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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켤레의 여자 : Roman Collection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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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이은
  • 출판사 : 나무옆의자
  • 발행 : 2020년 06월 06일
  • 쪽수 : 17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15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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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때로 힐은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된다.”
생의 결정적 순간에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여성들
그들을 둘러싼 네 개의 사랑과 네 개의 구두 레시피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꾸준히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작가 김이은의 신작 소설 ]열두 켤레의 여자]가 나무옆의자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열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세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동안 현실과 환상,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탐구해온 작가가 처음으로 쓴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하이힐 전문 매장 ‘쏠라즈’를 주요 무대로 네 여성의 각기 다른 사랑과 욕망을 그린다. 쏠라즈는 한 번에 예약 손님 한 명만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구두들이 가득한 이 비현실적인 공간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한다. 누구는 사랑을 위해 누구는 이별을 위해 구두를 고르고, 누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누기 위해 가게를 찾는다. 스스로 구두 소믈리에라 말하는 주인 윤찬경은 손님의 심리와 상황을 세심하게 읽고 꼭 맞는 구두를 추천하는 일에 빈틈이 없다. 일종의 구두 레시피랄까.
실용성 없고 편하지 않고 활동적이지 않고 오래 신으면 반드시 발이 아프게 마련이지만 아름다운, 오직 아름다운 구두! 여기서 ‘구두’는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앞두고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여성들의 의지이자 그들에게 보내는 공감과 응원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기능적이거나 실리적인 가치는 없지만 에로틱한 자극을 주는가 하면 온몸에 긴장감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도구, 경계를 만드는 동시에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인 구두를 통해 그들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첫 번째 이야기: 신혼 시절의 달콤한 부부 관계를 되찾은 40대 워킹우먼 남경희
“실내에서도 신을 수 있는 하이힐을 보고 싶어요.”


공기업에서 사장 수행비서로 일하는 20년 차 워킹우먼 남경희는 최근 사장이 파면되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밤에 남편의 망측한 행동을 목격하고 망연자실 어쩔 줄 모른다. 다행히 남경희는 그 순간 탁월한 선택을 함으로써 남편의 자존심을 지키고 의도치 않게 신혼 시절의 달콤한 부부 관계를 되찾는다. 얼마 후 회사에서는 파면당한 사장의 추천으로 승진까지 했으니 전화위복이 따로 없다. 남경희는 남편과 승진 기념 파티를 하기로 하고, 파티용 구두를 고르기 위해 쏠라즈에 간다. 엘리트 모범생인 그녀가 가장 대중적인 페티시로 구두를 선택한 것이다. 처음 만난 남경희와 윤찬경. 서로를 탐색하는 것도 잠시, 남경희는 윤찬경의 대담함과 정확한 감각에 감탄하고 윤찬경은 남경희의 의외성에 놀란다. 윤찬경은 관능적인 자극과 환상을 끌어내줄 수 있는 실내용 파티 구두를 골라준다. 남경희가 최종 선택한 것은 발목에 스트랩이 달린 갓 피어난 장미 색깔의 하이힐이다.

아마도 남경희는 몸에 오직 새 하이힐만 장착한 채로 박병호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과거에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그 낯선 경험이 이후의 삶에 새로운 물꼬를 터주리라는 것을 남경희는 알았다. 뭐랄까. 생의 반경이 넓어지고 그 테두리가 모호해지며 딱딱한 돌처럼 굳어가던 삶이 말랑한 스펀지처럼 흡수력과 적응력이 넓고 깊게 확장되어 스스로와 세상의 진실을 좀 더 담백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라는 짐작. (46쪽)

두 번째 이야기: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남자 친구와 결별하려는 20대 피아노 강사 임수진
”오늘은 힐을 살 거예요. 아주 높고 섹시하고 예쁜 걸로요.“


임수진은 중요한 일을 실행하기에 앞서 용기를 얻기 위해 쏠라즈에 간다. 오늘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할 작정이다. 증권회사 펀드매니저인 최창수는 임수진에게 옷차림부터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자기 식대로 하길 종용한다. 임수진이 반발하면 그녀를 물정 모르는 어리바리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밝은색을 좋아하는 임수진은 최창수의 취향에 맞춰 늘 무채색의 옷을 입고 무채색의 플랫 슈즈만 신을 정도다. 그녀는 최창수가 보잘것없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것이라 여기고 그의 말을 따랐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돌멩이나 유리 인형이 된 기분을 느낀다. 하여 그녀는 마음을 바꾼다. 사랑을 버리기로. 분노하기로. 첫 번째 이별은 두려움 때문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더 용기를 내기로 한다.
늘 낮은 신발만 찾던 그녀가 오늘은 힐을 살 거라는 말에 윤찬경은 그녀의 결심을 짐작한다. 임수진은 윤찬경이 골라준 새 구두를 신고 두 번째 이별을 하기 위해 씩씩하게 길을 나선다.

걸을 때마다 날카로운 뒷굽 소리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세상이 만만해지는 기분이었다. 임수진은 천천히 윤찬경의 손을 놓고 걸어보았다. 또각또각. (78쪽)

세 번째 이야기: 여행지에서 만난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진 30대 간호사 정하은
“나 오늘 여기서 굽이 제일 높은 구두 살 거야.”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한 정하은은 쏠라즈에 가장 어울리는 고객이다. 유독 구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도 윤찬경과 통하는 면이 많다. 정하은은 요즘 자신보다 스무 살 많은 이동섭이 유난히 늙어 보이고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든다. 그가 사랑을 담아 쏟아내는 말도 연극 대사를 읊는 것처럼 작위적으로 들리고 그의 손길도 숨이 막힌다. 얼마 전 그녀는 제주 여행 중에 스페인 청년 알리오를 알게 되었고, 그와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바람을 피운 것이다. 20대 남자는 섹시하고 강렬하고 황홀했다. 사실을 알게 된 이동섭은 화를 내는 대신 정하은을 더 다정히 대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의 관대함과 집착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다 용서한다며 청혼까지 하는데 용서라니, 누가 그런 자격을 그에게 준 것일까. 이동섭과 헤어져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새 구두를 신고 알리오와 여행하고 싶다는 그녀. 정하은은 15센티 스틸레토 힐을 신고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걸음을 옮긴다.

정하은은 섹시했다. 섹시함이란 규정되지 않으며 선명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는 에너지다. 미리 정해진 모든 것과, 관습으로 굳어져 옳다고 믿는 것을 ‘의심’하는 것. 그리하여 섹시함은 홀로 헤치고 나아가며 스스로의 기준을 따로 마련해 실천한다. 그러자니 언제나 혼돈이 함께하는 삶. 정하은은 지금 혼란한가. 윤찬경은 정하은에게 있어서 그 혼란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것이 정하은이니까. (108~109쪽)

네 번째 이야기: 출발이 잘못된 관계를 끝내고 구두 가게를 연 윤찬경
“나 줄 거면 딴 데 가서 여기 없는 구두를 사 와야지.”


네 번째 손님은 윤찬경의 전남편 신종현이다. 윤찬경과 신종현은 잘 맞는 듯했지만 출발부터 어긋난 관계였다. 둘은 서로에게 진심을 다했으나 신종현은 번번이 자기 마음만 앞서 상대에게 무신경하게 폭력을 저지르고 상처를 입히곤 했다. 윤찬경은 그를 사랑했기에 용서하고 노력했지만 점점 지쳐갔다. 그녀는 비로소 잘못된 출발로 시작한 사랑을, 용서할 수 없는 사실을 용서해야 하는 사랑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종현과 헤어지고 슬픔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윤찬경은 땅속에 씨앗 하나를 심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씨앗이 싹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좋아하는 구두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구두는 확실하니까.
쏠라즈를 방문한 신종현은 짐짓 다른 이에게 선물할 구두를 찾는 시늉을 하며 윤찬경이 골라준 니하이 부츠를 사서 그녀에게 건넨다. “이 구두는 꼭 한 번은 신어줘.”

잘못에 대해 가끔은 용서를 받아야 한다. 또 가끔은 용서 대신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또 다른 용서다. 윤찬경은 신종현에게 그것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삶이 지금보단 낫지 않았을까. 용서는 때로 두 사람 모두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걸 신종현과 윤찬경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는 긴 시간을 통해서야 깨달았다. (165쪽)

새로운 걸음 앞에 선 여성들, 꼭 필요한 만큼의 공감과 유대

이 소설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나이와 직업, 성격과 스타일이 다른 네 명의 손님과 윤찬경이 나누는 대화일 것이다. 윤찬경은 구두 소믈리에이지만 한편으로는 심리 상담가이기도 하다. 손님들의 마음을 읽고 꼭 필요한 만큼의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우회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손님이 자기감정과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도록 이끌기도 한다. 말하자면 구두 레시피를 줄 뿐 아니라 심리 세러피까지 수행하는 셈이다.
그녀는 복수하기 위해 구두 가게를 열었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한 달에 한 켤레씩 새 구두를 신고 매번 새로운 남자를 만나 구두 굽으로 그 남자를 짓밟아주려고 생각했어요. 여기 이름도 그래서 ‘열두 켤레의 여자’라고 짓고 싶었어요. 매번 남자들에게 그따위로 살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벌을 주는 거죠.” 우스갯소리지만 과거의 상처받은 마음의 일단이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런 거니까. 새로운 발걸음을 준비하며 쏠라즈를 찾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도 이러한 격려와 자극이리라. 그녀의 구두 레시피가 손님을 매료시키는 이유도 거기에 높은 안목과 함께 정서적 유대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쏠라즈는 그 이름의 뜻 그대로 서로의 틀을 뛰어넘어 ‘마음의 위안’을 선물 받는 장소가 된다.

목차

1장 남경희
2장 임수진
3장 정하은
4장 신종현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사랑에 관한 소설을 요청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랑에 관한 글을 써본 적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경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읽고, 보고, 들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지구에 오십억이 넘는 사람이 있다면 존재하는 사랑의 종류 또한 오십억 개라는 것. 삶과 죽음 사이에 들어 있는 사람의 모든 일이 또한 사랑 안에 들어 있다. 사랑은 저마다의 사랑이어서, 개별적이고 유일하다. 그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들어 있다. 사랑은 때로 아프고, 때로 삶의 위에 군림하며, 또 때로 폐허로 이끌었다. 사랑할 때 우리는 누구나 그 사랑이 행복할 거라 믿지만 결국 사랑은 다만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맨발 위에 짙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럼에도 또 우리는, 사람이어서, 사랑을 하게 된다. 오십억 개의 사랑. 그것을 한꺼번에 뭉뚱그려서 사랑, 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아무려나. 사랑이니까.
( '작가의 말' 중에서)

온몸 구석구석에 긴장감이 퍼지면서 온몸이 꽉 조여드는 느낌. 그 불편한 긴장감이 무엇을 불러일으킬지를 또한 상상하게 되었다.
이제 남경희에게 구두는 과거의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구두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었으니까. 삶에 대해 너무 가볍지도,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은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달까. 남경희는 구두를 신고 그 중간쯤 어디서 서성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pp.48~49)

쏠라즈는 한 번에 한 명씩 예약 고객만 받는 시스템이므로 윤찬경은 거의 모든 고객을 파악하고 있다. 고객들이 쏠라즈에 들어설 때의 차림이나 표정으로 고객을 파악하고 먼저 둘러보게 내버려둔 다음 고객에게 맞춤한 구두를 추천한다. 그래서 스스로 구두 소믈리에라고 말한다. 구두 레시피라고 할까?
고객의 심리를 적당히 언급하면서 외로울 때는 채도 낮은 옐로가 좋아요, 썸남을 매혹시키려면 마젠타색의 스웨이드 뮬이 좋지요, 보랏빛을 살짝 품은 붉은색이 어쩐지 신비롭거든요.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는 심플하고 클래식한 모노톤이지만 뾰족한 10센티의 에나멜 굽이 달린 펌프스가 어떨까요? 하는 식으로.
(/ p.61)

—처음엔 누구나 그래요. 천천히, 익숙해질 때까지 걸어봐요.
처음. 윤찬경이 처음이라 말한 것처럼 태어나 30년을 걷고 살았으면서도 임수진은 마치 처음 걸음을 배우는 것 같았다. 발을 뗄 때마다 그 발이 첫발인 것 같았다. 어색하고 발이 아프고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또박또박 한 마디씩 말을 하듯, 임수진은 한 발 한 발 힘주어 걸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척추가 금세 뻣뻣해졌다.
(/ p.67)

정하은은 이동섭이 왜 화내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에 앉아 서울 시내 야경을 내려다보며 값비싼 음식을 먹고 과장된 이동섭의 웃음을 지켜보면
서 내내 의아했다. 연인이 바람을 피웠다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지? 저 나이가 되면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걸까. 정하은은 문득 오싹해졌다. 이동섭의 관대한 태도는 오히려 안간힘? 혹은 절박함에서 발현된 매달리기쯤이 아닐까 싶었다. 정하은은 이동섭이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서로 싸우기를 원했으면 싶었다. 생각해보니 둘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매번 이동섭이 다 받아주었으니까.
(/ p.121)

윤찬경은 두 가지 스타일의 니하이 부츠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첫 번째 구두는 블랙 에나멜 재질의 고관절 바로 아래까지 도달하는 길이의 부츠. 부츠로서 가장 긴 길이에서 최고의 에로티시즘이 흘러나온다. 이 부츠는 마치 부츠를 신은 여자가 손에 가죽 채찍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의 마조히즘적 환상을 부채질할 것이다. 그녀는 사디스트고 그녀의 희생자들은 마조히스트며 그녀의 전반적인 태도와 매너는 쾌락-고통의 연상을 동반한 성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겠지. 까불지 마라. 수틀리면 찍어버린다. 이런 느낌이겠지.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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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73~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2,674권

2002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일리자로프의 가위]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코끼리가 떴다] [어쩔까나] 등이 있고, 장편소설 [검은 바다의 노래] [11-59PM 밤의 시간] 등이 있다. 그 외에 [호아저씨, 호치민] [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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