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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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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느 날, 내 다리가 사라졌다!
대체 내 다리는 어디로 간 걸까?

기획의도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올리버 색스 박사가 실제 경험한 병상 기록이다!


“어느 날, 내 다리가 사라졌다!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그것은 내 다리가 아니었다.
낯설고 모형같이 생긴 것이 내 엉덩이뼈와 연결되어 있다. 진짜 내 다리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올리버 색스 박사는 노르웨이의 산을 오르다 발생한 사고로 다리에 부상(한쪽 다리의 근육과 신경이 심하게 손상된)을 입는다. 직업이 의사였지만 한 번도 환자가 되어본 적이 없던 그는 사고 덕분에 온전한 환자가 되어 수술대에 오른다. 그는 수술 후 “다리가 마비되어 ‘나’와 유리되면서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고 말하며 자신이 겪고 깨달은 병상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의학계의 계관시인’답게 자신이 치료받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놓는다. 부상을 당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신경심리학적 현상들과 존재론적인 현상들, 환자로서의 경험과 나중에 바깥세상으로 돌아갔을 때의 경험, 의사와 환자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복잡성과 그들이 특히 둘 다 잘 모르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 겪는 대화의 어려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더 많은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문제, 연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 등이다.

이 오지에서 내가 절망을 향해 갔다가 돌아온 것은 영혼의 여행이었다. 의학적으로 내 상태는 암점에 꼼짝없이 고정된 채로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 또한 내 주치의들과 나 사이에는 “깊은 문제들”은 언급하지 않기로, 그다지 냉정하지만은 않은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 오지에서, 이 어두운 밤 속에서 나는 과학에 기댈 수 없었다.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린 나는 예술과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했다.(132쪽 중에서)

이성적으로 사고해야만 하는 의사가, 그리고 그렇게 훈련받아온 사람이 수의학적인 접근 방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현상들을 경험했을 때 그 기분은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그가 경험한 증상은 바로 말단부 신경장애였다. 다시 말해 신체이미지장애와 신체자아장애가 올리버 색스 박사를 비롯해 이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히스테리 환자나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후 자신과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연구했다. 손과 발의 감각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손과 발이 실종되었거나 아니면 팔과 다리에 붙어 있는 낯선 물체라고 생각하곤 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 증상이 생각과 정서의 ‘억압’ 때문이 아니라 신경단절의 결과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밝혀낸다. 이와 함께 그는 ‘몸’과 ‘영혼’을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의학계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며,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경학적인 연구에 이끌린다.

이 책에는 묘한 불일치가 있다. 공식들은 기계적이고 분석적이고 사이버네틱스적이며, 전적으로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묘사되어 있다. 반면 환자들의 경험담과 행동을 묘사한 부분에서 기반이 되는 것은 자아다. 손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곧 환자에게 낯설다는 뜻이다. 어떤 행동이 이루어진다면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은 환자다. 하지만 어디에나 은연 중에 존재하는 환자들은 공식적으로는 노골적으로 부정당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에 독특하게 이중적인 사고가 스며들었고, 신경심리학 전반에도 독특하게 이중적인 사고가 스며든 것이다.(252쪽 중에서)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 책을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기계적이고 ‘고전적인’ 모델에서 완전히 개인적이고 자기참조적인 뇌와 정신의 모델로 크게 도약하는 것은 이제 신경학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많다면서, 만약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혁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400년 전 갈릴레오 식 사고, 즉 물리학이 부상했을 때만큼이나 혁명적인 변화 말이다.

목차

머리말

1장 산에서
2장 환자가 되다
3장 불안
4장 소생
5장 걸으면 해결된다
6장 회복
7장 이해하기

1991판 후기
참고문헌
감사의 말

본문중에서

1장 산에서
진정한 현실은 정말로 애매하지 않았다. 모호함이나 환상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안개 속에서 막 빠져나와 집채만 한 바위를 돌아서 걸어가던 참이었다. 길이 바위 옆으로 둥글게 휘어 있어서 앞을 볼 수 없었고, 바로 그 때문에 그 ‘조우遭遇’를 허용하고 말았다. 나는 사실상 내 앞에 있던 그것을 발로 밟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길에 앉아 있는 거대한 짐승. 녀석은 길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지만, 커다랗고 둥근 바위 때문에 내게는 그 모습이 가려져 있었다. 뿔이 달린 녀석의 머리는 거대했으며, 하얀 몸은 엄청났다. 우유처럼 하얗고 온화한 얼굴도 엄청나게 컸다. 녀석은 내가 나타났는데도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그 크고 하얀 얼굴을 들어 내 쪽으로 돌린 것을 빼면 지극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녀석이 변했다. 내 눈앞에서. 크고 당당하던 모습이 완전한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크고 하얀 얼굴이 점점 부풀고 또 부푸는 것만 같았고, 퉁방울만 한 눈은 악의로 번들거렸다. 그동안에도 얼굴은 계속 커져서 나중에는 저러다 온 우주를 뒤덮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녀석은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힘과 악의와 교활함이 무시무시했다. 이제 녀석의 모습 구석구석에 지옥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괴물로 변하더니, 이제는 악마의 모습이 되었다.
나는 잠깐 동안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니, 침착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산책이 끝나서 돌아서는 사람처럼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180도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능숙하고 조심스럽게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아, 끔찍한 일이!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끊어지면서 공포가 엄습하는 바람에 나는 죽어라 뛰었다. 미친 듯이, 무턱대고, 그 가파르고 미끄러운 진흙길을 뛰었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안개 때문에 가끔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그 길을. 무턱대고, 미친 듯이, 공포에 질려서 뛰었다! 세상에 그보다 더 험한 일은 없고, 그보다 더 위험한 일도 없다. 나는 그때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 그 걷기 힘든 길을 마구 달려서 도망치다가 내가 발을 헛디뎠음이 틀림없다. 헐겁게 빠져 나와 있던 돌멩이를 밟았거나 허공을 밟았을 것이다. 마치 내 기억에서 한 순간이 빠져 있는 것 같다. 사고 ‘이전’과 ‘이후’는 있는데 그 중간이 없다. 조금 전만 해도 나는 무거운 숨소리와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의식하며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 숨소리와 발소리가 황소의 것인지 내 것인지도 모른 채.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절벽처럼 솟아 있는 바위 아래에 쓰러져 있고, 내 왼쪽 다리가 몸 아래쪽에서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무릎에서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 밀려왔다.
(/ pp.18~19)

2장 환자가 되다
나는 의사가 X선 사진을 확인하는 동안 바퀴침대 위에서 기다렸다. 그날 밤 응급실 당직을 맡고 있던 의사는 그 동네의 일반 진료의로 어머니처럼 푸근하고 친절한 여자였는데, 긴 뼈에는 골절이 없다고 했다. 무릎은 직접 진찰해보거나 X선 사진만으로 자세히 상태를 진단하기가 어려운 부위다. 의사는 이런 부상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단순히 네갈래근이 찢어진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을 터였다. 의사는 상당히 큰 수술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복잡한 수술은 아니에요.” 나의 겁먹은 표정을 보고 빙긋 웃으며 금방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서 석 달이나 누워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마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미리 각오해두세요.” 그녀는 런던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말했다.
(/ p.46)

곤하게 자고 있던 나를 자그마한 자바인 간호사가 갑자기 무례하게 깨웠다. 평소에는 아주 조용하던 그녀가 갑자기 내 입원실로 쳐들어와서 나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녀는 내게 점심을 가져다주려다가 투명한 문을 통해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쟁반을 팽개치고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색스 박사님, 색스 박사님.” 그녀가 잔뜩 긴장해서 비명처럼 외쳤다. “다리가 어디 있는지 좀 보세요. 이러다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가겠어요!”
“말도 안 돼요!” 나는 나른하게 말했다. 아직도 잠에 취한 상태였다.
“내 다리는 바로 여기 있어요. 내 앞에.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요.”
“아니에요!” 간호사가 말했다. “침대에서 반쯤 내려갔어요. 틀림없이 자다가 움직이신 모양이에요. 박사님이 직접 보세요!”
“그만 해요!” 나는 귀찮아서 내 몸을 살피려 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농담은 그만해요.”
“색스 박사님, 농담이 아니에요! 제발 일어나서 아래를 좀 보세요.”
나는 여전히 간호사가 나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며(병동 간호사들은 환자를 잘 놀리기로 악명이 높다) 몸을 일으켰다. 나는 원래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몸을 일으켜서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믿을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다리가 없었다!
(/ p.76~77)

3장 불안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박물학자나 탐험가로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낯선 신경심리학의 영역들을 많이 탐험했다. 신경장애 중에서도 머나먼 북극과 열대에 해당하는 영역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땅을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혹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걸까? 내가 맞닥뜨린 이 땅은 이름도 없는 오지였다.
전에 여러 신경심리학적 영역들을 탐험할 때는 내게 도움이 되었던 인지능력, 지적인 능력, 상상력이 이 오지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었다. 나는 지도를 벗어났다. 조사하면 알아낼 수 있는 세계에서 떨려났다. 공간에서 떨어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시간에서도 떨어져 나왔다. 이제는 결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지성, 이성, 감각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억, 상상력, 희망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예전에 발 디딜 자리를 제공해주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지금 나는 내 뜻과 상관없이 영혼의 어두운 밤 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 상태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커다란 공포였다. 내가 평소에 휘두르던 모든 능력을 포기해야 했으니까.
(/ p.128)

이 오지에서 내가 절망을 향해 갔다가 돌아온 것은 영혼의 여행이었다. 의학적으로 내 상태는 암점에 꼼짝없이 고정된 채로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 또한 내 주치의들과 나 사이에는 “깊은 문제들”은 언급하지 않기로, 그다지 냉정하지만은 않은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 오지에서, 이 어두운 밤 속에서 나는 과학에 기댈 수 없었다.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린 나는 예술과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했다. 밤의 어둠을 뚫고 나를 불러줄 수 있는 것,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 뭔가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현실을 좀더 이해하기 쉽고 참기 쉽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술과 종교뿐이었다. “우리는 진실로 인해 소멸하지 않도록 예술을 갖고 있다.”(니체)
(/ p.132)

4장 소생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고 공허했던 그 열흘 내내 내 다리의 상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리는 여전히 아무런 감각도, 반응도 없이 하얀 돌무덤 같은 깁스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고정되어 절대 변하지 않는 그 상태, 말하자면 마치 하얀 원통 모양의 무기물로 바뀌어버린 것 같은 모습, 생기 없이 석화되어 석회질로 변해버린 것 같은 모습이 매일 밤 내 앞에 자꾸만 나타났다. 내 꿈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사진이나 도표처럼 자세하고 생생했으며, 여전히 움직임도 없고 사건도 없었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 똑같이 죽음 같은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아지거나 변할 거라는 생각, 또는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은 낌새나 희망은 계속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 p.137)

월요일 아침, 그러니까 수술 이후 14일째 되던 날 나는 깁스실로 내려가서 의사에게 상처를 보이고 실밥을 뽑기로 되어 있었다. 지난 2주 동안, 아니 사고를 당한 그날 이후로 줄곧 나는 실제로 내 다리를 볼 수 없었다. 다리가 항상 깁스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깁스에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매끈한 모습, 돌무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색, 다리를 엉터리로 모호하게 패러디한 것 같은 모양 때문에 깁스는 왠지 공포의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서인지 내 꿈에서도 깁스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 p.142)

레지던트의 부축을 받아 나는 한 팔로 몸을 일으켜 내 다리를 아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래, 다리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그건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깁스 안이 텅 비어 있지도, 그 안이 온통 단단하게 꽉 차 있지도 않았다. 흙덩이나 똥이나 썩어가는 닭뼈가 들어 있지도 않았다. 깁스 안에는 다리가 있었다. 대략 평범한 크기의 다리. 비록 옆 친구에 비하면 크게 위축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약 30센티미터쯤 되는 길고 깔끔한 흉터가 나 있었다. 분명히 다리였지만, 또한 다리가 아니었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마음 깊이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그만큼의 불안과 충격을 느꼈다. 다리가 ‘그 자리’에 있기는 했지만, 진짜로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 pp.146~147)

5장 걸으면 해결된다
나는 일어섰다. 아니, 일으켜 세워졌다. 다부진 몸집의 물리치료사 두 명이 내 몸을 들어 세운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두 개의 튼튼한 목발로 최대한 그들을 도왔다. 내게는 기괴하고 무서운 경험이었다.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왼쪽 다리가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리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느낌도 전혀 없었다. 다리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아래를 내려다봐야 했다. 시각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더라도 내 오른발 옆에 있는 ‘물체’가 왼발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순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물건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속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물건에 무게를 얹거나, 어떤 식으로든 이용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 있었지만, 그것은 내 다리로 선 것이 아니라 목발과 물리치료사들의 도움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 p.163)

반쯤은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반쯤은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실은 채로 나는 왼쪽 다리에 휴식을 주었다. 환상이 조금 약해져서 변화의 폭이 줄어들었지만, 속도는 여전했다. 2분쯤 지난 뒤에 안정성이 충분히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물리치료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랬더니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갑자기 음악이 돌아왔고, 그와 함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능력이 돌아왔다. 다리도 실체를 갖고 되살아났다. 다행히 내 방까지의 거리가 겨우 몇 미터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내내 음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휠체어까지 간 뒤 침대로 올라갔다. 몸은 기진맥진했지만 기분은 의기양양했다.
황홀한 기분이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다리의 실체를 느끼고, 내 다리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은총처럼 내게 주어졌다. 이제 다리와 재결합한 나는 파문당해서 오지로 쫓겨나 있던 나의 일부를 되찾고는 나도 모르게 다리에 지극한 애정을 느끼며 깁스를 어루만졌다.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이 다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리는 집으로, 내게로 돌아왔다. 내 몸은 지금까지 고장 난 채로 움직였다. 행동이 다시 완전해진 지금에야 몸도 다시 완전해진 것 같았다.
(/ pp.174~175)

6장 회복
자유! 어느 순간 갑자기 나는 걸을 수 있게 되고, 자유가 되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는 다시 완전해지고, 건강해졌다. 전에는 그런 것을 상상할 수도, 생각할 수도, 바랄 수도 없었는데, 이제 적어도 완전하고 건강한 몸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는 있었다. 지금은 걸으면서 신체적 자유, 즉 동물적 자유를 다시 경험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다른 모든 자유의 전주곡 격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제 내 앞에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렸다. 전에는 비록 나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몸이 마비된 사람처럼 사실상 꼼짝도 못한 채 입원실에서 눕거나 앉아서 18일을 보냈다. 그 18일 동안 생각은 강렬했지만, 행동을 하거나 어디로 가지는 못했다. 나는 자유가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행동을 하거나 어디에 갈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치 기적처럼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리’가 모든 면에서 급격하게 변했다.
(/ p.181)

하지만 태양의 축복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도 나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 중에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학생들, 간호사들, 병원을 찾아온 방문객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하얀 환자복을 입은 우리 환자들을 사람들은 비록 무의식적이지만 마치 나병환자를 보듯 분명히 피하고 있었다. 내가 환자라는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 사회에서 동떨어져 쫓겨난 존재라는 사실을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우리의 환자복을 보고 드러내는 연민, 혐오…, 그들과 우리 사이에 분명히 커다란 틈이 있다는 감각. 사람들의 예의 바른 행동은 그 틈을 오히려 더 강조해주기만 할 뿐이었다. 과거 건강하던 시절에 나도 몸을 부르르 떨며 환자들에게서 멀어졌음을 깨달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이라서 나 자신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환자가 되어 환자복을 입은 처지가 되니, 사람들이 부르르 떨면서 나를 피하는 것,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이 나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강렬히 의식하게 되었다.
(/ pp.195~196)

실제로 깁스를 떼어낸 내 다리는 아주 좋아 보였다. 비록 다른 다리보다 여전히 가늘기는 했지만(온도도 조금 낮았다) 그래도 그동안 멋지게 살이 붙어 있었고, 수술 흉터는 깔끔했다. 흉터 역시 나름 멋지게 보였다. 특히 그것을 전투에서 입은 영웅적인 상처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기분이 더해졌다. 4주 전 내게 그토록 충격을 안겨주었던, 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한 낯선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다리는 확실히 살아 있었고, 확실히 진짜였으며, 확실히 내 것이었다. 무릎 주위가 조금 모호하다고나 할까 이상하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피부에 감각이 없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깁스에 감싸여 있던 부분 전체가 마취라도 된 것처럼 전혀 감각이 없었다. 자기수용감각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다리가 낯설지 않고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동반되는 감각) 감각마비가 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표피에서는 강도가 심했다.
(/ pp.225~226)

7장 이해하기
루리아는 신체 말단부의 문제로 인해 이 부정적인 현상들(낯설어짐, 비현실감, 무관심, 부주의)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기체는 통일적인 시스템”이라서 맨 처음의 방해 요소가 중앙에서 발생했든 말단에서 발생했든 상관없이 시스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외과 의사, 신경학자)은 환자들이 이런 증세를 호소할 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증상을 겪는 환자들이 자신의 느낌을 잘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말하지 않고,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험의 특징을 온전히 이끌어내서 남들에게 보여주려면 독특한 환자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원래 직업이 의사이거나 신경심리학자인 환자 말이다.
(/ p.240)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약 400명의 환자를 연구하면서 문진과 진찰을 보충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자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전기생리학적인 연구도 실시했다. 많은 환자들 중에 전형적인 사례를 하나 꼽는다면, 왼쪽 다리가 힘을 잃고 마비된 노부인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 노부인이 뇌중풍 발작을 일으킨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엉덩이뼈의 복합골절 때문에 수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깁스를 한 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수술 뒤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고,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해부학적으로 신경이 손상된 것은 아니었다. 신경과 신경 사이의 신호전달 속도도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근육은 완전히 이완되어 있었으며, 완벽한 ‘전기적 침묵’ 상태였다. 기능이나 자세에 따른 신경감응이 없었다는 뜻이다. 노부인 자신은 왼쪽 다리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했다. 왼쪽 다리에 해당하는 감각피질 부위의 유발전위 검사 결과는 백지였다. 다리에서 올라오는 객관적인 신경정보가 없다는 뜻이었으며, 신체이미지에 객관적인 공백이 생긴 상태였다.
(/ p.243)

행동의 급진적이고 ‘살아 있는’ 본질이, 아무리 단순한 ‘동물적인’ 동작의 경우라 해도, 일단 사라지고 나면 그 뒤에 벌어지는 현상 속에서 그에 상응하는 부분이 발견되고 존재가 확인된다. 급격한 소멸, 무無, ‘죽은 듯한 무감각’, 암점 같은 현상들 말이다. 그러나 존재와 무는 이해하기가 유난히 어려워서 심지어 웃음이 나올 정도다. 적어도 일상적인 ‘의학적’ 대화로는 그렇다. 그래서 내가 이 문제를 언급했을 때 주치의와 나 사이에 기묘하고 곤란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치의는 “그런 건 우리 일이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 그럼 도대체 누구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행동과 존재와 무로 이루어진 이 일은 어떤 종류의 일인가? 이것이 어떤 일인지 알아내려면 자신 안에서부터 이것을 겪는 수밖에 없다. 행동의 급격한 붕괴, 경험의 급격한 붕괴, ‘범주’의 급격한 붕괴, 기본적인 공간과 시간의 급격한 붕괴를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칸트적’ 일이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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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3.07.09~2015.08.30
출생지 영국 런던
출간도서 25종
판매수 11,335권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 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뉴욕 대학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12년 록펠러 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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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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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시립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도리스 레싱의 『사랑하는 습관』 『19호실로 가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하여, 『플라워 문』 『노년에 대하여』 『스토너』 『사형 집행인의 딸』 『신 없는 사회』 『뷰티풀 크리처스』 『분노의 포도』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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