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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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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 소설집

  • 저 : 김종광
  • 출판사 : 작가정신
  • 발행 : 2020년 06월 30일
  • 쪽수 : 336
  • ISBN : 979116026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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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큰글자도서 소개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사는 날 동안 얼굴 붉히면서 살 거 뭐 있나.
같이 놀러나 댕기자”

거침없이 콸콸 쏟아지는 ‘썰’의 향연!
8년 만에 선보이는 김종광의 다섯 번째 소설집


소싯적 놀 만큼 놀아본 범골 어르신들이 건네는 노는 법의 진수
나들이하듯 가벼이 세상을 활보하는 그들이 ‘한 수’ 가르쳐주러
때 빼고 광 내고 행차하셨다!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을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 김종광의 [놀러 가자고요]가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등의 소설을 발표하고, 청소년 및 역사 소설을 아우르는 등 폭넓은 행보를 이어온 그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2011년에서 2017년까지 잡지 지면에 발표했던 소설들 가운데 9편을 수록한 이 책은 농촌 소도시를 배경으로 세련된 삶의 뒷전으로 밀려난 정답고 순박한 마음과 풍경들을 그려낸다. 특유의 걸출한 입담과 페이소스는 더 깊어졌고, 도시와 농촌, 노인과 아이, 표준어와 방언, 구술과 서술, 전설과 역사 등 대극점에 위치한 요소를 하나로 눙쳐 세계를 조형하는 기술은 더 노련해졌다. 어쩌면 김종광에게는 소설가라기보다 ‘썰’을 풀어내는 재담꾼 또는 만담가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눈물을 쏙 빼도록 웃기고 울리는 천상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 또한 역시 김종광이고, 참으로 김종광답다.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를 비롯해 「[범골사] 해설」, 「범골 달인 열전」, 「김사또」, 「봇도랑 치기」 등 [놀러 가자고요] 속 작품들은 대체로 김종광이 나고 자란 백호리 ‘범골’이라는 농촌 마을을 주된 배경으로 한다. 김종광이 그려내는 농촌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소위 ‘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들의 모습은 결코 쓸쓸하거나 쇠락한 느낌이 아니다. 농촌은 적당한 체념과 적당한 욕망이 공존하고 딱 그만큼의 활기와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그려지는데, 바로 이곳에 ‘진짜 어른들의 세계’가 있음을 김종광은 믿는다. 그리고 세계는 봇도랑 치기처럼 힘과 기술이 아니라 생의 요령과 끈기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곳임을 환기시킨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체득한 냉철한 현실인식과 낙관, 지혜와 여유. 살다 보면 놀러 가듯 가볍고 흥에 겨운 발걸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김종광은 일깨운다. 세상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꼰대’가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저절로 앎의 경지에 이른 ‘진짜 어른들’의 세계를, 그들의 역사를 김종광이 끈덕지게 되새김하고 기록하는 이유다.

“사는 날 동안 얼굴 붉히면서 살 거 뭐 있나.
같이 놀러나 댕기자”

거침없이 콸콸 쏟아지는 ‘썰’의 향연!
8년 만에 선보이는 김종광의 다섯 번째 소설집

소싯적 놀 만큼 놀아본 범골 어르신들이 건네는 노는 법의 진수
나들이하듯 가벼이 세상을 활보하는 그들이 ‘한 수’ 가르쳐주러
때 빼고 광 내고 행차하셨다!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을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 김종광의 『놀러 가자고요』가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등의 소설을 발표하고, 청소년 및 역사 소설을 아우르는 등 폭넓은 행보를 이어온 그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2011년에서 2017년까지 잡지 지면에 발표했던 소설들 가운데 9편을 수록한 이 책은?농촌 소도시를 배경으로 세련된 삶의 뒷전으로 밀려난 정답고 순박한 마음과 풍경들을 그려낸다. 특유의 걸출한 입담과 페이소스는 더 깊어졌고, 도시와 농촌, 노인과 아이, 표준어와 방언, 구술과 서술, 전설과 역사 등 대극점에 위치한 요소를 하나로 눙쳐 세계를 조형하는 기술은 더 노련해졌다. 어쩌면 김종광에게는 소설가라기보다 ‘썰’을 풀어내는 재담꾼 또는 만담가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눈물을 쏙 빼도록 웃기고 울리는 천상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 또한 역시 김종광이고, 참으로 김종광답다.?

표제작 ?「놀러?가자고요」를?비롯해 ?「『범골사』?해설」, ?「범골?달인?열전」, ?「김사또」, ?「봇도랑?치기」? 등 ?『놀러?가자고요』 속 작품들은 대체로 김종광이? 나고? 자란? 백호리 ?‘범골’이라는 ?농촌 ?마을을 ?주된 ?배경으로 ?한다.?김종광이 그려내는 농촌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소위 ‘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들의 모습은 결코 쓸쓸하거나 쇠락한 느낌이 아니다. 농촌은 적당한 체념과 적당한 욕망이 공존하고 딱 그만큼의 활기와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그려지는데, 바로 이곳에 ‘진짜 어른들의 세계’가 있음을 김종광은 믿는다. 그리고 세계는 봇도랑 치기처럼 힘과 기술이 아니라 생의 요령과 끈기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곳임을 환기시킨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체득한 냉철한 현실인식과 낙관, 지혜와 여유. 살다 보면 놀러 가듯 가볍고 흥에 겨운 발걸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김종광은 일깨운다. 세상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꼰대’가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저절로 앎의 경지에 이른 ‘진짜 어른들’의 세계를, 그들의 역사를 김종광이 끈덕지게 되새김하고 기록하는 이유다.?

출판사 서평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 김종광

김종광의 소설에서 전설은 옛날 옛적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전설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도 끝없이 생겨난다. 백호리 사람들에게 “김연아보다 더 희망을 주는 전설”(196쪽)이 30여 년 전에 탄생하는데, 일제 때 저수지 바닥으로 던져진 150돈짜리 금송아지가 바로 그것이다. 황금 열풍 시대 서부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죄다 농사일 제쳐두고 ‘로또 당첨’에만 열 올리는 모습은 씁쓸한 미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전설은 깨고 나면 사라지는 꿈처럼, 손에 잡히는 희망처럼 삶으로 찾아든다.
전설은 ‘기록’을 통해 실체가 있는 ‘역사’가 된다. 그리고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술이다. 「[범골사] 해설」에서 범골이라는 공간에 관한 서술의 역사를, 「범골 달인 열전」에서 범골인, 즉 모내기, 견인, 부업, 바둑 달인들의 내력을 펼치는 것도 ‘범골’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서술상의 책략이다. 작가는 왜 그토록 ‘범골사’에 집착하는가. 그 답의 실마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332쪽)는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버이를 바라보는 눈길로 현재와 과거를 두루 살피고, 한평생 소박하나마 충실하게 살아온 자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은 그가 추구하는 소설의 본령과도 닿아 있다.

“엄마 아빠가 공평하게 네 한숨을 나눠 가진 거야!
너, 인마, 너무 행복한 거야. 세상에 이런 가족이 어딨어?”


김종광은 자기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다. 충남 출신의 소설가 지망생 이야기를 담은 [71년생 다인이]가 그랬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린 [짬뽕과 소주의 힘]이 그랬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별의별 것들에 대한 기록인 [별의별]도 자전적 체험을 담았다. [놀러 가자고요]에서도 김종광 작가 본인과 가족들의 이야기가 슬며시, 때론 노골적으로 끼어든다. 「[범골사] 해설」에서 범골이 배출한 “듣보잡 소설가”(68쪽), 71년생 ‘소판돈’은 누가 봐도 김종광 작가일 텐데, ‘소판돈’은 ‘소를 판 돈’이란 뜻으로 실제로 집에서 소를 키웠던 경험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김사또」 「놀러가자고요」에서 심사가 뒤틀리면 낫 가는 소리를 낸다는 백호리 노인회장 ‘김사또’와 그런 남편의 성미를 적절히 이용하는 아내 ‘오지랖’ 또한 부모님의 모습이 투영되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장기 호랑이」, 「아홉 살배기의 한숨」, 「만병통치 욕조기」에서는 아들, 손자, 며느리가 총출동하여 구구절절 애틋한 가족애를 보여준다. ‘장기왕’이 되겠다는 열한 살 소년의 집념을 그린 「장기 호랑이」는 장기 모임에서 훈수를 견디다 못한 아들이 어르신의 면전에다 대고 쌍욕을 해댄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연신 사과를 하지만, 급기야 ‘퇴출’ 명령이 내려지자 마음속으로 ‘가자, 가, 더러워서 못 있겠다’고 아들 편을 든다. 「아홉 살배기의 한숨」은 제목 그대로 한숨 쉬는 버릇이 생긴 아홉 살 아이가 나오는데 갖은 애를 쓰다 ‘성장통’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할머니는 굿을 벌이자고 성화다. 「만병통치 욕조기」는 ‘스파크 반신 욕조기’를 사고 싶다는 어머니와 말리고 싶은 며느리, 정장을 쫙 빼입고 나타난 세련된 외모의 욕조기 외판원 사이에 낀 아들을 통해 멀고도 험한 ‘효도의 길’을 그린다.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 “가족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데 그러기에 “서로의 한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312쪽)이라는 뭉클한 자각이 뒤따른다.

-추우면 추워서 안 되고 더우면 더워서 안 되고
먼지 많아도 안 되고 바람 많이 불어도 안되고
비 맞아도 안 되고 딱 이맘때밖에 없어요.
-뭐라는 겨!
-놀러 가자고요!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는 노인회장 김사또의 조강지처 오지랖이 마을 주민들에게 ‘놀러 가자’고 전화를 돌린다는 내용이다. 열댓 차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인물들 저마다의 곡절 있는 사연들이 지문 없이 대화로만 이루어진 '육성'을 통해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기껏 놀러 가자고 전화했더니 “안 들려요, 안 들려!”만 연신 외쳐대는 팔순 노인부터 자식 놈 사업 쫄딱 망해 집안이 풍비박산 된 사람, 팔구십 노인네들이 버르적버르적 기어 다녀봤자 단체로 고려장 왔다는 소리만 듣는다고 타박하는 사람, 죽을병에 걸린 판국에 놀러 가는 게 대수냐면서도 틈만 나면 수작을 거는 국민학교 동창까지, 30명 정원의 대관 버스가 텅텅 비는 일 없도록 방비하고픈 오지랖 여사 마음과 달리 “하늘이 무너져도 놀러 가겠다”(116쪽)는 확답을 주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놀러 가는 거에 환장한 것처럼 방방 떨고서는 못 가? 가자고 지랄을 떨지 말든가”(133쪽)라고 구시렁대는 김사또의 말처럼, 그토록 놀고 싶어도 세상살이, 사람살이에 치여 놀지 못하는 사람들 천지다.
놀러 가는 게 뭐 별건가. 그저 친한 사람들끼리 좋은 것 보고 맛난 것도 먹으며 휴식을 갖자는 거지. 김종광은 1년에 한 번, 그것도 논갈이 끝나고 못자리하기 전 잠시 한가할 때 노는 것도 이 눈치 저 눈치, 이 사정 저 사정 다 고려해야 하니 말은 쉬워도 막상 실천하려면 어려운 게 바로 ‘놀러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그래서 더더욱 놀러 가자는 일념으로 가득 찬 범골 사람들 이야기는 꾸역꾸역 살아가는 소시민의 고충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김종광은 노는 기술이 곧 삶의 기술임을 간파한다. “얼굴 붉히면서 살 거 뭐 있나, 같이 놀러나 댕기자”(95쪽)는 범골 어르신의 말씀처럼, 살면서 그리 심각할 것도, 좌절할 것도 없다. 생의 유한함 앞에 인간은 누구나 스러져가고 잊혀져가는 존재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연대라는, 보다 넓은 범주에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 피를 나누진 않았어도 ‘한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러니 긴장 풀고, 걱정 내려놓고, 같이 세상을 활보하자. 나들이하듯 가벼이.

- 주요 내용
장기호랑이

초등학생인 나는 장기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장기호랑이라는 아이디로 장기 인터넷게임에서 어른들도 하기 힘들다는 5단의 경지에 오른다. 아빠를 따라 장사모(장기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 된 나는 주로 프로 기사인 할아버지들과 대국을 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된다.

산후조리
키우는 소 얼간년이 새끼를 낳기 닷새 전에 배 속 창자가 쏟아져 나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닌 나는 설상가상으로 구제역 때문에 집 안에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아픈 다리를 고치러 가까운 마을 병원으로 나가는 것조차 구제역으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범골사] 해설
마을역사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성염구는 범골사를 쓰기 위해 천지인실록, 범웅일기, 마유영 탄광수기, 박지관의 백호리 망자 행장기, 반일지, 범골신문, 농촌지도사 강씨의 인생편력, 장경비의 교사일기 등의 자료를 조사하다가 ‘소판돈’의 소설을 읽게 된다. 소판돈이 쓴 소설을 읽고 거짓에 맞서 진실을 밝히자는 투쟁의지가 솟구치게 된 성염구는 직접 범골사를 쓰고 해설까지 쓰게 되는데…….

범골 달인 열전
모내기의 달인 ‘모심지’와 ‘양못잘’, 견인의 달인 ‘김천소’, 부업의 달인 ‘청올치댁’, 바둑의 달인 ‘호신선’과 ‘방과외’ 등 범골에서 내로라하는 달인들이 범골의 역사와 함께 서술된다.

김사또
김사또와 그의 부인 오지랖, 그의 아들 판돈의 이야기가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1. 갈비찜>에서는 오지랖이 갈비찜을 홀랑 태워먹고 아버지와 가족들을 속인 이야기, <2. 모내기타령>은 김사또와 오지랖의 모내기 이야기, <3. 노인회장님 인터뷰>는 노인회장인 김사또의 인터뷰 대담이 실려 있다.

놀러 가자고요
노인회장 김사또 조강지처 오지랖이 마을 사람들에게 놀러 가자고 전화를 건다. 자식들이 놀러 오는 날이라서 못 가는 사람, 자식 사업이 망해서 몸져누운 사람, 농사철이라 놀러 가기 싫어하는 사람, 김사또가 싫어서 안 가는 사람, 세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_김종광

김종광의 소설에서 전설은 옛날 옛적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전설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도 끝없이 생겨난다. 백호리 사람들에게 “김연아보다 더 희망을 주는 전설”(196쪽)이 30여 년 전에 탄생하는데, 일제 때 저수지 바닥으로 던져진 150돈짜리 금송아지가 바로 그것이다. 황금 열풍 시대 서부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죄다 농사일 제쳐두고 ‘로또 당첨’에만 열 올리는 모습은 씁쓸한 미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전설은 깨고 나면 사라지는 꿈처럼, 손에 잡히는 희망처럼 삶으로 찾아든다.?
전설은 ‘기록’을 통해 실체가 있는 ‘역사’가 된다. 그리고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술이다. 「『범골사』 해설」에서 범골이라는 공간에 관한 서술의 역사를, 「범골 달인 열전」에서 범골인, 즉 모내기, 견인, 부업, 바둑 달인들의 내력을 펼치는 것도 ‘범골’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서술상의 책략이다. 작가는 왜 그토록 ‘범골사’에 집착하는가. 그 답의 실마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332쪽)는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버이를 바라보는 눈길로 현재와 과거를 두루 살피고, 한평생 소박하나마 충실하게 살아온 자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은 그가 추구하는 소설의 본령과도 닿아 있다.?


“엄마 아빠가 공평하게 네 한숨을 나눠 가진 거야!
너, 인마, 너무 행복한 거야. 세상에 이런 가족이 어딨어?”

김종광은 자기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다. 충남 출신의 소설가 지망생 이야기를 담은 『71년생 다인이』가 그랬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린 『짬뽕과 소주의 힘』이 그랬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별의별 것들에 대한 기록인 『별의별』도 자전적 체험을 담았다. 『놀러 가자고요』에서도 김종광 작가 본인과 가족들의 이야기가 슬며시, 때론 노골적으로 끼어든다. ?「『범골사』? 해설」에서 범골이 배출한 “듣보잡 소설가”(68쪽), 71년생 ‘소판돈’은 누가 봐도 김종광 작가일 텐데, ‘소판돈’은 ‘소를 판 돈’이란 뜻으로 실제로 집에서 소를 키웠던 경험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김사또」 「놀러가자고요」에서 심사가 뒤틀리면 낫 가는 소리를 낸다는 백호리 노인회장 ‘김사또’와 그런 남편의 성미를 적절히 이용하는 아내 ‘오지랖’ 또한 부모님의 모습이 투영되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장기 호랑이」, 「아홉 살배기의 한숨」, 「만병통치 욕조기」에서는 아들, 손자, 며느리가 총출동하여 구구절절 애틋한 가족애를 보여준다. ‘장기왕’이 되겠다는 열한 살 소년의 집념을 그린 「장기 호랑이」는 장기 모임에서 훈수를 견디다 못한 아들이 어르신의 면전에다 대고 쌍욕을 해댄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연신 사과를 하지만, 급기야 ‘퇴출’ 명령이 내려지자 마음속으로 ‘가자, 가, 더러워서 못 있겠다’고 아들 편을 든다. 「아홉 살배기의 한숨」은 제목 그대로 한숨 쉬는 버릇이 생긴 아홉 살 아이가 나오는데 갖은 애를 쓰다 ‘성장통’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할머니는 굿을 벌이자고 성화다. 「만병통치 욕조기」는 ‘스파크 반신 욕조기’를 사고 싶다는 어머니와 말리고 싶은 며느리, 정장을 쫙 빼입고 나타난 세련된 외모의 욕조기 외판원 사이에 낀 아들을 통해 멀고도 험한 ‘효도의 길’을 그린다.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 “가족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데 그러기에 “서로의 한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312쪽)이라는 뭉클한 자각이 뒤따른다.

-추우면 추워서 안 되고 더우면 더워서 안 되고?
먼지 많아도 안 되고 바람 많이 불어도 안되고
비 맞아도 안 되고 딱 이맘때밖에 없어요.
-뭐라는 겨!
-놀러 가자고요!

표제작 「놀러 가자호가 가라앉았던 날에 놀러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사람 등 놀러 가겠다는 사람과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한바탕 수다가 펼쳐진다.

봇도랑 치기
못자리철이 한창인 마을, 백수인 나를 비롯한 일꾼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지난여름 마지막으로 물을 대고 말라 있던 봇도랑의 잡다한 쓰레기와 흙을 치우고 일당 4만 원을 받기 위해서이다. 장애인, 이태백, 고삐리 태를 다 못 벗은 스무 살짜리 둘, 그리고 여자 한 명. 군대에서 2년 내내 삽질만 하다 몇 달 전에 전역한 나는 그들과 기세등등하게 봇도랑 치기 내기를 벌인다.

만병통치 욕조기
시골집으로 어머니를 뵈러 온 나와 아내는 집안에 들이닥친 외판원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농촌에서 보기 힘든 세련되고 날렵한 외모의 40대 여자는 만병을 고쳐주는 욕조기를 홍보한다. ‘스파크 반신 욕조기’라는 제품은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물건으로 욕조라는데 나는 사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단호박인 아내 앞에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진다.

아홉 살배기의 한숨
나는 아홉 살짜리 아들이 한숨을 쉬자 걱정스럽다. 아내 또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못 이겨 대학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한숨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한의원까지 찾아다니며 갖은 애를 쓰다가 결국 한숨이 성장통과도 같은, 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고요」는 노인회장 김사또의 조강지처 오지랖이 마을 주민들에게 ‘놀러 가자’고 전화를 돌린다는 내용이다. 열댓 차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인물들 저마다의 곡절 있는 사연들이 지문 없이 대화로만 이루어진 '육성'을 통해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기껏 놀러 가자고 전화했더니 “안 들려요, 안 들려!”만 연신 외쳐대는 팔순 노인부터 자식 놈 사업 쫄딱 망해 집안이 풍비박산 된 사람, 팔구십 노인네들이 버르적버르적 기어 다녀봤자 단체로 고려장 왔다는 소리만 듣는다고 타박하는 사람, 죽을병에 걸린 판국에 놀러 가는 게 대수냐면서도 틈만 나면 수작을 거는 국민학교 동창까지, 30명 정원의 대관 버스가 텅텅 비는 일 없도록 방비하고픈 오지랖 여사 마음과 달리 “하늘이 무너져도 놀러 가겠다”(116쪽)는 확답을 주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놀러 가는 거에 환장한 것처럼 방방 떨고서는 못 가? 가자고 지랄을 떨지 말든가”(133쪽)라고 구시렁대는 김사또의 말처럼, 그토록 놀고 싶어도 세상살이, 사람살이에 치여 놀지 못하는 사람들 천지다.
놀러 가는 게 뭐 별건가. 그저 친한 사람들끼리 ?좋은 것 보고 맛난 것도 먹으며 휴식을 갖자는 거지. 김종광은 1년에 한 번, 그것도 논갈이 끝나고 못자리하기 전 잠시 한가할 때 노는 것도 이 눈치 저 눈치, 이 사정 저 사정 다 고려해야 하니 말은 쉬워도 막상 실천하려면 어려운 게 바로 ‘놀러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그래서 더더욱 놀러 가자는 일념으로 가득 찬 범골 사람들 이야기는 꾸역꾸역 살아가는 소시민의 고충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김종광은 노는 기술이 곧 삶의 기술임을 간파한다.?“얼굴 붉히면서 살 거 뭐 있나, 같이 놀러나 댕기자”(95쪽)는 범골 어르신의 말씀처럼, 살면서 그리 심각할 것도, 좌절할 것도 없다. 생의 유한함 앞에 인간은 누구나 스러져가고 잊혀져가는 존재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연대라는, 보다 넓은 범주에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 피를 나누진 않았어도 ‘한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러니 긴장 풀고, 걱정 내려놓고, 같이 세상을 활보하자. 나들이하듯 가벼이.

[주요 내용]
장기호랑이
초등학생인 나는 장기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장기호랑이라는 아이디로 장기 인터넷게임에서 어른들도 하기 힘들다는 5단의 경지에 오른다. 아빠를 따라 장사모(장기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 된 나는 주로 프로 기사인 할아버지들과 대국을 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된다.

산후조리
키우는 소 얼간년이 새끼를 낳기 닷새 전에 배 속 창자가 쏟아져 나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닌 나는 설상가상으로 구제역 때문에 집 안에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아픈 다리를 고치러 가까운 마을 병원으로 나가는 것조차 구제역으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범골사』 해설
마을역사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성염구는 범골사를 쓰기 위해 천지인실록, 범웅일기, 마유영 탄광수기, 박지관의 백호리 망자 행장기, 반일지, 범골신문, 농촌지도사 강씨의 인생편력, 장경비의 교사일기 등의 자료를 조사하다가 ‘소판돈’의 소설을 읽게 된다. 소판돈이 쓴 소설을 읽고 거짓에 맞서 진실을 밝히자는 투쟁의지가 솟구치게 된 성염구는 직접 범골사를 쓰고 해설까지 쓰게 되는데…….

범골 달인 열전
모내기의 달인 ‘모심지’와 ‘양못잘’, 견인의 달인 ‘김천소’, 부업의 달인 ‘청올치댁’, 바둑의 달인 ‘호신선’과 ‘방과외’ 등 범골에서 내로라하는 달인들이 범골의 역사와 함께 서술된다.

김사또
김사또와 그의 부인 오지랖, 그의 아들 판돈의 이야기가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1. 갈비찜〉에서는 오지랖이 갈비찜을 홀랑 태워먹고 아버지와 가족들을 속인 이야기, 〈2. 모내기타령〉은 김사또와 오지랖의 모내기 이야기, 〈3. 노인회장님 인터뷰〉는 노인회장인 김사또의 인터뷰 대담이 실려 있다.

놀러 가자고요

노인회장 김사또 조강지처 오지랖이 마을 사람들에게 놀러 가자고 전화를 건다. 자식들이 놀러 오는 날이라서 못 가는 사람, 자식 사업이 망해서 몸져누운 사람, 농사철이라 놀러 가기 싫어하는 사람, 김사또가 싫어서 안 가는 사람, 세월호가 가라앉았던 날에 놀러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사람 등 놀러 가겠다는 사람과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한바탕 수다가 펼쳐진다.

봇도랑 치기
못자리철이 한창인 마을, 백수인 나를 비롯한 일꾼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지난여름 마지막으로 물을 대고 말라 있던 봇도랑의 잡다한 쓰레기와 흙을 치우고 일당 4만 원을 받기 위해서이다. 장애인, 이태백, 고삐리 태를 다 못 벗은 스무 살짜리 둘, 그리고 여자 한 명. 군대에서 2년 내내 삽질만 하다 몇 달 전에 전역한 나는 그들과 기세등등하게 봇도랑 치기 내기를 벌인다.

만병통치 욕조기
시골집으로 어머니를 뵈러 온 나와 아내는 집안에 들이닥친 외판원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농촌에서 보기 힘든 세련되고 날렵한 외모의 40대 여자는 만병을 고쳐주는 욕조기를 홍보한다. ‘스파크 반신 욕조기’라는 제품은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물건으로 욕조라는데 나는 사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단호박인 아내 앞에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진다.

아홉 살배기의 한숨
나는 아홉 살짜리 아들이 한숨을 쉬자 걱정스럽다. 아내 또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못 이겨 대학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한숨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한의원까지 찾아다니며 갖은 애를 쓰다가 결국 한숨이 성장통과도 같은, 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추천사

첫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입담과 재치는 한국소설사의 장구한 물줄기 속에 그를 위치할 수 있게 했고, 『모내기 블루스』, 『낙서 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등으로 형성되어 온 이른바 김종광 월드는 여전히 그 활력을 잃지 않고 지속되어왔다. 또한 다양한 고전 사사들을, 다양한 독자들을 위해 다시 써내는 일도 그가 마다하지 않았던 작업 중 하나인데,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은 ‘범골’에서 탄생했음을 드디어 이 소설집이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목차

장기호랑이
산후조리
『범골사』 해설
범골달인 열전
김사또
놀러 가자고요
봇도랑 치기
만병통치욕조기
아홉 살배기의 한숨

작품 해설 / 무방비로 방심하게 만드는_노태훈(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장기호랑이
산후조리
『범골사』 해설
범골달인 열전
김사또
놀러 가자고요
봇도랑 치기
만병통치욕조기
아홉 살배기의 한숨

작품 해설 / 무방비로 방심하게 만드는_노태훈(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첫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입담과 재치는 한국소설사의 장구한 물줄기 속에 그를 위치할 수 있게 했고, 『모내기 블루스』, 『낙서 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등으로 형성되어 온 이른바 김종광 월드는 여전히 그 활력을 잃지 않고 지속되어왔다. 또한 다양한 고전 사사들을, 다양한 독자들을 위해 다시 써내는 일도 그가 마다하지 않았던 작업 중 하나인데,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은 ‘범골’에서 탄생했음을 드디어 이 소설집이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 '작품 해설 _ 노태훈 , 문학평론가' 중에서)

모가 자라는 한 달여 동안, 막내 윤 씨는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
모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늙은이들의 질문이 귀찮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길에서 마주치면 기계를 세우게 해놓고는 묻고, 밤에 잠도 못 자게 전화로 물었다, 밤에 못 한 거 새벽에 하려고 아내랑 안았는데 휴대폰으로 또 묻고, “내가 아주 미쳐!” 하고 괴성 없이 살기가 힘들었다.
“걔들도 살라고 났는디, 알아서 잘 크겄지요! 지발, 좀 마음 푹 놓고 거시기 하시랑께유.”
(/ p.78)

“일 않고 술만 처먹냐? 인저 두 다랑이 하고 무슨 염치로 새참을 자시냐. 똑바로 심고 있는 겨?” 자전거를 타고 온 시골박사가 열부
에게 다짜고짜 지청구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였다.
박사는 판돈이 종이컵에 따라준 막걸리를 들이켜고는 열부에게 시비 걸듯 쏘아댔다. “이게 니 조카가 한다는 그 막걸리냐? 시금
털털한 게 개갈 안 나는구먼. 막걸리 사장이 조카인께 너는 공짜로 먹겄다?”
“그럼, 공짜지. 유통기한 지난 건 다 내 거여. 저녁마다 들러서 유통기한 두 병씩 조져.”
(/ p.159)

… …하여간 회장 되니까 생각도 못 한 재미가 있어. 찾아와서 인사하는 사람도 많고, 꼭 오시라고 초대해서는 밥 사주는 사람도 많아. 찾아오는 이나 불러가는 이나 회장님, 회장님 해가면서 높이 대접해주니, 참말로 내가 뭐라도 된 듯하더군. 그 많은 회장들이 무슨 맛에 회장을 하는 건지 알겠더라니까. 내가 맡은 게 노인회장 자리니 망정이지, 다른 회장 자리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어? 노인회장 자리도 이 좋은 맛에 취하다 보면 계속하고 싶어질 것 같더라고. 그게 독재의 시작 아니겠어? 노인회장 자리야 독재해도 되지만, 다른 회장 자리는 독재를 하면 꼭 이승만 꼴 난다니까. 뭐, 하겠다는 늙은이가 있다면 안 달래도 주겠지만, 하겠다는 늙은이가 없으면 내가 또 맡아야지 어쩌겠어? 이것 봐? 나도 이승만 같지?
(/ p.171)

초등 천재, 중학 영재, 고등 수재, 스카이 평재, 여기까지만 해도 승천을 의심받지 않았으나, 졸업해서 수년째 백수였다.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든가, 7급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든가, 재벌 기업에 취직했다든가 했으면 ‘개천 용’ 소리를 들었을 테다. 공시 9급이라도 되거나 아무 데에 취직만 되었어도 하다못해 ‘개천 이무기’ 소리는 들었을 테다. 도시에서 ‘이태백’으로 불렸던 그는 동네서는 점잖게는 ‘개천 물뱀’ 심하게는 ‘개천 지렁이’로 불렸다. 이제 아무도 그에게 백호리를 빛내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 p.189)

환갑 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쓰는 요즘 일기에도 어머니는 곧잘 ‘죽고 싶다’고 적어놓았다. 일기에다 ‘죽고 싶다’고 쓰는 사람은 저 하늘에 별처럼 허다하다. 그렇지만 ‘죽고 싶다’는 일기는 자식에게만은, 부모에게만은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머니가 일기장을 자식들이 머물다 가는 바깥채 텔레비전 밑의 서랍, 눈에 아주 잘 띄는 곳에 놓아두는 것이 싫었다. 아니다, 어머니 일기장을 보면 안심이 된다. 어머니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 마음을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다가 풀었을 것인가. 어머니는 죽고 싶을 정도로 거시기한 마음을 종이에 풀었을 뿐이다.
(/ p.253)

한숨, 안 쉬고 사는 사람 없다.
사람은 한숨을 달고 산다. 더욱이 한국인은 한을 자랑으로 아는 족속답게, 한을 촉매로 삼은 들숨 날숨에 일가견이 있다. 한자어 ‘한(恨)’과 우리말 ‘한숨’의 접두사 ‘한’이 원판 다른 말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쩐지 같은 구멍에서 비롯한 말인 것만 같고, 영어 ‘스트레스

모가 자라는 한 달여 동안, 막내 윤 씨는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
모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늙은이들의 질문이 귀찮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길에서 마주치면 기계를 세우게 해놓고는 묻고, 밤에 잠도 못 자게 전화로 물었다, 밤에 못 한 거 새벽에 하려고 아내랑 안았는데 휴대폰으로 또 묻고, “내가 아주 미쳐!” 하고 괴성 없이 살기가 힘들었다.
“걔들도 살라고 났는디, 알아서 잘 크겄지요! 지발, 좀 마음 푹 놓고 거시기 하시랑께유.”
-78쪽

“일 않고 술만 처먹냐? 인저 두 다랑이 하고 무슨 염치로 새참을 자시냐. 똑바로 심고 있는 겨?” 자전거를 타고 온 시골박사가 열부
에게 다짜고짜 지청구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였다.
박사는 판돈이 종이컵에 따라준 막걸리를 들이켜고는 열부에게 시비 걸듯 쏘아댔다. “이게 니 조카가 한다는 그 막걸리냐? 시금
털털한 게 개갈 안 나는구먼. 막걸리 사장이 조카인께 너는 공짜로 먹겄다?”
“그럼, 공짜지. 유통기한 지난 건 다 내 거여. 저녁마다 들러서 유통기한 두 병씩 조져.”
-159쪽

… …하여간 회장 되니까 생각도 못 한 재미가 있어. 찾아와서 인사하는 사람도 많고, 꼭 오시라고 초대해서는 밥 사주는 사람도 많아. 찾아오는 이나 불러가는 이나 회장님, 회장님 해가면서 높이 대접해주니, 참말로 내가 뭐라도 된 듯하더군. 그 많은 회장들이 무슨 맛에 회장을 하는 건지 알겠더라니까. 내가 맡은 게 노인회장 자리니 망정이지, 다른 회장 자리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어? 노인회장 자리도 이 좋은 맛에 취하다 보면 계속하고 싶어질 것 같더라고. 그게 독재의 시작 아니겠어? 노인회장 자리야 독재해도 되지만, 다른 회장 자리는 독재를 하면 꼭 이승만 꼴 난다니까. 뭐, 하겠다는 늙은이가 있다면 안 달래도 주겠지만, 하겠다는 늙은이가 없으면 내가 또 맡아야지 어쩌겠어? 이것 봐? 나도 이승만 같지?
-171쪽

초등 천재, 중학 영재, 고등 수재, 스카이 평재, 여기까지만 해도 승천을 의심받지 않았으나, 졸업해서 수년째 백수였다.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든가, 7급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든가, 재벌 기업에 취직했다든가 했으면 ‘개천 용’ 소리를 들었을 테다. 공시 9급이라도 되거나 아무 데에 취직만 되었어도 하다못해 ‘개천 이무기’ 소리는 들었을 테다. 도시에서 ‘이태백’으로 불렸던 그는 동네서는 점잖게는 ‘개천 물뱀’ 심하게는 ‘개천 지렁이’로 불렸다. 이제 아무도 그에게 백호리를 빛내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189쪽

환갑 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쓰는 요즘 일기에도 어머니는 곧잘 ‘죽고 싶다’고 적어놓았다. 일기에다 ‘죽고 싶다’고 쓰는 사람은 저 하늘에 별처럼 허다하다. 그렇지만 ‘죽고 싶다’는 일기는 자식에게만은, 부모에게만은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머니가 일기장을 자식들이 머물다 가는 바깥채 텔레비전 밑의 서랍, 눈에 아주 잘 띄는 곳에 놓아두는 것이 싫었다. 아니다, 어머니 일기장을 보면 안심이 된다. 어머니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 마음을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다가 풀었을 것인가. 어머니는 죽고 싶을 정도로 거시기한 마음을 종이에 풀었을 뿐이다.
-253쪽

한숨, 안 쉬고 사는 사람 없다.
사람은 한숨을 달고 산다. 더욱이 한국인은 한을 자랑으로 아는 족속답게, 한을 촉매로 삼은 들숨 날숨에 일가견이 있다. 한자어 ‘한(恨)’과 우리말 ‘한숨’의 접두사 ‘한’이 원판 다른 말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쩐지 같은 구멍에서 비롯한 말인 것만 같고, 영어 ‘스트레스’를 한 자로 줄이면 ‘한’이지 않느냐는 엉뚱한 생각도 드는데, 하여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한숨을 토하지 않고는 일상이 불가능한 한국인이 수두룩할 테다.
-275쪽’를 한 자로 줄이면 ‘한’이지 않느냐는 엉뚱한 생각도 드는데, 하여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한숨을 토하지 않고는 일상이 불가능한 한국인이 수두룩할 테다.
(/ p.275)

저자소개

김종광(鍾光)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71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로 데뷔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었다. 신동엽창작상, 제비꽃서민소설상,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 류주현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놀러 가자고요』,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죽음의 한일전』, 청소년소설 『처음 연애』 『착한대화』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장편소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군대 이야기』 『첫경험』 『왕자 이우』 『똥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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