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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1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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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도 중국도 탐낸 임진왜란의 진실!

원전에서 길어 올린 고전의 깊은 맛과 멋을 오늘에 되살리는 「샘깊은 오늘고전」 제15권 『징비록』 제1권. 승자가 없는 전쟁인 임진왜란 중 국방과 군사, 정치와 외교, 그리고 민사작전 등에서 핵심 업무를 담당한 문신 유성룡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프고 창피하고 어려운 시대를 되돌아보기 위해 진심 어린 반성을 담아 기록한 《징비록》을 읽는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시인 김기택이 아이들이 쉽게 읽고 공감하도록 편안한 문체로 다듬어 썼다.

《징비록》은 정유재란 이후 다시 격화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대 붕당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해 조정에서 물러난 유성룡이 역사의 거울을 만들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백성을 고통 속에 밀어넣는 전쟁의 참상을 절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전쟁을 막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것에 절망한 한 재상이 진심으로 아로새긴 뼈아픈 다큐멘터리이자 르포르타주다. 화가 이부록의 실험적 화풍이 돋보이는 그림을 함께 담았다.

출판사 서평

전쟁의 책임을 사무치게 느낀 한 나라의 재상이 진심으로 아로새긴 뼈아픈 기록,
일본도 중국도 탐낸 임진왜란의 진실을 말한다!


샘깊은오늘고전은 2006년《주몽의 나라》를 첫 권으로 시작해 이규보, 이옥, 허난설헌, 박지원, 조위한, 신류, 김시습, 최부, 정약용, 김려, 나만갑, 허균을 비롯한 무명씨의 문학 작품과 역사 기록을 오늘의 한국어로 새로이 다듬어 펴내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원전 비평, 문체, 구성, 편집, 미술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호평을 거울삼아, 앞으로 총서의 목록을 더욱 알차게 채워 나가겠습니다.

지난 2012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7주갑, 그러니까 60갑자가 돌아온 지 7주기가 된 때였다. 서양에서는 100주년을 기념의 중요한 계기로 삼지만,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한 갑자, 60년을 한 주기로 삼아 기념과 반추와 반성의 계기로 삼는다.

《징비록》에 대하여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군무의 으뜸 벼슬인 도체찰사 및 정무의 으뜸 벼슬인 영의정 자리에서, 임진왜란을 둘러싼 국방·군사·정치·외교·민사작전 등 모든 분야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대신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의 기록이다. 조선에서 간행된 이후,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새로이 간행했고, 중국 역시 임진왜란 전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영어판까지 나온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 기록이다.

책 이름에서 “징비”라는 말은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유성룡이 쓴 서문 가운데 “지난날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라는 문장과 맥이 닿는다.

유성룡은 책임 있는 벼슬아치로서 전쟁을 막지 못한 부끄러움에 사무쳐 있었다. 또한 전쟁의 고통은 백성들이 죄다 겪는다는 사실도 똑똑히 목도했다. 나라의 운명이 상국이자 대국인 명나라에 맡겨진 사이에 나라의 체모가 어떻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도 절절히 체험했다. 백성은 침략자에게 학살당하고 있는데, 작전과 휴전과 평화 협상의 주체는 오로지 구원병을 보낸 명나라 그리고 침략자 일본이었던 것이다. 조선은 군사작전권마저 명나라에 사실상 넘긴 상황에서 침략자를 마음 놓고 응징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는 한강을 기점으로 조선을 분할 통치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구원병을 보낸 또다른 전쟁 당사자인 명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조선을 완전히 식민 통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백성은 “차마 제 자식을 잡아먹지 못해, 서로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굶주리고 시달리고 고통을 받았다. 일본군에 붙잡혀 끌려가고, 일본에서 다시 세계 각지로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의 수는 셀 수가 없다.
누구보다 전쟁의 참상을 절감한 유성룡은 전쟁을 막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자신의 힘으로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크게 절망했다. 더구나 정유재란 이후 다시 격화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대 붕당의 탄핵을 받아 사직도 아닌 관직을 삭탈당하는 처지에 이른다. 전쟁 전 조정 대신과 중신들의 아귀다툼은 전쟁 통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정유재란 이후 완전히 조정에서 물러난 유성룡은 지난 일을 있는 그대로 써 역사의 거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유성룡은 전쟁과 관련한 공식 기록들을 풍부하게 접했고, 일선에서 정치외교를 널리 경험했고, 의미 있는 비공식 기록을 선택하고 정리할 수 있는 안목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다.

유성룡은 삭탈당한 뒤에 오로지 고향인 경상도 의성에 들어앉은 채 지난 7년 전쟁의 기록과 기억을 정리해 생생하게 되살린다. 정직한 태도로 조선 조정의 분란과 무능을 기록했고,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싸운 이순신과 의병의 활약에 온당한 존경을 보냈다. 또한 굴욕적인 외교의 실상을 고백하고, 백성의 고통에 같이 아파했다. 임진년에 시작돼 7년간 이어진 전쟁의 실상은 이렇게 유성룡의 손을 통해 다큐멘터리 겸 르포르타주 《징비록》으로 태어난 것이다. 아울러 책의 이름 또한 고전 속의 사전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징懲_지난 일을 뉘우치고, 비毖_후세를 위해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록錄_뼈아픈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스스로 더하게 되었다.

시인 김기택의 작업
“일본을 탓하기는 쉬워도 그 침략을 통해 우리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꼼꼼하게 되돌아보고 그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제 부끄러움을 빨리 잊으려고 합니다. 자기의 실수나 못난 모습을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곱씹어 보고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기의 잘못을 통해서 큰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잊는 것은 편안하지만, 망각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징비록》은 그 고통을 기억하고 다시 체험하고 그래서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큰 용기입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중견 시인 김기택은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를 위해 《징비록》을 새로이 다듬어 쓰면서 위와 같이 밝혔다.
실제로 외동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인 시인 김기택은 어린이를 위한 문학에도 열심이다. 이미 동시집 《방귀》와 그림동화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펴냈고 영어권 동화들을 한국어로 옮겼다. 샘깊은오늘고전을 통해서는 한국의 고전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김기택의 첫 한국 고전 작업 또한 역사 기록인 《홍경래》(알마)였다. 이때도 김기택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역사의 교훈을 새로운 관점에서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그럴듯하게 잘된 일, 모두들 성공했다고 여기는 일만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홍경래처럼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힘 있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해도 되는 세상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진 사람처럼 억울하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건강한 것은,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정도로라도 살 수 있는 것은, 홍경래 같은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훌륭한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마음과 태도는 《징비록》을 새로이 다듬어 쓰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침략자를 욕하고, 우리 편 안에서 억지 영웅을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진정한 반성을 통해 정말 소중한 역사의 교훈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김기택은 실패의 기록 안에서도 거기에 깃든 역사의 교훈을 새로이 조명했듯이, 《징비록》 안에 깃든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원작자의 마음을 오롯이 되살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작의 어려운 말과 까다로운 표현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독자라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편안한 문체로 다듬었다. 여기에 원작을 더욱 깊이 파고든 “다듬어 쓴 이의 말”을 곁들여 임진왜란의 실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풀어 전달한다.

시인다운 상상력과 감수성이 발휘된 본문과 “다듬어 쓴 이의 말”은 못난 역사, 슬픈 역사, 상처 깊은 역사의 의미를 다시 살려 드러낸다. 그리하여 역사 앞에서 정직한 기록의 참 의미를 어린이 및 청소년 독자 앞에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본문과 긴밀한 해설,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미술
일평생 전쟁사 연구에 몸을 바친 임홍빈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선임연구원의 해설도 본문과 긴밀히 맞물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해설은 전쟁의 중요한 일지와 연대기 그리고 조선, 일본, 명나라의 전력과 무장의 실제를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 풀어냈다. 일본군의 전력과 무장 그리고 작전의 실제를 임홍빈의 해설을 통해 들여다보자.

“여기서 일본군의 새로운 전술을 좀 더 살펴볼까요? … 전투 부대가 3~4줄의 전열로 대기하면 제1진 기병대가 적진을 돌파하여 두 도막으로 쪼개 포위하고, 조총으로 무장한 제2진 철포조鐵砲組가 집중 사격을 퍼부어 무너뜨립니다. 그런 다음에는 재래식 활로 무장한 제3진 궁병조弓兵組가 다시 일제 사격을 퍼부어 전열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마지막에는 창칼로 무장된 제4진의 창검조槍劍組 밀집 부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백병전을 벌여 압도합니다. 이런 짜임새와 전술을 갖춘 군대가 곧 근세 일본 특유의 경무장 보병 ‘아시카루足輕’입니다.”

이와 같은 전문가의 관점을 담은 전투의 실제에 관한 설명은 군사 또는 군사사라는 연구 분야가 없던 시절을 살다가 간 원작자 유성룡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임홍빈의 전문적인 해설은 탄금대 전투, 서울 함락 및 수복, 평양성 함락 및 수복, 행주 전투, 1차 및 2차 진주성 전투, 이순신의 해전, 일본군의 경남 농성전 등 전체에 걸쳐 보다 깊은 전쟁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뿐 아니라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동아시아 역사가 어떤 변화를 맞았는지, 또한 임진왜란의 전범이었던 일본 장수와 정치인들이 임진왜란 뒤에 이어진 일본 내부의 새로운 내전 끝에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미술 또한 남다르다. 이제까지 임진왜란 관련한 한국 출판물의 미술은 전통 시대의 판에 박힌 자료를 답습하기 일쑤였다. 전문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미술의 재구성 또한 식상한 형상을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다. 김기택의 글 작업에 발맞춘 이부록의 미술 작업은 김기택이 섭렵한 국립진주박물관의 전문 자료 및 일본 오사카박물관의 전문 자료를 함께 섭렵한 결과다. 두 박물관은 각각 한국과 일본의 임진왜란 전문 전사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임진왜란과 관련한 일본 측 군기물(반다큐멘터리, 반소설류)에 등장한 미술 형상을 널리 참고했다. 또한 동시대 및 후대가 묘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주요 인물의 초상화까지 확인하여 《징비록》에 전혀 새로운 미술 형상을 제시했다.

목차

글을 열며 우리의 부끄러운 곳을 비춰 주는 거울
유성룡의 <머리말>

전쟁 전의 조선과 일본
일본에 조선의 통신사를 보내시오
마지못해 통신사를 보내다
통신사들의 엇갈린 생각
명나라를 치겠으니 일본을 도우라
나라를 지키는 일이 급하건만
이순신을 수군 장수로 뽑다
일본이 쳐들어와도 걱정할 것 없소

일본의 침략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군사들은 도망가고 성은 빼앗기고
뒤늦게 올라온 급한 보고
김성일의 죄를 물을 것인가
이일이 상주 싸움에서 지다
서울을 지킬 것인가 피난할 것인가
신립이 충주싸움에서 크게 패하다

<징비록> 1권 해설
'역사'라는 거울 앞에 서서- 임홍빈ㆍ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위원

그림 해설
이야기너머, 사상의 이미지들- 김종길ㆍ미술평론가

그림 목록

본문중에서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_임진왜란 발발 직전의 어수선한 조일 외교와 조정 안의 혼란, 전쟁의 시작, 탄금대 전투의 패배를 담고 있다.

명나라를 치겠으니 일본을 도우라
“군사를 거느리고 명나라로 쳐들어가겠다.”
통신사가 가져온 일본 왕의 답장에는 이렇게 분명하게 전쟁을 하겠다는 말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어떻게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논하지 않고, 이 일을 명나라에 알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시끄럽게 말싸움을 했다.
나는 명나라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영의정 이산해는 이렇게 말하며 반대했다.
“명나라에서 우리가 통신사를 보내 일본과 연락했다고 잘못을 따질까 봐 걱정됩니다. 그러니 알리지 말고 숨겨 두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일이 있어서 이웃나라와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숨기고 명나라에 알리지 않는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명나라가 일본이 쳐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다른 곳에서 들어 알게 된다면, 명나라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서로 짜고 이 사실을 숨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정말로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 신하들은 나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김응남을 명나라에 보내 이 사실을 알리게 하였다.
그 때 일본에 잡혀간 명나라 사람이 일본에서 일어난 일을 몰래 명나라에 알렸다. 일본 남쪽 지방의 섬나라인 유구국 왕자도 명나라로 사신을 보내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래서 명나라는 일본이 자기 나라를 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명나라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어울려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다녀간 적이 있는 명나라 재상 허국은 우리나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므로 명나라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은 정성을 다하여 우리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일본과 일을 꾸며 우리나라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좀 더 기다려 봅시다.”
그런데 마침 사신으로 간 김응남이 이 사실을 알리는 글을 가지고 명나라에 가니, 허국은 크게 기뻐하였고 명나라의 의심도 풀리게 되었다.

다듬어 쓴 이의 말
“나라가 멀고 산과 강이 가로막혀 있다 하더라도 한 번 뛰어넘어 명나라로 가서 우리나라 풍속으로 중국 400여 주를 바꾸어 놓고 황제의 조정에서 억만 년이나 정치를 행할 것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 임금이 먼저 달려와 우리나라로 들어온다면, 먼 앞날에 큰 희망이 생겨 가까운 근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도요토미가 조선 임금에게 보낸 글의 일부입니다. 내용은 터무니없고 말하는 태도는 몹시 거만하니, 이 글을 본 선조 임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조선 임금이 일본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일본에 항복하고 일본을 친구가 아니라 어른의 나라로 섬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일본을 도우라는 말은 일본이 조선과 전쟁을 하지 않고 조선의 힘을 이용해서 명나라를 치겠다는 뜻이니, 힘을 덜 들이면서 빨리 명나라를 치겠다는 생각입니다. 도요토미는 소 요시토시를 사신으로 보낼 때 “조선이 앞장서서 명나라로 가는 길을 안내하도록 타일러 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시대에 일본에 있던 포르투갈 선교사 프로이스에 따르면, 도요토미는 우리나라 통신사를 만나기 전에 벌써 명나라로 쳐들어갈 전쟁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일본에서 하나밖에 없는 왕이며, 명나라를 빼앗는 일 말고 내가 할 일은 남아 있지 않다. 만일 내가 이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이 계획을 그만두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일본 역사에서 어느 왕도 해내지 못한 최고의 명예와 이름을 다음 세대에 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명나라를 다 빼앗지 못하고 중간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며, 이 영광스러운 명예는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_54~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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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柳成龍)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542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豊山인 유성룡은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6세에 '대학'을, 8세에 '맹자'를 배웠고, 21세에 안동의 도산에 가서 이황선생을 찾아뵙고 그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564년 사마시를 거쳐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된 그는 28세인 1569년 성절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임금에게 수찬 벼슬을 받아 사가독서를 했다. 1590년 우의정에 승진, 풍원부원군에 봉해졌고, 왜구의 침입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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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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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이부록은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미디어아트, 카툰, 일러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에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실험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어린이책 그림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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