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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인동네》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시인이 첫 시집의 세계로 끌어올린 것은 들끓는 말들의 태동과 동시에 뒤섞여버린 마블링의 세계처럼 보인다. 사유의 소란으로서 끊임없이 볼륨을 키우면서 꿈과 현실의 문턱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살아야 하므로/가끔씩 수많은 말들 위에 안장처럼 침묵이 얹”(「갇힌 말」)힐 수밖에 없었던 지난 삶의 여진으로서, 첫 시집의 근원지가 탄생하기도 한다.

신종호 시인이 해설을 통해서도 밝히듯, 시편들을 ‘갇힌 말’들의 질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언어가 질주하는 동안 사유는 속도를 올리고, 지나온 시절과 지나갈 시절을 동시에 휘젓는 이 광활한 언어의 운동신경은 시인의 개성 넘치는 목소리를 잘 반영하기도 한다. 멈추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시인의 안간힘이 시를 통해 묵직하게 다가온다.

벗어나려는 생활의 노력과 탈피하고자 하는 언어의 기원들, 그리고 떠다니는 우연들은 시인의 지구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커다란 카테고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카테고리가 한 데 어울려 마블링을 짓는다. 시를 읽으며 우리는 그것이 어떤 빛깔과 모양으로 새롭게 탄생할지 지켜보게 될 것이다. 해설에서 이것을 “회전의 춤”이라고 명명한 것과 같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지구처럼 시인의 언어를 길러내는 행성들도 끊임없이 돌고 있다. 그 멈추지 않는 순간은 “함부로 휘저을수록 더욱더 아름다운”(「마블링」) 이 지구별의 민낯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

제1부
캔 13 룰랄라 정전 14 가면무도회 16 비누공주 18 시도 안 되는 째깍 20 그래피티 22 마블링 24 시루 속 기다림 25 젠가 게임 26 모래여자 28 리모컨 30 데칼코마니 32 수박 34 이면 35 페이스 오프 36 모래편지 38 사랑니 40 샌드 애니메이션 42 파밭에서 44

제2부
갈치 47 모서리도 흉기가 될 수 있다 48 냉장고 사내 50 평행선 사이의 거리 52 껍질경전 53 무당거미 54 갇힌 말 56 나방의 꿈 58 대낮을 짖다 59 꿈꾸는 미라 60 붉고 둥근 행성들 62 까칠까칠한 그녀들 64 물방울화석 66 달팽이관이 불안하다 67 하늘막장 68 유리벽 70 손이 길을 말한다 72 그릇은 그릇을 안다 73 엿장수 74

제3부
화석 77 나는 날마다 뱀을 낳는다 78 인어 낚시 80 분재소나무 82 팽이 83 공중 시계 84 뿌리 잃은 집 86 무진장 김밥 88 대출받은 봄 90 외딴집 91 열쇠 92 항아리 속에 잠든 새 94 찔레꽃 무덤 96 도둑맞은 편지 97 베틀에 앉아 98 독도 100 몽산포 바다 102 물에 살아도 물새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104 달항아리 106

해설 녹슬고 싶지 않은 생이므로 107
신종호(시인)

얕은 수심을 출렁이며 오늘도 잠들지 못하는 몽산포
부실한 그물에 절망하는 바다
사슬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가슴속에서 키우던 욕심 많은 고래 한 마리
질긴 낚싯줄에 매달려 운다

마음만 먹으면 넘실대는 저 바다의 문 언제든지 꽉 걸어
잠글 수 있는가
거대한 빗장 하나 갖고 싶다

-「몽산포 바다」 중에서

미처 다 읽어내지 못한 소금기 머금은 편지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그의 편지를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나는 튼튼한 모래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모래편지」 중에서

잠시만 눈을 붙여도
환하게 물속 지도가 그려진다.

다가갈수록 멀어진다.

수몰되지 않는 마음만
물 위를 걷는다.

파문(波紋)에 휩쓸리는 제비꽃

저 꽃이 지면
어쩌면 제비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인의 自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