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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호칭 : 이은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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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은규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2년 04월 20일
  • 쪽수 : 14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1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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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문득 있다가, 문득 없는 것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불어오고 머물고 다시 불어가는 것들을 향한
    [다정한 호칭]


    1.

    누군가
    물수제비로 새겨넣은 문장을 오래 듣는 귀가 여기 있다.
    (/ [물 위에 찍힌 새의 발자국은 누가 지울까] 중에서)

    봄볕처럼 잠시 머물고 그러면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시 65편이 여기 있다. 2006년 국제신문, 2008년 동아일보를 통해 등단한 시인 이은규의 첫 시집 [다정한 호칭]. 등단 당시 “활달한 상상력 덕분에 요즘 시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느낌과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와 진술의 어울림이 주는 감흥”을 준다는 평을 받은 그는, 지난 6년간 고요했다. 그사이 시인은 번잡함을 멀리하고 보이는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채 잠잠했다. 그가 몰입한 것은 ‘듣는 일’이었다. 바람결을 듣고, 나무의 소리를 듣고, 스러져가는 기억을 듣고, 과거가 되는 너와 나의 관계를 듣는, 인내와 집중과 기다림의 시간. 그러면서 그는 깊어지고 넓어졌다.

    2.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해설에서 “이은규의 첫 시집의 부제는 ‘21세기의 서풍부(西風賦)’라고 붙일 법하다”고 했다. “그야말로 바람에 부치는 앨범”이란 뜻이다.
    바람을 향한 이은규의 동경은 등단작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에서 이미 감지된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피는 그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법. 이은규에게 바람은 종교다.
    그런 그가 바람 있는 곳에 따르기 마련인 꽃과 나무, 구름으로 ‘시계(視界, 詩界)’를 풍성하게 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구름을 통과하지 못한 햇빛이/ 반사되어 흩어지던 시간”과 “어둠을 통과하지 못한 구름이/ 하늘 너머로 흩어질 시간”을 궁금해한다. “나무 꼭대기에 구름모자 걸릴 때 구름의 평균 수명은 얼마일까” 알고 싶어한다.([구름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물에 관한 나무의 기억이란, 내 몸의 수액이 나이테를 돌아 당신에게 가닿는 이치”임을 안다.([나무의 눈꺼풀])
    주목할 점은 그가 자연물과 자연현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에게 자연은 대상이나 기능물이 아니다. 바람을 종교 삼은 그 아닌가. 끝없이 운동하고 작용하는 자연, 밀교를 나누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이 시집에 담겨 있다.

    꽃을 잃어버린 나무는 서둘러 푸른 잎들을 틔운다.
    잎은 꽃에게로 열린 나무의 귀

    (중략)

    착란의 봄이 꽃을 따라가면
    남겨진 나무의 계절이란 꽃 진 자리의 허공을 견디는 일
    귀는 한 목소리를 가진 말들로 붐비고
    나무의 난청은 꽃에게서 와서 꽃에게로 가는 중이다

    (중략)

    길을 잃어버린 그해 꽃이 다시 들려올까
    몇 잎의 귀를 떨어뜨리며 묻는 나무에게
    (/ [꽃은 나무의 난청이다] 중에서)

    꽃이 지는 것이 상실과 허무를 나타낸다는 데에 우리는 익숙하다. 한데 “남겨진 나무”를 궁금해한 일이 지금껏 있었던가? “꽃 진 자리의 허공을 견디”며 꽃에게로 열린 귀였던 “잎” 몇 개를 떨어뜨리는 나무의 안부를 말이다. “꽃잎을 살 삼아 바람에게 말 거는 나무와/ 물의 진동을 비늘에 새기는 물고기/ 저만치 물의 허공에 어리는 꽃무리”([어접린(魚接隣)])는 또 어떠한가.

    이은규의 상상력은 자연을 주요 소재로 삼아 전개되지만 이처럼 개별 사물들에 대한 형태적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이와 허공 즉 운동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역동적 상상력에 기반해 있음을 이제 확인할 수 있다.
    (/ 조강석 해설 [사이를 듣는 귀와 견딤의 가설] 중에서)

    3.

    펼쳐놓은 책장에 숨어 있는 길
    문장보다 즐겨 읽는 행간 사이, 그늘이 고인다

    (중략)

    한 목소리의 부재가 없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길 위를 서성이는 그림자 한 뼘씩 길어진다
    행간의 그늘에 물들어버린 동공
    이제 동공은 활자들의 리듬에 따라 움직일 것
    (/ [묵독(?讀)] 중에서)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이라 부르는 곳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
    고인 그늘에 햇빛 한줄기 허공의 뼈로 서 있을 것

    (중략)

    먼 눈빛보다 미간이 좋아
    바라보며 서성이는 동안 모든 꽃이 오고 간다

    나무가 편애하는 건 꽃이 아니라 허공
    허공의 뼈가 흔들릴 때 나무는 더이상 직립이 아니다
    그늘마다 떠도는 발자국이 길고
    (/ [미간(眉間)] 중에서)

    불어오고 머물고 다시 불어가는 바람의 속성을 따라가는 시인 이은규. 그가 ‘허공’과 ‘사이’에 예민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얼핏 이들의 공통점을 ‘비어 있음’이라 말할 수 있으나, 그는 이를 끊임없이 ‘운동하는 공동(空洞)’이자 관계의 공간으로 본다. 문장보다 행간을 즐겨 읽으며, “행간 사이를 헤매는 것으로 길을 찾고 싶었”던 이의 영역, “허공의 뼈가 흔들”리는, “눈썹과 눈썹 사이”의 영역. 바로 여기에서 이은규의 역동적 상상력이 태어난다. “없는 새에게서 심장 소리”를 듣고 “없는 봄에게서 꽃의 목소리”를 듣는다. “새가 되어보지 못한 저 알의 미지는 바람일 것”이며 “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으므로 “새, 바람이 되지 못한 것들의 배후는 허공이 알맞다”는 것을 그는 안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4.

    허공과 사이에 대한 탐구는 “문득 있다가, 문득 없는 것들”, 즉 부재와 부재를 둘러싼 내밀한 상처로 깊어진다.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 [속눈썹의 효능] 중에서)

    왜 향기는 한순간 절정인지
    아침에 떨어진 꽃잎을 저녁에 함께 줍는 일
    그러나 우리는 같은 시간에 머물지 않고

    (중략)

    문득 망설이던 긴 꼬리별
    역일(曆日)의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순간

    때를 달리한 연인은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 없고
    우리는 너와 나로 파자(破字)되어 단출할 뿐이다
    (/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중에서)

    이은규는 “없는 목소리”로 “너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도는 것을 용인하는 일([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 “오래전 들었던, 그러나 돌려보낼 곳을 잃은”, “들리는 순간 약속이 되어버린 말들”을 잊지 않는 일([꽃은 나무의 난청이다]), 이러한 “애도의 습관”은 그의 과업이 되었다.
    이은규의 시는 따뜻함과 애틋함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 따뜻함이 머물다 가는 것의 아픔과 상처를 끌어안는 시선에서 온다면, 애틋함은 사라진 것과 지나간 것에 대한 연민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간직하는 데서 느껴진다. 그 무엇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다정하게 부르는 일, 그 아름다운 파동에 귀를 기울여본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점등(點燈)
    나를 발명해야 할까
    바람의 지문
    구름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차갑게 타오르는
    아홉 가지 기분
    미병(未病)
    아름다운 약관
    누가 나비의 흰 잠을 까만 돌로 눌러놓았을까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
    애도의 습관
    구름의 무늬
    별무소용(別無所用)

    2부
    벚꽃의 점괘를 받아적다
    어접린(魚接隣)
    청진(聽診)의 기억
    꽃은 나무의 난청이다
    미간(眉間)
    나무의 눈꺼풀
    애콩
    조각보를 짓다
    물 위에 찍힌 새의 발자국은 누가 지울까
    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별들의 시차
    별이름 작명소
    놓치다, 봄날
    모란을 헛딛다

    3부
    속눈썹의 효능
    바늘구멍 사진기
    육첩방에 든 알약
    아직 별들의 몸에선 운율이 내리고
    꽃을 주세요
    숨 막히는 뒤태
    발끝의 고해성사
    소금사막에 뜨는 별
    심야발 안부
    손목의 터널
    기억의 체증
    죽은 시인과의 연애
    달로와요

    허밍,허밍

    4부
    살별
    화살 맞은 새
    꽃그늘에 후둑, 빗방울
    고경(高景)
    묵독(默讀)
    오래된 근황
    꽃씨로 찍는 쉼표
    견고한 눈물
    별의 사운드 트랙
    구름의 프레임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손목을 견디다
    역방향으로 흐르는 책

    해설 | 사이를 듣는 귀와 견딤의 가설
    | 조강석(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별들의 시차

    그가 음독(飮毒)하며 중얼거렸다는 말
    인간은 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상상한다

    천문학자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정치를 했다는 이력으로 한 죽음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눈이 아프도록 흩뿌려진 별 아래
    당신의 몸속 세포와
    궤도를 도는 행성의 수가 일치할 거라는 상상이 길다

    저 별이 보입니까
    저기 붉은 별 말입니까

    조용한 물음과 되물음의
    시차 아래
    점점 수축되어 핵으로만 반짝이던
    한 점 별이 하얗게 사라지는 중이다

    어둠을 찢느라 지쳐버린 별빛은
    우리의 눈꺼풀 위로 불시착한 소식들
    뒤늦게 도착한 전언처럼
    우리는 별의 지금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마주할 수 있을 뿐

    어떤 죽음은 이력을 지우면서 완성되고
    사라지는 별들이 꼬리를 그리는 건
    그 속에 담긴 질문이 너무 무거워서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하게 무거운 저 별, 별들


    청진(聽診)의 기억

    누가, 두 귀를 잘라 걸어놓았을까

    유리창 너머 금속성의 귀
    노을을 흘리며 허공을 듣고 있는 청진기였다
    의료에 쓰이기보다 헤드셋에 가까운

    당신을 듣기 위해 항상 열어두었던 내 귀
    채집된 음을 기억의 서랍 속에 숨겨놓은 날이 길다
    귀는 깊어 슬픈 기관일 거라는 문장

    말더듬이였던 당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소견
    이 있었다
    함께 받은 처방은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라는 것
    혹은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기

    청진, 듣는 것으로 보다
    모든 병은 마음이 몸에게 보내는 안부
    말더듬이를 앓는 건 그가 아니라 마음이었으므로
    말에 지칠 때마다
    당신은 구름이 잘 들리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문장 읽기를 하다 당신의 가슴에 귀를 묻으면
    금세 꿈꾸는 숨소리, 차라리 음악이었고

    어느 의사가 병명을 알 수 없는 환자가 안타까워 체내의
    음에 귀 기울인 데서 시작되었다는 청진의 기원

    이제 당신은 멀리 있고
    청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것이므로
    두 귀는 고요한 서랍이다

    그때의 구름만 내재율로 흐르는 창


    옛날 인간에게 노래가 없던 시절
    하늘에 있는 나무의 씨앗을 훔친 죄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끝에
    시를 얻게 되었다는 한 부족의 신화
    내 안의 신에게 첫 노래를 전한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78년 서울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수학. 2006년 <국제신문>, 2008<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현재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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