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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훗사람 : 이사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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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사라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3년 04월 17일
  • 쪽수 : 136
  • ISBN : 97889546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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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사라 시인의 시학적 흐름을 마주하는 시간!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문학동네시인선」 제39권 『훗날 훗사람』. 1981년 《문학사상》에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이사라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낡고 느린 것들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관심, 삶의 유적들을 따라 존재론적 근원에 이르고자 하는 저자의 형이상학적 열망이 담긴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더욱 깊어진 시선으로 옹색한 현실을 자유롭게 떠났다가 오랜 시간을 통과한 후 다시 자신으로 귀환하는 선순환 형식의 시편들을 통해 느릿하게 낡아가는 시선들을 들여다본다. 부재의 흔적, 시간의 흔적으로서 얼룩을 이야기하는 ‘분홍 모자’, ‘유적지 돌바닥을 걷다’, ‘느린 이별’, ‘산에서는 뿌리내리는 것들도 산다’, ‘둥근 반지 속으로’, ‘낯선, 오래된 카페’, ‘길 위의 길’, ‘빈틈’ 등 67편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서평

“밤을 떠나는 별처럼 당신이 나를 지나간다”
-애잔하고 아름다운 삶의 흔적들에 대한 성찰, 그리고 애도
이사라 여섯번째 시집 『훗날 훗사람』

우린 모두 죽지만, 그 누가 죽은 뒤의 우리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이사라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훗날 훗사람』을 펴낸다. 1981년 『문학사상』에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니 햇수로 32년째 시를 삶으로 삼은 시인. 그가 『가족박물관』을 펴낸 지 5년 만에 들고 나온 새 시집 속엔 총 67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담겨 있다. 한 편 한 편 정갈하게 담긴 그 이면에 속수무책으로 몸 주저앉히는 시들 가히 넘치는데 아무래도 그가 좀 아팠구나, 앓았구나 싶은 짐작을 앞서 하게 되는 건 ‘봄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는 그의 애잔함이 우리에게 쉬이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다 바치는 것으로 될까!’라고 바닥을 치고 시작하는 시인 앞에 우리들 무슨 꿍꿍이를 감출 수 있으랴. 통 크게 감내할 줄 알면서도 무심코 흘러가는 바람에도 눈 시려 울 줄 아는 시인의 예민함에 걸려든 이번 시들은 생과 사의 구분 없이, 사실 그 구분 자체가 덧없음을 특유의 따스하면서도 둥근 모서리의 힘으로 품어내고 있다.

이사라 시인의 시세계는 ‘사랑’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곤 한다. 문학평론가 정끝별은 “이사라 시인은 평안한 소멸을 꿈꾸면서, 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바닥을 쓰다듬고 침묵하고 그리고 시를 쓰곤 한다. 그러기에, 그에게 시는 죽음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시인은 이번 신작 시집에서도 자신의 시학적 흐름을 견고하게 이어나간다.

검버섯 피부의 시간이 당신을 지나간다

시간을 다 보낸 얼룩이 지나간다

날이 저물고 아픈 별들이 뜨고
내가 울면
세상에 한 방울 얼룩이 지겠지

우리가 울다 지치면
한 문명도 얼룩이 되고

갓 피어나는 꽃들도 얼룩이 되지

지금 나는
당신의 얼룩진 날들이 나에게 무늬를 입히고
달아나는 걸 본다
모든 것을 사랑하였어도
밤을 떠나는 별처럼 당신이 나를 지나간다
-「얼룩」 부분

『훗날 훗사람』의 서시 자리에 놓인 이 시는 부재의 흔적, 시간의 흔적으로서 “얼룩”을 이야기한다. 느릿하게 낡아가고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시인 특유의 관찰이 이 시집에서는 “얼룩”론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밤하늘의 별이란 사실 오래전 지상으로 내쏘아진 별빛, ‘별의 얼룩’인 셈이다. 시공간이 우리에게 별의 과거, 흔적, 얼룩만을 허락하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우리에게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검버섯 피부의 시간이 당신을 지나”가듯 “밤을 떠나는 별처럼 당신이 나를 지나”가듯 “나의 얼룩도/ 당신처럼 시간을 지나가겠지”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언제나 지나가고 사라지고 남겨질 뿐인 시간을 관찰한다. 그리고 시인은 시간을 애도한다.

모든 것은 “뒤꿈치 내려앉는 신발들처럼 낡아” 사라져가면서도, 다른 한편 “낡아가는 엄마들이 지켜온/ 부엌”처럼 남는다. 기억으로든 상처로든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고 또 남는다면, 시인은 “자신의 삶에 각인된 상처들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기원과 현재형을 함께 탐색하면서”(해설 「사라지는 시간을 바라보는 시간」) 상처/고통/기억을 치유한다.

몸도 한때는 탱탱한 나무였다
그 속에서
잎사귀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
책 한 권을 피우기도 했다
한 오백 년
책갈피 갈피 햇살과 빗물이 스며들듯
주름 같은 나이테
낡아가는 몸에 새기고
차츰
오래된 것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처럼
숲을 뒤지며 헤매는 날들이 간다
-「낡은 심장」 부분

어릴 적에는 예쁜 처녀였고
한때는 집의 여제였고
지금은 구립노인요양원 소속의 휠체어를 탄 그녀가
집 아닌 집에서
눈을 뜨고 감고
낡은 몸이 강물처럼 흐느적거리던 지난 몇 해를 기억이나 할까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외출허가증을 받은 그녀가
한줌 흰 눈으로 내리는 저녁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누군가 휠체어 속에서 그녀를 끝내 발굴해내기까지
그녀는 침묵으로
놓칠 수 없는 손아귀 속의 바퀴를
굴리고 또 굴리는 것인가
-「어떤 바퀴의 외출」 부분

“낡은 몸이 강물처럼 흐느적거리던 지난 몇 해”를 우리는 어머니의 투병기로, 또 시인의 간병기로 읽을 수 있다. 이사라는 “기억을 파먹으며 자라는 벌레 한 마리”(「아픈 가족」) 키워온 한 여인의 “어둠 속의 어둠”(「밤마다」)을 기록하면서 삶과 죽음, 병고와 치유, 기억과 망각에 대해 묻고 쓰고 사유해온 것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모든 낡아가는 것들은, 고유한 아픔과 기억을 몸에 각인하면서, ‘낡은 심장’처럼, ‘휠체어 바퀴’처럼, 희미한 잔상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그 사라짐 뒤로 생의 비의(秘義)와도 같은 아릿한 순간들이, 반짝, 얼룩처럼 번져온다. 애잔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흔적들이 아닐 수 없다”라며 시인의 간병기에서 형용모순적 삶의 진실을 읽어낸다.

시집 『훗날 훗사람』에서 ‘시간’과 ‘낡아감’에 대한 시인의 관찰을 읽었다면 마지막으로 읽을 것은 ‘느림’에 대한 시인의 사유일 것이다.

사랑해서
하루라도 못 보면 안 될 것같이
마치 그렇게 하다보면 정말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느리게 정말 느리게
사랑이란 말 정말 느리게
안녕히 가라는 말 정말 느리게

시간이 사라진 복도에서
게걸음으로 느리게
더 느리게 헤어지는 우리들
-「느린 이별」 부분

이사라는 사라진 시간이 돌아와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놓기라도 한듯, “느린 이별”을 통해 사라져간 것들과 해후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가 거스를 수 없는 이치라면, 시인은 “정말 느리게” 한 세상 건너겠다, 다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소리의 끝에 매달린/ 속말들”을 통해 “떠난 사람이/ 훗날 훗사람이 되어 오리라” 소망해볼 수 있겠다고 시인은 소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시인의 말
봄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꽃다발 한목숨 바치는 것으로 될까!

훗날 훗사람을 위해
우리들 다 바치는 것으로 될까!

그래도, 그러는 사이에도
한세상 또 한세상
말없이 누구나 단풍 들고 낙엽 지고
말없이 봄볕 들고 새순 돋는다는 다정한 말,
나는 믿는다!

첫 울음소리 다시 들리는 날들이다.

2013년 4월
이사라

목차

시인의 말

1부
얼룩
분홍 모자
문병
유적지 돌바닥을 걷다
밤마다
회복중이다
폭우
우시장 속눈썹
그림자
낡은 심장
사이의 미학
그늘
허공 속에서 두근거리는 심장들
밤새
낙조
그의 나무
4층의 비너스들
오래 쓴 망막들
마지막 꽃집
포구 사람들
훗날 훗사람

2부
뒷길
노란 신호등
한세상
어떤 나라
느린 이별
옆집 가장
산에서는 뿌리내리는 것들도 산다
애벌레
어떤 바퀴의 외출
김을 쐬는 사람들이 있는 겨울 풍경
옛 공터
대바늘 이야기
하품하는 나무
공원 가는 길
둥근 반지 속으로
순장
플라멩코 그 여자
꽃가루처럼
세상의 창 안에는
밥숟가락
곡기


3부
그 애인
자립
낯선, 오래된 카페

옆사람
여운

음식 신화
물든 생각
길 위의 길
아픈 가족
밥의 힘
이삿짐 나르는 사내
한 발짝 강가에서
치통
포말
어떤 경지
뒷산 녹음
봄맛
그 길 따라 흐르다가
시시포스 하나가
빈틈
창문들
미네랄워터

해설 | 사라지는 시간을 바라보는 시간
| 유성호(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얼룩

검버섯 피부의 시간이 당신을 지나간다

시간을 다 보낸 얼룩이 지나간다

날이 저물고 아픈 별들이 뜨고
내가 울면
세상에 한 방울 얼룩이 지겠지

우리가 울다 지치면
한 문명도 얼룩이 되고

갓 피어나는 꽃들도 얼룩이 되지

지금 나는
당신의 얼룩진 날들이 나에게 무늬를 입히고
달아나는 걸 본다
모든 것을 사랑하였어도
밤을 떠나는 별처럼 당신이 나를 지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라진 문명이 돌연 찾아든 것처럼
내 벽에는 오래된 당신의
벽화가 빛나겠지

천년을 휘돈 나비가 찾아들고

다시 한바탕 시간들 위로 꽃잎 날리고
비 내리고 사랑하고 울고 이끼 끼고

나의 얼룩도
당신처럼 시간을 지나가겠지


느린 이별

또 한없이 느리게 햇살이 복도에 머문다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고
복도의 어디에도 복도의 그림자는 없다

기다랗고 물기 없는 바게트를 손에 쥐고
느리게 빵을 뜯으며
게처럼 복도를 걷는다

햇살이 펼쳐놓은 복도 속으로
빵과 함께 들어가서
복도를 품으면
사라진 시간이 돌아올까?

해 질 무렵부터
집은 저 복도의 끝 어딘가에서 혼자 부풀겠지
병원은 저 복도 끝 어딘가에서 혼자 부풀겠지
복도도 그렇게 또 햇살을 건너가겠지

햇살이 주무르던 모든 것들 멈추고
세상은 밤새 발효가 시작되고

사랑해서
하루라도 못 보면 안 될 것같이
마치 그렇게 하다보면 정말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느리게 정말 느리게
사랑이란 말 정말 느리게
안녕히 가라는 말 정말 느리게

시간이 사라진 복도에서
게걸음으로 느리게
더 느리게 헤어지는 우리들


훗날 훗사람

떠나온 골목에서
피는 목련을 두고 왔다는 먼 소리가 들린다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던 많은 기억들이
묵묵히 걸어왔는데
이제 기억이 터트린 말들이
골목을 향해 간다

소리의 끝에 매달린
속말들이 문을 열고
그 끝에서
자신의 제단을 오른다

골목은 그곳에서 떠난 사람이
훗날 훗사람이 되어 오리라는 것을
기다려왔던 것일까

제단 위에 벌써
바람이 불고 허공이 차려진다

목련이 지면
피는 목련을 두고 왔다는
그 소리도
제단 위에서
구름빛으로 사라지겠지

훗날 훗사람이 또 태어나길 기약하겠지

저자소개

생년월일 -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미학적 슬픔』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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