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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요리책 : 신수옥 시집[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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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수옥
  • 출판사 : 지혜
  • 발행 : 2020년 07월 15일
  • 쪽수 : 15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728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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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배추 세 포기 절이려고
소금 항아리 열고 망설이다
전화기를 든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자
신호 한번 가지 않고 들리는 말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낯선 목소리에
가슴이 덜컹 힘이 빠진다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올라온다

큰언니의 번호를 눌러본다
소금 몇 공기 퍼야 하는지 모른다고 울먹이자
이 바보야, 네 나이가 몇인데
말끝을 흐린다

내 요리책이었던 엄마
음식 만들다 말고 전화기만 들면
몇십 년 한결같이
초판 내용을 유지했었다

몇 번을 물어도 반갑게 말해주던
엄마 음성 그리워
배추를 절이다 말고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는다

눈물로 푹 절여진 얼굴
간이 밴 표정이 엄마를 닮았다
― 「사라진 요리책」 전문

앞에서 살펴본 두 편의 시 「아홉 살」과 「울음을 다독이다」는 구조적으로 시퀀스(sequence)를 형성한다. 시퀀스는 다양한 영역에서 그 분야에 맞게 사용하는데, 특히 음악에서는 동형진행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일정한 형태가 반복해서 진행되는 것인데, 이때 같은 형태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고 발전적으로 진행되어 나타난다. 형태적으로 보면 반복이지만 시퀀스를 통한 반복적 진행은 반복의 느낌이 단순하거나 지루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심층적이면서 풍성한 울림으로 들리게 된다. 즉 반복이 반복이 아니라 무한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전인 셈이다.
「아홉 살」의 구조였던 ‘빈방–엄마의 부재’는 「울음을 다독이다」에서 ‘빈집–엄마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형태 자체가 같은 반복의 구조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단순 반복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 사건과 서정의 울림이 반복을 넘어, 오히려 반복 구조를 적극 이용해 시각과 청각을 통한 깊이의 확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별하고 각별한 시퀀스의 장치와 효과는 일종의 기둥과 같아서, 그 기둥 사이에 있는 또는 시간의 진행에서 그 기둥 후에 나타나는 일들은 시퀀스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시퀀스의 감정을 충실하게 구현한다. “꽃멀미 심하던 스물네 살의 봄이/현기증으로 몸져누웠다”(「그날 바람이 내게 왔다」)가 그 단적인 증거다. 그래서 시퀀스라는 중심 장치는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시퀀스 전에는 물론 그 후에도 중요하게 기능하고 서술된다.
모든 시를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만 특히 「사라진 요리책」 같은 시가 대표적이다. 「아홉 살」에 겪었던 ‘엄마의 부재’라는 현상의 강렬한 경험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으나 엄마의 존재로 인해 그 후로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울음을 다독이다」에 나타나는 ‘엄마의 죽음’은 죽음 자체의 성격 때문에 엄마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어서, 그 후에 경험되어지는 엄마의 부재라는 완전한 빈자리가 감정적으로 더욱 깊어지다 못해 생물적인 파동 현상의 극대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홉 살」에서 경험했던 부재의 층위와 진폭이 더욱 깊은 울림을 동반하는 이유는, 비어 있는 빈자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 비어 있음의 심리적 현상이 어떤 사건이라는 기폭제를 만났기 때문이다. 문득 다가오고 갑자기 생각나는 예고 없음의 현상이, 이미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는 어떤 정서나 개념과 맞물려 폭발력 가득한 감정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중에 한 예로, 김치를 담그는데 그리 많지도 않은 배추를 절이려고 하다가 전화를 한다. 그런데 바로 들리는 소리가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익숙하지 않은 그 “낯선 목소리”는 정서적으로 충격에 가까워서 가슴에 울컥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오른다. 다시 “큰언니”에게 전화해서 배추를 절일 때 소금을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울먹인다.
이렇게 진행되는 사건은 ‘엄마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엄마 돌아가신 후 처음 느껴보는 엄마 맛”(「무쇠 맛」) 이후 그런 일을 종종 겪었기 때문에 “엄마 음성 그리워/배추를 절이다 말고/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는” 것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와 빈자리를 느끼며 울음을 다독여야 했다는 사실은 울음이 그만큼 넘쳐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울음이 실제로 다독여지기는 힘들어서 오히려 이렇게 “눈물로 푹 절여진 얼굴”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간이 밴 표정이 엄마를 닮”은 역설적 현상이 진실한 마무리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딸에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은 엄마가 그런 적이 있었다. 엄마는 친정집에 가면 “속울음을 꿀꺽 꿀꺽 삼켰”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얼굴과 마음은/육회처럼 붉고 흐늘거렸다”(「육회」). 이것은 엄마와 딸의 시퀀스다. 그 구조와 감정의 구축 형태가 딸에게 그대로 이어지면서 사건의 전개와 감정의 발화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친정에서 그랬다면 아버지는 집에서 자식들을 대상으로 역할을 감당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국수를 들이키”(「여물 국수」)는 일이 많았다. 부모가 그랬으니 딸도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 원형과 모형의 시퀀스에서 과정의 진행을 숙성시키는 원형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목차

시인의 말 4

1부

아홉 살 12
그날 바람이 내게 왔다 13
육회 14
곰국 16
장화가 눕던 날 18
여물 국수 20
녹슨 뺀찌 22
울음을 다독이다 24
가마솥 일기 26
아버지의 등 28
무쇠 맛 30
천사를 만나다 32
사라진 요리책 34
바늘구멍 36
손톱을 깎다 38
어부바 40

2부

전세금 44
후두염이 지나가는 동안 46
콩나물 48
석양을 품다 50
여왕의 식사 52
흑백논리 54
숙제 56
국화빵 58
불편한 편의점 60
흘러가다 62
얼음은 울지 않는다 64
무덤놀이 66
저승길 68
꽃의 살결 70
온기를 끌어안다 72

3부

붉은 옷의 발레리나 74
인디언옐로 76
퀼트 NO. 1 78
퀼트 NO. 2 80
퀼트 NO. 3 82
북극의 밤 84
하프타임 85
밤의 흰 뼈 86
골콩드 88
발타샤 할아버지 90
초원의 후메이 92
에일란 쿠르디에게 94
무희 96
엘 콘도르 파사 98
찰무타 100

4부

초록빛 통증 104
사막을 건너오는 시간 106
국화 정원 108
운전면허증 110
저녁이 젖다 112
미스김라일락 114
그 여름의 장미 116
하자 보수 118
울음 동굴 120
네모 안에 없는 너 122
숨바꼭질 123
꽃의 다비식 124
꽃 무덤 126
물 위의 잠 127

해설비어 있음의 파동과 완성이종섶 130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신수옥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4년 「하프타임」외 4편으로 《문학나무》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5년‘젊은 시 12인’에 선정된 바가 있다.
신수옥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사라진 요리책}은 엄마의 부재, 또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심리적 충격의 변주이며, 그 그리움이 서정시의 진수로 울려퍼지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리움은 사랑이 되고, 이 사랑은 부재의 층위와 그 울림을 통해 더욱더 ‘비어있음의 파동과 완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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