가 들이닥친 것. 차분하고 조용한 편인 엄마와 달리 이모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언제나 집 안을 분주하게 만들곤 하는데 제니는 이모에게 할머니 집이 머문 이 동네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된다. 조선시대에서부터 시작된 괴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건 댐 건설로 생긴 호수 바닥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체가 파묻혔다는 이야기. 댐이 들어선다는 걸 알고 온갖 폐기물을 갖다 버린 회사도 있고 사람까지 파묻어 버려서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는 이야기. 제니는 이모의 말을 들으며 할머니 집에 오던 날 호숫가에서 맡았던 ‘냄새’를 떠올린다. 혹시 그때 이 마을을 뒤덮었다던 냄새와 같은 것인지…… 제니는 잊고 있던 그 냄새가 밤새 주위를 감도는 기분에 휩싸인다.
제니는 전학한 학교에서는 철저히 ‘무존재’로 지내기로 다짐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묵묵히 학교와 집을 오가던 어느 날, 자꾸 제니를 흘깃거리고 말을 붙이려다가 끝내 집 앞까지 찾아온 반 아이, 지오와 얘기를 나누게 된다. 오래전 할머니가 집을 비울 당시 이집에 살았다는 지오가 ‘지하 공간’에 두고 온 뭔가를 찾아야 한다며 제니에게 부탁한 것. 할머니 집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니! 제니는 어른들 몰래 지오와 지하에 내려가고, 그곳에서 상상도 못했던 엄마의 비밀을 목격하는데……! 한 마을을 관통해 온 시대와 세대의 연결 고리를 통해 비밀과 희망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향하는 탄탄한 밀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추천사

이자연(『어제 그거 봤어?』 작가, 에디터)
『우리의 비밀은 그곳에』는 2000년의 열여섯 살 ‘해진’, 2018년의 열여섯 살 ‘하연’, 2039년의 열일곱 살 ‘제니’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대가 변해도 낡은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어느 마을이 상황에 따라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변모하는지 그 확장 과정을 보여 준다. 해진, 하연, 제니는 자신의 슬픔을 잠시 유예시킬지언정 타인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다정한 힘을 지녔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받는 삼촌의 아들, 동네 사람들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아랑과 아랑의 언니, 정착지를 찾기 위해 목숨 걸고 도피 중인 피난민,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외로운 노인, 혼자 울 일이 많았다는 반 친구. 결핍을 내비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덕에 세 인물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불편함이 옳았다는 확신으로, 자기만의 증거를 발견해 내는 실행력으로, 타인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로 이전과 다른 ‘나’가 되었다. 나를 등진 줄 알았던 공간을 나만의 비밀 기지로 만들어 나가며, 아이들은 마침내 성장한다.

목차

1부 2000년 7월(범유진)

2부 2018년 10월(최유안)

3부 2039년 8월(길상효)

첫 번째 리뷰: 모른 척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으며 세상 속으로 걸어갈 때(이자연)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해진은 계단 오른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창에 드리워진 두꺼운 커튼 때문인지, 여름의 긴 해가 채 저물지 않았는데도 방은 어둑했다. 해진은 캐리어를 창가에 놓고 커튼을 열었다. 방이 단숨에 밝아졌다.
“환기도 좀 해야겠다. 뭐야. 이거 꼼짝도 안 하잖아.”
해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창을 옆으로 밀려고 애썼다. 하지만 창문은 못으로 박아 놓기라도 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해진은 창틀에서 손을 떼고 유리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해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튼이었다. 마주 보고 선 집의 2층 방 창문에도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밖에서 볼 때도 가깝겠다 싶었는데, 진짜 가깝네.’
_21-22쪽, 1부 2000년 7월

별것 아닌 괴롭힘, 그러니까 조금 심한 장난 같은 것이리라. 해진은 그렇게 대성의 말을 어그러뜨려 받아들였다.
“담임한테 말하면 될 거야.”
해진의 반 담임은 학교 폭력 캠페인에 등장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교육청에서 상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담임에게 말하면 해결될 거라고, 해진은 대성을 설득했다. 대성은 싫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해?”
“겪어 봤으니까.”
해진은 그럴 리가 없다고, 대성의 손을 붙잡고 교무실로 갔다. 담임은 대성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_32쪽, 1부 2000년 7월

그 집엔 분명히 뭐가 있어. 뭔가가 있다니까. 사람들 말소리가 삼촌의 목소리와 뒤엉켰다. 들어가지 마. 하지 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삼촌 목소리는 아버지 목소리와 닮았다.
‘아니야. 삼촌은 아버지와는 달라. 다를 거야.’
해진은 그 목소리를 떨쳐 내듯이, 어둠 속으로 한 발 걸어 들어갔다. 한 발, 또 한 발.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2층으로 이어진 계단 앞까지 갔다. 삐걱. 작은 소리가 났나 싶더니 계단 위에서 아래로 무언가 후닥닥 뛰어내려 와 해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악!”
해진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양손을 휘저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서늘한 공기만이 해진의 뺨에 남았을 뿐이다.
‘바람이었나?’
_41-42쪽, 1부 2000년 7월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그 아이는 자기 고국이 그곳이라고 했다. 라이베리아.
한 번도 발음해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우선 그 나라를 아느냐고 선생님에게 물어야 하나. 그곳을 떠나 도망치던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고. 그런데 아무래도 그 아이가 위험한 것 같다고. 모르긴 몰라도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질 것 같다고. 그렇게 말을 해야 하나. 그러면 선생님이 믿어 줄까. 아니, 선생님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하연의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도 빗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_105쪽, 2부 2018년 10월

그래, 거기라면 틀림없었다. 그곳은 하연의 집 지하에 있는 것이 맞긴 한데, 아무래도 평범한 지하실은 아니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지하실은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시작되는 장소일 텐데, 이 집의 지하실은 비밀스러운 마법의 공간으로 가는 것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 어둠 안에 숨어 있었다. 그래, 거기가 좋겠다.
생각 끝에 하연은 비밀 공간을 그저 모티프로만 가져오기로 했다. 비밀 공간을 동굴처럼 처리하고 이것을 하연의 그림이라는 인장으로 활용해 보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그 생각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_112쪽, 2부 2018년 10월

비가 많이 오는 날이 일주일째 이어졌다. 특히 밤에 내리는 비는 소란스럽고 거칠었다. 감정을 회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다시 상자를 열면 그 기억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었다.
차라리 덮어 두는 게 나을까. 이대로 노인도 나타나지 않고 에피아와도 연락을 끊고 전쟁 같은 터무니없는 말들에서 벗어나 현실을 살면 훨씬 마음이 가볍지 않을까. 이것이 하연에게 좌절이라면 그랬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암담함. 어떤 것도 좋은 것 같지 않은 선택의 상실감. 그렇지만 에피아를 향한 걱정스러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은 며칠 동안 들어가 보지 못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마음과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공존했다.
_145쪽, 2부 2018년 10월

탁 트인 시야와 함께 드넓은 호수가 나타나는 순간, 마치 처음인 것처럼 탄성을 지르려던 엄마와 나는 낯선 풍경에 당황한 채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오래전, 댐이 건설되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엄마는 물론이고 어린 나조차 감탄했던 그 호수가 간데없었다. 옆에 두고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기에 어린 내가 엄마에게 바다인가 묻곤 했던 그 호수는 이제 한참 낮아진 수면 위에 뿌연 안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주위를 에워쌌던 초록도 생기를 잃고 바래 있었다.
_177-178쪽, 3부 2039년 8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모 말은 원래 반 이상 걸러 들어야 하는 법이지만 댐 건설 결정과 반대 운동, 수몰 예정 지구의 이주민수, 공사 규모 같은 팩트와 엮어서 늘어놓으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댐 들어선다는 거 알고 온갖 폐기물 갖다 버린 건 그렇다 쳐도 사람까지 파묻고 말이야. 어유, 끔찍해.”
이모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말을 이었다. 최소한 댐 착공 직전의 1년 동안 전국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의 대부분은 살인일 것이며 그 희생자들이 호수 밑에 파묻혔을 거라고 했다.
“바보들. 무조건 거기부터 파 봤어야지. 전국에서 온 시체가 줄줄이 나왔을 건데.”
_196쪽, 3부 2039년 8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뒤에서 따라오던 낯선 아이가 갑자기 나를 붙들고 자기가 우리 집에 살았었다고, 이사 나오면서 두고 온 게 있는 것 같으니 우리 집에 와서 확인하게 해 달라고 했다면 내가 그 말을 순순히 믿었을지는 의문이었다. 따라오는 시선을 느낀 순간부터 별의별 생각으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발걸음을 재촉한 나였다.
입 안으로 입술을 말아 넣고 한참 망설이던 지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이사 들어갔을 땐 지하실이…… 잠겨 있었거든.”
지오가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열쇠 하는 사람 불러다 문을 땄어.”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잠시 아찔했다. 상상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잠가 두고 떠난 공간에 지오가 무단 침입을 했다는 것이었다.
_215쪽, 3부 2039년 8월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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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맛깔스럽게 도시락부』,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 『아홉수 가위』 등을 발표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하루를 위로하는 초콜릿 같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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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84

198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길상효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엄마가 되어 어린이 책을 다시 손에 쥔 이후로 어린이·청소년들과 함께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중편 소설 「소년 시절」로 2018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깊은 밤 필통 안에서』로 2021 비룡소 문학상을, 『동갑』으로 2022 웅진주니어 그림책상을 수 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아톰과 친구가 될래?』, 『작게 작게 잘라 봐!』, 『외계인이 찾아왔어!』, 『점동아, 어디 가니』, 『최고 빵집 아저씨는 치마를 입어요』, 『그 말 내가 전할게』 등이, 옮긴 책으로는 『아웃 게임』, 『엄마의 볼로네즈 소스는 참 쉽다』, 『안아 드립니다』, 『하늘꽃이 내 동생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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