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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남 :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눈부시게 되살아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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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우리 이야기를 꼭 해주세요! 안 그러면 영영 잊힐 테니까요"

    수십 년간 얼어붙어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온
    환자들이 경험한 폭발적이고 눈부신‘깨어남’과 ‘되살아남’
    그 기적 같은 순간을 색스 박사는 매우 특별한 보고서로 탄생시켰다.


    색스 박사가 들려주는 이 굉장한 사람들의 환희에 넘치는 이야기는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사랑의 기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와 라디오극으로도 만들어졌다.

    기획 의도

    폭발적으로 눈부시게 깨어나다

    [깨어남Awakenings]은 192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유행병인 ‘수면병(기면성뇌염)’에 걸려 수십 년간 얼어붙어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다. 올리버 색스는 1960년 중반 뉴욕의 마운트카멜병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기면성뇌염이 유행한 이래 50년 동안 꼼짝없이 그곳에 갇혀 있던 뇌염후증후군 환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색스는 레지던트를 마친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의사로서 이 질병과 마주했던 것이다. 그는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질병에 매혹되었고, 환자들의 상태를 관찰하고 병을 연구하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7년 조지 코치아스가 엘도파L-Dopa를 파킨슨병에 걸린 한 환자군에게 평소보다 1,000배나 많은 용량을 투여해 성공을 이룬다. 이 결과로 파킨슨증 환자들에게는 없던 미래가 다시 펼쳐지게 된 것이다. 색스 역시 이런 연구 결과에 주목하며 환자들을 돌보았지만, 엘도파를 처방하는 데 망설였다. 그가 담당하던 환자는 파킨슨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고도 이상한 뇌염후증후군성 장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스는 조심스럽게 뇌염을 앓은 뒤 입원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이중맹검법에 의해 엘도파를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고는 엘도파의 눈부신 효과를 체험하게 된다. 엘도파의 효과는 결정적이었고, 의미 있었다. 색스는 환자 전원에게 엘도파를 투여하기로 결심했고, 1969년 ‘잠을 깨우는’ 놀라운 신약 엘도파를 자신의 환자들에게 투약하기 시작했다.
    엘도파를 처방받은 환자들의 첫 반응은 행복이었고, 눈부신 ‘깨어남’의 축제였다. 그러나 그 효과는 계속되지 않았고, 모든 환자가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기적의 신약’이라 불린 엘도파는 특정한 부작용을 일으켰으며, 일련의 문제 양상, 즉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반응의 변이, 급속한 전개, 엘도파에 대한 극도로 민감한 반응, 그리고 투약 용량과 그 효과를 정확하게 맞추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색스 박사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환자들에게 엘도파 이전의 삶과 엘도파 치료를 시작한 뒤에 일어난 변화,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삶의 변화를 담은 이야기, 즉 환자들의 일대기인 감동적인 휴먼스토리 [깨어남]을 썼다.

    의학사상 전례가 없던 사건의 유일한 증언이다
    엘도파는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환자들을 깨워냈다. 올리버 색스는 이 환자들이 경험한 폭발적이고 눈부신 ‘깨어남’과 ‘되살아남’, 자양과 생기를 얻어 한 사람 한 사람 깊은 잠에서 빠져나오는 그 순간의 기록을 매우 특별한 보고서로 탄생시켰다. 수십 년의 ‘잠’에 뒤이은 ‘깨어남’은 의학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던 사건이고, 색스는 이를 환자의 일생과 약에 대한 반응을 장기간 추적한 병례사 혹은 일대기의 형식으로 남겼으며 이는 유일한 증언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격리시설에 수천 명의 뇌염후증후군 환자 그룹이 있었다. 주요국 가운데 뇌염후증후군 환자가 없는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 환자들의 1969년의 극적인 ‘깨어남’에 관해 현존하는 기록은 이 책뿐이다.
    올리버 색스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책이 연구일지나 치료일지를 벗어나 많은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기술적으로, 수치적으로, 과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환자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색스의 입장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주인공은 환자들이고, 그 환자들의 삶이다. 환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기 위해 색스는 병례사, 일대기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깨어남]의 중심축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책 속에는 색스 박사가 만난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이 자세히 소개된다. 그들은 이상하고 기이한 병을 앓다가 치유의 과정을 겪거나 아니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들이 살아낸 다른 세계, 다른 삶에는 우리의 삶과 다를지언정 공감할 만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힘, 타인에 대한 강렬하며 창조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환자들이 보여준 열정과 용기에 감동받다
    [깨어남]에서 색스 박사는 특유의 문학적인 글쓰기로 인간 ‘사화산’으로 살아온 환자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사연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환자들은 죽음과 같은 질병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깨어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을 발현했다. 잃었던 인생을 엘도파로 되찾은 후에는 매순간 기뻐하며 강렬한 행복감으로 삶을 살아냈다.
    그러다 엘도파 투약 후 부작용으로 인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고, 고통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의연하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색스의 환자들이 보여주는 이런 삶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역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본보기가 되어준다.
    색스는 자신의 환자들의 ‘사연’, 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에 크게 주저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의 환자들이 그를 격려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해줘요. 안 그러면 영영 알려지지 않을 테니까요."
    색스는 그의 환자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이렿게 술회했다. "몇 사람은 아직까지 살아 있고, 알고 지낸 지도 스물네 해가 되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것이 아니다. 펼쳐진 차트와 편지 속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와 마주 보고 있다. 내게 그들은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살아 있다. 그들은 환자였을 뿐만 아니라 교사이자 친구였으며, 그들과 함께한 세월은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삶과 존재가 인간에게 닥치는 역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본보기로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특수한 사건의 증언이며 유일한 증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우화가 될 수도 있다."

    목차

    1973 초판 서문_1990년판 개정에 대하여_1990년 개정판 서문
    프롤로그_파킨슨(씨)병과 파킨슨증_수면병(기면성뇌염)_수면병의 여파(1927~1967년)_마운트카멜병원의 생활_엘도파의 도래
    깨어남
    이상한 뇌염후증후군 나라의 앨리스-프랜시스 D.
    가면 같은 얼굴에 표정이 살아난-마그다 B.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숲 속의 미녀-로즈 R.
    병상에서의 삶이 괜찮은 게임이었다고 말한-로버트 O.
    회오리바람의 눈 속에 갇혀버린-헤스터 Y.
    음악 속에서만 자유로운-롤런도 P.
    진짜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천재-미리엄 H.
    단절 속에 자신을 가둔 아기 인형-루시 K.
    여러 명의 자아로 쪼개지는-마거릿 A.
    구두 수선공으로 다시 태어난-미론 V.
    스스로 환각을 제어하는-거티 C.
    부활절 정신병을 앓는-마사 N.
    잠에서 깨어난 공주-아이다 T.
    부재중 인간이 되어버린-프랭크 G.
    바구니 짜는 여인-마리아 G.
    엘도파가 부른 재앙-레이철 I.
    엘도파 처방 최고의 스타 환자-아론 E.
    바늘 끝에 서서 균형을 잡는 남자-조지 W.
    전형적인 뇌염후증후군 환자-세실 M.
    뇌염후증후군에 갇힌 슬픈 천재-레너드 L.
    관점·깨어남·시련·적응
    관점_깨어남_시련_적응
    1982년 에필로그
    1990년 후기
    부록_부록1수면병의 역사_부록2 기적의 약물들: 프로이트, 윌리엄 제임스, 해블록 엘리스_부록3 ‘깨어남’의 뇌파 원리_부록4 엘도파 치료 이후의 연구들_부록5 파킨슨증의 시간과 공간_부록6 혼돈과 깨어남_부록7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다
    감사의 말
    용어 사전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1973년 초판 서문
    이 책은 특수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의 삶과 반응, 그리고 그것이 의학과 과학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50년 전에 유행했던 수면병(기면성뇌염encephalitis lethargica)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 ‘잠을 깨우는’ 놀라운 신약 엘도파L-DOPA가 이들에게 반응을 일으켰다. 의학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던 이 사건은 환자의 일생과 약에 대한 반응을 장기간 추적한 병례사 혹은 일대기의 형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며, 이것이 이 책의 구성이 될 것이다. 병력 기술에 앞서 서문에서 이 병의 특성, 발병한 후 환자들의 삶, 그들의 삶을 바꿔놓은 약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이는 아주 특수한 영역이자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만 흥미로울 법한 주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이 주제가 여러 분야에 미친 영향을 일부나마 설명하려 했는데 그것은 건강, 질병, 고통, 치료, 나아가 보편적인 인간 조건 같은 아주 일반적인 물음으로까지 확장된다.
    (/ p.13)

    1990년 개정판에 대하여
    나는 파킨슨병 환자를 보면 여전히 경이감에 사로잡히며 무한한 것의 표면만 보았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나의 환자들이 깨어난 지 21년이 지났고,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지 17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 주제는 의학적으로, 인간적으로, 이론적으로, 극적으로 무한하게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무한한 추가와 개정판을 요구하는 힘이요, 이 주제를 내 안에서 (바라건대 독자들에게도)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로 만들어주는 동력이다.
    (/ p.19~20)

    1990년 개정판 서문
    이 시기는 환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도 다시 없을 시간이었다. 1950년대에 파킨슨증 환자의 뇌에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하며, 도파민의 수준을 높이면 뇌가 ‘정상’이 될 수도 있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엘도파(도파민의 전구체)를 밀리그램 단위로 투약하여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시도는 거듭 실패했다. 그러다가 조지 코치아스(1918~1977년, 공동 연구를 통해 엘도파 요법을 개발한 그리스계 미국 과학자?옮긴이)가 대담무쌍하게도 한 환자군에게 평소보다 1,000배나 많은 용량을 투여하자 성공했다. 1967년 2월에 코치아스의 결과가 발표되자, 파킨슨증 환자들의 미래가 확 바뀌었다.
    … 그러나 레지던트를 마친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의사로서 처음 마운트카멜병원에 왔을 때 나를 흥분시킨 것은 엘도파도, 그 효과도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똑같은 증상을 겪는 환자가 없으며,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질병에 흥분했다.
    …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신경계의 모든 층위에서 나타나는 방대한 장애 덕분에 이 병이 신경계가 어떤 조직인지, 뇌와 행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른 무엇보다도 잘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내 안의 생물학자, 자연학자는 이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나는 원시성 대뇌피질하 행동과 조절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 p.24~25)

    때로는 더없이 이상하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병과 삶, 유기체 혹은 환자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일의 역동성은 내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나 레지던트 때 중요하게 여겼던 관점이 아니었으며, 현재의 의학 저술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을 보았을 때는 이 관점이 명확하고도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었다.
    (/ p.26)

    내가 담당한 환자들의 경우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그들의 병은 보통 파킨슨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고도 이상한 뇌염후증후군성 장애였다. 그렇게 다른 병을 앓는 이 환자들에게서는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이들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 p.28)

    동시에 1969년 환자들이 보였던 예측 불가능한 엘도파 반응, 즉 갑작스러운 변이와 변동, 엘도파에 극히 ‘민감’해질 뿐만 아니라 만사에 민감해지는 현상이 점차 모든 환자에게서 나타났다.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에게서 몇 주 만에, 때로는 며칠 만에 기이한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반면에 신경계가 더 안정적인 ‘일반적인’ 파킨슨증 환자들의 경우에는 몇 년 동안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엘도파를 복용하는 모든 환자가 이상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고, 1970년에 엘도파가 식약청의 승인을 받으면서 그 수가 급증하여 결국에는 수백만에 이르렀다. 현재는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 엘도파의 주된 효과는 수백만 번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된 위협 요소인 ‘부작용’, 즉 ‘시련’은 이르든 늦든 틀림없이 겪게 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깨어남]의 중심축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상상이다. 다른 세계, 다른 삶에는 우리의 삶과 다를지언정 공감할 만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힘, 타인에 대한 강렬하며 창조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 p.37~38)

    프롤로그
    파킨슨(씨)병과 파킨슨증
    파킨슨병의 개별적인 증상들과 특징, 파킨슨병 특유의 떨림증(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몸의 일부가 규칙적이고 리드미컬하게 떨리는 증상?옮긴이), 특유의 허둥대는 말과 걸음걸이 혹은 가속보행 등은 일찍이 갈레노스 시대의 의사들이 기록한 바 있다.
    (/ p.41)

    1920년대에 수면병(기면성뇌염)이 대대적으로 유행하면서 ‘신종’ 파킨슨증이 나타났는데 이것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원인이 있었다. 뇌염성 혹은 뇌염후성 파킨슨증은 특발성 파킨슨증과는 달리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발병했는데, 특발증에서 나타났던 증상보다도 파괴적이고 극적인 형태였으며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파킨슨증의 세 번째 주요 원인은 1950년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드러났는데, 이른바 ‘주요 진정제’인 페노티아자이드계와 부티로페논계 약물의 복용으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그리고 대개는 과도한) 결과, 즉 ‘부작용’이었다.
    (/ p.43)

    내가 이런 양상, 행동의 민첩함과 긴박감, 조급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덜 흔한 ‘다른 측면’의 파킨슨증, 활발한 파킨슨증, 팽창적이고 폭발적인 측면의 파킨슨증을 보여주며 환자들한테서 나타나는 엘도파의 ‘부작용’과 특히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p.45~46)

    특히 샤르코는 뚜렷하게 구분되지만 호환적인 세 단계(순응-고집 단계, 방해-저항 단계, 폭발-돌진 단계)와 가소성, 강직증, 광란적 형태의 긴장증과 히스테리 사이에 형태상의 유사성이 있음을 간파했다. 이런 통찰은 1920년대에 파킨슨증과 유행성 뇌염의 다른 장애들과 융합된 관찰에 의해 보강되었다. 그 뒤로는 완전히 ‘잊혀져’ 신경학자들의 의식 속에서 밀려났다. 엘도파의 효과는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샤르코와 그 동시대인들의 잊혀진 분석과 유사성을 되살리고 더 깊이 고찰하게 한다.
    (/ p.51~52)

    수면병(기면성뇌염)
    3년에 걸쳐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수면병11은 발현 양상이 다양해서 증상이 똑같은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였으며, 증상 자체도 너무나 생소해서 의사들은 유행성 섬망, 유행성 정신분열증, 유행성 파킨슨증, 유행성 다발성경화증, 비정형 광견병, 비정형 회색질척수염 등으로 진단했다.
    (/ p.52)

    전 세계적 유행병은 발병한 지 10년 만에 5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발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1927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사라졌다. 이 수면병에 걸린 사람의 3분의 1이 급성 단계, 깨우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혼수상태나 진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불면 상태에서 사망했다. 이런 유형의 극심한 수면병/불면병에 걸렸으나 살아남은 환자들 가운데는 발병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의식이 있고 깨어 있지만,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따라서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기력이나 탄력, 자발성, 동기, 식욕, 정서, 욕망, 그 어느 하나 없는 채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지냈다.
    (/ p.54~55)

    기면성뇌염의 ‘최고’ 단계에서는 온갖 신경 및 심리 장애가 나타나는데, 이런 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뇌염을 원인으로 하는 여타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는 강박적이고 히스테리적인 ‘기능적’ 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고려할 때, 처음 발병한 후 몇 년 동안이나 ‘안구운동발작’을 순전히 ‘기능적’ 히스테리로 여겼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수면병을 앓은 직후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형태의 정서적 강박이 흔히 나타나는데 특히 음란증, 과민증, 성적 흥분이 한 축을 이루고 짜증, 격노, 파괴적 격발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이런 행동 양태는 성격이 돌변하기 쉬운 아동기에 가장 명확하게 확인된다.
    (/ p.58)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이 병의 참화” 속에서 오로지 하나만이 예외였으니 ‘고등한 능력’(지능, 상상력, 판단력, 유머 감각)은 (좋든 싫든) 제외되었다. 그리하여 이 환자들 가운데에는 희박함 혹은 기이함에 관한 한 인간에게 허용된 극한까지 몰린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의 상태에는 어마어마한 기억, 비교, 분석, 증명 능력이 수반된다. 이들의 운명은 말하자면
    진귀한 재앙의 진귀한 목격자가 되는 것이었다.
    (/ p.61)

    수면병의 여파(1927년~1967년)
    수면병에 걸렸던 많은 환자가 완전히 회복하여 예전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대다수에게는 그 후유증으로 신경장애나 정신장애가 나타났는데, 가장 흔한 것이 파킨슨증이었다. 그들에게 왜 그런 ‘뇌염후증후군’이 나타났는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지금껏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
    … 심각한 장애를 겪는 환자의 뇌에서 질병의 징후가 놀라울 정도로 드물게 발견되는가 하면, 거의 장애가 없는 환자들한테서는 조직이 파괴된 증거가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런 불일치에서 뇌 부위의 국소적 변화 말고도 임상 양상과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가 많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으며, 또한 파킨슨증에 취약한 경향은 뇌 안의 ‘파킨슨증 본부’에 해당하는 부위에 손상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무수한 부가적인 ‘요인들’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p.62~63)

    뇌염후증후군은 시대에 따라 병의 성격이 바뀌어갔다. 이 유행병의 초기는 비등기로, 병태로 말하자면 넘치는 움직임과 틱, 돌진과 서두름의 충동, 조증과 발작, 열렬하고 강한 욕망의 시기다. 1920년대 말 급성기가 끝나면서 뇌염후증후군은 냉각 혹은 응결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초에는 비운동성 마비 상태가 희귀했으나 1930년대부터 많은 생존 환자들에게 활기 없는 완서緩徐의 파도가 밀어닥치면서 (생리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은유적으로 잠 혹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에 빠졌다. 파킨슨증, 긴장증, 울병, 몽환, 수동성, 비운동성, 무기력, 무감정. 이것이 1930년대와 그 후로 수십 년간 그들을 잠식한 ‘잠’의 성격이었다.
    (/ p.65)

    마운트카멜병원의 생활
    마운트카멜병원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신경계에 부상을 입은 참전 군인들과 수면병 희생자들을 위해 개원했다.
    (/ p.66)

    1966년 내가 처음 마운트카멜병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아직까지 뇌염후증후군 환자가 80명가량 남아 있었는데, 미국 내에서는 최대의 환자 군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이 환자들 절반 정도가 사실상 말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병리적 ‘수면’ 상태에 잠겨 24시간 전담 간호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나머지 환자들은 장애가 덜 심각하고 덜 의존적이고 덜 고립적이며 덜 우울했고, 기본욕구는 대부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으며 어느 정도의 개인 생활과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성생활은 병원에서 금지하고 있었다.
    (/ p.69)

    일부 환자는 평온해 보이지만 희망을 품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엘도파가 나오기 전 의 상황으로, 그것은 현실적인 절망감이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자각했으며 최선의 용기와 평정심을 발휘해 이를 받아들였다. 다른 환자들은 (모든 환자가 겉으로는 아무리 평온해 보여도 어쩌면 어느 정도는) 격렬한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갈취당했다는 생각,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시달렸으며 (병의 치료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까지) 두 배의 기적을 열망했다. 그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기를, 마술처럼 젊은 시절의 전성기로 돌아가기를 염원했다. 이것이 엘도파가 등장하기 전에 환자들이 품었던 희망이다.
    (/ p.70~71)

    엘도파의 도래
    세계적으로 엘도파 보고서가 이를 처방해야 할 의사들이나 복용해야 할 환자들 사이에 일으킨 열화와 같은 반응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마도 신비로운 자연의 힘에 도취되어 흥분한 정서가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도파 ‘전설’은 지난 6년 동안 일종의 신비감과 열광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형성되었다는 맥락을 이해해야 하며, 문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로 서술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 p.72)

    이제 ‘솔직한’ 엘도파 이야기로 넘어가도 될 듯한데, 그 이야기에는 앞서 말한 신비론적 경향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파킨슨은 파킨슨증을 일으키는 ‘자리’나 기질基質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조심스러우나마 뇌의 하부나 수질을 파킨슨증의 ‘핵심’으로 지목하기는 했다. 이 병이 진행되는 위치와 성격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한 세기 뒤에 파킨슨의 [소고Essay]가 출판되었다. 이후 1919년 폰 에코노모와 트레티아코프가 연구를 통해 심각한 파킨슨증을 보인 다수의 기면성뇌염 환자의 흑색질에서 심각한 손상을 발견했다.
    (/ p.77)

    코치아스의 실험은 신경학계에 즉시 파란을 일으켰다. 좋은 소식은 빨리 퍼지는 법이다. 1967년 3월 마운트카멜병원의 뇌염후증후군 환자들과 파킨슨병 환자들은 엘도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 1967~1968년 사이에는 엘도파가 엄청난 고가(1파운드에 5,000달러 이상)였기 때문에 (소속 대학이나 재단도 없고 의약 회사나 기업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며 정부의 후원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자선 병원인) 마운트카멜병원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약물이었다. 1968년 말부터 엘도파의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운트카멜병원에서도 1969년 3월에서야 처음으로 사용했다.
    … 그러나 나는 2년간 망설였다. 내가 보살피던 환자들은 파킨슨병을 앓는 ‘보통’ 환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훨씬 복합적인 병태생리학적 증후군 환자였으며, 이들의 상황은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떤 증상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나의 환자 가운데 몇 사람은 파킨슨증이라는 구속복에 꽁꽁 묶이기 전에도 격렬한 충동이나 운동과잉 증상을 보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몇 사람을 병마로 잃은 뒤 (특히 1968년의 그 혹독한 여름에)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하고 강렬해져서 마침내 1969년 3월 매우 조심스럽기는 했으나 엘도파 투약을 시도하게 되었다.
    (/ p.80~82)

    깨어남
    이상한 뇌염후증후군 나라의 앨리스 프랜시스 D.
    열다섯 살 되던 해에 희귀한 운동과잉성 장애 형태의 중증 기면성뇌염이 발발했다. 급성질환을 겪던 6개월 동안 그녀는 극심한 불면증(새벽 4시까지 전혀 잠들지 못하다가 기껏해야 두세 시간 잠드는 정도였다), 현저한 불안 상태(깨어 있는 동안에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산만한 운동과잉 상태이고, 자는 동안에는 내내 뒤척이는 상태), 충동성(자신의 의지가 아닌데 갑자기 동작을 취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이는데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억제할 수 있었다)으로 고통받았다.
    (/ p.85)

    경직증과 떨림발작은 1963년에 나타났지만 D씨에게 가장 큰 장애를 야기한 증상이자 결국 만성질환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유는 목과 몸통의 진행성 굽힘성 근긴장이상증, 걷잡을 수 없는 가속보행과 앞뒤로 왔다 갔다 억지로 달리게 만드는 발작, 그리고 때로는 몇 시간씩 기이한 자세로 꼼짝 못하고 ‘얼어붙는’ 발작 때문이었다.
    (/ p.89)

    1969년 1월 마운트카멜병원에 입원한 D씨는 양손에 지팡이를 짚으면 자유로이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짧은 거리는 혼자서 이동했지만, 1969년 6월 무렵에는 혼자서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입원할 때 구부정했던 자세가 입원 후 6개월 동안 반으로 접힐 지경이 된 것이다. 침대에서 의자로 옮겨 가는 것도, 침대에서 몸을 뒤집거나 음식물을 자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D씨의 경우 상당히 빠르게 퇴화가 진행된 데다 기존의 항파킨슨병 약물이 무용지물이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엘도파가 그녀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시기에 등장했던 셈이다.
    (/ p.90)

    6월 30일. D씨가 투약을 시작한 지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고 엘도파 1일 복용량도 0.5그램 정도다. 여전히 전반적인 불안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 떨림과 치아를 딱딱 부딪치는 증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입 주위 근육은 오므라드는 증상이 더욱 두드러져서 이제는 강박적 찌푸림, 즉 틱장애처럼 보인다.
    … 7월 6일. 투약 11일째, 엘도파 1일 복용량 2그램. 이제 바람직한 효과와 역효과가 복잡하게 결합된 상태를 보인다.
    (/ p.93~94)

    투약 첫 5일 동안의 호흡발작은 언제나 저녁에만 나타났고 다른 시간대에는 괜찮았다. 7월 15일에 처음으로 오후(엘도파 투약 한 시간 뒤인 오후 1시)에 나타났고, 7월 16일에는 처음으로 아주 이른 아침에 발작이 일어났는데 이때는 그날의 엘도파 처방분을 투약하기 전이었다. 그 뒤로는 매일 2~3회씩 발작이 일어났지만 항상 저녁때의 발작이 가장 길고 심했다. 7월 16일에 지켜본 발작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격렬했다. 한참을 거칠게 헐떡이더니(그 모습과 소리는 익사 직전의 사람이 필사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억지로 호흡이 정지된 상태가 50초까지 이어졌다.
    (/ p.95~96)

    다시 한번 7월 19일에 1일 엘도파 복용량을 0.9그램으로 줄였다. 곧바로 그날 한 차례 안구운동발작을 일으켰다. 3년 만에 처음이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명의 뇌염후증후군 환자를 통해서 엘도파 복용량이 얼마일 때 호흡발작을 일으키는지, 그 양을 얼마만큼 줄였을 때 안구운동발작을 일으키는지 관찰해왔다. 그래서 D씨도 까다로운 두 선택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 p.97)

    7월 마지막 주, D씨의 상태는 발작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증세와 징후까지 가세하여 악화되었는데 발작 횟수와 종류가 날이 갈수록 시간 단위로 늘어났다.
    (/ p.99)

    7월 23일, D씨에게 새 증상이 생겼다. 막 손을 씻고 (그녀는 하루에 손을 30번씩 씻어야 할 ‘욕구’를 느꼈다)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갑자기 발을 땅에서 뗄 수 없었고 발을 떼려고 할수록 땅에 더 ‘달라붙는’ 것이었다. 발은 10분쯤 지나서 갑자기 저절로 ‘풀려났다’.
    (/ p.100)
    그다음 날, D씨의 생애를 통틀어 최악이자 최장의 발작이 시작되었다. 호흡발작이 일어나 60시간 동안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에 흔히 나타나던 근육연축(근육의 갑작스러운 불수의적 운동이나 움찔거리는 경련성 수축?옮긴이)과 충동만이 아니라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증상까지 같이 나타났다.
    (/ p.101)

    7월 31일, D씨는 마침내 혼수상태나 다름없는 깊은 잠에 들었다가 24시간 뒤에 깨어났다. 8월 2일과 3일에는 아무 발작이 없었지만 파킨슨병 상태가 (엘도파 투약 전보다 훨씬 더) 심했고, 너무나 의기소침했지만 그러면서도 예전의 용기와 유머 감각은 살아 있었다. “저 엘도파 말이에요, 저 녀석, 이름은 제대로 붙여줘야죠. 헬Hell도파라고요!”
    (/ p.102)

    나는 1969년 9월에 엘도파를 재투약했고 그 뒤로 D씨는 지속적으로 엘도파를 상용했다. 우리는 D씨와 다른 환자 예닐곱 명에게서 아만타딘(상품명 시메트렐)으로 엘도파에 대한 일부 반응을 개선할 수 있음을 확인했지만, 이 우호적인 반응이 몇 주 뒤에는 바뀌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간혹 엘도파와 아만타딘을 함께 처방하기도 했다.
    (/ p.109)

    1970년대 말에 이르자 D씨는 (다양하게 구분하고 세분화한) 엘도파, 아만타딘, 도파탈탄산효소, 아포모르핀만 따로 투약하거나 항콜린제, 항아드레날린제, 항히스타민제와 병합적으로 보조제나 차단제를 함께 투약하는 대단히 독창적인 요법을 견뎌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시도한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이젠 됐어요! 선생님은 나한테 약국을 통째로 먹이셨어요. 나는 그동안 오르락내리락, 갈팡질팡, 들락날락, 전후좌우에 천방지축이었어요. 밀리고 당기고 쥐여 짜이고 비틀리고.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기에 얼마나 빨라졌나 보면 그냥 제자리였고요. 또 열렸다 닫혔다, 인간 아코디언이 되기도 했죠….”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D씨는 매력적인 언어로 이상한 뇌염후증후군 나라의 파킨슨병에 걸린 ‘앨리스’를 이처럼 묘사했다.
    (/ p.111~112)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1972년 여름에 이르렀다. D씨는 현재 엘도파와 아만타딘 소량을 단속적으로 복용하고 있다. 1년 중 아홉 달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분히 해결하면서 상당히 활동적으로 지내며 나머지 석 달은 병세 악화와 금단 증상으로 고통받는다.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미약한 발작이 일어나는데 D씨나 다른 사람이 당황할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엘도파에 믿지 못할 만큼 뛰어난 반응을 보인 환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평생을 지배해온 인격을 무너뜨리는 이 병의 압박만이 아니라 강력한 대뇌 자극제는 물론이고,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이 극히 드문 요양병원이라는 꽉 막힌 환경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D씨는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병과 중독, 소외감, 시설 생활을 용감하게 이겨내며 자신의 본성을 끝까지 잃지 않은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인, 멋진 사람이다.
    (/ p.118~119)

    뇌염후증후군에 갇힌 슬픈 천재 레너드 L.
    내가 레너드 L.을 처음 본 것은 1966년 봄이었다. 이때 L씨는 마흔여섯 살로 말을 전혀 못하고 수의운동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오른손만 아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덕분에 작은 철자판(작은 판에 알파벳이 나열돼 있고 시계바늘 같은 침을 돌려 낱말의 철자를 가리키는 방식이다?옮긴이)으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15년 동안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었으며 1969년 봄에 엘도파를 복용할 때까지도 그랬다.
    (/ p.323)

    병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장애도 서서히 심해졌지만 하버드대학에 입학했고 우등으로 졸업했으며, 박사학위 논문도 끝낼 뻔했지만 스물일곱 살에 장애가 극심해져서 학업과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하버드를 떠난 뒤 3년간 집에서 보냈고, 서른 살에는 사실상 돌처럼 굳어져 마운트카멜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하자마자 바로 병원 도서관 관리를 맡았다.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정말로 책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p.328)

    1969년 3월에 투약을 시작했으며 용량을 서서히 1일 5그램까지 높였다. 2주 동안 거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전환’이 일어났다. 사지의 경직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힘과 원기가 넘쳤으며, 다시 글을 쓰고 타자를 칠 수 있었고 의자에서 일어나 부축을 받아 걸을 수 있었으며,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이 모든 것이 스물다섯 살 이후로 불가
    능했던 일이다). 3월 후반에 L씨는 30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잘 움직이는 몸과 건강과 행복을 만끽했다.
    (/ p.330)

    4월에 문제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은총 같은”) 건강과 원기가 지나치게 흘러넘친 나머지 과장된 조증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이상한 동작과 현상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p.331)

    4월에는 놀라운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꼈던 L씨가 이제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워했고 갈수록 충족되지 않는 식욕과 각종 욕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의 허기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탐욕으로 변신했다.
    (/ p.332)

    5월 중순에 L씨는 자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충전되었다”면서 육욕적이고 호전적인 느낌에 짓눌릴 정도로 다양한 형태를 띠는 탐욕과 폭식성으로 “충전에 또 초강력 충전”되었다고 말했다.
    (/ p.333)
    L씨에게는 총체적 흥분의 파도와 동시에 무수한 ‘깨어남’과 (충동을 밀어붙이는 형태, 반복과 강박, 암시, 고집증의 형태를 띠는) 특정 흥분도 나타났다. 말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낱말과 구절을 무수히 반복하는 증상(동어반복증)이 시작되었다.
    (/ p.334)

    6월 마지막 주와 7월 한 달 내내 L씨는 광란적인 분열 상태로 돌아갔으며 제어의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버렸다. 이제 최후의 생리학적 보호 조치만 남은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그것만으로도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 p.337)

    우리는 7월이 끝날 무렵 엘도파를 중단했다. 정신병과 틱은 사흘간 더 지속되다가 갑자기 멈췄다. L씨는 8월 중에 원래처럼 움직임 없는 상태로 돌아갔다. 8월에는 (원래 병실로 복귀했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앞선 몇 주의 상태를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9월에는 다시 내게 ‘마음을 열고’ 원래의 철자판에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그는 이렇게 (그가 곧잘 하던 릴케의 시구를 패러디하여) 썼다.
    (/ p.342)

    아만타딘 시도가 효과 없이 끝난 뒤로 L씨는 본래의 ‘초연’한 태도와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 약이 3년 넘게 그에게 강요해온 희망과 회한, 맹렬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극복한 것이다. 그는 마침내 복합적인 전체 경험에 동화되었으며, 자신이 가진 힘과 지능을 이에 적응하는 데 쏟았다. 그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엔 말입니다, 선생님, 저는 엘도파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그 생명의 묘약을 처방해준 선생님께 감사했죠. 그러다가 모든 게 나빠졌을 때는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독약이라고요. 그걸 내게 준 선생님을 저주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공포와 희망, 증오와 사랑…. 지금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근사하면서 끔찍하고,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일이죠. 결국엔 슬픈 일이고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는 그냥 놔두는 게 최선입니다. 약은 이제 그만이에요. 지난 3년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평생을 갇혀 지내던 장벽을 뚫고 나온 겁니다. 이제는 제 자신으로 살아갈 겁니다. 엘도파는 그냥 두셔도 됩니다.”
    (/ p.343~344)

    관점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개념인 건강, 질병, 관리만이 논의해볼 여지가 있는 영역이다. 엘도파를 환자들에게 투약했을 때 맨 처음 나타나는 반응은 깨어남이었다. 다음 반응은 재발과 온갖 문제와 말썽이 발생하는 시련 단계다. 그리고 끝으로 환자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일종의 ‘이해’ 혹은 균형점을 찾는 단계로, 이를 적응 단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엘도파의 결과는 이렇게 깨어남, 시련, 적응의 순서로 논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리라.
    (/ p.362)

    깨어남
    사실상 파킨슨증이 있는 모든 환자가 엘도파를 투약했을 때 일종의 ‘깨어남’을 경험한다.
    (/ p.363)

    완전한 깨어남 상태에서는 모든 환자가 한결같이 일정한 감정을 경험하며, 환자들은 ‘외부’ 관찰자가 사용할 만한 비유적인 표현을 동원해서 이를 묘사한다. 파킨슨증, 긴장증, 불안, 비틀림 등등의 증상이 갑자기 사라질 때 환자들은 내적 압박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바람이 빠지거나 부었던 종기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며, 방귀를 뀌거나 트림하거나 방광을 비울 때와 비교하는 환자들도 있다.
    (/ p.366)

    이리하여 깨어난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의 병에 점유 혹은 선점당하지 않고 세상으로 향한다. 그는 간절히, 열심히, 사랑과 기쁨에 넘쳐 천진난만하게 세상에 귀를 기울인다. 그토록 오랜 세월 ‘잠들어’ 차단당해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세계가 다시 근사하게 선명해진다. 그는 도처에서 호기심과 기쁨과 놀라움의 대상을 찾는다(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혹은 유령에게서 해방된 것처럼). 그는 현실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진다.
    (/ p.371)

    적응
    엘도파를 투약한 거의 모든 환자가 일정 시간 동안 구름 한 점 없이 쾌적한 건강 상태를 회복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환자가 이르든 늦든 어떤 식으로든 문제와 시련에 봉착한다.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좋은 반응을 보이다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제를 겪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단 며칠(일생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 만에 효과는 사라지고 암흑 같은 고통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환자들도 있다.
    (/ p.375)

    이처럼 모든 환자가 엘도파로 인해 문제를 겪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들은 다시 한번 ‘병에 걸리기 쉬운 경향’을 드러냈는데, 이와 같은 경향은 무수한 형태로 싹 틔우고 꽃 피울 수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엘도파 그 자체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환자 개개인의 반응 형태일까, 계속되는 자극이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모든 생명체가 보이는 보편적인 반응일까? 그 문제들은 환자의 희망과 동기에 달려 있을까, 아니면 이 시기에 중요한 인물인 의사와 다른 사람들의 기대감과 동기에 달려 있을까? 전체적인 생활 방식과 처한 상황이 상관 있는 걸까? 이 모든 의문은 대단히 중요하며, 전부 질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시험해봐야 한다. 이 모든 요소가 긴밀히 엮이고 이어져서 이 세계에 속한 존재, 즉 환자가 경험하는 충만 상태를 형성한다.
    (/ p.379)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에 이르렀다. 엘도파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상황이 허락하는 만큼 효과를 볼 수 있다. 여타의 변화를 위해서는 화학적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전제가 될 수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엘도파의 한계는 그 장점만큼이나 분명하며 한계를 줄이고 장점을 늘리고 싶으면 엘도파를 넘어, 오로지 순수하게 화학적인 접근을 넘어 그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을 다뤄야 한다.
    (/ p.403~404)

    시련
    ‘시련’은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문제들을 다룬다. ‘적응’은 노도를 다스리는 단계다.
    (/ p.405)

    약이 가져온 1969년 여름의 깨어남은 섬광처럼 왔다가 갔다. 그 광경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섬광 끝에 무언가 다른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더 느리고 심오한 상상의 깨어남, 서서히 발전하면서 어떤 감정, 반짝임, 감각, 힘의 형태로 그들을 감싸준 무언가, 약물에 의한 것도, 화학작용에 의한 것도, 가짜도, 공상도 아닌 무언가였다. 그들은 (브라운 경의 말을 풀어 쓰자면) 자기 존재의 품속에 다시금 안착했다. 그들은 존재의 근거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현실이라는 토대에 다시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 p.418)

    부록1 수면병의 역사
    1927년 이래 기면성뇌염 같은 대규모 유행병은 없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테레지엔슈타트 포로수용소에서 소규모의 유행병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증거는 임상 자료뿐이다). 하지만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병례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 분명한 사실은 기면성뇌염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진단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아주 잘못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484)
    부록3 ‘깨어남’의 뇌파 원리
    뇌전도EEG, Eletro-encephalography는 뇌의 전기 활동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뇌전도는 (그 명칭이 시사하듯) 뇌의 신경세포들이 보내는 전기 신호를 기록하는 것으로, 휴대성 높은 장비가 개발되면서 현재는 다양한 환경(환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어도!)에서도 뇌전도를 측정할 수 있다. 즉 뇌전도를 통해서 “신경계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조너선 밀러)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이런 뇌전도는 다른 것으로는 하지 못하는 일, 즉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의 머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p.493)

    엘도파(혹은 유사한 약물) 특유의 효과는 지속적인 ‘깨어남’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모든 환자에게서 확인되듯, 이 처음의 효과는 얼마 뒤에는 반드시 복잡한 ‘시련’ 단계로 이어진다.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레너드 L.이었다.
    (/ p.494)

    레너드 L.의 뇌전도는 어떠한 약도 복용하지 않았을 때는 심히 느린데, 로즈 R.보다도 느리며 정상인이 아무리 깊이 잠든 상태라도 나올 수 없을 만큼 느리다. 이 시점의 레너드는 운동능력과 감정과 의지를 상실한 상태이기는 해도 잠든 것은 아니며 제정신이다. 아만타딘을 투약했을 때 처음에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였으며, 뇌전도도 훨씬 빨라지고 짜임새 있고 주기적이었다.
    (/ p.495)

    부록4 엘도파 치료 이후의 연구들
    PET 스캔은 MPTP를 1회 소량만 복용한 일부 환자에게서 임상적으로 파킨슨증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흑색질? 선조체의 도파민 분비는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파킨슨증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황으로, 더 많은 용량의 MPTP를 섭취하거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흑색질? 선조체의 도파민 감소만으로도 파킨슨증이 드러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86년에 예방 차원에서 데프레닐 같은 억제제 투약 실험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 p.506)

    이렇듯 파킨슨증 분야에서 신기원이 시작된다는 부푼 희망과 열기 속에서 1990년대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가 새로운 치료법, 내가 담당한 환자들의 ‘깨어남’을 가능하게 했던 치료법이 대두된 위대한 시기였다면, 지금은 파킨슨증을 비롯한 퇴행성 질환을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추정 혹은 진단하여 결코 나타나지 못하도록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 p.507)

    부록5 파킨슨증의 시간과 공간
    파킨슨증 환자들은 (대뇌피질 손상으로 인한 행위상실증 및 인지불능증 환자들과 달리) ‘1피트’가 얼마만큼인지 확실히 이해하며, 따라서 차원의 개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관찰한 바로는 이 환자들이 시공간을 판단하는 감각이 허물어져 좌표계 전체가 확장하고 수축하고 휘고 비틀린다는 것, 이런 보편적인 척도의 왜곡 현상은 잡아당기고 밀치고 비트는 힘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었다(그런데 이 수축과 진동과 비틀림이 바로 이들이 앓는 병의 정수인 셈이다).
    (/ p.517~518)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과 움직임을 되찾는 일, 즉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타고난 편안한 (루리야의 용어로) ‘운동의 선율’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저 배열이나 도식이나 행동 지침만이 아닌 진정한 공간감과 자유를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적절한 흐름을 지닌 음악을 이용하면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환자가 자신의 타고난 운동적 선율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왔다. 여기서 노발리스의 잠언이 떠오른다. “모든 질병은 음악적 문제이며, 음악적 해법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자연과 예술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시각이나 촉각을 통해 경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효력이 있다.
    (/ p.524)

    부록6 혼돈과 깨어남
    처음 혼돈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합리적 의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기존의 (‘적정’에 대한) 합리적 의학은 들어맞지 않아 쓸모없어진 터였다. 그러나 관련한 동역학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할 때 새로운 합리적 의학, 그리고 어쩌면 합리적 치료법까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제는 우리를 흥분시키며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치료 전략,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것이며,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젖힐 것이기 때문이다.
    (/ p.544)

    부록7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다
    [깨어남]이 출판된 뒤로 17년 동안 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많은 단편소설과 시, 장편소설이 나왔지만 무엇보다 강렬한 영향을 받은 것
    은 드라마적 상상력이었다. 이 책에 담긴 현실 자체가 드라마였으니까. 어떤 기이한 병이 운명이라는 배역을 맡게 되는 이 이야기는 그 어떤 허구보다도 그리스 비극에 가까울 것이다(이것이 레너드 L.이 자신의 병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세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지만 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거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깨어남]의 핵심이다.
    (/ p.545)

    다큐멘터리 [어웨이크닝]은 1974년 초에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뒤로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상영되고 있다. [어웨이크닝]은 잊혀진 유행병의 마지막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일한 다큐멘터리다.
    (/ p.548)

    [깨어남]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는 [일종의 알래스카]였다. 핀터는 편지에서 1973년 [깨어남] 초판이 나왔을 때 책을 읽고 깊이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 p.548~549)

    1987년에는 세 작품이 나왔는데, 세 편 모두 극으로 각색한 작품이었다.
    (/ p.552)

    라디오 드라마 [어웨이크닝]은 말의 힘, 그중에서도 사람의 목소리로 실제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환기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 p.553)

    바로 한 달 뒤, 이번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으로 영화판 [어웨이크닝]의 각본을 받았다. … 드니로, 로빈, 페니, 스티브, 이들 모두가 되도록 많은 환자를 직접 만나서 마운트카멜병원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했으며, 모든 것을 진짜로 해내고 싶어 했다. 우리는 내가 일하는 여러 병원을 같이 다니면서 파킨슨증 환자들, 몇 명 남지 않은 뇌염후증후군 환자들과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대화를 나누었다.
    (/ p.55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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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3.07.09~2015.08.30
    출생지 영국 런던
    출간도서 26종
    판매수 16,385권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 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뉴욕 대학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12년 록펠러 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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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문학을 공부했고 영문과 중문 책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올리버 색스의 [깨어남] [색맹의 섬] [마음의 눈] [온 더 무브]와 빌 헤이스의 [인섬니악 시티]를 비롯해 [즉흥연기] [해석에 반대한다] [맹신자들] [얼굴의 심리학] [채링크로스 84번지] [시간의 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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