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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 장수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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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장수양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1년 03월 10일
  • 쪽수 : 180
  • ISBN : 9788954677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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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1년 문학동네시인선의 문을 여는 시집은 201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장수양 시인의 첫 시집이다. “장수양의 시는 속삭이며 걷는다. 허공의 접촉, 허공의 온도를 느끼며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 그 속삭임은 일상의 풍경을 매달고 홀로 나아가지만, 삶의 가장 가까운 단면에 시적 언어의 섬세한 뉘앙스로 존재의 차원을 확장한다.”(시인 박상순)

겨울의 끝, “맑아서 보이지 않는/ 고백이 눈으로 내렸”(「선의」)던 계절을 지나 이제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연말상영」). 시공간의 위계를 지우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물어 자신만의 시적 공간을 펼쳐 보이는 시 64편, 섬세히 나누어 3부에 담았다.

출판사 서평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누군가를 만졌던 손끝
그 손끝에서 태어나는 시

2021년 문학동네시인선의 문을 여는 시집은 201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장수양 시인의 첫 시집이다. “장수양의 시는 속삭이며 걷는다. 허공의 접촉, 허공의 온도를 느끼며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 그 속삭임은 일상의 풍경을 매달고 홀로 나아가지만, 삶의 가장 가까운 단면에 시적 언어의 섬세한 뉘앙스로 존재의 차원을 확장한다.”(시인 박상순) 겨울의 끝, “맑아서 보이지 않는/ 고백이 눈으로 내렸”(「선의」)던 계절을 지나 이제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연말상영」). 시공간의 위계를 지우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물어 자신만의 시적 공간을 펼쳐 보이는 시 64편, 섬세히 나누어 3부에 담았다.

독특한 미학으로 우리를 찾아온 장수양 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 방법은 여럿일 것이다. 앞서 인용한 박상순 시인의 말처럼 ‘허공의 접촉, 허공의 온도’를 감지하며 거기서 시인이 포착한 것이 무엇일지 따라 읽을 수도 있을 것이고, 「중학생」 「틀림없는 중학생」 「중학생의 별」 혹은 「나란한 시」 「여는 시」 「여읜 시」 그리고 「섬광의 시」와 「실루엣의 시」, 「소다수의 삶」 「레몬진저의 새로운 삶」처럼 제목의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단서 삼아 그 시들을 우선 연이어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이와 호흡이 다양한 시들이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둘 혹은 셋 사이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거나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꾸리는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시(「같아요」 「아니스타와 아니불빛」 「우산이 있는 소품」 「우리의 주인님」 등)도 다수 포진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한 권의 시집에서 누릴 수 있는 쾌감을 이토록 다채롭고 선명하게 담은 시집도 흔치 않으리라.

삶은 너무 많은 부재로 덮여 있고 사람들은 그 빈 공간을 조롱으로 채워넣으려 한다 자본주의는 결핍을 그대로 놔두는 것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비난에 조롱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알고 있는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는, 큰 노력이 필요 없는, 일시적인 대처법 안에 들어가 있다 그나저나 레몬진저, 내 삶에 주어졌을 약 이백오십 개 정도의 금요일을 네가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요일에서 금요일로 이어지는 연결음은 하얗고 파랗고 너처럼 선명하겠지
_「소다수의 삶」에서

-당신 앞에서 당신을 구걸하지도 않는 악마
-제 것
-당신
-제 것 아님
-사랑
-뭐가 됐든 당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뭐가 남았습니까?
-축하합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랍니다!
_「박쥐와 당신」에서

‘밤’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양손에 쥐고 읽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장수양의 시들에는 깊은 밤 혼몽한 상태로 꿈에서 깨어나 ‘지금이 진짜 밤이라고ㆍ’라고 갸웃할 때 느껴지는 비일상성, 시공간에 대한 낯선 감각과 거기서 발생하는 듯한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서시에 해당하는 시 「유리체」 도입부에 등장하는, 도로 위에 선 “커다란 코트를 입은 사람”, 그 코트가 “날개처럼” 보이는 아마도 어느 밤, 화자는 “그가 위험하지 않길 바라”며 “한 번쯤 날았다고 믿는 호의로 해둔다/ 함부로 뒹굴어도 아프지 않게” 말이다. “우리의 낯섦은 죄가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는 것보다 상냥하다”고 느껴지는 밤의 이야기들. 이것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모호하게 만드는 극장 안의 어둠 속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극장에서는 그래”라는, 표제가 된 시구로 시작하는 시 「연말상영」에서다. “모두 떠나고 나면/ 흐트러지는 공간으로서 눈뜨는/ 어둠이 있”는 곳. 거기서 우리는 “누굴 만졌던 손끝을 기억하고” 만다.

너는 어두울수록 맑아지는 게 있다고 했지만 나는 컴컴한 공간에서 매번 어리숙했다. 숨쉬는 걸 잊어버려서, 나중에는 귓가에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닿는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나는 어둠 속에 하얗게 떠오른 너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런 걸 사람들은 시네마라고 부르는 걸까.
_「연말상영」에서

더불어 ‘시인의 말’부터 시 제목, 시구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장수양 시에서 ‘사랑’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고파, 추워 같은 말을 무심코 하기는 싫어
사랑해, 좋아 같은 말은
죽어도 입에 안 익지
우리도 안다
매일매일은 사랑할 수 없지
_「언니의 밤」에서

매일매일은 할 수 없는 것, 멈춘 채 기다리고 있는 것,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조용히 해야 하는 것, 만개하지 않았던 것이자 슬픈 것, ‘친구’와 ‘너’ 사이에 생긴 거대한 건널목과 같은 것으로 사랑은 언급되고 사유된다.

잠깐 날았다가 오래 앉았다. 사랑들이 사람처럼 주위에 모인다.
나는 사랑들을 먹이고 재우다가 잠든다. 잠 속에서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한다.
사랑들이 나를 떠난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덮고 하얀 하늘을 날아 사라진다.
사랑으로 된 잠을 길게 끄는 사람이 뜰에 버려져 있다.
_「연강-땅」에서

해설을 덧붙이지 않고 오롯이 시의 언어만으로 담담히 채운 이 첫 시집은 창작에 대한 시인의 입장과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리라. 손을 잡으면 눈은 녹고, 그 자리에 채워질 것은 읽는 이 저마다에게 다를 터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커다란 혼자”(‘시인의 말’)인 존재가 아주 먼 곳까지 가보고 또 아주 가까이를 들여다본 일,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본 이야기, 내밀함과 환상성의 힘으로 밤을 펼치고 사랑을 담아둔 그 깊고 확장된 여정을 즐겁게 따라가볼 일이다.

ㆍ장수양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로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소회를 전한다.

Q. 첫 시집을 낸 소회가 궁금합니다.
딱 기쁜 만큼의 부끄러움이 있어요.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누구의 앞에서든 제 안에만 있던 말들을 이렇게나 늘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생각과 마음을 늘어놓고 싶은 사람인 거예요. 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시집이 나오니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듯하여 더 부끄럽습니다.

Q. 시가 가진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살아 있는 한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 있고, 모두 각자인지라 잘 맞는 말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 말을 찾지 못해 비참해지는 때도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아직 듣지 못한 말을 찾을 때 헤맬 만한 지도로써 시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는 언어의 첨단에 있기에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다면 시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첫 시집을 엮으며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 있다면?
이 시묶음으로부터 감상에 방해가 되는 심각한 의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제 시에 애써 해석해야 할 만큼 비밀스러운 것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요. 시들의 순서를 지루하지 않게 배치하고 싶었던 욕심도 있습니다. 격렬한 시가 있으면 그 다음은 되도록 평온한 시가 오도록 했어요.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고 친밀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Q.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아끼는 시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떠오르는 시들이 열 편 정도가 있는데요. 그중 소개하고 싶은 한 편은 「사랑의 조예」입니다. 이 시는 제가 어떻게 계속 시를 써야 하는지,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하던 중에 썼던 것으로, 나의 시라고 해서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들을 쓰면서 저는 시로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곁에 두게 되었습니다.

Q. 시집에 '대화' 형식의 시들이 많은 게 인상적인데요, 이러한 형식을 종종 쓰는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대화로 된 시는 덩그러니 있는 단상을 한 편의 시로 완성하기 위한 레퍼런스 중 하나입니다. 하나의 말로서 시가 나아가지 못할 때 다른 하나를 부르곤 합니다. 저 스스로는 편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때로는 꼭 하고 싶은 말을 혼자서는 이끌어낼 수 없었어요. 무엇이든 같이 말을 하고 있다는 가정이나 환상이 필요했습니다.

Q. 시인이 소개하는 자신의 시집, 독자들께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이 시집은 저한테나 소중하지, 독자 여러분께 소중할 리 없습니다. 당연한 거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시간을 할애하여 이 시들을 읽을 때,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일말의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것만은 사실이에요. 하나 더 말하면 *사랑이 들어 있어요*

목차

시인의 말

1부 안전제일
유리체/ 사람들이 떠나기를 좋아하는 세계/ 플루트/ 신년 인사/ 연말상영/ 사랑의 조예/ 수요일/ 나란한 시/ 여는 시/ 친구는 다치지 않으리/ 정원/ Pi-하고 있는/ 플라스크 속의 작은 인간/ 같아요/ 유저 인터페이스/ 중학생/ 틀림없는 중학생/ 중학생의 별/ 미소/ 휴일/ 빛의 운/ 사랑들

2부 진짜 밤
연강-땅/ 여읜 시/ 선물/ 타임/ 손가락을 접자 손가락이 없어졌다/ 이어year/ 사랑의 뉘앙스/ 작은 포크 병/ 편지화/ 우산이 있는 소품/ 요새/ 선과/ 소다수의 삶/ 레몬진저의 새로운 삶/ 사람행/ 언니의 밤/ 블러핑/ 아니스타와 아니불빛/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이 된다/ 미/ 연강-강

3부 작고 불 켜졌고 사라지지 않는
섬광의 시/ 파인/ 소라/ 박쥐와 당신/ 무크지/ 쇼자인테쉬크톨/ 컨트리/ 물 룸/ 트루먼쇼 증후군/ lesson/ 네이처/ 올해의 도마/ 연기령/ 실루엣의 시/ 미치/ 캐치!/ 우리의 주인님/ 폼포폼포폰포폰폰,1911/ 모자키스/ 티라와 오브, 그리고 티라와 오브의 아름다운 세계/ 선의

본문중에서

수은등 빛이 모여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꽃다발 같아 보인다
안을 수 있는 것으로 환원하고

눈과 물처럼 맑아야 하는 관계를 믿어
실제로는 무엇이든 흐리게 만들 뿐이지만

우리의 낯섦은 죄가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는 것보다 상냥하다
_「유리체」에서

나는 사람을 기다렸다 사람이어서 기다렸다 아무것도 나쁜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生을 부르면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을 부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_「여는 시」에서
다음이 되는 사람은 언제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부딪혔다 자꾸만 그랬다 슬픈 일들이 내 등뒤로 결코 달리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처음 당신에게 가려 하였을 때 왜 달리고 싶었는지, 기쁨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_「선물」에서

-당신 앞에서 당신을 구걸하지도 않는 악마
-제 것
-당신
-제 것 아님
-사랑
-뭐가 됐든 당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뭐가 남았습니까?
-축하합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랍니다!
_「박쥐와 당신」에서

조용한 삶이란 건강한 사람들의 종교라고 생각했다
헤드라이트와 수은등이 위로만 손 뻗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믿어주는 사람은
절대 다수에게 사랑받아도 질투하지 않겠다고
_「물 룸」에서

있어요
사랑이 해냈고
껴안으면 눈이 쏟아지고 그것도 함박눈이
뭉친 듯이 크게, 감히 무엇도 이처럼 하얗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이 세차게 우리의 가슴을 두들겨
_「캐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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