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지를 보면 얼치기 무사와 천재 미소년 콤비의 활약! 이라고 쓰여져 있다. 얼치기라니!! 허리를 자주 다치기는 하지만, 세상 일에 관심없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이즈쓰나리가 얼치기는 아니라구! 라고 반발심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무사님과, 곱상하게 생긴데다 측량하기를 좋아하며 이즈쓰가 막힐 때마다 툭툭 단서를 던져주는 똑똑한, 그러나 여전히 밤중에 이불에 오줌을 지리는 영락없는 어린애 유미노스케의 활약이 이 소설의 주된 테마지만 그 옆의 조연들의 매력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드센 이미지의 오토쿠씨는 자신이 한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끝까지 마음을 쓰는 여린 아낙이고, 다른 까마귀들과 다르게 빨간 깃털로 멋을 낸 간쿠로는 전서구 역활을 톡톡히 해낸다. 그 까마귀의 주인인 사키치는 청년의 나이로 나가야를 관리하러 온 사람으로 모두가 다 못미더워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몫을 해나간다. 유미노스케와 마음이 잘 맞는 짱구는 암기력이 뛰어나 한번 들은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으며 필요한 상황에 탁탁 그 이야기들을 꺼내 들려주는 신통방통한 아이이다. 이런 각각의 캐릭터들의 매력이 너무 강해 이 소설은 단편이 아닌, 꽤 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나서 아쉬움을 안겨준다.

 

 

  책의 내용은 나가야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이다. 책을 시작하는 가장 첫 사건이 살인사건이기 때문에 '소소하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소소한 사건들 속에 감추어진 배후가 너무나도 검고 뱀같아서 다른 사건들은 그저 소소하게 지나가는 일상 중에 하나의 사건들로만 비추어진다. 그들이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건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다. 배후가 감추어놓은 진실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찾아낸다.

 

  그럼에도 까발려진 진실에도 우리는 찜찜함을 감출수가 없다. 여전히 그 진실은 흑막으로 덮여져 있으며, 아는 사람만 알고, 알아야 하는 사람은 몰라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평범하고 평온한 삶은 계속된다.

 

 

  이러한 일은 과연, 에도시대였기에, 소설이였기에만 가능한 일일까? '서민들' 우리는 소소한 일상을 하루하루 평범하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배후에 싸여진 흑막이 있을테고 그 일은 어쩌면 우리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쉬쉬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하루하루 그저 평범하게 연명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사키치를 보면서 자꾸 떠오른다. 과연 어떤 것이 그를 위해 좋은 일인가? 진실을 모조리 알게 하는 일? 아니면, 그저 그렇게 평범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덮어 두는 일?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머물고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만을 체험한다.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제3세계에 대해서는 이론만 알고 있을 뿐 체험한것처럼 늘 기억하고 신경쓰며 살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그 순간의 나도 그랬다. 우리는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자다가 공습을 받을 걱정도, 걸어다니면서 시체를 볼 일 없이 너무나도 편안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는 분단국가이고, 휴전 국가이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시한번 전쟁을 경험할 수도 있고,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의 입장은 데오와 전혀 다를바 없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자신에게 되물어보자. 내가 만약 데오라면, 가장 밑바닥의 존재인 노숙자가 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것인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해도, 난 부룬디라는 나라를 들어본적이 없다. 1993년에 일어난 '부룬디대학살'은 최악의 동족상잔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나는 4살이었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후투'라는 단어와 '투치'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였고, 데오도 그랬겠지만 그 단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 어른들에 화가났다. '왜' 그 단어를 사용하면 안되는건데? 도대체 그 단어의 뜻이 뭔데? 나중에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왜 어른들이 어린 데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수 있었다. 그건 아마, 내가 어릴적에 '빨갱이'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대답해주지 않았던 아빠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책의 주인공인 데오는 엘리트였다. 그러나 비극적인 국가상태로 인해 망명자가 되었고, 미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엘리트였으나 '영어'를 하지 못했고 대신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프랑스어'는 고급언어(?)이기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부랑자로서 노숙자로서 살게 되며 온갖 천대를 받게 된 데오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는 많은 외국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끔 그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말하듯 그들도 그들의 나라에서는 엘리트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 그들은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피부색으로 인해 천대받고 멸시받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인간은 모두 살아간다.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삶에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살아간다. 언제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해 또 다시 동족상잔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건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그랬듯 그러한 고통들은 우리를 삼키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또 다시 일어날 것이다. 데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건 그때일것 같다. 그때, 우리가 또 다시 일어나게 되었을 때 이러한 문제를 다시 발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용서이고 화해뿐이라는 것을. 다시 적과의 대치를 만드는 것도, 그들과 화해하여 같은 동족이 되는 것도 모두 다 우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와 '남'을 규정짓는 것은 결국 스스로 하는 일이고, '우리'와 '그들'을 규정짓는것이야말로 무지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라는 걸 깨닫게 해준 데오에게 감사하며 오늘도 아무런 걱정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하루를 주신 하나님게 감사드린다.

   전작인 '천국의 도둑'에서는 사건중심에다가 그가 얼마나 대도인지, 왜 그가 도둑질을 안 하게 되었고 어쩌다 다시 도둑질을 하게 되었는지에 중점적으로 설명하다보니 주인공의 매력이 어필이 덜 되고 오히려 와이프의 매력이 더 어필되어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천국의 도둑'의 마이클은 메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유부단하고 자기 줏대가 없고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그려졌고, 그의 도둑질은 물론 메리를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메리에 대한 배반행위로만 느껴졌다. 결국 그가 얻어낸것은 없었고 외롭게 아픈 메리만 남았기에 결코 마이클에 대한 매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반면 이 믿음의 도둑에서는 조금 더 마이클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마이클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의 매력이 제대로 어필되었다. 그는 경비가 삼엄하기로 전세계적으로 소문난 바티칸과 크렘린궁을 털고 반전에 반전을 생각해 낼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며, 친구는 물론이고, 몇번 만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도의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목숨을 걸 수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과 다른 사람의 불행을 외면할 정도로 독한 사람이 못되는 마이클의 개인적인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믿음의 도둑'이었다.

 

 

  이 책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초현실적인 인물과 초현실적인 기독교의 유물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인간의 탐욕과 생에 대한 집착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탈출하면 또 잡아가고 탈출하면 또 잡아가고, 인물들의 납치가 끊이지 않게 계속 이어지며 계속 그들을 구출해내는게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 되어 버린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이번엔 또 마이클이 어디를 털어낼까? 하는 마음으로 후속작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