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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혜의 시는 방언, 곧 전라도 방언과 사설의 수사학으로 시의 지평을 확장한다. 무엇보다도 불협화음으로 직조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벗어나 근원의 언어인 방언으로 자본주의 현실을 사설로 풀어내는 이나혜 시의 서사는 그 새로움과 신선함과 흡인력이 독보적이라 하겠다.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서사의 연쇄를 만들어내는 시의 사설은 포스트모던적 환유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사설시조의 해체성처럼 사설의 수사학은 방언과 함께 자유롭게 유동하는 지평 속에서 탈구조주의적 동시대성을 은유한다. 물론 전라도 방언은 다른 전라도 출신 시인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환유의 사설로 엮은 이나혜 시의 방언은 단지 고향과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방언의 수사를 넘어서 환유의 지평으로 작용한다.
환유의 원리가 원심력으로 작용한다면 방언을 비롯하여 상징이 된 은유의 원리는 시적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중심과 탈중심화된 대립적 세계 혹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나혜 시의 이중적 행보는 현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근원의 세계에서 분리된 현대인이 이율배반적이게도, 혹은 무의식적으로 근원의 구심점과 원심의 현재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탈중심화된 포스트모던의 현실에서 균형을 견지하듯 이나혜의 시적 행보 또한 그러하다.

조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일찍 겨 들어와 가꼬 봉급날도 아니믄서 무슨 칠십 년대 리어커꾼맹키로 푸줏간에서 저 먹을 사시미와 국거리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가꼬 왔는디 오늘 일당이 두둑했는지 땀으로 범벅이 되가꼬 팔을 쭉 올리드만 옷을 배깨달라고 을매나 땀을 흘렸는지 안 배깨지는디 뭔 요다구를 꾸미려는 건지 즈그 각시는 걱정이 앞서는디 운수 좋은 날이여
그랑께 즈그 각시가 설거지를 허다말고 앞치마를 홀라당 배깨놓고 소주 홉을 들고 가 앉았는디
조가 실실 쪼개네 술이면 다 좋은 것인지 실실 쪼개네
으따 뭔 요다군지
- 「지극히 평범한 남자」 부분

192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비극적 아이러니의 정수를 자랑한다. 1920년대와 물경 1세기가 차이 나는 2022년도인 지금도 「운수 좋은 날」의 비극적 풍경은 여전히 진행 중이리라. 그것은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근대의 이면인 까닭에 그러하다. 따라서 2022년도의 혹은 21세기의 ‘지극히 평범한 남자’는 아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 들고 귀가한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나, 푸줏간에서 사시미와 국거리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가꼬 집에 온 칠십 년대 리어커꾼의 연장선상에서 사실주의적 지평을 확장한다.
물론 20년대 인력거꾼이나 70년대 리어커꾼이 도시 하층민의 비극성을 은유한다면, 21세기의 월급쟁이인 ‘지극히 평범한 남자’는 도시 소시민의 일상을 은유한다. 때문에 이들이 시니피에로서 동일선상일 수는 없다. 도시 하층민인 인력거꾼 및 리어커꾼의 가난과 도시 소시민인 월급쟁이의 일상은 다르다. 그럼에도 고독한 실존적 존재태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다르지 않다. 또한 인력거꾼과 리어커꾼과 월급쟁이라는 가장으로서의 시니피앙은 자본의 위력과는 대척점에 있다는 공통항에서도 그 인접성을 찾는다. 돈의 위력 앞에서 왜소한 인간의 사회적 위상을 환유하는 시니피앙의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처럼 술을 마셔야 하는 까닭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는 자조적인 환유이다.
“그랑께 즈그 각시가 설거지를 허다말고 앞치마를 홀라당 배깨놓고 소주 홉을 들고 가 앉았는디/조가 실실 쪼개네 술이면 다 좋은 것인지 실실 쪼개네/으따 뭔 요다군지” 등에서 비속어를 비롯한 방언의 사설이 가벼움의 해학을 낳는다. 해학은 돈의 위력에 억압받는 술 마시는 인물들에 대한 동정을 유발한다. 무거운 실존의 무게를 초월적 지평으로 유인하는 술의 마력과도 같은 방언의 환유적 장치가 야기한 해학이다.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연결된 시니피앙이 야기한 해학은 포스트모던적인 동시대성 또한 은유한다.
- 진순애(문학평론가)

■ 시인의 산문

한 일주일 웃다 갈 한 생

까만 내 삶이 가벼이 흔들리는구나.

벚꽃을 올려다보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개가 무거웠던 때가 어제 같은데, 매미가 운다. 행복한 사람은 시를 쓰지 말라던 어느 시인 울음 같다. 매미가 엉덩이 터질 듯 흔들어댄다. 한 일주일 살다 가는 것을 아는 것 같다. 매미를 보면서 매미는 왜 엉덩이로 우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나도 나무 옆에서, 나무를 붙잡고 엉덩이로 울어 보았다. 온몸의 피가 몸 밖으로 달음박질쳤다.

제1부

칼ㆍ13/물방울ㆍ14/한밤의 당구ㆍ16/왕새우구이ㆍ18/밤 전철ㆍ19/달ㆍ20/덩굴장미ㆍ22/동행ㆍ23/할미꽃ㆍ24/그 바다ㆍ26/수평선의 전말(顚末)ㆍ27/잔등ㆍ28/시금치 꽃대ㆍ30/해바라기ㆍ32

제2부

조 생각ㆍ35/지극히 평범한 남자ㆍ36/해가 쨍쨍ㆍ38/아침 정원ㆍ40/장마예보ㆍ42/여름나기ㆍ44/여름나기 2ㆍ46/여름나기 3ㆍ47/여름나기 4ㆍ48/외식ㆍ50/종부세ㆍ52/트레드밀ㆍ55/철없는 모기에게 고하노니ㆍ58/보리굴비ㆍ60/통(通)ㆍ64


제3부

눈ㆍ67/밥ㆍ68/갯물 두부 만드는 법ㆍ70/맨드라미ㆍ71/군불ㆍ72/봉선화ㆍ74/금낭화ㆍ75/손수건ㆍ76/가을ㆍ78/가을 2ㆍ79/가을 3ㆍ80/옛집ㆍ82/담배 향ㆍ84/준영이ㆍ85/알의 정적(靜寂)ㆍ86

제4부

장산도ㆍ89/벌노랑이ㆍ90/달맞이꽃ㆍ91/거미줄ㆍ92/암향(暗香)ㆍ93/함박꽃ㆍ94/개구리밥ㆍ95/왕원추리ㆍ96/동백꽃ㆍ97/파꽃ㆍ98/오솔길ㆍ99/오늘의 날씨ㆍ100/비진의표시ㆍ101/푸른 눈 고양이ㆍ102/시ㆍ103/소(沼)ㆍ104

해설 은유와 환유의 지평/진순애(문학평론가)ㆍ105

저렇게 많은 눈동자들이
무슨 의미를 가졌다면
말을 하고 싶어 한다면

아마 어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요

당장 모든 걸 집어치우고 뛰어 내려와
까닭 없이 결리던 어제저녁 어깨는
좀 나아졌느냐는 물음
그 위로 다음에
봄이 얼마만큼 와 있냐는
초롱초롱한 질문을 하고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요

풀잎 자두꽃 숲길 시냇물 고양이 안개 배추흰나비
아이들 그리고 둥근 돌멩이 몇 개
얼핏 이런 것들이 우리의 봄을 열어줄 것이라는
낮은 입속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알 수 없는 말
눈을 뜨고도 읽을 수 없는 까마득한 문맥(文脈)들
그러고는 하나둘씩 뚝뚝 떨어져 내렸지요

더운 욕조에 누워 안드로메다보다 더 먼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어떤 사람은
그제야 저 무수한 눈물방울 점자(點子) 문장 속에서
봄은 올 거야
그 짧은 문장 한 자 한 자를 결리지 않는 마음으로 더듬어 읽어보기는 했다고 하지만요
- 「물방울」 전문

각을 잰다
탄산수같이 청량한
성감대의 각도를 찾아
초크를 칠한다
톡
환청(幻聽)이어도 좋을
붉은 속도를 따라
밤 불빛을 따라
둥글고 반들반들하게
욕망이 구른다
구르다가
사각(四角)의 면(面)에서
마침내 탄성처럼 몸 부딪는
이 시큰거리는 당착(撞着)!
다시 초크를 칠하고
또 한 번 눈으로 큐를 재는
은밀한 욕망의 각도 궤도
톡
한밤의 댐을 무너뜨릴 듯
흥분처럼 굴러 청량한 새벽
누군가의 알몸에 가 부딪치는
이 둥근 절정감!
- 「한밤의 당구」 전문

돗자리에서 축 늘어져 가꼬
늘근 닭 시키맹키로
부리를 내놓고
꼬극꼬극 조아림시롱
정오를 기다리는디
잠이 들었다 깼다 허믄서
지상의 볏이 꼿꼿허게 서 가꼬
꼬그덕 꼬그덕
홰를 치는디
워매 끈적 끈적
더워서 환장하긋네
침을 닦고
모시 몇 알 조사 묵고
하드 한 개 베껴 물고
조를 생각헝께
숨이 턱턱 막혀오고
익모초맹키로
잠 깨는 디는 질이네
- 「조 생각」 전문

엄마, 종부세가 뭐야?
우리와는 태생부터 다른 종류의 새야.
높이 날아?
응. 내년 하반기부터는 아마도 아파트 맨 꼭대기 층까지 날아올라.
솔개 비슷한 새야?
아니야, 송골매 비슷해.
나도 종부새 되고 싶다.
느검마 느가부지 저 세상 가도 물려받을 수 없어.
난 왜 선택 없이 태어났을까?
뭐?
엄마 아빠는 나를 원해서 만들었겠지만 나는 선택 없이 눈떠보니까 이 집에 살고 있잖아.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 너에게 물어볼 수 없었잖아. 그렇지만 먹을 거 생기면 너 먼저 챙겨주잖아.
엄마 근데 강남은 20억짜리 전세도 있나 봐?
뭐? 2억이겠지.
아냐, 뉴스에서 20억이라고 했어.
20원이든 200원이든 2000원이든 우리와는 동글뱅이 그리는 방법이 달라.
20억 주고 전세 사는 사람들은 똥도 금색일까?
그건 염려 마. 아프지 않은 이상 똥색은 그냥 똥색일 거야.
차라리 집을 사지 왜 전세로 살까?
종부세 내기 싫을 수도 있고. 살다 보면 이유가 많아. 그렇지만 별장도 있을 거야. 관리인도 있을 거고. 왜 차 타고 가다 보면 강물 옆 산속에 집들 많잖아.
부러워?
부럽지.
세상 땅이 너 발아래에 있으니까 부러워 말고.
우리, 땅 부자야?
그럼 그렇고말고. 콩 심고 팥 심으면 그 줄기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 볼리비아까지 날아갈 건데 뭐. 그 세가 바로 그 새야. 그러니까 아프지 좀 말고. 장가가려면 운동도 하고. 느검마 뽀뽀도 많이 해주고.
아부지, 우리도 돈 벌어서 종부세 내고 영수증 코팅해서 액자 해놓자.
그래.
은제?
곧.
- 「종부세」 전문

눈은 먼 기적을 울리는 기차 소리 산중 사찰 범종 소리 아침 열 시에 벚꽃 흩날리는 소리 하염없이 불어나는 하얀 목소리 눈은 수평선 너머 혼자 선 등대를 울리는 소리

눈이 내리는데
자꾸만 달리는데

목포역 대합실 오지 않는 눈을 기다리는 눈 파도 소리 이는 천사대교 졸고 있는 오음산 지나 배미산 지나 대성산 따라 길게 이어지는 눈 보드카 한 잔에 눈을 찾아 헤매는 눈

눈은 베란다 밖 감나무 가지에서 자고 있네
눈은 배를 깔고 누워 설국(雪國) 148페이지를 펴
내 얼굴에 덮네
- 「눈」 전문


화장을 허고 있는디
어매가 으따 애 어매가 입술을 뭐더러 삘갛게 칠하냐
헙디다
그람서 내 베니를 들었다 놨다 허믄서
나도 쪼까 발라불까
헙디다
내가 살살 발라준께
어매가 금방 지워진께 쪼까 더 칠해봐야
헙디다
쪼까 더 칠해준께
우개입술허고 아랫입술허고 움질움질 문지르믄서
색경을 요리조리 비춰 보믄서 씨익
웃습디다
울 어매 시집가도 되것네 헝께
워매 워매 느므 삘갛다고 지워부러라 지워부러라
헙디다
내가 지울라고 헝께
싸게 진달래꽃 귀경 가자고 땀 닦을 손수건을 챙기던
울 어매
손수건에서 울 어매 냄새가 나부요
울 어매 봄은 은제 온당가
- 「손수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