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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배반(큰글자도서) :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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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말하는 권력에 중독된 언어 이야기

우리는 보통 욕설, 막말 등을 언어폭력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언어폭력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쉽게 내뱉는 말 속에도 폭력이 존재한다. 긍정적이라고만 생각되던 ‘공정함, 성실함, 진정성, 권리, 순수’와 같은 말 속에 권력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권력에 중독된 언어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언어의 배반’이라 칭하기로 한다.

권력에 중독된 언어의 속살을 파헤치고, 더 이상 권력자를 대변하는 언어에 속지 않기 위해 『언어의 배반』에서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뭉쳤다. 두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언어학과 정치학의 논리로 일상 언어의 속내를 드러낸다.

『언어의 배반』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같은 주제에 대한 언어학자와 정치학자의 각기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학자는 언어가 권력에 중독된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학적 분석을 내놓는 반면 언어학자는 언어를 기표(이미지)와 기의(메시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등 언어학적으로 언어의 왜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같은 듯 다른 두 학자의 논리와 관점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언어에 대해 새로운 호기심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말하는 권력에 중독된 언어 이야기
우리는 보통 욕설, 막말 등을 언어폭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언어폭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쉽게 내뱉는 말 속에도 폭력이 존재한다. 긍정적이라고만 생각되던 ‘공정함, 성실함, 진정성, 권리, 순수’와 같은 말 속에 권력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권력에 중독된 언어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언어의 배반’이라 칭하기로 한다.
권력에 중독된 언어의 속살을 파헤치고, 더 이상 권력자를 대변하는 언어에 속지 않기 위해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뭉쳤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언어학과 정치학의 논리로 일상 언어의 속내를 드러낸다.

일상 언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공무원 시절 과장은 늦게 달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저한테 ‘못해도 차관까지는 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요. 토요일, 일요일에 모두 출근하며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죠.”

굴지의 기업가로 성공한 한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성실함’을 꼽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성실해야 좋은 대학 가고, 성실해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기업에서 신입 채용 기준으로도 면접관들은 “성실함을 보겠다”고 한다. 우리에게 ‘성실함’은 훌륭하고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독일 나치스의 한 명인 아이히만도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었다. 이인국 박사나 아이히만의 성실함은 불편하기만 하다. 외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원자폭탄 개발의 책임을 맡았던 하이젠베르크가 상부의 명령에도 개발을 일부러 지연시켰던 그 ‘불성실함’이 더 좋은 의미로 다가온다. 진정한 의미의 성실함과 체제 순응적 성실함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구분되지 않고 일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언어의 순수한 의미는 퇴색하고, 사회정치적 논리에 따라 언어는 오용되고 있다. 잘못된 의미가 굳어지고, 권력가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침투하고 있다. 언어의 오용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용하는 것이 생각 속이나 시선 위에 머무는 가벼운 차별로 끝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기성 이데올로기나 권력과 공범이 되어 소수를 외면하고 차별하는 다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적 약자라 하더라도 다수가 되어 언어 배반에 동참하는 순간 이미 약자가 아닌 것이다. 가해 행위의 책임은 무의식의 실수로 변명되며, 다수로 나눠지면서 희석된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고,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다른 인종이 아니라 틀린 인종으로 취급하고 학살했을 때가 그랬다. -본문 5쪽

권력에 중독된 일상 언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언어의 겉모양에 속지 마라!

우리나라 법관이나 경찰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공정한 절차에 따라 법을 집행했으며…”일 것이다. 그들은 공정한 절차에 따라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며,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삼성 비자금 수사를 종료했다. 겉으로 보기에 ‘공정함’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저자는 ‘공정함’의 속내를 살펴보기 위해 조선 시대에 있었던 재밌는 소송 사건을 예로 든다. 학봉 김성일은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양반 이지도와 자신이 노비라고 주장하는 다물사리 간에 소송 사건이 벌어졌는데, 김성일은 명성에 어긋남이 없이 공정하게 조사하고 사건을 처리했다. 비록 그는 공정한 절차에 따라 그 직임을 수행했으나 당시 불공평한 노비제라는 사회 체제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양반 이지도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인 노비제도의 혁파를 거부하고 사회적 불공정 체제를 온존한 양반 지배 계층의 그 기만성이 한낱 절차상 공정한 사례로 가려질 수 있을까요?”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권력자들이 만든 불공정한 제도 안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공정한 절차를 언급하며 법을 집행했더라도 그게 과연 공정한 일이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정 사회, 진정성, 국격, 권리, 평화’ 등의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런 가치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속내는 감춘 채 언어의 외형만 치장하고 권력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편지를 주고받다
[언어의 배반]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같은 주제에 대한 언어학자와 정치학자의 각기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학자는 언어가 권력에 중독된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학적 분석을 내놓는 반면 언어학자는 언어를 기표(이미지)와 기의(메시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등 언어학적으로 언어의 왜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좌빨’이란 단어에 대해 정치학자는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 정치에서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데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수단”이라며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언어학자는 “‘좌빨’이라는 표현이 실체적 진실을 떠난 무의미한 기표임에도 그 이미지 속에 자신의 왜곡된 욕망의 기의를 끊임없이 삽입하고 타자에게 그 왜곡을 강요한다”며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언어가 품고 있을지도 모를 권력의 구조적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언어 표현을 끊임없이 따져봐야 한다. 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정치학자가 권력 구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설명을 하면, 언어학자는 언어 그 자체의 해체를 통해 구조를 분석해 나가기도 한다. 서로의 이해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조심스레 반문하기도 한다. 이것이 ‘언어’를 말하고,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언어의 배반’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큰글자도서 소개]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일상 언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공무원 시절 과장은 늦게 달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저한테 ‘못해도 차관까지는 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요. 토요일, 일요일에 모두 출근하며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죠.”

굴지의 기업가로 성공한 한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성실함’을 꼽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성실해야 좋은 대학 가고, 성실해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기업에서 신입 채용 기준으로도 면접관들은 “성실함을 보겠다”고 한다. 우리에게 ‘성실함’은 훌륭하고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독일 나치스의 한 명인 아이히만도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었다. 이인국 박사나 아이히만의 성실함은 불편하기만 하다. 외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원자폭탄 개발의 책임을 맡았던 하이젠베르크가 상부의 명령에도 개발을 일부러 지연시켰던 그 ‘불성실함’이 더 좋은 의미로 다가온다. 진정한 의미의 성실함과 체제 순응적 성실함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구분되지 않고 일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언어의 순수한 의미는 퇴색하고, 사회정치적 논리에 따라 언어는 오용되고 있다. 잘못된 의미가 굳어지고, 권력가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침투하고 있다. 언어의 오용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용하는 것이 생각 속이나 시선 위에 머무는 가벼운 차별로 끝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기성 이데올로기나 권력과 공범이 되어 소수를 외면하고 차별하는 다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적 약자라 하더라도 다수가 되어 언어 배반에 동참하는 순간 이미 약자가 아닌 것이다. 가해 행위의 책임은 무의식의 실수로 변명되며, 다수로 나눠지면서 희석된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고,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다른 인종이 아니라 틀린 인종으로 취급하고 학살했을 때가 그랬다. - p.5

권력에 중독된 일상 언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언어의 겉모양에 속지 마라!
우리나라 법관이나 경찰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공정한 절차에 따라 법을 집행했으며…”일 것이다. 그들은 공정한 절차에 따라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며,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삼성 비자금 수사를 종료했다. 겉으로 보기에 ‘공정함’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저자는 ‘공정함’의 속내를 살펴보기 위해 조선 시대에 있었던 재밌는 소송 사건을 예로 든다. 학봉 김성일은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양반 이지도와 자신이 노비라고 주장하는 다물사리 간에 소송 사건이 벌어졌는데, 김성일은 명성에 어긋남이 없이 공정하게 조사하고 사건을 처리했다. 비록 그는 공정한 절차에 따라 그 직임을 수행했으나 당시 불공평한 노비제라는 사회 체제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양반 이지도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인 노비제도의 혁파를 거부하고 사회적 불공정 체제를 온존한 양반 지배 계층의 그 기만성이 한낱 절차상 공정한 사례로 가려질 수 있을까요?”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권력자들이 만든 불공정한 제도 안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공정한 절차를 언급하며 법을 집행했더라도 그게 과연 공정한 일이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정 사회, 진정성, 국격, 권리, 평화’ 등의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런 가치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속내는 감춘 채 언어의 외형만 치장하고 권력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편지를 주고받다
『언어의 배반』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같은 주제에 대한 언어학자와 정치학자의 각기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학자는 언어가 권력에 중독된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학적 분석을 내놓는 반면 언어학자는 언어를 기표(이미지)와 기의(메시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등 언어학적으로 언어의 왜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좌빨’이란 단어에 대해 정치학자는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 정치에서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데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수단”이라며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언어학자는 “‘좌빨’이라는 표현이 실체적 진실을 떠난 무의미한 기표임에도 그 이미지 속에 자신의 왜곡된 욕망의 기의를 끊임없이 삽입하고 타자에게 그 왜곡을 강요한다”며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언어가 품고 있을지도 모를 권력의 구조적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언어 표현을 끊임없이 따져봐야 한다. 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정치학자가 권력 구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설명을 하면, 언어학자는 언어 그 자체의 해체를 통해 구조를 분석해 나가기도 한다. 서로의 이해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조심스레 반문하기도 한다. 이것이 ‘언어’를 말하고,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언어의 배반’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목차

들어가며_정치학자의 말

1
공정함의 대가 - 공정 사회
전혀 공정하지 않은 단어 - 좌빨
언어의 이미지와 메시지 - 좌+빨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 국가
보이지 않는 손, 보이는 허물 - 시장
실체 없는 국민의 뜻 - 여론
외양만 치장한다고 품격이 도드라질까? - 국격
숭고하거나 맹목적이거나 - 하나님의 뜻

2
둘 다 잘못했다 vs 둘 다 옳다 - 양비론, 양시론
보편성을 이해관계의 충돌로 완곡하게 돌려 막다 - 권리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할까? - 평화
짐승의 세상을 향해서도 외칠 수 없는 말 - 욕
'정치란 더러운 거야'라는 말의 함정 - 정치
우두머리에 대한 열망 - 大
내 처지와는 다른 생각들 - 강남 좌파 강북 우파

3
부정, 반대, 불평 금지 - 긍정성
쇼윈도의 삶 - 보란 듯이
해본 사람의 권위 - 경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 성실
누구나 악할 수 있을까? - 평범
나의 객관적인 믿음은 정말 객관적인 것일까? - 확신

4
자식을 위하여 - 행복
우리가 남이가? 한통속 아이가? - 가족
뒤에서 도와주기만 하는 걸까? - 후원, 스폰
순수는 순수하기만 할까? - 순수
측정할 수 없는 가치 - 진정성
말 한마디로 다할 수 없는 것 - 용서와 화해
도덕적 찬양에 대하여 - 착함

나오며_언어학자의 말

들어가며_정치학자의 말

1
공정함의 대가 : 공정 사회
전혀 공정하지 않은 단어 : 좌빨
언어의 이미지와 메시지 : 좌+빨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 국가
보이지 않는 손, 보이는 허물 : 시장
실체 없는 국민의 뜻 : 여론
외양만 치장한다고 품격이 도드라질까? : 국격
숭고하거나 맹목적이거나 : 하나님의 뜻

2
둘 다 잘못했다 vs 둘 다 옳다 : 양비론, 양시론
보편성을 이해관계의 충돌로 완곡하게 돌려 막다 : 권리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할까? : 평화
짐승의 세상을 향해서도 외칠 수 없는 말 : 욕
‘정치란 더러운 거야’라는 말의 함정 : 정치
우두머리에 대한 열망 : 大
내 처지와는 다른 생각들 : 강남 좌파 강북 우파

3
부정, 반대, 불평 금지 : 긍정성
쇼윈도의 삶 : 보란 듯이
해본 사람의 권위 : 경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 성실
누구나 악할 수 있을까? : 평범
나의 객관적인 믿음은 정말 객관적인 것일까? : 확신

4
자식을 위하여 : 행복
우리가 남이가? 한통속 아이가? : 가족
뒤에서 도와주기만 하는 걸까? : 후원, 스폰
순수는 순수하기만 할까? : 순수
측정할 수 없는 가치 : 진정성
말 한마디로 다할 수 없는 것 : 용서와 화해
도덕적 찬양에 대하여 : 착함

나오며_언어학자의 말

본문중에서

불합리한 편견이 담긴 용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저항 없이 지나치는 순간 우리는 그 단어를 태생시킨 거대한 차별 구조에 편입되고, 차별 행위를 조장한다. 기호 언어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언어는 파시스트"라는 말로 언어의 권력적 측면을 갈파했다. 그는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을 만들고, 우리는 그 언어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특정 계급과 특정 언어의 밀착 관계에 의해 권력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고착된다고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바르트는 언어가 권력을 행사하려 들 때마다 그 언어를 버리고 권력이 우리를 이용할 수 없는 다른 자리로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언어가 품고 있을지도 모를 권력의 구조적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언어 표현을 끊임없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6)

근래 한국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정치적 수사 가운데 '공정 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 표현의 존재 자체가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공정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참다운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면 구태여 그러한 수사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아낌없이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이 뭐길래?"라고 묻는 법이 없고 행복에 겨운 사람이 '행복론'을 쓰지 않듯이 말입니다.
(/ p.16)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전혀 공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모든 비판 세력에 좌빨 딱지를 붙입니다. 그냥 좌빨일 뿐 그 말 안에 담겨 있던 이념의 고유 가치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념의 차이가 '다름'이 아니라 '틀림'인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틀림'입니다.
(/ p.22)

소통이 가능하려면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타자의 존재에 대한 몰인식沒認識은 타자에 대한 몰인정沒人情한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속빈 강정 같은 '좌빨' 유의 무의미한 말이 유통기한 없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자본으로 통용되고 있는 우리의 근본적 문제가 여기에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 pp.34~35)

정의나 인권과 같이 공동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을 '권리 상호 간의 충돌'로 환원시키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버스나 철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문제를 시민들의 이동할 권리와 대립하는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파업이라는 사회적 쟁의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데, 그보다는 표면적인 두 권리의 충돌이라는 일종의 완곡어법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원인은 매몰되고 피차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력들 간의 다툼으로 왜곡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이동권을 묵살하는 사람들과 버스나 철도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동권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간의 다툼으로 보는 것이지요.
(/ p.105)

오늘날과 같이 긍정의 사고가 신화가 되어버린 시대에는 비판자가 설 땅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을 아예 멀리해야 인생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이 진리인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불만이나 억울함은 속 깊이 눌러 숨기고, 밖으로는 밝게 연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 p.168)

아직 도서관이나 식당, 체육관 등 학생들을 위한 주요 시설이 충분치 않은 어느 대학교에서 스마트 캠퍼스 프로젝트라는 걸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출석 점검, 도서 대출, 행정 처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데, 그런 돈으로 도서관에 쓸모 있는 장서를 늘리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진정 '스마트'한 프로젝트가 아닐까요? 일전에 어디에선가 들은 유머가 생각납니다. 일본과 태국과 우리나라 대학 연구소에 각각 연구비가 지급되었답니다. 연구비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일본에서는 관련 도서를 구입하고, 태국에선 냉장고를 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현판식을 한답니다!
(/ p.174)

사실 '정성스럽고 참됨'이라는 귀한 뜻의 '성실'이란 단어에 무슨 시비곡절이 있겠습니까? 다만 상장 수여에 늘 빠지지 않고 상찬되던 그 낱말을 사용하는 우리들의 마음 씀씀이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본래 인仁을 이루고자 하는 정성스럽고 진실된 마음을 성誠이라 했고, 허탄하고 거짓된 것을 멀리하고 바르고 참됨에 힘쓰는 자세를 실實이라 했습니다. 문제는 그 근본적 의미와 달리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품행의 방정과 성실이라는 것이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네모' 안에 들어가는 반듯함을 말할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네모는 인간 실존과 경험을 담아내는 개방된 매트릭스가 아니라 권위자들의 인위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자의적 규정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규정된 네모에 어긋남이 없도록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을 맞추어가는(표준화 작업을 하는) '성실'한 태도가 장려되어 온 것입니다
(/ p.188)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가치의 이름하에 저지르는 범죄가 소위 '허가'와 '일상화'의 과정을 지나면서 '정상화'되어 가는 경우를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전자는 집단이나 권력의 명령에 의해 허가된 행위를 함으로써 도덕적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후자는 학살을 포함한 악행에 필요한 행동과 절차를 기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반복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가장 간단한 예가 있습니다. 개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비해 전쟁에 나가 적군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용인되고, 죄의식이 적어집니다. 나치가 그랬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그런 식으로 집단 범죄를저질렀습니다. 소련의 스탈린도, 북한의 김일성도 그러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의 명령에 의한 계엄군의 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 p.204)

얼마든지 잘못 '믿을' 수 있는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강조하기 전에 그 믿음이 실체적 진실과 닿아 있는지?형이상학적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신중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체적 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는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거나 그것에 다가가려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확신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확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나 제도, 기관의 권력 오용은 실체적 진실을 찾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불신을 가중시키는 지름길이 됩니다.
(/ p.215)

'우리가 남이가!'라는 이 간단하게 보이는 문장은 유사 가족주의가 갖는 함축적 의미와 연관되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유사 가족주의의 문제는 내부 집단과 외부 집단을 엄격히 구분하고, 특정 집단이나
체제 권력과의 관계를 독점하고자 한다는 데 있습니다.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을 갖는 것이지요. 지역주의나 학벌주의 의식이 대표적인데, '우리가 남이가!'라고 할 때 그 '우리'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으로서 한없이 관대하지만, 그 '우리'에서 제외된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냉정하고 잔인하기까지 하지요. 공동 사회적 의미인 '한집안'의 형식과 이익 사회적 의미인 '한통속'의 내용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한통속이 아니거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집단과 체제 유지라는 명분 아래 대부분 제거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 원칙적 이념과 사상을 공유한 공동체라기보다는 대부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모이는 결사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그 '우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매우 잠정적인 것이지요.
(/ pp.229~230)

진정한 스폰서는 그림자처럼 뒤에 숨어서 묵묵히 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그 가능성에 투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후원자는 돈이나 권력을 미끼로 피후원자를 노예로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조종하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피후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피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영혼을 파는 자들입니다.
(/ pp.242~243)

'착한'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권위자의 말을 단순히 잘 듣고 따르는 것이 '착함'이 되면, 그 자의적 잣대에 의해 아이는 자신을 '착한 아이' 혹은 '착하지 않은 아이'로 규정하게 됩니다.
(/ p.272)

불합리한 편견이 담긴 용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저항 없이 지나치는 순간 우리는 그 단어를 태생시킨 거대한 차별 구조에 편입되고, 차별 행위를 조장한다. 기호 언어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언어는 파시스트”라는 말로 언어의 권력적 측면을 갈파했다. 그는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을 만들고, 우리는 그 언어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특정 계급과 특정 언어의 밀착 관계에 의해 권력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고착된다고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바르트는 언어가 권력을 행사하려 들 때마다 그 언어를 버리고 권력이 우리를 이용할 수 없는 다른 자리로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언어가 품고 있을지도 모를 권력의 구조적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언어 표현을 끊임없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6

근래 한국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정치적 수사 가운데 ‘공정 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 표현의 존재 자체가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공정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참다운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면 구태여 그러한 수사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아낌없이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이 뭐길래?”라고 묻는 법이 없고 행복에 겨운 사람이 ‘행복론’을 쓰지 않듯이 말입니다. --- p.16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전혀 공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모든 비판 세력에 좌빨 딱지를 붙입니다. 그냥 좌빨일 뿐 그 말 안에 담겨 있던 이념의 고유 가치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념의 차이가 ‘다름’이 아니라 ‘틀림’인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틀림’입니다.
--- p.22

소통이 가능하려면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타자의 존재에 대한 몰인식沒認識은 타자에 대한 몰인정沒人情한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속빈 강정 같은 ‘좌빨’ 유의 무의미한 말이 유통기한 없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자본으로 통용되고 있는 우리의 근본적 문제가 여기에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 pp.34-35

정의나 인권과 같이 공동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을 ‘권리 상호 간의 충돌’로 환원시키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버스나 철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문제를 시민들의 이동할 권리와 대립하는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파업이라는 사회적 쟁의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데, 그보다는 표면적인 두 권리의 충돌이라는 일종의 완곡어법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원인은 매몰되고 피차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력들 간의 다툼으로 왜곡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이동권을 묵살하는 사람들과 버스나 철도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동권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간의 다툼으로 보는 것이지요. --- p.105

오늘날과 같이 긍정의 사고가 신화가 되어버린 시대에는 비판자가 설 땅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을 아예 멀리해야 인생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이 진리인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불만이나 억울함은 속 깊이 눌러 숨기고, 밖으로는 밝게 연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 p.168

아직 도서관이나 식당, 체육관 등 학생들을 위한 주요 시설이 충분치 않은 어느 대학교에서 스마트 캠퍼스 프로젝트라는 걸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출석 점검, 도서 대출, 행정 처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데, 그런 돈으로 도서관에 쓸모 있는 장서를 늘리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진정 ‘스마트’한 프로젝트가 아닐까요? 일전에 어디에선가 들은 유머가 생각납니다. 일본과 태국과 우리나라 대학 연구소에 각각 연구비가 지급되었답니다. 연구비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일본에서는 관련 도서를 구입하고, 태국에선 냉장고를 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현판식을 한답니다! --- p.174

사실 ‘정성스럽고 참됨’이라는
귀한 뜻의 ‘성실’이란 단어에 무슨 시비곡절이 있겠습니까? 다만 상장 수여에 늘 빠지지 않고 상찬되던 그 낱말을 사용하는 우리들의 마음 씀씀이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본래 인仁을 이루고자 하는 정성스럽고 진실된 마음을 성誠이라 했고, 허탄하고 거짓된 것을 멀리하고 바르고 참됨에 힘쓰는 자세를 실實이라 했습니다. 문제는 그 근본적 의미와 달리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품행의 방정과 성실이라는 것이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네모’ 안에 들어가는 반듯함을 말할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네모는 인간 실존과 경험을 담아내는 개방된 매트릭스가 아니라 권위자들의 인위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자의적 규정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규정된 네모에 어긋남이 없도록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을 맞추어가는(표준화 작업을 하는) ‘성실’한 태도가 장려되어 온 것입니다. --- p.188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가치의 이름하에 저지르는 범죄가 소위 ‘허가’와 ‘일상화’의 과정을 지나면서 ‘정상화’되어 가는 경우를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전자는 집단이나 권력의 명령에 의해 허가된 행위를 함으로써 도덕적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후자는 학살을 포함한 악행에 필요한 행동과 절차를 기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반복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가장 간단한 예가 있습니다. 개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비해 전쟁에 나가 적군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용인되고, 죄의식이 적어집니다. 나치가 그랬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그런 식으로 집단 범죄를저질렀습니다. 소련의 스탈린도, 북한의 김일성도 그러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의 명령에 의한 계엄군의 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 p.204

얼마든지 잘못 ‘믿을’ 수 있는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강조하기 전에 그 믿음이 실체적 진실과 닿아 있는지?형이상학적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신중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체적 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는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거나 그것에 다가가려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확신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확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나 제도, 기관의 권력 오용은 실체적 진실을 찾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불신을 가중시키는 지름길이 됩니다. --- p.215

‘우리가 남이가!’라는 이 간단하게 보이는 문장은 유사 가족주의가 갖는 함축적 의미와 연관되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유사 가족주의의 문제는 내부 집단과 외부 집단을 엄격히 구분하고, 특정 집단이나 체제 권력과의 관계를 독점하고자 한다는 데 있습니다.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을 갖는 것이지요. 지역주의나 학벌주의 의식이 대표적인데, ‘우리가 남이가!’라고 할 때 그 ‘우리’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으로서 한없이 관대하지만, 그 ‘우리’에서 제외된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냉정하고 잔인하기까지 하지요. 공동 사회적 의미인 ‘한집안’의 형식과 이익 사회적 의미인 ‘한통속’의 내용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한통속이 아니거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집단과 체제 유지라는 명분 아래 대부분 제거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 원칙적 이념과 사상을 공유한 공동체라기보다는 대부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모이는 결사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그 ‘우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매우 잠정적인 것이지요. --- pp.229-230

진정한 스폰서는 그림자처럼 뒤에 숨어서 묵묵히 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그 가능성에 투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후원자는 돈이나 권력을 미끼로 피후원자를 노예로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조종하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피후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피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영혼을 파는 자들입니다. --- pp.242-243

‘착한’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분명
하지 않은 상황에서 권위자의 말을 단순히 잘 듣고 따르는 것이 ‘착함’이 되면, 그 자의적 잣대에 의해 아이는 자신을 ‘착한 아이’ 혹은 ‘착하지 않은 아이’로 규정하게 됩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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