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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 서윤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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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서윤후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1년 05월 21일
  • 쪽수 : 132
  • ISBN : 978895467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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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부러지더라도 희미해지지 말자는 약속을 해요”
슬픔의 한가운데로 가라앉는 이들에게 건네는 끈질기고 다정한 안부,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출판사 서평

문학동네시인선 155번째 시집으로 서윤후 시인의 네번째 시집을 펴낸다. 2009년 등단 이후 많은 주목을 받으며 시뿐만 아니라 에세이, 그림시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온 시인이 그동안의 주목에 값할 만큼 젊고도 원숙한 단면을 펼쳐 보인다. 한 시인의 시세계 안에서 소년의 아린 푸름과 노년의 짙은 회색빛 회고를 함께 보여주었던 서윤후는 이제 켜켜이 쌓아온 슬픔의 복잡다단한 퇴적층을 내보인다. 우리에게 슬픔은 곁에 두고 항상 들여다보는 친근하면서도 서러운 감정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기에 차라리 슬픔과 가까워지기를 택하고 만 사람들은 슬픔과 공존하는 법을 몸으로 겪어가고 있다. 서윤후는 슬픔이라는 감정과 우리의 관계를 골똘히 들여다보며 슬픔을 이해하는 법을, 그리고 슬픔으로부터 성숙하게 멀어지는 길을 보여준다.

슬픔에게서 재주가 늘어나는 것 같아

녹슨 대문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을 글썽거린다고 생각한 적 있었지 망설이던 말이 발을 절며 다가와 매일 낭떠러지에 있다고 나를 종용하고

이제 등에 몰두하자는 말을 했지 두 눈동자의 주름을 펼치며 바라보자고 했지 그러나 너무 많은 슬픔이 기성품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누구나 붙잡고 말하게 되는
_「누가 되는 슬픔」 부분

다정함을 적선하여 많은 사람을 유리 진열장에 두었지요. 새벽 출국장처럼, 대부분 투명하게 사라졌지만…… 한때 북적거림을 끌어안고 버텼습니다. 고독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이었네요.

하룻밤 사이 몇천 년을 건넌 사람처럼 지쳤어요. 슬픔을 공산품처럼 다루게 되었지요. 창밖 사이렌만 울려도 움찔합니다. 나의 알람이 울렸나요? 가스레인지를 보고 현관문을 다시 잠급니다. 그대로인 채로 엉망일 수도 있다는 게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진열장 사람들이 하나둘 넘어집니다. 빗금으로 가득한 나의 광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차라리 그게 낫습니다. 눈에 보여야 수리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아직 이곳은 아픈 곳이 보이지 않는 암흑병동입니다.
_「건투를 빕니다」 부분

우리 곁엔 “너무 많은 슬픔”이 있다. 마치 슬픔과 함께 태어난 것처럼 슬픔을 품고 있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 어째서 우리가 슬퍼하는지 영문도 모를 지경이다. 허나 슬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픔의 기원을 찾아낼 수 있다. “그해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을 반듯하게 심고/ 기나긴 가로수들을 지나왔군요”라고 독백하는 우리는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만 간수하며”(「허밍버드」) 산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무언가가 도려져나간 자리를 그대로 비워두고 산다. “온다고 하곤 오지 않는 것들”의 이름을 밉고 아프게 담는 우리들. “그게 용서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모두 아팠으면 좋겠다”(「그대들은 나의 좋았던 날」)는 말은 우리가 슬픔을 대하는 최대한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얼음이 녹아내리듯 상태 변화한 슬픔은 흐르고 휘발되고 섞인다. 움직이기 시작한 슬픔은 모두가 아는 각자의 슬픔에서 아무도 모르는 모두의 슬픔, 이른바 실재적 슬픔의 형이상학이라는 결정체를 추출한다. (……) 새로운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삶에 이르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바디우의 생각은 반대의 경우에도 유효할 것이다. 새로운 슬픔을 선택하는 것은 진정한 삶에 이르는 선택이다. 행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슬픔 역시 동물적 특질들로 환원될 수 없는 삶에 대해 대답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_박혜진 해설, 「내가 되지 않는 시」에서

서윤후에게서 슬픔은 멀리 떼어낼 수 없는 황홀한 감정이기도 하다. “슬플수록 분명하게 자라는 것”이 “되고 싶어서 상처를 애지중지 여기던 시절”(「눈빛수련」)이 있었다. 이 슬픔은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슬픔”(해설 부분)으로 ‘나’는 슬픔을 기꺼이 누리며 슬픔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슬픔과 나의 경계가 아스라하고 어슴푸레해지는 동안 나는 나의 슬픔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내면의 슬픔을 자꾸만 쓰다듬고 바라보면서 온전히 느낀다. 서윤후의 시들은 슬픔을 말하며 찬란하고 황홀하고 외롭고 고독하다. 슬픔의 다양한 양상이 ‘미러볼’처럼 회전하며 펼쳐질 때 시집은 슬픔의 빛깔들로 다채롭고 오묘해진다.
그러나 시인은 손에 고이는 슬픔을 어루만지면서도 슬픔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슬픔은 ‘나’를 온전하게 하지만, “서로를 보기 위해”(「공동 언덕」)서는 슬픔으로부터 고개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바깥의 슬픔을 주목한다. “바닥을 구슬리는 훌쩍거림 누추한 심장 소리 목이 쉰 흐느낌”(「새벽의 초인종이 들리면 누가」)이 들려오기를 기다릴 때, 복작거리는 소리들은 아파하는 우리의 목소리다. 시인은 “아파야만 아픔이 풀릴 수 있”다며 “울음소릴” “내가 들어요”(「안마의 기초」)라고 말한다. 슬픔을 듣는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까.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슬픔의 독해 속에서 슬픔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비로소 슬픔 바깥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부축을 그만하기로 해요
넘어지는 쪽에서 일어나는 법을 배우진 말아요
누가 나타날 것 같다는 기대를 저버려요

멀리 가려는 당신의 마음을 볼 수 있어요 투시력 같은 건 믿음과 의심이 사랑할 때 생기는 능력이지요
두고 가는 것과 버리는 것이 다르듯
우리 서로의 나머지는 되지 말아요
더하고 뺄 것 없이 속삭여요
(……)
감출수록 돋아나는 우리는
모든 걸 멈추고 잠깐만 창피해져요
지금은 빨강이 필요하니까

우리는 과녁 앞에 쏟아져버린 화살이 되어
부러지더라도
희미해지지 말자는 약속을 해요
서로의 가장 빨간 부분을 겨누면서
멀리 가려는 뒷모습에
잘 가지 말라고 말하는

오늘은 당신이
내게 참 잘 어울리는 날이었어요
_「공범」 부분

서윤후는 우리에게 서로 다가가고 서로를 감당하자고 말한다. 우리는 슬픔에 약하지만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 또한 우리뿐이다. “잠깐만 창피해”질 용기를 내어 “멀리 가려는 뒷모습에/ 잘 가지 말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슬픔을 만들어내는 헤어짐을 극복하고 다시 만날 수 있다. “위험한 쪽을 내다보지 않는 우리의 아늑함을/ 애태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피오르드의 연인」)며 서윤후는 우리로 하여금 안락하고 안온한 각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가 만나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지만 “헐떡일수록 질겨지는 서로를 갈아입고서”(「린넨 시절」) 과정의 힘듦을 온전히 감내하려 한다. 서로에게 향하는 말들은 서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계속 뒤섞일 테니/ 가장 아름다운 범벅이 될 테니”(「오늘 저녁이 어느 시대인지 모르고」). 너에게 다가가기에 ‘나’는 너무 어렵지만, 반드시 다가가겠다고 의지를 표명한다. “나는 부지런한 사랑뿐이라서 오래가”(「불개미지옥천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얼굴로 만나서/ 같은 표정으로 헤어지는”(「모모제인(某某諸人)」), “사랑에 흠씬 두들겨맞고도 계속해서/ 포옹을 여는 사람”(「폐막식을 위하여」)일 우리들에게 서윤후는 우리가 분명 만날 수 있다고, 끈질기고 다정한 용기의 말을 건넨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가장 아름다운 범벅이 될 테니
괴도/ 발광고지(發狂高地)/ 누가 되는 슬픔/ 사슬 뜨기/ 신빙과 결속/ 무기력 투구를 쓰고 / 의문과 실토/ 빛불/ 모모제인(某某諸人)/ 금붕어불꽃/ 실화를 바탕으로/ 오늘 저녁이 어느 시대인지 모르고/ 데탕트/ 그대들은 나의 좋았던 날/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틀린/ 시

2부 너는 너의 어둠이 마음에 드니
내가 되지 않는 것들/ 초절기교(超絶技巧)/ 누가/ 신비와 무질서/ 부록에도 비가 내리지/ 안마의 기초/ 상아먹(象牙墨)/ 야수의 세계/ 매복/ 이미테이션 텐트/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정물원/ 계수나무/ 물보라, 산문, 눈총/ 밀랍 양초를 켜둔 청록색 식탁/ 하임(Heim)/ 성탄전야/ 어젯밤 카레, 내일 빵

3부 우리의 눈빛만이 살길이었다
공범/ 나나너너/ 레몬스웨터블루/ 주말부부/ 대화 줍기/ 망원경을 선글라스처럼 쓰고 다니면/ 휴업일지/ 불개미지옥천사/ 미궁/ 모와 미/ 린넨 시절/ 천박한 사랑에 관하여/ 건투를 빕니다/ 피오르드의 연인/ 공동 언덕/ 허밍버드/ 눈빛수련/ 끝에서 첫번째/ 폐막식을 위하여

해설| 내가 되지 않는 시
| 박혜진(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또, 또 아름답기 위해 사라지는 것들

어제 입었던 옷을 입는다
이변이 없는 한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몇 개의 부음을 화면에서 쓸어넘긴다

열몇 개 와이파이 중에
비밀번호 들어맞는 게 없다
매일 두절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어
_「발광고지(發狂高地)」 부분

실없이 저물었다가 돌아오지 않는
옛사랑에 꽂아둔 실핀들
결코 흘러내리지 않을 것들

내가 매달려도 내가 될 수 없는
공중의 손잡이들
손님 없이 시동 거는 버스 안엔

내가 되진 않고
나를 기다리기만 하는 옆자리들
_「내가 되지 않는 것들」 부분

모와 미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모는 미를, 미는 모를 떠난 적 없이 끝이 났다. 이 작고 가여운 서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선별하는 재판만 남아 있었을 뿐.

모는 여름으로, 미는 겨울로 갔을 것이다. ‘소식에 따르면’이라고 부를 만한 소문도 남기지 않고. 모와 미를 묘사하는 사람은 모와 미가 보고 싶거나, 모와 미를 잊어야 하는 사람일 것이다.
_「모와 미」 부분

슬플수록 분명하게 자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되고 싶어서 상처를 애지중지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상처가 아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헤매어도 좋으니 잃고 싶었습니다. 줍는 것 없이 돌아가도 좋으니 떨어지고 싶었습니다. 눈빛만이 가장 늦게 몸속에 잠드는 손님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계속 들리는 창문을 열고, 이제 막 자라난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먼저 줍게 되는지 궁금해지는 날엔 가을이라 말했습니다.
_「눈빛수련」 부분

겨울이면 우린 서로의 아껴 모았던 여름으로 녹이고 싶은 물의 마음을 헤맸습니다 그 속에서 꺼낸 죽은 생물은 너의 손이었을까요 그해 여름, 사진 한 장 없이 함께 기억하는 바다에 대해서 엇비슷한 제목을 지으며 살아갈 수도 있겠어요

너의 언어 너의 노래 너의 이름을 나는 여름의 한 구절로 외운 적도 있었는데, 너는 왜 여름을 좋아해? 이 세상 온통이 여름인 것처럼? 아득한 질문은 나를 오래 살게 합니다 벙어리장갑보다 작은 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혹독하고 추웠던 한 시절을 녹이기 위해 이만큼 덥고 습하게 숨쉬며 견디는 것 같아요 나는 언제나, 곁에 내가 없는 당신만을 좋아했는데 두 손으로 빠져나가는 우린 비늘을 닮고도 다른 헤엄을 친 것이 틀림없어요
_「나나너너」 부분

잘 모르겠어 모르는 게 많아 신비로울 줄 알았던 텅 빈 해골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고 내장까지 꽉 찬 헛기침으로 구름을 걷고
내가 누군가의 기분이 될 수 있으리라 당신의 흥미를 비틀거리게 하리라
하지만 난 신의 오르골이 되었지 이쯤 해둘까 끝나지 않는 인터뷰 말미에는 말하게 될 것
무대를 떠나겠다고, 내가 남긴 노래 내가 남긴 말, 나의 춤보다 먼저 늙어버릴 육신!
질 좋은 무대의상이 있었지 출처도 모를 협찬이었지만 전 재산을 바쳐 그것을 걸쳐 입고 마지막 무대에 올라선다
밥상 밑에서 맨발을 긁적거리며 하얀 생선살을 가지런하게 바르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네 베스트 앨범에선 아직 분장을 지우지 않고 잠든 이가 깨어나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_「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부분

저자소개

생년월일 1990

저자 서윤후는 199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쭉 자랐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2016년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출간했다. 충무로, 남가좌동, 북가좌동, 부천 중동을 거쳐 지금은 서울 고척동에 살고 있다. 어쩌면 서울살이가 첫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자리로 돌아와 잘 살고 싶어서 자꾸 여행을 떠나는데, 번번이 다짐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자주 떠날 궁리를 한다. 현재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첫 시집을 내고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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