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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것은 세월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갈무리 한다는 것을 조정향 시인의 시조집<숨비소리>는 들려주고 있다. 삶의 애환은 제주도 앞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해녀들의 깊은 숨소리가 급박한 삶 속에 담긴 진중한 생명의 소리이자 바다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의 소리인 것처럼 조정향 시인의 시조에는 손가락 끝에 묻어나오는 꽃가루처럼 은근하면서도 화려하다. 삶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삶에 부딪히는 소리를 어떻게 내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몫으로 시인은 은은한 달빛 아래 사르르 져서 소복소복 쌓이는 감꽃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자신의 삶을 어루만지는 스스로의 위안이라고 들려주고 있다.

살아가는 것은 세월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갈무리 한다는 것을 조정향 시인의 시조집<숨비소리>는 들려주고 있다. 삶의 애환은 제주도 앞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해녀들의 깊은 숨소리가 급박한 삶 속에 담긴 진중한 생명의 소리이자 바다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의 소리인 것처럼 조정향 시인의 시조에는 손가락 끝에 묻어나오는 꽃가루처럼 은근하면서도 화려하다. 삶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삶에 부딪히는 소리를 어떻게 내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몫으로 시인은 은은한 달빛 아래 사르르 져서 소복소복 쌓이는 감꽃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자신의 삶을 어루만지는 스스로의 위안이라고 들려주고 있다.

1부-뿌리는 잎이 그립다

포르르
멧새 날갯짓
초록 물이 떨어진다

-비 개인 날 중-

삼강 주막
감기
탑
둥지
환향녀(還鄕女)
그믐달
머뭄
하루
길
빗소리
하오의 강변
씨앗을 묻으며
비 개인 날
뿌리와 잎의 관계
밤 두 시의 흔적
매미
기별
아픈 맘
현애(懸崖)
시리게 푸른 날


2부-4월 푸른 심지를 돋운다


또 하루
가마우지의 퍼득이는 자맥질.

-산다는 것 중-


숨비소리
가을 남편
한 살이
줄 배
빈집
산책길
어쩌리까
슬픈 不二
편지를 씁니다
오월의 삼천포
산사에 해는 지고
해토머리
용궁
에움길 오르면서
한 해를 보내며
산다는 것
저녁달이 생끗 웃네
아라 뱃길
그날 밤
달밤
별빛 그리움


3부-볕살과 밀회 트는 봄

봄 가고
꽃 떨어지면
몸져누울 이 산골.

-외딴 봄날 중-

가을 속
삼동
눈 내리는 날
가을 풍경
삼계리 단풍
반룡사의 봄
칠월은
저무는 가을
겨울 대진항
초가을 밤에
봄은 오는데
문양의 봄
산골의 겨울나기
여름 끝자락
봄의 여울목
봄이 왔네
외딴 봄날
다시 가을에
눈트는 봄
가을에 쓰는 편지
계절의 건널목
여름자리건너면서
늦가을 동성로
남도겨울
가을 뜨락



4부-풍력발전기 느릿느릿 돌고

치어 떼
헤집는 여울
새 하늘이 열린다.

-버들강아지 중-

데칼코마니
상사화
먼 생각
석류
첫사랑
찔레꽃 필 때면
연꽃
단풍
나줏손
자목련 피는 밤
복수초
버들강아지
백년초
들국화
서리 꽃
막막한 기다림
버마재비 사랑
유등지
바람꽃
민들레


5부-무명치마에 꽃은 피고

?
까르르
해맑은 웃음
하얀 이가 솟는다.

-보석 중-

저문 뜰에 서서
선생님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첫 손자
이승혁
최유리
최영재?
추억 속으로
사모
어머니
동지 추억
홀로 가족
고향의 봄
고향의 여름
고향의 가을
감꽃 아래서
아버지
또 그립다
보석
내 마음에 눈트는 매화송이
작품해설-허일

-삼강 주막-


주막 뒤 방축 아래 가을 강이 붉게 타면
그 옛날 장정들이 시끌벅적 배를 데고
고달픈 목마름 추기려 삼삼오오 모인다.

두고 온 고향 얘기 먼 친척 안부 궁금
인연의 서로 관계 확인하는 웃음소리
술잔에 달빛을 담아 부푼 흥을 마신다.

등을 휜 단잠 소리, 대숲에 젓대울음
초가지붕 잎 마른 박 찬이슬에 여물으고
노 주모 늦은 설거지 후 벽에 긋는 외상장부.



-환향녀(還鄕女)-
?
끌려가 맺힌 설움
베갯잇 적신 나날
?
피붙이 통곡 소리
이명으로 뒤집힌 넋
?
황하를
넘는 회오리
손말명 된 잠자리 떼.



-숨비소리-
?
하얗게 빛바래고 곰삭은 저 목숨들
첨버덩 몸을 던져, 갈고리가 떠오르면
테왁을 가슴에 안고 토해내는 휘파람
?
시퍼런 물살 위에 차가운 토막처럼
하루를 살기 위한 일생토록 자맥질에
간절한 노을빛 바다 가물가물 피는 꽃들


-그날 밤-
?
?
새파랗게 벼린 달빛
은비늘 윤슬 물결
?
숱한 말 다 삼킨 채
“반딧불이 떠다니네”
?
그날 밤
그 말 한 마디
밤새도록 단 한 마디.


-삼동三冬-


잎 떠나 홀로 선 몸 방황의 긴 겨울을

찬바람 가지마다 절벽 같은 울음소리

왼 종일 내리는 눈발 허공 속을 헤맨다

얼다가 녹았다가 죽은 듯 살았음에

도톰한 새눈 틔울 햇살 한 점 기다리며

설중매 향기 그윽한 환한 그날 그린다.


-외딴 봄날-
?
황대산 계곡 아래
숨은 듯한 외딴집
?
그 뒤 곁 오동나무
청보라 꽃 서러운데
?
막막한
봄날의 적막
숨 멎은 채 서있다
?
물소리 바람 소리
아픈 맘 울먹이고
?
외로운 낮 달 혼자
오도 가도 못하는데
?
봄 가고
꽃 떨어지면
몸져누울 이 산골.


-여름자리 건너면서 -
?
푸스스 구월 숲을
건너가는 여름자리
?
들녘을 흐느끼는
조밭머리 눈먼 바람
?
수숫대
돛을 높이고 구름법문 듣는다
?
영혼이 허기진 골
초승달 수줍으면
?
선잠 깬 반짝 별빛
버덩 위로 내려지고
?
홑적삼
말린 앞섶엔 설움 꺾는 가을벌레.


-나줏손-


꽃 지는 저녁 답은
마음이 저립니다

바람에 꽃잎 떨면
향기마저 서럽네요

봄날은 화사한데도 등 뒤에만 서집니다


-보석-
?
꼭 쥐면 부서질라
조그만 손바닥에
?
까실한 강아지풀
오요요 간질이면
?
까르르
해맑은 웃음
하얀 이가 솟는다.

-해설 중-

…<중략>…

시는 정이다. 정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
탯줄을 매달고도 우렁찬 울음소리
기저귀 차고 앉아 젖병 빨던 귀여운 것
어느새 수능시험 치고 진인사 대천명이란다.
?
손자 놈 앗아간 정 자식 때 보다 깊어
나 홀로 짝사랑은 나도 못 말리겠네
지난 날 못다 이룬 꿈 하늘 높이 띄워본다.
????????????????? -진인사 대천명
?
세월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요술을 부린다.
탯줄을 달고 으앙-소리쳐 울던 그 핏덩이가 어느 결에 수능시험 치르는 예비 대학생이 되어 진인사 대천명이라,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운명을 기다린다며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다시없이 내가 흠뻑 빠져 키운 녀석이 제 부모 따라 훌쩍 떠나버리던 날 말로 다 못 한, 그 가슴 무너지던, 어쩌면 턱없는 배신감 같은 허탈에 빠져 혼자 눈물 짜야 했던 그 철부지가 어느새 이렇게 의젓한 모습으로 내 앞에 떡 서 있다니....
다시 또 하늘만한 소원을 품는 못 말리는 할미가 된다.

꼭 쥐면 부서질라
조그만 손바닥에
?
까실한 강아지풀
오요요 간질이면
?
까르르
해맑은 웃음
하얀 이가 솟는다.
-보석 전문

어쩌면 요렇게 고물고물 고사리 같은 깜찍한 요 손바닥에 까실한 강아지풀로 오요요 간질이는 할머니와 까르르 솟는 아가의 하얀 앞니, 더없이 정겹고 행복한 한 때의 정물화다.

이조실록에 실린 이야기 한 토막.
세종대왕이 아가(훗날의 단종)를 안고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시는데, 도화서의 화공들이 칭송하여 마지않으며 그림 한 점 진상하는 것을 보시더니, 대뜸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며 내치시었다.
?
“대저 시문이나 도화는 정이 깃들어 있어야 하거늘, 가령 어미가 아기에게 밥을 떠먹일 때 그 어미도 아아- 하고 입을 벌리는 법인데, 이 그림은 할애비가 손자에게 밥을 떠먹이면서 자신은 입을 꼭 다물고 있지 않으냐. 정이 없는 그림은 그림이라 할 수 없다“
?
-보석- 이라 제목을 붙인 이 시조를 보자.
할머니와 손자와의 사랑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정작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어도 독자로 하여금 찡-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시.
그래서 말 머리에 내가 조정향 시인을 타고난 시재라 한 까닭인 바, 석공이 돌에다 연꽃을 피워 올리는 지극한 정성으로 더욱 각고하기 바라며......
예술에는 완벽이란 없다. 만족하지 마라. 만족하면 그것으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