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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눈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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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구경미
  • 출판사 : 열림원
  • 발행 : 2011년 05월 23일
  • 쪽수 : 252
  • ISBN : 9788970636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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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한국 문학에서 한 번도 목격되지 않은
    생경하고 독특한 기상도氣象圖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들려주는 눈 이야기


    이 책은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 속에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일곱 명의 여성 작가가 ‘눈snow’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쓴 일곱 편의 소설을 묶은 테마 소설집이다. ‘비’라는 주제로 이미 출간한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와 짝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다.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는 장은진, 김숨, 김미월, 윤이형, 김이설, 황정은, 한유주 등 한국 문단을 이끌어나갈 일곱 명의 젊은 여성 작가가 참여해 이미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이번 책에는 서유미, 구경미, 조해진, 김이은, 김현영, 박주영, 김유진 작가가 참여해 ‘눈’이라는 평이한 제재가 어떻게 소설적인 환영으로 변이될 수 있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도 ‘눈’이라는 주제 자체에 있다. 일찍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증명한 것처럼 ‘눈’만큼 일상적이면서도 하얗게 눈부신 문학적 소재도 없을 것이다. 눈의 나라에서 비로소 내면이 투명해지고 실재와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은 도무지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눈의 나라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치 백색의 전염병처럼 온몸과 온 마음이 하얗게 물들어버리는 경험은 ‘눈’만이 가진 고유하고 특유한 속성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에게 ‘눈’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청탁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눈부신 소재가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려질 독특하고 색깔 있는 눈의 나라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일곱 명의 작가가 모두 ‘여성’ 작가들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래로부터 ‘눈’만큼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 하나의 장대한 배경으로, 혹은 소소한 장치로 끊임없이 등장한 소재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눈’이 그만큼 우리에게 친근하고 또 잊었던 감정을 끌어내기에 좋은 낭만적인 소재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낭만적인 제재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일곱 명의 젊은 여성 작가들은 ‘눈’이라는 소재를 자신들만의 생경하지만 독특한 색깔로 훌륭하게 재탄생시켰다. ‘눈’이 때로는 인간의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마음까지 단숨에 가두어버리는 거대한 창살이 되어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점점 가늘어지는 가족이라는 끈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주는 신비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일상이 아닌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눈’이 가진 고유한 속성을 온전히 파악하고, 그것을 여성 작가 특유의 세밀한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순간,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유미의 [스노우맨]은 거대한 절대 권력으로서의 ‘눈’의 외연을 묘사한 작품이다. 남자는 간밤에 쌓인 폭설로 인해 빌라의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새해 첫날부터 출근을 하지 못한다. 뜻밖의 폭설은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지만, 유독 남자에게만은 이 상황이 더없이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예기치 못한 폭설에 무방비 상태인 남자가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한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해지는 상황을 치밀하게, 또 예상 밖의 반전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구경미의 [첩첩]은 차갑고 시린 ‘눈’의 물리적인 특성을 거부하고, ‘눈’이 가진 포근하고 따뜻한 정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유언처럼 ‘눈’이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제각기 떨어져 살던 아들딸이 모여든다. 이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눈을 만나기 위한 여행 아닌 여행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 모두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단단한 끈으로 엮어져 있음을 확인한다. 여기서 ‘눈’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다. 항상 지척에 있는 듯하지만 애써 찾으려 할 때는 이미 멀어져버린 존재를 ‘눈’이라는 직접적인 매개물로 치환하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경미 특유의 인간과 가족을 바라보는 온기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조해진의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는 기억의 장치로써의 ‘눈’의 역할을 보여준다. 사실 이별의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로써 날씨만큼 뚜렷한 것도 없다. 그날의 분위기나 감정이 고스란히 날씨에 이입되기 때문이다.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는 어린 시절 헤어진 엄마의 부음을 듣고 찾아간 규슈에서 옛사랑인 H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눈’은 언제나 기억을 되돌리고 좌우하는 수단이자 세력으로 등장한다. 현재와 과거와 실재와 기억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조해진의 현란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김이은의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에서 ‘눈’은 어찌할 수 없는 일탈을 눈감아주는 동조자나 방조자로서 존재한다. 동대문 도매시장의 구두 매장에서 매일을 하루처럼 사는 여자는 우연히 여배우 미르의 다이어리를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쑥 밀려 올라와버린” 무엇 때문에 충동적으로 다이어리에 적힌 주소를 따라 양진으로 향한다. 거기서 미르의 옷을 입고 미르의 애인과 저녁을 먹고,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작품의 배경 곳곳에는 크고 작은 눈들이 가득하고, 심지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마저 폭설에 막혀버리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는 눈은 한 번도 걸림돌이나 방해가 되지 않는다. 때론 막아낼 수 없는 폭력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탈선을 모른 척해주는 ‘눈’의 묘한 이면을 보여주는, 누구든 용서할 수밖에 없는 하루에 관한 치밀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김현영의 [눈의 물]에서 ‘눈’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 나타난다. 베스트 프렌드에서 연인으로, 다시 친구로 바뀌게 된 ‘안나’와 ‘나무’의 관계는 “희끗희끗 흩날릴 뿐”이다가 “점점 선명한 눈송이로 변해”가는 ‘눈’으로 상징된다. 서로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마치 『설국』의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가 그랬던 것처럼 예고 없이 스며들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백색의 전염병 같은 ‘눈’의 신비로움을 섬세하고 청아한 언어로 보여준다.

    박주영의 [소설 小說 小雪]은 잘 짜인 추리소설을 연상하게 한다.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남자와 여자는 눈 때문에 회항한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다. 그리고 둘은 소설가를 죽일 가상의 계획을 짜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둘은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모호한 약속을 남긴다. [소설 小說 小雪]에서의 ‘눈’은 사건의 발단을 만들어내고, 결말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훌륭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김유진의 [눈 위의 발자국]은 ‘눈’ 본연의 성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 흔히 백색의 눈은 마치 흰 도화지처럼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바탕으로 상징된다. [눈 위의 발자국]의 미루는 이제 막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발레를 배우고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발레를 하는 것도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우는 것도 언제나 조마조마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눈 위에 어떤 발자국을 남기든 그것은 이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미루에게는 여전히 발자국 하나를 남기는 일이 두렵기만 한 것이다. 갓 사회에 발을 내딛은 미루의 일상이 덤덤하지만 인상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처럼 일곱 명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눈’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 이것을 색깔에 비유해본다면, ‘눈’이 하얗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릴 만한 선명하고 치명적인 이색異色들인 것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소설 영역을 구축해가면서 주어진 변화에도 무감하지 않은, 젊은 여성 작가들의 이 테마 소설집은 한국 소설 문학의 생생한 현주소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백색의 눈이 가진 잠재적 상징은 우리 소설이 어디로 얼마큼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마땅한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여름의 초입에서 출간된 이 테마 소설집이 색깔 없는 소설에 지친 독자들에게 훌륭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목차

    스노우맨 / 서유미
    첩첩 / 구경미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 / 조해진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 / 김이은
    눈의 물 / 김현영
    소설 小說 小雪 / 박주영
    눈 위의 발자국 / 김유진

    본문중에서

    “새해의 첫날, 도시는 일찍부터 깨어 움직였다. 새해에는 늦잠 자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간밤의 여흥에 젖어 아침까지 번화가와 유흥가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브런치 약속이 있는 사람,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 다이어리를 사기 위해 서점에 가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기상이변 때문에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해가 기울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자 도시는 한결 따뜻해 보였다. 눈송이는 고요히 낙하했지만 그걸 발견한 사람들은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는 요란하게 침을, 누군가는 입버릇이 되어버린 욕을 내뱉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든 채 감탄했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카페나 술집 안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던 사람들도 와, 하며 입을 벌렸다. 흐지부지 내리다 만 첫눈 이후 도시에 처음 내리는 눈이었다. 새해 첫날 저녁, 고요하게 나부끼는 눈송이는 꽤 괜찮은 이벤트처럼 보였다.”
    (/ '서유미 - 스노우맨' 중에서)

    “이십 년 만의 폭설이라 했다. 높은 빌딩 위 멀티비전으로는 폭설을 맞은 규슈의 곳곳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도로에 엉킨 차들과 갓길에 수북이 쌓인 눈 더미, 거대한 제설차와 야광봉을 휘두르며 수신호를 주고받는 사내들, 그리고 우산을 받치며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 행인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도 규슈인데 멀티비전을 통해 본 규슈는 긴급조치가 내려진 도시처럼, 혹은 불시착한 비행기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비행장처럼 더더욱 긴박해 보인다. 나는 불가해한 시선으로 멀티비전과 내 앞의 풍경을, 그 기묘한 대비를 번갈아 바라본다. 지금 내 앞에서 가볍게 날리는 눈발은 빌딩 위에서 조심스럽게 방사하는 종이가루처럼 그저 무구해 보일 뿐이었다. 그건, 예정에 없던 신scene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허술한 소품 같기도 했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건물 차양에 서서 손목시계를 또 한 번 내려다본다. 호텔을 나와 점심을 먹었고 역 근처 쇼핑몰에서 기념품도 구입했지만 5시가 되려면 아직도 세 시간이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카타 역 근처의 비즈니스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의 공중전화기로 H에게 전화했을 때가 아마 오전 10시쯤이었을 것이다. 십 년 만에 통화한 H는 내 목소리를 한 번에 기억하지 못했다. 짧은 순간, 전화한 것을 후회했지만 규슈에 와 있다는 내 전화를 그는 단 한 번도 예상한 적 없었을 터이기에 그 후회의 순간조차, 나는 곧 후회했다. 여행 책자의 접힌 페이지를 펼쳐놓은 후 공중전화기의 차가운 버튼을 꾹꾹 누르다가 다섯 번이나 도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던 내 행동을 H가 꼭 봤어야 한다는 한심한 생각까지. 후회할 수 있다면 가능한 많이, 최대한의 범위에서 나는, 후회하고 싶었다.
    만나러 좀 와줄래요?”
    (/ '조해진 -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 중에서)

    “이름 모를 날벌레처럼 희끗희끗 흩날릴 뿐이던 눈은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선명한 눈송이로 변해갔다. 마치 비듬 같았다. 격조가 낮은 비유라는 거 안다. 그래도 이해해주렴. 너의 커다란 우정이 마침내 내 사랑마저 받아줬던 오래전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거든.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광채를 내뿜고 있었고 머리에서는 하얗게 빛나는 주먹만 한 비듬이 끝도 없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분명 너저분한 장면이었지만 때깔은 참 좋았다. 심지어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다음 날 해몽을 찾아보았지. 가장 커다랗고 오래된 걱정거리들이 싹 사라질 것을 암시하는 좋은 꿈이더군. 그래서 내게는 꿈속의 그 비듬이 세상에서 가장 탐스런 눈송이다. 나의 비듬은 그런 거다. 너에 대한 내 사랑도 어쩌면 그런 거. 듣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어쨌거나 비듬 이야기니 별로 듣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만 같은.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안나, 나도 굳이 내 사랑에 대해 말하지는 않으려고 해.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너는 더 이상 내게 네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다만 커다란 귀다. 소원을 들어주는 정월 대보름달처럼 귓구멍 한껏 열어두고서 너를, 너만을, 들을 거다. 언제고 너에게 편지를 쓰겠지만 너는 결코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너의 어장에 세든 내가 당연히 지불해야 할 월세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난 꽤 성실한 남자지. 셋돈을 떼먹는 일은 없을 거야, 안나.”
    (/ '김현영 - 눈의 물'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2~
    출생지 경남 의령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2,600권

    197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소설집 [노는 인간][게으름을 죽여라], 장편소설 [미안해, 벤자민][라오라오가 좋아][키위새 날다][우리들의 자취 공화국]을 출간했다. [작업]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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