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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 천서봉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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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천서봉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3년 07월 25일
  • 쪽수 : 136
  • ISBN : 978895469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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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수요일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에 대해,
그건 거의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의뭉떨게”

수요일과 금요일 사이, 사람과 사랑 사이
세상의 모든 낙오된 이들에게 보내는 단단한 헌사

긴 기다림 끝에 도착한 천서봉 신작 시집 출간!

출판사 서평

문학동네시인선 198번으로 천서봉 시인의 두번째 시집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를 펴낸다. 2005년 『작가세계』를 통해 데뷔할 당시 “명주실처럼 매우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강한 견인력”을 지닌 시적 화법과 “온유하면서도 끈덕진 감성의 언어를 통해 입체적으로 감각화”한 의미를 “적요한 시적 울림으로 전하는 능력”이 돋보인다는 극찬을 받은 시인은 그에 걸맞은 완성도 높은 시를 꾸준히 발표하며 첫 시집 『서봉氏의 가방』을 선보였다. ‘가방’은 ‘당신’의 부재로 인한 상실과 그리움에 지친 시적 화자가 “영혼”을 “재설계”(「납골당 신축 감리일지」)하기 위해 “갈비뼈 같은 도면”(「이상 기후」)을 넣고 다니는 물건으로, 시인의 분신과 다름없는 상징물이다. 시인 본인의 이름을 내건 이채로운 첫 시집은 그렇게 “삶의 자가발전”(문학평론가 조강석, 해설)을 위해 안간힘을 내는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십이 년, 그간 치열하게 연마한 시어로 써 내려간 시 예순다섯 편을 엮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닫히지 않는 골목’ 연작시를 펼쳐 보인다. 골목은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는” “개방된 공간”(문학평론가 이철주, 해설)으로, “없는 것들이 없어서 있지 말아야 할 것들로 가득”한, “시와 삶을 구분할 수 없는”(「닫히지 않는 골목」) 장소이다. 시적 화자의 소유품인 ‘가방’에서 ‘골목’이라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된 이러한 시선과 함께, 건축설계사로도 일하고 있는 시인만의 건축적인 상상력 또한 흥미롭게 표현된다. 유년의 기억을 길어올려 그려낸 골목에는 “재미있는 우울”을 구하러 다니는 소녀가 있고(「닫히지 않는 골목-우울 상점」), 죽은 삼촌과 이복동생이 살며(「닫히지 않는 골목-性 가족공장」), 어린 남자를 집에 들이면서 동네에 소문을 만들어내는 여자가 존재하고(「닫히지 않는 골목-붉은 집」), “고장나도 좋을 불행의 춤을” 추는 아이들이 노닌다(「닫히지 않는 골목-어린이집에서 춤을」).
첫 시집이 주로 ‘당신’으로 표상되는 애인, 아버지, 어머니, 또다른 자아와 화자 ‘나’의 이자관계에서 오는 사랑과 슬픔의 정서를 그렸다면, 이번 시집은 이미 죽었거나 사라진 존재인 ‘발목 잃은 자’들이 여전히 골목가 어느 한편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한다.

“골목은 형이상학적 비상을 위해 그가 선택한 편리한 도구나 방법이 아니라, 부재 이후 그가 견뎌야 할 감각적 삶의 부정할 수 없는 실재로서의 심연일 따름이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일은 골목의 중력에 이끌리는 유령들을 위해 부서진 말의 파편과 얼마쯤은 일그러진 음성을 미온의 담요로서 가만히 덮어주는 것뿐이라는 듯, 천서봉의 문장은 이 ‘발목 잃은 자’들의 안녕을 향해 바쳐진다.” _이철주, 해설에서

영혼에 관해 말할 때, 우린 자주 발목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발목이 사라져간 자명한 어제를 이제 상징이라 부르겠습니다

어디선가 물이 끓는데, 돌고 도는 목성의 얼음 띠 같은 영혼들

낯선 곳에서 잠을 깨는 일은 소멸에 가까워서 아름다웠습니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생각은 무너지고 나서도 다시 무너지겠죠

깊어지는 모든 것은 철학이 될 테고 자정은 비밀과 닮아갑니다

골목이 소매와 닮았습니다 점점 더 소문에 가까워지는 우리들

알아보겠습니까, 이제 물은 끓어오르다못해 넘치고 있습니다

당신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나는 당신 병이나 함께 앓았으면 했습니다
_「발목이 없는 사람」 전문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발목 잃은 자’는 “이별”(「아가미」) 후에 다가온 상실의 정서를 담은 이미지이면서, “시라는 공동체가 함께 앓고 기억하고 긍정해야 하는 타자의 존재 형식”(해설)이다. 이를테면 이는 “허기를 배우고 재난을 익”(「매일매일 매미-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에게」)힌 아이들이다. 유년의 기억 속 골목가의 사람들에서 또다른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존재. 이렇게 시인은 과거의 기억에만 정주하지 않고 시인의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본다. 그럼으로써 슬픔과 회한, 연민에 잠식되지 않고 ‘시(詩)란 무엇인가, 또한 시를 쓰는 자의 태도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사유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과잉들」 「습관들」 「메모들」 등의 시에서 이러한 시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몸이 되기를 거부하는 거대한 결핍으로, 당신이 의식하지 않는 소소한 배경으로 천천히, 나를 소멸해가겠습니다 _「과잉들」 부분

나는 가까스로 내 詩를 변명한다. 혹여 직관이 아닌 습관으로 지저귀고 있지 않는가 반성한다. _「습관들」 부분

詩의 이곽(耳郭)과 가장 유사한 것은 모래 아닐까,

말로 도강할 수 없는 정념, 재(災)의 문장, 그건 유령인가?
_「메모들」 부분

시인은 “어떤 사랑도 아름답지 않고 어떤 중독도 마침내 시들해”(「나비 운용법」)져버린다는 사실을 끝내 깨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편견이 없는 연대의 한 마리 나비”(「나비 운용법」)가 되고자 한다.

수요일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에 대해, 그건 거의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의뭉떨게

그렇게 우리 목요일쯤 만납시다 사랑이 아니었거나 혹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그러나

사랑이거나 사람이어도 괜찮을 목요일에, 마치 월요일인 것처럼, 아니 일요일의 얼굴로

흘러내린 표정이 바닥에서 말라가듯, 유통기한이 딱 목요일인 쓸쓸한 통조림처럼 우리,
_「목요일 혹은 고등어」 부분

고된 월요일과 화요일을 보내고 맞이한 수요일, 생의 한가운데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수요일”에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을 시인은 발견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사랑이거나 사람이어도 괜찮을 목요일”에 만나, 주말의 행복을 강렬하게 예비하는 금요일로 우리를 데려가고자 한다. 슬픔과 고통을 지나, 스러져간 모든 이들을 향해 연대의 날갯짓을 펼치는 시인의 마음.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는 “낙원을 찾아 헤매다 이렇게 늙어”가는, “수많은 문을 닫고 문에서 나”(「문을 위한 에스키스」)온 우리에게 건네는 시인의 뜨거운 안부인사이다.

두렵지만 두렵지 않게,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가볍게,
부디 목요일에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_‘시인의 말’에서

골목의 체적이 하루가 다르게 비대해져가는 매운 계절의 끝에서 당신 없이도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이별하는 의연한 표정 하나를 배운다. 그렇게 당신을 꼭 닮은 오래된 병증이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이미 지나간 계절이 여러 번 온 힘을 다해 다시 지나간다.
_이철주, 해설에서



◎천서봉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안녕하세요, 십이 년 만에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시를 잊고 살았던 건 아닌데 세월이 참 빠릅니다. 요즘 다시 시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두번째 시집을 내면서 그게 동력이 된 것 같아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2.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는 독특하면서도 울림 있는 제목입니다.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목요일 혹은 고등어’라는 시에 들어 있는 시구의 일부입니다. 절대적인 시간성 속에서 결국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 시간의 상대성이 발현된다고 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아름다운 날을 기다려 만나기보다는 우리가 만나서 아름다운 날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3. ‘닫히지 않는 골목’ 연작시들이 이 시집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회상과 상상을 통해 그려낸 골목의 지도가 무척 인상적인데요, 건축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시인님의 이력도 떠오릅니다. 이 시들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시간은 과거로 넘어가면서 변형을 일으킵니다. 인간의 기억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워지면서 어떤 풍크툼을 남기죠. 다 지워지기 전에 그것들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모든 건축가들은 골목을 좋아할 거예요. (웃음) 아마도요.

Q4. 2부의 주요한 시들인 「후생들」 「과잉들」 「습관들」 「메모들」 등의 시를 읽으면, 시인님의 치열한 시적 정신이 느껴집니다. 상실의 정서를 담고 있는 「발목이 없는 사람」도 기억에 남고요. 이 시들을 쓸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수많은 타자 속에서 외롭거나 괴롭던 시절 같네요. 말씀하신 대로 결핍이나 상실이 나를 증명해주곤 하니까요. 그래도 무언가 쓰거나 뱉고 나면 슬며시 다시 희망 같은 것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Q5. 마지막으로,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를 읽을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안녕하세요. 시와 건축설계를 병행하고 있는 천서봉입니다. 늘 목요일 같은 초록의 햇살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저는 부끄럼 많은 분홍으로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추천사


불행이 기다릴까 자주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존재를 증명해내는 불행의 기이함에 끌린 것도 사실이지만
그 가치는 종종 무의미했으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다시 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겨우 두번째 시집을 낸다.

의미를 두자니 변명에 가까웠고 여백으로 남기자니 공허했다.
나의 말들은 웬만해선 잘 뭉쳐지지 않았고 그래서 멀리 던질 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날아가는 나비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고등어
또 발목이 사라져버린 사람까지,
그 유령 같은 이음동의어들을 간신히 한데 모아두었다.
이제
가운데 선을 긋고 오 엑스로 나누어지는 게임,
그 게임에서 나는 무리를 버리고 혼자 그 선을 넘어온 것만 같다.

두렵지만 두렵지 않게,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가볍게,
부디 목요일에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나의 생일 다음날을 골라 떠나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2023년 여름
천서봉

목차

1부 닫히지 않는 골목
닫히지 않는 골목/ 닫히지 않는 골목-우울 상점/ 닫히지 않는 골목-性 가족공장/ 닫히지 않는 골목-모스크바의 여름/ 닫히지 않는 골목-9/ 닫히지 않는 골목-한여름의 카니발/ 닫히지 않는 골목-붉은 집/ 닫히지 않는 골목-어린이집에서 춤을/ 닫히지 않는 골목-O/ 닫히지 않는 골목-지도에 없는 나이/ 닫히지 않는 골목-T/ 닫히지 않는 골목-측백나무의 집/ 닫히지 않는 골목-녹번동/ 닫히지 않는 골목-142번지/ 닫히지 않는 골목-Cul-de-sac/ 닫히지 않는 골목-근린 분구의 일요일

2부 발목이 없는 사람
매일매일 매미-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에게/ 플라시보 당신/ 발목이 없는 사람/ 후생들/ 과잉들/ 습관들/ 메모들/ 아가미/ 수목한계선/ 질서들/ 파한(破閑)/ 나무 호텔/ 발산하는 시/ 분홍을 위한 에스키스/ 생강 혹은 생각

3부 목요일 혹은 고등어
나비 운용법/ 2월/ 목요일 혹은 고등어/ 목요일 혹은 고등어, 그후/ 곤(困)/ 후생들/ 부기우기(附記雨期)
감정의 경제/ 경계들/ 결핍들/ 착각들/ 강박들/ 비무장지대/ 매독을 앓는 애인/ 사랑에 관한 짧은 몸살/ 강점기(强占期)

4부 무서운 아이스크림
가정동/ 각성/ K의 부엌/ 무서운 아이스크림/ 오후 6시의 담론/ 7월의 복합/ 시네도키, 詩/ 있는 힘껏 / 장미/ 비커/ 공원학 개론/ 문을 위한 에스키스/ Mass Study/ 태피스트리/ 징후들/ 만일의 방/ 감자 먹는 사람들

5부 2인용 식탁
몽공장-길만에게/ 2인용 식탁

해설 | 팽창하는 관념의 골목과 이형의 울음들
이철주(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내 슬픔의 가장 안쪽에 성 가족공장이 있다

아침이면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 도로 쪽으로 걸어나갔고

도로로 나간 아이들은 누구도 이 골목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 죽은 이복동생을 닮았다

오늘은 성 가족공장 공장장인 삼촌의 서른번째 기일이다

공장의 굴뚝은 조금씩 자라 어느새 이 골목의 상징이 되었다

잡설을 불러 저녁 식탁에 앉으면 삼촌의 수염 같은 분진들이 밥상 위에 조용히 내려앉곤 했다
_「닫히지 않는 골목-性 가족공장」 전문


모든 예보에선 불명열(不明熱)이 빠져 있고 당신과 나 사이의 등고선은 이제 없다 이 정도면 슬프지 않을 것도 없지만 슬플 것도 없다 바람이 잠든 후 아무것도 잠들지 못했다
_「닫히지 않는 골목-O」 부분


저녁 속으로 문병 다녀갑니다 한발 다가서면
또 한발 도망간다던 당신 걱정처럼 참 새카맣게
저녁은 어두워지고 뒤를 따라 어두워진 우리가
나와 당신을 조금씩 착오할 때 세상에는
바꾸고 싶지 않은 슬픔도 있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_「플라시보 당신」 부분


그해 겨울엔 속죄하듯 폭설 내렸고 별처럼 나는 여러 번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밤거리, 고깔모자의 가로등을 쓰고 걷다가 어느새 내가 어두워졌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평생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한 겹의 옷을 더 껴입었던 셈입니다

하루는 따뜻한 걱정들을 불러다 거한 저녁을 먹이느라 나는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습니다

길을 잃은 문자들을 수소문하다가 내 마음에도 골목의 무늬 같은 더딘 손금이 여럿 생겼습니다
_「과잉들」 부분


내가 당신에게 못 가던 발작의 시간들을
간단하게 나비라 쓰자
봄의 이곽을 떠도는 추억의 고요를 나비라 읽자
용서는 바라지도 않을 이번 생엔
영원히 마음의 정처를 얻지 못할 것이므로

그러니 나비라 부르자 당신과 나 사이

창궐하던 층계를, 찬란히 피던 실패의 전부를
_「나비 운용법」 부분

저자소개

천서봉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71

1971년 서울 출생. 2005년 『작가세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서봉氏의 가방』, 산문집 『있는 힘껏 당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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