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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 [양장]

원제 : Polyptychum Irminonis Abba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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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고전장원제에 대한 지식의 원천
    서양중세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귀중한 사료
    라틴어 수사본인 '영지명세장' 최초 번역
    사료를 직접 읽고 이용할 기회


    카롤링시대-중세 전기의 경제적, 사회적 제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시대 독특한 용어와 제도를 통해 중세 초기 언어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양 중세의 장원제는, 대토지가 영주직영지와 농민보유지로 이분되고 전자는 후자를 보유한 예속민의 부역노동으로 경작되는 체제이다. 이런 장원제는 루아르 강과 라인 강 사이 갈리아 북부지역에서 9세기 초에 성립하여 카롤링시대에 ‘고전장원제’라는 체제로 완성되었고, 여기서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갈리아 북부지역은 서양 장원제의 발상지이자 그 전형적인 발달과정을 보여준 지역이다. 이 지역 장원 토지소유 상황을 기술한 카롤링시대의 영지명세장은 10여 개에 이르지만, 대다수는 내용이 매우 간략하거나 단편적 잔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원 대부분이 파리 지방 일대에 분포했던, 파리 시의 도심에 위치한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영지명세장 가운데 가장 이른 820년대에 작성되었으면서도 기술내용이 소상하고 유례없이 완벽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에는 장원별로 영주직영지의 상세한 재산과 수입 및 경영 현황은 물론, 영지명세장 가운데 유일하게 무려 1,700개가 넘는 농민보유지마다 거의 빠짐없이 토지이용 형태별 면적과 의무내용이 명기되고, 수천 명에 달하는 보유농민과 그 가족의 이름, 신분, 거주지가 명시되어 있다. 또 여러 부류의 장원예속민과 많은 기부토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고전장원제의 구조와 여러 양상을 연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일 뿐만 아니라, 카롤링시대를 중심으로 한 중세 전기의 토지이용 방식과 농업기술, 촌락구조, 신분제도, 결혼과 가족 제도 등 경제적, 사회적 제반 상황을 파악하고 중세 초기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수사본 상태인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그 중요성이 일찍이 인식되어 카롤링시대의 영지명세장 가운데 가장 빠른 1844년부터 근대적인 책으로 발간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편찬, 간행되었다. 유명한 이 명세장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연구도 이뤄졌다. 한국문화사에서 출간한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라틴어로 쓰인 영지명세장 전체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전문 번역은 외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번역에는 지금까지 발간된 세 종류의 라틴어판을 대조해 이용했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한 자상한 주석과 문헌해제가 달려 있다. 이로써 서양의 장원제와 봉건사회 연구에서 더없이 소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장원문서를 직접 읽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독자는 이 번역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듣던 서양 장원제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일러두기]
    1) 번역원본은 B. Guerard, ed., Polyptyque de l’abbaye Irminon ou denombrement des manses, des serfs et des revenus de l’abbaye de Saint-Germain-des-Pres sous le regne de Charlemagne, Tome second. Polyptyque (Paris: L’Imprimerie royale, 1844)와 A. Longnon, ed., Polyptyque de l’abbaye de Saint-Germain-des-Pres, Premiere Partie. Texte du polyptyque (Paris: H. Champion, 1886; reprint: Geneve, Megariotis Reprint, 1978) 및 D. Hagermann, ed., Das Polyptychon von Saint-Germain-des-Pres (Koln, Weimar, Wien: Bohlau, 1993)이다. 이 세 원서는 수사본의 판독과 구두점의 표시 및 장(章) 속의 소제목 표기에 있어 다소간에 차이가 있다. 특히 앞의 두 원서는 서로 비슷하나, 이들 두 원서와 맨 뒤의 원서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세 원서는 오류나 누락과 같은 실수 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세 원서에서 특히 중요한 차이가 나는 부분을 면밀히 대조하여 타당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것을 중심으로 번역했다.

    2)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사료임에 유념하여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연구에서는 가공ㆍ번역되지 않은 애초의 원사료가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심지어 사료상의 불합리성이나 실수까지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설사 번역된다고 하더라도, 사료로서의 가치가 상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원문의 본래 모습을 살려야 할 것이다. 라틴어 원문의 명세장에는 오기(誤記), 누락, 생략, 중복, 문장이나 단어의 모호한 사용, 용어사용과 서술체계의 일관성 부족, 문장의 완결성 결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꽤나 존재한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번역해서 어색하지 않는 한 되도록이면 라틴어 원문을 그대로 살려 번역하려고 했다. 예컨대,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라틴어 원문에 뒤섞여 사용되어 있는 I, II, III 따위의 숫자는 1, 2, 3 등으로, unus, duo, tres 따위의 말은 하나, 둘, 셋 등으로 번역했다. 그 결과 오역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한 경우에는 옮긴이의 각주에서 원문 그대로임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규칙과 상식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명시되어 있지 않은 부분 역시 원문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옮긴이는 그런 부분을 라틴어 원문과 대조하여 거듭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옮긴이가 실수하지 않은 한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 역시 원문 그대로 번역한 것임을 밝혀 둔다. 비록 불합리하게 보일지라도, 가능한 한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사료로서의 가치를 보다 잘 보존하는 방법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3) 또한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라틴어의 일반적인 발음규칙과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에 다소 위배되는 한이 있더라도 고유명사의 라틴어 발음도 되도록 원래의 철자까지 추측할 수 있게끔 우리말로 옮겼다. 예컨대, 복모음으로 된 ‘Aales’는 ‘아알레스’로, 복자음으로 된 ‘Betta’는 ‘벹타’로 표기했다. 특히 이 영지명세장에서 농민보유지 보유자들의 이름에 많이 나타나는 ‘th’는 인명에 한해서 ‘트ㅎ’로 음역했다. ‘th’를 ‘ㅌ’으로 음역하면 ‘t’의 ‘ㅌ’과 발음이 같아질 뿐만 아니라, 카롤링시대에는 ‘th’와 ‘t’의 발음이 확연히 구별되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이 영지명세장 제24장 제73항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토지보유자의 자식 이름들 가운데 ‘Gunthardus’라는 이름과 ‘Guntardus’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들 두 이름 사이에는 단지 ‘th’와 ‘t’라는 차이밖에 없다. 이것은 ‘th’와 ‘t’의 발음이 확실히 서로 달랐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현상은 중세 초기에 라틴어의 발음이 전반적으로 고전 라틴어와는 다르게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세에 들면 발음뿐만 아니라 라틴어 단어들의 뜻도 달라진다. 그래서 특히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초기의 라틴어 발음과 단어 뜻의 정확한 파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4) 번역문 중 [ ]는 라틴어 원문의 간행자들이 수사본의 기록을 추가ㆍ보충한 부분을 표시하고, ( )는 옮긴이가 라틴어 원문에 없는 것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하거나 보충한 부분을 표시한다.

    5) 장 속의 항 번호 표기가 두 번 이상 반복되는 경우에는 예컨대, 76-1, 76-2로 번역본에 표기했다.

    6) 지명이나 인명 등 고유명사는 프랑스어 형태로 바꾸지 않고 라틴어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이 작성되던 9세기 초엽에는 프랑스어가 독자적 언어로서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명세장에 기재된 사람 이름의 대다수는 게르만적 형태를 띠고 있어, 그런 이름을 프랑스어 형태로 바꾸면 게르만적 특색이 손실될 수도 있다. 또한 이 영지명세장에 기재된 수많은 지명과 인명, 특히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옛 이름들을 근대의 프랑스어 형태로 바꿔 발음을 표기할 능력이 외국인인 옮긴이에게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7) 이 영지명세장에서 사용된 옛날의 도량형과 화폐단위는 가능한 한 우리말의 용어로 옮기거나 음역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쓰이지 않거나, 프랑스어에서도 쓰이지 않았거나, 또는 과거 프랑스어에서 쓰였다고 하더라도 그런 프랑스 말을 우리말로 음역했을 때 낯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황해 보이는 경우에 국한해서 라틴어로 된 일부 길이, 면적, 용량 단위는 축약해서 간단한 알파벳으로 표시했다. 이 명세장에서 사용된 도량형과 화폐단위의 환산 값은 책 앞머리에 별도로 제시되어 있다.

    8) 비록 colona, libera, lida와 같은 신분을 표시하는 여성명사가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콜로누스인 고달리쿠스와 콜로누스이고 이름이 레오딜디스인 그의 아내.”처럼 여성임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에는 ‘여자…’라고 구태여 번역하지 않았다. 다만 “생제르맹(수도원)의 여자콜로누스인 이디나는 4bun의 곡물경작지로 된 1개의 자유인망스를 보유한다.”처럼, 여성이 남편 없이 토지보유자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에는 ‘여자…’라고 명시해 번역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인 토지보유자를 남성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한글 번역문 중 고딕체로 된 부분은 번역원본에는 이탤릭체로 된 부분으로, 이 영지명세장이 전체적으로 작성되던 9세기 초엽 이후 추가된 부분을 표시한다.

    10) 이 번역문의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주석이다.

    11) 색인은 뒤에 첨부된 <간략한 용어풀이>의 대상이 된 용어들을 중심으로 아주 제한적으로 작성되었다. 대부분의 인명과 지명은 색인에서 제외되었다. 이 영지명세장에 수많이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은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영지명세장이라는 일정하게 정형화된 체재 속에서 반복해서 빈번히 나타나는 용어들도 그 용어의 뜻을 특별히 설명하는 경우 외에는 제외되었다. 예컨대, 망스, 곡물경작지, 초지, 콜로누스 등과 같은 용어들이 그것이다. 이런 용어들은 이 명세장에서 장별로 쉽게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

    옮긴이의 말
    도량형 및 화폐 단위 환산표
    일러두기

    01 가우기아쿠스 (장원의) 명세서
    02 팔라티올룸 (장원의) 명세서
    03 켈라 에콸리나 (장원의) 명세서
    04 봐니아쿠스 (장원의) 명세서
    05 베드라리에 (장원의) 명세서
    06 스피노길룸 (장원의) 명세서
    07 빌라리스 (장원의) 명세서
    08 노비겐툼 (장원의) 명세서
    09 빌라밀트 (장원의) 명세서
    10 비트리아쿠스 (장원의) 명세서
    11 누빌리아쿠스 (장원의) 명세서
    12 코르보넨시스 켄테나(의 기부재산) 명세서
    13 북시둠 (장원의) 명세서
    14 테오닥시움 (장원의) 명세서
    15 빌라노바 (장원의) 명세서
    16 쿰비 (장원의) 명세서
    17 무르킹크툼 (장원의) 명세서
    18 콜리둠 (장원의) 명세서
    19 악만투스 (장원의) 명세서
    20 빌라수프라마레 (장원의) 명세서
    21 만툴라 (장원의) 명세서
    22 식카발리스 또는 포레스티스 (장원의) 명세서
    23 카반네 또는 로도사 (장원의) 명세서
    24 비스콩켈라 (장원의) 명세서
    25 만시오네스 빌라 (장원의) 명세서

    부록: 2개의 단편적 (장원)문서

    간략한 용어 풀이
    지도: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영지의 장원 분포도
    문헌해제: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
    번역에 이용된 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양 중세의 장원제, 즉 촌락을 바탕으로 한 상당한 크기의 토지가 영주직영지와 농민보유지로 구성되고 직영지는 후자를 보유한 예속민의 부역노동으로 경작되는 고전적 형태의 장원제는 일찍이 루아르 강과 라인 강 사이의 갈리아 북부지역에서 발달했다. 흔히 고전장원제라고 일컬어지는 이런 장원제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9세기 초에 성립하여 카롤링시대에 전형적으로 발달했으며, 여기로부터 유럽의 여타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갈리아 북부지역은 이렇듯 역사적으로 서양 고전장원제의 발상지이자 발달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갈리아 북부지역에서 고전장원들로 조직되어 경영된 영지의 토지소유 상황을 기술한 카롤링시대의 ‘영지명세장(polyptychum)’은 10여 개쯤 전해지고 있다. 이들 명세장은 고전장원제에 대한 지식의 원천이 되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그 대다수는 그 내용이 뭉뚱그려져 기술되어 매우 간략한 편이거나 단편적 잔존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파리 시의 도심에 위치한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es)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18세기 말의 화재로 원래 기록의 절반 정도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장원제에 관한 기술내용이 여타의 명세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체제를 갖추고 소상하다. 장원별로 영주직영지의 상세한 재산과 수입 및 경영 현황은 물론, 영지명세장 가운데 유일하게 무려 총 1,700개가 넘는 농민보유지마다 거의 빠짐없이 토지이용 형태별 면적과 의무내용이 명기되고 수천 명에 이르는 보유농민과 그 가족의 이름ㆍ신분ㆍ거주지가 명시되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 부류의 장원 예속민과 많은 기부토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이 영지명세장은 고전장원제의 구조와 여러 양상을 연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일 뿐만 아니라, 카롤링시대를 중심으로 한 중세 전기의 토지이용 방식과 농업기술, 촌락구조, 신분제도, 결혼과 가족 제도 등 경제적ㆍ사회적 제반 상황을 파악하고 중세 초기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더욱이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에 기재된 장원들은 북부 갈리아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오늘날의 파리 지방 일대에 분포해 있었다. 그리고 이 명세장의 작성연대는 명시된 바는 없지만, 영지명세장 가운데서도 가장 빠른 시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820년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성 시점이 빠르다는 것은 이 영지의 장원제적 조직화도 빨라 여타 영지의 장원제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영지가 중세 장원제가 발달한 갈리아 북부지역 가운데서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장원조직과 명세장 작성이 선진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도 이 명세장의 중요성을 더해 준다.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세 서양의 장원제와 농촌사회 연구를 위해 더없이 소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일찍이 이 영지명세장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라틴어로 된 수사본(手寫本) 상태의 명세장을 근대적인 책으로 간행한 이는 문헌학자이자 역사가인 게라르(B. Guerard)였다. 그는 프랑스의 왕립 도서관에 보존되어 오던 “이르미노 수도원장의 영지명세장(Polyptychum Irminonis abbatis)”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카롤링시대의 영지명세장 가운데 가장 이른 1844년에 파리의 왕립출판사(L’imprimerie royale)에서 “샤를마뉴 시대 수도원장 이르미농의 영지명세장 또는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망스와 농노 및 수입 명세장(Polyptyque de l’abbaye Irminon ou denombrement des manses, des serfs et des revenus de l’abbaye de Saint-Germain-des-Pres sous le regne de Charlemagne)”이라는 긴 이름의 책으로 처음 발간했다. 총 2권으로 된 책 중 영지명세장의 라틴어 원문은 제2권에 게재하고, 제1권에서는 무려 1,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지면에 걸쳐 이 명세장의 내용과 관련하여 상세하고도 박학한 설명과 주석을 달고 있다. 그의 박학다식하면서도 정치한 주해는 이 영지명세장과 장원제에 대한 학계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 명세장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반세기 후 론뇽(A. Longnon)은 게라르의 뒤를 이어 1886~1895년간에 파리에서 샹피옹(H. Champion) 출판사를 통해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Polyptyque de l’abbaye de Saint-Germain-des-Pres)”이라는 제목으로 이 명세장을 다시 발간했다. 그는 제1권의 “서론(Introduction)”에서는 명세장의 내용을 설명하고, 제2권에는 영지명세장의 라틴어 원문을 게재했다. 그렇지만 그는 대체로 게라르가 발간한 영지명세장과 해설을 따랐으며, 다만 게라르의 편찬본에서 부족하거나 타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일부 보충하고 수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근래 1993년에는 독일의 헤게르만(D. Hagermann)이 그의 제자들인 엘름스호이저(K. Elmshauser)와 헤트비히(A. Hedwig)의 협력 아래 “생제르맹데프레의 영지명세장(Das Polyptychon von Saint-Germain-des-Pres)”이라는 제목으로 쾰른 등지에서 뵐라우(Bohlau) 출판사를 통해 이 영지명세장을 발간한 바 있다. 이들 제자가 같은 시기에 이 명세장에 대한 훌륭한 연구서를 별도로 출판한 때문이겠지만, 이 책에는 상세한 주석이나 설명이 없다. 그러나 그는 라틴어 명세장의 원래 모습을 연구자들에게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극진한 노력을 경주한 자세하고 사실적인 서지학적 성과를 책에 담고 있으며, 게라르나 론뇽과는 달리 이 명세장에 나타나는 모든 지명과 인명 및 사항을 망라한 색인을 달고 있다.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높은 사료적 가치 때문에 이처럼 거듭 수정ㆍ보완되어 새롭게 발간되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이 명세장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어 다른 어떤 영지명세장보다도 연구 성과가 많이 축적된 편이다. 그렇지만 이 명세장 전체를 오늘날의 언어로 옮긴 책은 옮긴이로서는 찾지 못했다. 다만 필요에 따라 극히 그 일부만 영어나 프랑스어로 번역한 사례는 더러 있다. 이 명세장의 전문이 현대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는 주요 원인은 무엇보다 명세장 전체를 일반인이나 학생들에게 제시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상당한 분량에 이르는 오래전의 이 고문서를 정확하게 번역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옮긴이가 명세장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자 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양 중세의 장원제에 관한 중요한 사료를 직접 읽고 이용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봉건적 토지소유에 관심을 가진 분은 이 번역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듣던 서양 장원제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한글 번역서로도 부족하여 라틴어 원문을 보고자 하는 분은 인터넷 검색 업체 ‘구글(Google)’에서 제공하는 게라르와 론뇽의 두 라틴어 원문을 가상공간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우리말 번역의 원본이 된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은 앞에서 말한 게라르, 론뇽, 헤게르만 등이 간행한 세 가지 원서다. 옮긴이는 곳에 따라 원문에 약간씩 차이가 나고 주석이 상이한 세 원서를 대조해 가면서 이용했다. 라틴어로 쓰인 원서는 일정한 형식과 체계 아래 반복적으로 기술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번역이 쉬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명세장은 막상 서술체계에 일관성이 없다든가, 모호한 문장이나 불분명한 단어사용이 드물지 않다든가, 탈자(脫字)와 오자가 적지 않다든가 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운 문제는 카롤링시대의 독특한 용어와 제도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옮긴이는 정확한 문맥과 뜻을 파악하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고 여러 가지 문헌을 참고했다. 참고문헌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참조한 것은 중세 라틴어 사전인 J. E. Niermeyer, Mediae Latinitatis Lexicon Minus (Leiden: E. J. Brill, 1984)와 더불어, 전술한 게라르의 간행본 중 이 명세장에 대한 설명과 주해를 담고 있는 제1권의 Prolegomenes, commentaires et eclaircissements와 이 명세장에 대한 근래까지의 연구성과를 흡수한 탁월한 종합적 연구서인 K. Elmshauser & A. Konrad, Studien zum Polyptychon von Saint-Germain-des-Pres (Koln: Bohlau, 1993)이다.
    옮긴이는 학계의 연구성과를 최대한 참고하려고 하는 등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직도 면밀하게 참고하지 못한 연구성과가 제법 남아 있으며, 정확하게 번역하지 못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지만 이 영지명세장에는 학계 내에서도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한 문제나 불명확한 부분이 꽤나 남아 있다. 그래서 현재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장래에도 연구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연구 현실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 번역이 서양 장원제 연구의 기초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리라는 점을 위로로 삼으면서, 미진한 느낌을 떨칠 수 없지만 이제 마무리하여 출판하고자 한다.
    이 영지명세장의 우리말 번역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번역의 기회를 제공해준 연구재단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번역보고서 심사자들의 지적과 문제 제기는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연구원의 장지연 교수는 발음을 비롯하여 중세 초기의 라틴어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제공해 주었고, 동아대학교 프랑스문화학과의 양인봉 교수와 경성대학교 사학과의 이경일 교수는 일부 까다로운 프랑스어 고유명사의 발음을 검토하여 교정해 주었다. 조순주 박사는 번역과정에서 교정작업을 비롯한 여러 어려운 일을 도와주었다. 이지은 명저번역 팀장을 비롯한 한국문화사 관계자들은 신속ㆍ원활하면서도 능숙한 일솜씨로 좋은 번역서가 출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었다. 이 번역서는 이분들의 참여와 기여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 역자서문 중에서)

    저자소개

    이르미노(Irmin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종
    판매수 7권

    9세기 초엽에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수도원장으로 재직한 인물. 이 수도원의 영지명세장 작성을 주도했음이 확실해 보이지만, 그의 출생과 사망 연도, 교육, 수도원장직 이외의 다른 경력 등 그의 생애 전반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과 국립도서관(BnF), 독일 기센 대학과 포츠담 대학, 미국 인디애나 대학과 웨스턴미시건 대학 등에서 서양중세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연구했다. 1983년 이후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양 중세의 장원제에 관해서는 30여 편의 논문이 있으며, 역시 장원제와 관련 있는[서유럽농업사 500~1850],[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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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시리즈(총 210권 / 현재구매 가능도서 18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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