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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다비하다 : 안현심 시집[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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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안현심
  • 출판사 : 지혜
  • 발행 : 2020년 07월 16일
  • 쪽수 : 9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728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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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명주이불 속에서/ 몸부림치는/ 봄// 흥건히 젖어/ 쓰러지는 오르가슴// 자지러지는 진통 끝,// 뾰족이 얼굴 내미는/ 나무의 성기.
----[꽃피다] 전문

사랑은 종족의 명령이며, 이 종족의 명령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싹이 트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를 맺으면 후손을 남기고 죽는다. 인간이 태어나면 자기 짝을 찾고, 자기 짝을 찾으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으면 죽는다. 모든 것은 태어나고, 모든 것은 죽는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 온다. 사랑은 이 자연의 질서, 이 윤회사상의 꽃이고, 이 꽃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남녀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봄은“명주이불 속에서/ 몸부림치는”봄이고, 오르가슴은“흥건히 젖어/ 쓰러지는”오르가슴이다.“자지러지는 진통 끝”은 출산의 고통이 되고, 이 출산의 고통이 끝나면“나무의 성기”가 온몸으로“뾰족이 얼굴”을 내민다. 돈쥬앙이나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은 전지전능한 신마저도 용서한 사랑이며,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또는 성교만큼 거룩하고 위대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는 있을 수가 없다. 안현심 시인은‘사랑의 시학’의 대가이며, 한국시문학사상, 보기 드물게 온몸으로, 온몸으로‘몸의 꽃’을 피워낸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양귀비 꽃밭에 누운 듯/ 홀연히 불기둥 일어서더니/ 정수리 끝으로 빠져나갔어요// 비단뱀처럼 구불텅거렸어요,/ 천 마리 지렁이가 춤을 췄어요// 빗장을 푼 순간, 용암이 솟구쳤어요/ 뜨거운 샘물이 잡목 숲으로 흘러내렸어요// 몸으로 말해요,// 언어는/ 쓸데없는 지푸라기.
----[몸말] 전문

시가 사상의 꽃이라면 사랑은 몸의 꽃이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면 봄이 오고 꽃이 피듯이, 때가 되면 자기 짝을 찾아 몸의 꽃을 피운다.“양귀비 꽃밭에 누운 듯/ 홀연히 불기둥 일어서더니”그녀의“정수리 끝으로 빠져”나가고,“비단뱀처럼 구불텅”거리고,“천 마리 지렁이가 춤을”춘다.“빗장을 푼 순간, 용암이”솟구치고, “뜨거운 샘물이 잡목 숲으로 흘러”내린다. 양귀비는 꽃 중의 꽃이 되고, 비단 뱀과 천 마리 지렁이는 천하제일의 정력의 대명사가 된다. 양귀비와 비단 뱀, 양귀비와 천 마리 지렁이와의 성적 결합은‘미녀와 야수’라는 영원한 신화의 주제이며, 이 사랑의 신화는 모든 것을 과장하고, 그 모든 것을 미화시킨다. 이 과장, 이 미화는 모든 예술작품의 근본 수사학이 되고, 이 근본 수사학이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이 상상력에서 저 상상력으로 끊임없이‘성교의 역사’를 발전시켜 나간다. 사랑은 양귀비와 비단 뱀, 사랑은 양귀비와 천 마리 지렁이, 사랑은 미녀와 야수가 엉겨붙은 몸의 말이고, 사랑은 잡목 숲을 흥건히 적시는 오르가슴이고, 사랑의 대지구의 폭발과도 같은 활화산이다. 언어는 쓸데없는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으며, 몸의 말만이 진정한 활화산이 되어 폭발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사상의 꽃인 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몸의 꽃인 사랑이다. 꽃은 아름다움이며 절정이고, 꽃은 고귀함이고 위대함이다. 사랑의 시간은 황홀함이고, 이 황홀함 속에서는 그 모든 번뇌와 고통이 다 잊혀진다. 시계바늘도 멈춰서고, 몸에서는 날개가 돋아나고, 과거와 현재, 미래와 현재라는 시제도 없어진다.“온갖 향료를 들이마신 뒤/ 천이백 년 동안이나 몸뚱이를 태워/ 소신공양한 희견보살처럼/ 손가락 새 웅크려 앉아/ 온전히 불타버려도/ 어우, 좋아”([좋아]), “바람을 가르는 야생마의 꿈, 거둘 수 없다/ 황금 발찌 빛나는 춤꾼의 비상, 포기할 수 없다/ 달밤 내내 타다가 꽃다지언덕에서 혼절하는 花蛇”([발의 연애학]),“정갈하게 목욕하고/ 면도를 마친 여신이 알몸으로 누운 초원// 양떼가 젖가슴을 오르내릴 때”([흐미]),“첫사랑인 듯, 첫사랑인 듯/ 목숨을 줄 때 순결은 눈트는 것”(‘테스’를 위하여])이라는 시구에서처럼, 안현심 시인의 사랑의 노래는 거침이 없고, 그 장애를 모른다. 사랑은 천이백 년 동안 몸뚱이를 태워 소신공양한 희견보살이 되었는가 하면, 그 사랑은 어느 새 바람을 타고 가르는 야생마가 되기도 한다. 사랑은 어느새 정갈하게 목욕하고 면도를 마치고 몽골초원에 누운 여신이 되었는가 하면, 그 사랑은 어느새“첫사랑인 듯, 첫사랑인 듯/ 목숨을 줄 때 순결”에 눈트는 테스가 되기도 한다.

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아/ 소녀를 다비하네//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리며/ 소녀는 시퍼런 불꽃으로 반항하네// 소년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네/ 밤새 쌓은 사랑이 돌탑처럼 높아졌네// 한 남자를 만났을 때/ 소녀는 보자기에 싸여 장롱 깊이 숨었네// 들킬까 공포가 밀려왔을 때 / 소녀는 사랑을 불사르기 시작했네/ 소지燒紙 올릴 때마다/ 까만 나비 떼가 흔들리며 날아갔네// 검은 날개들의 자맥질, 자맥질……// 소녀는 하얗게 다비되고 말았네.

안현심 시인의 [소녀를 다비하다]는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이며, 이상적인 사랑이‘사상의 꽃’으로 피어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상적인 사랑은 [계백에게]에서처럼,“비껴간 사랑”이며, 다른 한편,“빗장 열어젖히고 따스운 입김을 불어넣는 그대여// 마음 다해 부르면 금빛 마음결을 볼 수 있을까// 온몸으로 노래하면 숨결 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채로 쓰러지는// 쓰러지는 사랑”이라는 시구와도 같은 [외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상적인 사랑은 티없이 맑고 순수한 사랑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나르시소스와도 같은 환상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제아무리 마음을 다해 불러도 금빛 마음결을 볼 수가 없고, 제아무리 온몸으로, 온몸으로 노래를 불러도 그대 숨결을 만질 수가 없다.

안현심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의 표제시인 [소녀를 다비하다]는 시인의 이상적인 사랑과 그 비극적인 결말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할 수가 있다.“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아/ 소녀를 다비하네”라는 시구는 현재의 시점에서 까마득한 과거, 즉,“한 남자를 만났을 때/ 소녀는 보자기에 싸여 장롱 깊이 숨었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남자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회한을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 소년, 그 남자를 만나 첫눈에 반해버렸지만, 그러나 너무나도 부끄러워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숨어버렸다. 이 수줍음, 이 부끄러움이 극단화되어“소녀는 보자기에 싸여 장롱 깊이 숨었네”라는 시구를 낳게 된 것이지만, 이 수줍음과 이 부끄러움에는 또다른 공포심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만, 공포심은 사회적인 풍습과 가문의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적인 풍습은 성숙한 사랑과 성숙하지 않은 사랑, 올바른 사랑과 올바르지 않은 사랑을 규정하고, 남녀간의 사랑은 이밖에도 그주체자들의 자유가 아닌 돈과 명예와 권력에 토대를 둔 가문의 영광에 기초를 두었던 것이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미성숙한 사랑이고 불륜이며, 이것이 그 소녀로 하여금 장롱 속으로 숨어들어가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사랑을 불사르게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상(도덕과 윤리)을 따르자니 몸이 울고, 몸을 따르자니 사상이 도덕과 윤리의 채찍을 휘두르며 목숨을 위협한다. 사랑에는 매혹과 공포가 겹쳐져 있고, 사랑에는 꿈과 불안이 겹쳐져 있다. 현재의 소녀가 옛날의 소녀를 다비할 때 아직도 그 옛날의 소년이 보이고, 그 소녀가 시퍼런 불꽃으로 반항을 해보이지만, 그러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은“까만 나비 떼가”되어 날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소년이 보이고 “밤새 쌓은 사랑이 돌탑처럼 높아”갔지만, 그러나 그 소년은 까만 나비떼가 되어 날아갔고, 그 소녀는 하얗게 다비되고 말았다. 현재의 소녀가 옛소녀를 다비하고, 옛소녀는 현재의 소녀를 시퍼런 불꽃으로 노려본다. 이 늙은 소녀와 나이 어린 소녀, 즉, 현재의 소녀와 옛소녀와의 싸움에서 주옥같은 사리가 나오고 사상의 꽃인 시가 탄생한다. 기적은 절차탁마의 고행과도 같고, 기적은 놀랍고, 기적은‘몸의 꽃’을 넘어서‘사상의 꽃’인 {소녀를 다비하다}의 시세계를 펼쳐놓는다.

목차

시인의 말 4

1부

어리연꽃 12
바이칼 전설 13
부탁 14
쌍둥이 15
유형지의 사랑 16
샤먼바위 17
인간, 새 18
시인 19
詩밤 20
몰라 21
외사랑 22
계백에게 23
몸말 24
좋아 25
발의 연애학 26
우는 법 27

2부

첫물 30
꽃피다 31
꽃잎편지 32
첫사람 33
아직 34
지렁이 무덤 35
청산도 ―소리꾼 ‘송화’를 위하여 36
눈물약 37
초코파이 38
처음약속 39
못했다 40
간종그리다 41
바보 42
바리데기 43

3부

소녀를 다비하다 46
얼굴 47
겨울비 48
헛되이 49
부활 50
벌새 51
딱하지 52
아라비아 오릭스 53
사이 54
여자 55
겨울 오두막 56
오세암 전설 57
벙글벙글 58
호박엿 59

4부

연어 알을 읽다 62
자연일 뿐 63
알탕을 먹으며 64
마중물 65
누이야 ―3·8민주의거 제58주년 66
중학생이다 67
어리둥절할 뿐 68
‘테스’를 위하여 69
티베트 가는 길 ―다큐멘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 70
성큼 71
성빈이 72
흰 낙타 73
흐미 74
렛섬 피리리 75

해설소녀를 다비하다반경환 78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7~
출생지 전북 진안
출간도서 11종
판매수 62권

안현심安賢心 시인은 1957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했고, 계간 ≪불교문예≫(시 부문)로 시인이 되었고, 월간 ≪유심≫으로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시집으로는 『프리마돈나, 조수미』, 『상강 아침』, 『연꽃무덤』, 『하늘사다리』 등 7권이 있고, 자전에세이 『현심이』, 산문집 『오월의 편지』가 있다. 평론집으로 『물푸레나무 주술을 듣다』와 연구서 『미당 시의 인물원형 계보』,『한국 현대시의 형식과 기법』이 있다. 진안문학상(2011), 풀꽃문학상 젊은시인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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