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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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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샘깊은오늘고전 제11권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가 나왔습니다. 지난 2006년 [주몽의 나라]를 첫 권으로 시작한 샘깊은오늘고전은 이규보, 이옥, 허난설헌, 박지원, 조위한, 신류, 김시습, 최부를 비롯한 무명씨의 문학 작품과 역사 기록을 오늘의 한국어로 새로이 다듬어 펴내고 있습니다. [주몽의 나라][일곱 가지 밤][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허생·거지 광문이][양반전·범이 꾸짖다·요술 구경][최척][북정록][부처님과 내기한 선비][홍경래][표해록]의 원전비평, 문체, 구성, 편집, 미술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호평을 거울삼아, 총서의 목록을 보다 알차게 채워 나갑니다.

    이 책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약용, 김려의 걸작

    이 책은 조선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학자 정약용의 한문 서사시 [도강고가부사道康_家婦詞](팔려 간 신부)와 조선 문단의 이단아 김려의 한문 서사시 [방주가蚌珠歌](방주의 노래) 두 작품을 어린 독자도 쉬이 읽을 수 있는 오늘의 한국어로 다듬고, 산문으로 풀어 쓴 것이다.
    조선 후기 한문 서사시는 다양한 주제, 섬세한 표현, 완성도 높은 짜임새 들이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이야기'와 어울려 현대문학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작품성을 뽐내는 예가 많다.
    여기 실린 [팔려 간 신부]와 [방주의 노래]는 여성 문제, 평등 의식, 계급 갈등, 농민과 어민의 고난, 양반과 백정의 혼인 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되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앞서 말한 조선 후기 서사시의 자질과 완성도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구현하고 있다. 두 작품이 민담, 전설, 한글소설과는 또 다른 세계를 지니고 있음을 가벼이 지나칠 수 없다.

    원작의 원뜻과 분위기를 함께 살린 오늘의 한국어

    한문학을 전공한 여성 소설가 김이은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문학사 흐름까지 염두에 두며 까다로운 한문 원전을 어린이,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냈다. '관아와 짬짜미' '꼴도 비추지 않다' '방주, 우리 꼬마 방주' '천하 사람은 모두가 동포'와 같은 선명한 한국어 표현은 까다로운 한문 표현과 난삽한 어휘 뒤에 가려진 정약용, 김려 특유의 '조선 한문'의 맥을 정확히 짚은 결과다. 이 책의 해설자이자 연구 이력 전체를 다산학 연구에 바친 송재소 성균관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는 "원래의 운문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글이 새로이 태어났"다는 말로 김이은의 작업을 기렸다.

    [여유당전서]에는 없다! 남의 문집 부록에 버려졌다.
    185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정약용 최대의 시 작품, [팔려 간 신부]

    [팔려 간 신부]의 원작, [도강고가부사](원제 '道康_家婦詞'를 직역하면 '강진 장님한테 시집간 여인의 이야기.' 도강은 강진 일대의 옛 이름)는 360행이나 되는 정약용 최대의 시 작품이지만 [여유당전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박제가의 시 모음인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의 필사본 부록에서 발견되었으며, 작품 발굴자인 임형택 전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창작과비평] 1988년 겨울호에 작품 해설과 발굴 경위를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후 그 제목만은 더러 알려졌지만 원문의 난삽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작품을 접할 기회는 드물었다. 이번 작업은 연구용 자료나 독본으로 정리된 경우를 빼고는,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 일반 독자를 위한 최초의 운문화 작업이다.

    작품 줄거리

    "새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산책 삼아 걷다가 지천으로 핀 봄꽃도 구경하고 어린 봄나물도 뜯었다.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데 진흙탕에 떨어진 곱디고운 작약이 눈에 들어왔다. 보고 있자니 문득 슬픈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문득 고개를 드니 꽃처럼 아름다운 한 여인이 사나운 사령[관청의 심부름꾼]에게 붙들린 채 갈림길에 서서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본문 머리 부분에서

    360행에 달하는 이 장편 서사시는 한 꽃다운 18세 여인의 기구한 사연이다. 여인의 아비는 중매쟁이에게 속아 어린 딸을 중늙은이 장님에게 시집보낸다. 알고 보니 이 장님은 두 번이나 결혼해 자녀를 셋이나 두고 있었고 여인에게 욕설과 매질을 일삼았다. 여인은 결국 남편의 학대와 전처 자식들의 구박에 견디다 못해 산으로 달아나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다. 그러나 곧 장님에게 발각되어 끌려와서는 고을 원님의 '명령'에 따라 다시 장님과 살게 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학대를 이기지 못해 다시 다른 절로 달아난다. 하지만 열흘도 못되어 거처를 알아낸 장님이 고을 원님에게 일러 바쳤고 원님은 사령을 풀어 여인을 체포하고 만다. 여인의 어미는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며 울부짖지만 그저 애처로울 뿐이었다.

    작품의 특징과 의의

    이 시는 화자인 '나' 정약용이 1803년 유배지에서 직접 본 사연을 정리했다는 짤막한 머리말에 이어, 여인이 두 번째 체포, 압송당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소녀는 끌려가고 소녀의 어미는 옆에서 울고 있는데 이 광경을 본 '나'가 그 어미에게 끌려가는 연유를 묻고, 어미의 입으로 그간의 사정을 말하게 하다가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정약용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나 도덕적 교훈을 개입시키지 않고 모든 사실을 어미의 입을 통하여 말하게 함으로써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구성의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직접 목격한 사연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고 하는데, 사대부가 평민 여성의 사연을 바탕으로 시를 쓰겠다는 발상 자체에서 여성을 향한 새로운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아버지와 남편이 맺고, 고을 원님이 '여성의 도리'를 내세우며 다시 한 번 다짐한 혼인을 두 번이나 깨고 집을 나온 여인의 행동을 분명하게 제시한 서술 태도는 조선 문학사에서 그 이전에는 유래를 찾을 길이 없다.
    가부장 아비·돈 많은 남편·남편과 결탁한 원님 대 달아나는 여인·딸을 도우려는 어미의 대립 구도 또한 봉건사회 속 강자 대 약자의 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정약용 사상의 핵심인 '애민사상'의 바탕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작품이 방대하다거나, 시각이 새롭다거나, 소재가 놀랍다는 말로는 이 작품의 시적 성취를 온전히 드러내기 힘들다. 묘사의 아름다움이나 장면의 집중력은 고답적인 한문학 전통에 비추어서도 그 완성도가 높다. 여인이 혼수를 거두며 혼인을 준비하는 장면 들은 발자크 소설의 묘사를 방불케 하고, 여인이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그것을 어미에게 보내는 장면 들은 독자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는 긴장을 느끼게 한다.

    노동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백정 집안에서 자라 반듯한 사람됨과 아름다운 자태로 양반의 청혼을 받은 방주와 신분 차별을 거부하는 툭 터진 양반 장 파총 이야기, [방주의 노래]

    이 작품은 720행 3,250자에 달하는 김려의 장편 서사시다. 김려는 15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27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수재였지만, 32세 되던 1797년 이후 글쓰기가 문제가 되어 10년 동안이나 변방 유배지를 떠돈 문단의 이단아다.
    김려는 당대에 유행한 [열하일기]의 영향을 받아 정조와 지배계급이 혐오해 마지않던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한 작가였다. 그는 결국 1797년 서학과 유언비어가 빌미가 되어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가야 했고(실제로는 소품체가 밉보였기 때문에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 1801년에는 신유사옥에 다시 한 번 걸려들어 경상도 진해로 유배지를 옮겨 소금구이네 집에 살게 된다. [방주의 노래]에 보이는 백정의 생산 활동, 전복 따기, 고기잡이, 배 부리기, 어촌 생활 장면에는 진해 시절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다. 평민과 천민의 노동을 긍정하는 시선에는 부령과 진해를 오가며 겪은 시골의 소박한 이웃에 대한 정다운 추억이 녹아 있다.
    그는 편집자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김려는 유배에서 풀려난 뒤 엮은 16인 문집(자신 포함) [담정총서_庭叢書]를 엮었는데 여기에는 권력에 의해 사라질 뻔한 친구 이옥(샘깊은오늘고전 02 [일곱 가지 밤]의 원작자), 강이천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이 문집은 조선 후기 문학 자료의 보석상자와도 같은 업적이다.

    작품 줄거리

    "방주네는 그 신분을 벗어나지 못해 백정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다. 하지만 풍경 좋은 산수를 사랑하고, 시냇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를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비록 천민이었지만 방주 아버지는 무슨 일에서든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남쪽 장터에서는 손수 만든 버들고리를 팔고 북쪽 장터에 가서 키를 팔았는데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릴 정도였다. 방주 아버지가 칼과 송곳을 들고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방주의 큰오빠는 읍내에서 장사를 했고, 막내오빠는 푸줏간을 꾸려 갔으며, 둘째 오빠는 소의 양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중략] 방주네 식구들은 날씨가 더운 여름이 되면 개장국을 끓여 팔았고, 동네에 큰일이 생기면 불려가 돼지와 염소를 잡았다. 일을 할 때마다 정성을 다했고, 일이 없을 때는 부지런히 칼날을 갈았다. 덕분에 방주네 칼날은 언제나 서릿발 같아서 한 번도 무딘 적이 없었다."
    -본문 머리 부분에서

    방주네는 천한 일을 하는 백정 출신이다. 그러나 모두들 근면하고 성실하고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다. 방주는 태어나서 젖 떨어질 무렵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바느질 솜씨며 음식 솜씨가 나무랄 데 없고 또 9세에 천자문을 깨칠 만큼 총명했다. 여느 여름 방주 앞에 종4품 양반 장 파총이 나타나 물 한 그릇을 청한다. 자신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방주의 몸가짐과 마음씀씀이가 모두 마음에 든 장 파총은 방주를 며느리로 들이겠다며 그 아비에게 청혼한다. 양반집 아들과 백정의 딸이 혼인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아비는 깜짝 놀라 거절한다. 장 파총의 요청과 방주 아비의 사양이 거듭되다가 이야기는 돌연 장 파총의 과거로 돌아간다. 장파총은 양반집 아들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땔감 장수, 생선 장수, 고기잡이 등으로 고생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다. 한 어촌 마을 고기잡이 장면에서 이야기는 미완성인 채로 끝난다.

    한국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 유래를 찾기 힘든 평등 지향
    사람뿐 아니라 물고기까지 향한 생명존중사상


    어느 집 규수보다 반듯한 백정의 딸이 양반의 청혼을 받았다. 비록 혼인 장면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보다 더 직접적으로 평등사상을 드러낸 작품은 조선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그 사상과 지향을 일상생활을 통해 형상화한 수법이 놀랍다. 김려는 백정의 노동, 백정이 자연을 벗 삼고, 가족끼리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정교하게 그리면서 신분을 떠나 '인간'을 환기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주인공 방주를 그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방주 아비의 형상도 이채롭다. 폭력적인 가부장이 아닌, 젖을 뗄 무렵 어미를 잃은 늦둥이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돌보는 아비의 심성이 노동에 대한 긍정,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 들과 어울려 그때까지 좀처럼 보기 힘든 새로운 '남성'까지 창조하고 있다.
    청혼 장면의 의도는 분명하다. 양반 장 파총이 백정 아비에게 청혼할 때 인간은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또한 그 사이에 배치된 "천하 사람은 모두가 동포"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이치는 고르고 가지런해서 원래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다"는 장 파총의 말은 선언 이상의 진정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장 파총의 젊은 날을 고통에 찬 떠돌이의 삶으로 설정한 점도 그저 지나칠 수 없다. 장 파총의 떠돌이 생활 덕분에 조선 곳곳 보통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생생히 묘사된다. 장 파총의 떠돌이 생활 속에 전복을 따러 갔다 돌아오지 않는 어민, 전복을 바치라며 어민에게 몽둥이질을 하는 관리들의 횡포가 사실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마구잡이로 고기를 잡는 것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마지막 대목에서는 평면적인 사회비판을 뛰어넘는 김려의 생명 존중 사상도 읽을 수 있다. 김려가 존경한 동시대 문인 박지원의 「호질」 속 문명비판, 생명존중사상이 여기에서도 살아 있다.

    이부록의 미술로 새 옷을 입은 두 작품

    이부록은 이옥 원작 [일곱 가지 밤](샘깊은오늘고전 02)의 그림도 그린 바 있다. [일곱 가지 밤]에 실린 많은 작품이 바로 김려의 [담정총서]에 실려 오늘날 전해오는 것이다. 얄궂게도 정약용은 정조의 문학 정책에 적극적으로 지지한 인물이고, 김려와 이옥은 거기 희생된 사람들이다. 이부록은 정약용 원작과, 김려 원작에 따른 그림 분위기를 완전히 달리 가져가면서, 김려 작품과 이옥 작품 사이에는 그림의 맥이 서로 통하는 형상을 마련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팔려 간 신부]의 잘디잔 인물 형상은 주인공의 위축된 심정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아비, 남편, 원님, 사령의 형상도 주인공만하지 않은가. 이는 양심을 그르친 사람, 권력 때문에 사람됨이 메마른 사람 또한 결국 그 영혼이 위축될 수밖에 없음을 넌지시 은유하는 듯하다.
    [방주의 노래]에서는 방주네와 장 파총이 차지한 시공간이 서로 다르지만 그것을 오늘날의 미디어아트 수법에 녹여 한 차원에 포괄하여 글의 분위기에 긴장을 더하는 독특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부록은 두 작품에 깃든 '새로움'에 값하는 새로운 시각과 기술로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목차

    글을 열며_옛글을 펼치고 오늘을 바라보며

    팔려 간 신부 곱디고운 작약 진흙에 지고
    지나가는 개에게 물린 꿩
    시집가던 날
    길고 무서운 밤
    내 아내를 내놓으시오
    머리카락 한 움큼, 치마저고리 한 벌
    호랑이 같은 원님도 사내 편
    이제는 청산도 너무 멀어
    방주의 노래 방주, 우리 꼬마 방주
    빨래터에서 만난 사람
    새벽에 까치가 울더니
    만물은 본래 고르고 가지런하다
    장 파총 이야기
    고기 잡는 백성이 전복만도 못한가?
    사람도 생명, 물고기도 생명

    글을 맺으며_끝나지 않은 이야기
    해설_여성과 평등을 고민한 새로운 문학(송재소·성균관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본문중에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흠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지.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도 딱 한 가지, 눈 하나가 좀 짜그라진 듯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얼굴은 한창 젊은이답다지. 나야 이제 너무 늙고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서 여생을 걱정해야 하고 우리 식구들이 먹고살 방법도 막막한 판 아닌가. 이런 사위 하나 얻기만 하면 다행히 늙어 죽도록 고생이 없겠지. 당신과 나 우리 두 늙은이가 봉양을 받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테니 얼마나 든든한가. 어허, 그렇게만 된다면 태산에라도 기댄 셈이지. 여러 말 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자, 어서 준비하자!" 혼인은 이렇게 결정되고 말았다.



    "얼마 전에 젊은 새댁이 우리 암자에 혼자 왔어요. 방장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인사를 드리고는 울기 시작했지요. 딱한 사정을 들어달라면서요." 여인은 절에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을 받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저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일찍 시집갔는데 시집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만 신랑이 죽어 버렸지 뭐예요. 그 충격 때문에 홀로 계시던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셨지요. 제게는 친정 부모님도 없으니 제가 어디로 가겠어요. 그러니까 부디 이 절에서 스님이 되어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러더니 제 손으로 칼집의 칼을 뽑아서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냈다는 것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옆에서 보고 있던 비구니도 말리지 못했다고 했다. "워낙 사연이 딱한 데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 낼 만큼 굳은 결심을 보였으니 방장 스님도 더 이상 말리지 못했지요."

    (/ [팔려 간 신부] 중에서)

    아버지는 일을 할 때나 일이 없을 때나 항상 입만 열면 '우리 방주, 우리 방주' 하면서 방주를 예뻐했다. 방주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늘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방주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똘똘해서, 세 살 때 벌써 말하는 목소리가 또렷했다. 네 살 때는 요리조리 방향도 가늠할 줄 알았고 셈도 할 줄 알았다. 다섯 살 때는 동네 또래들과 나루터 어귀에서 풀을 뜯고 놀았다. 멀리서 보이는, 푸른 풀밭 위에 어린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방주는 먼저 김제의 비옥한 땅에서 난 쌀을 자르르 윤기 나게 찧어 밥을 안쳤다. 또 들깨즙과 쌀즙을 넣어 닭고기국을 끓이고, 잉어는 회를 쳐서 알싸한 겨자장을 곁들였다. 막 잘라 온 부추는 깨끗이 다듬어 매콤하게 무쳤다. 미역국은 파르스름하니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무를 하나 씻어 은실처럼 가늘게 채 썰어 상에 같이 올렸다. 방주의 빠른 손놀림에 밥상이 어느새 제대로 차림새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공손함도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라네. 뜻이 맞으면 누구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고, 서로 정이 깊으면 곧 형제가 되는 것이지. 무슨 문제가 있겠나. 그리고 나는 사람 사이에 신분을 나눈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네."



    장파총은 또 생각했다. 하늘이 낳은 것을 모조리 몰살하는 것은 욕심이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닌가. 그러면 언젠가는 하늘이 노해 바닷가에 부는 비린 바람이 엉키고 살기가 온 세상에 넘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장파총은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괴로워지는 걸 느꼈다. 바다에는 해가 지고 있었고, 세상은 온통 어슴푸레해졌다. 물고기를 잡았다는 기쁨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신의 섭리가 저 물거품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 쓸쓸한 마음이 되었다.

    (/ [방주의 노래]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3~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2,617권

    1973년에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오 학년 때 담임선생에게 뺨을 맞았는데 여태껏 맞은 까닭을 알지 못한다. 이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마주칠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다녔는데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갖게 될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때 산다는 문제에 대해 강한 의문과 회의에 시달렸다.
    2002년에 단편소설 [일리자로프의 가위]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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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71~
    출생지 인천광역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71년 인천 출생으로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영상, 설치, 출판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성장과 개발 논리에 의한 파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외와 배제된 가치들을 찾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주요 전시로 2003년 [slow season project...탐구생활부록], 2004년 [戰時展示-Warvata], 2007년 [sticker project], 2008년 [Newism movement-paleface project], 2010년 [파블로프의 사나운 개와 슈뢰딩거의 게으른 고양이], 2013년 [금지된 숲], 2014년 [건축적 부록] 등이 있다. 최근에는 망각된 기억을 귀환시키는 아카이브 작업을 리무부라는 이름으로 병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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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려 원작 [기타]
    생년월일 1766~1821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김려(金儼, 1766~1821)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_庭이다. 성균관을 거쳐 진사시에 합격한 수재였지만 문체만큼은 당시 정조 임금이 싫어한 ‘소품체’를 썼다. 1797년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서학을 믿는다는 죄목으로(실제로는 소품체가 밉보여)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고, 4년 뒤에는 신유사옥에 걸려들어 진해로 유배지를 옮긴다. 이후 1806년이 되어서야 유배에서 풀려났다. [감담일기坎_日記][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등, 책과 많은 시문을 남겼으며 자신을 포함한 문인 열여섯 명의 글을 모아 [담정총서_庭叢書]를 엮었다.

    정약용 원작 [기타]
    생년월일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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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을 비롯해 사암俟菴 등 여럿을 썼다. 정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벼슬아치였으나 정조가 서거한 뒤, 1801년 순조가 즉위한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인 신유사옥에 걸려들어, 1818년 풀려날 때까지 꼬박 18년간이나 장기와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매씨서평]등의 저서를 통해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일 뿐 아니라 2천500여 수나 되는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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