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삶 그 자체로 배움의 장이 된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교과서와 온갖 서적이 설명해주지 못하던 인생의 민낯을 현실을 살면서 배우고 있다. 숨 쉬며 산다는 것,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는 모든 것이 인생의 커다란 교훈이 된다. 현실이 되었다가 어느덧 과거가 되었다가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특히 그렇다. 다수의 의견을 통해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더니 이제는 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고, 매일 새로운 기사 거리들이 잠들어 있던 대중들을 깨우곤 한다. 가만히 있으라 했더니 가만히 있었고, 뉴스며 신문기사에서 쏟아내는 것을 믿으라니 믿었다. 그동안 대중은 귀머거리요, 벙어리였던 셈이다.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사람들은 자괴감에 빠졌다고 했다. 이러려고 이 나라에 태어났나, 이러려고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나, 이러려고 죽도록 일만 했나, 이러려고 죽기 살기로 공부했나, 이러려고 그토록 아등바등 살았나, 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켜졌을 수많은 촛불을 보며 눈을 번쩍 뜬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의 과정에 서 있는 것 같은데, 가슴은 이토록 뜨거운데 정확히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부끄럽고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에게 올바르게 가르쳐주어야 하고 갈 곳을 제시해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분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니 국민들은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더 힘들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게 있다면 고통스러운 홍역을 앓았다 한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가 갑자기 변해야 맞는 것 같고, 그 힘이 이제 우리 대중에게 넘어온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권력은 힘없는 약자에게 쉽게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런 사회가 된 데에는 권력을 가진 소수 책임이 아니라 그동안 무관심했던 우리의 책임인 것 같았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지 싶었다.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보는 시각부터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차근차근 들여다본다면 알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미래가 장밋빛 미래가 될지 암흑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곳이 어떤 사회일지 이야기 나눈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나만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인터넷이 선별해주는 미디어의 시각으로 보고 해석하며 여전히 수동적인 모습으로는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지금의 현실 인식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저자인 채사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펴내면서 지적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지식은 내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라고 했다. 그때에 '나'를 이해하게 되고, 깊어진 '나'에 대한 이해는 한층 더 깊게 '세계'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로 현실 너머에서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로 세분화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그렇게 복잡해 보이고, 막연하고 방대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인데 한 권의 책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면 한눈에 이해가 되고 각각의 경계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정말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일어났던 세계의 흐름을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말했던 세계에 대한 이해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세분화된 세계는 각각 별개로 따로 떼어 설명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요지이다. 역사, 정치, 사회, 윤리는 경제의 논리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데 경제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에서 흔히 거론되는 진보, 보수의 개념도 그 배경에는 경제논리가 자리 잡고 있고, 전쟁도 이념도 복지도 사회 불균형도 윤리도 경제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현실 세계를 단순화하면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피지배자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그림 위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의미 있는 고찰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듯 보수, 공산주의, 사회주의 하면 무조건 나쁘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어떤 개념도 그 자체로 부정적이지 않다. 흔히 대립적 시각으로 보는 보수, 진보, 민주주의, 공산주의, 독재주의 등 모든 개념은 가치중립적이다. 단지 우리는 그 안에서 합리적 합의에 의해 합리적 선택을 할 뿐이다. 그러니 비판적 시각은 단지 개념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바라볼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진짜 나를 찾아갈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만큼 주체적인 삶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을 했든 안 했든, 성공했든 안 했든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겠지만 우리 각자가 비판적이고, 주체적이고, 합리적 선택을 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좀 더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돌고 있지 않을까 한다.

"미디어에 자신의 판단을 양도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여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밖의 진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고,
인생의 깊이를 얻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 속에서 빛날 수는 없을 것이다."
_본문 330쪽

현실 편을 마무리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간은 배우고 익히는데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 사회 경제 문화가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너무 방대해서 하나하나 언급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전체적인 흐름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소중한 한표를 소중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주체적으로 발 딛고 서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계는 역사적으로 탄생한지 겨우 20-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경제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다. 끝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배우고 익히는데 게을러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결혼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도 으레 그랬으니 나이가 들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무책임하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결혼을 꿈꿨다. 마냥 낭만적 연애의 달콤함만큼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죽을 때까지 달콤할 거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듯, 결혼은 말 그대로 현실 그 자체였다. 결혼 생활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진작에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봤어야 했다고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고민의 끝에 가장 절실하게 와 닿았던 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나이를 먹고 변화를 받아들여만 한다는 것이다. 조금씩 삶의 생기를 잃기도 하고, 식구가 늘어나며 먹고사는 고민을 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 사회 변화 속에 우리도 조금씩 변화를 몸소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일보 후퇴한 모습으로 조금씩 나아진 모습으로 우리는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자꾸만 대립의 각을 세우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보가 똬리를 틀 때가 있다. 그럴 때 가끔 결혼을 왜 했을까,라는 회한과 함께,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견디며 살아가야 할까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편엔 낭만적 연애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차곡차곡 간직한 채.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낭만적 연애 그 후의 일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이다. 미리 결혼의 속살을 다 알고 있었다면 나는 과연 다른 선택을 했을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결혼 못할 이유보다는 결혼할 이유가 많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러니 연애와 결혼은 다르고, 연애가 낭만이라면 결혼은 현실이라고 누누이 되새김질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조차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면 오히려 그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나름의 방법과 지혜와 용기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결론에 다다르지 않을까 싶다.

 

예전만큼 책을 구입하는데 좀체 지갑을 열지 않는 현대인들.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편하다. 책이 오히려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읽은 책은 중고서점에 팔기도 하고, 두고두고 오래 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꼭 구입해야 할 도서 목록에 담아두었다가 기회를 봐서 구입하기도 하면서 외적으로는 지혜로운 소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자제력이 가끔 흔들 릴 때가 있다. 믿고 보는 작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가 그렇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몇 권의 추리소설을 읽다가 좋아하게 된 작가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어서 쉴 틈 없이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야기의 내용이나 주제도 다양했고 뜻밖의 반전은 책을 읽을 때마다 짜릿하게 했다. 사회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기도 하고, 전문 분야의 지식을 요하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기도 했다. 비정상적인 가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미스터리는 이야기의 극적인 묘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비밀>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그렇다. 속독을 하는 탓에 책을 읽어도 책의 제목과 내용이 잘 매치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유독 그의 작품만큼은 제목을 떠올리면 내용이 생각날 정도로 나에게는 조금은 특별한 작가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그의 80번째 작품이자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 작품이기도 하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미스터리를 모조리 담은 작품이다. 일본 문학계에서는 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그의 기나긴 노고를 되돌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80여 권의 작품을 주제를 중심으로 여섯 가지 키워드에 따라 분류하였는데, 과학 및 의학을 다룬 <변신><레몬><용의자 X의 헌신>, 가족 관계를 다룬 <비밀><편지><붉은 손가락><유성의 인연>, SF적인 소도구를 차용한 <도키오><나미야잡화점의 기적>, 범죄의 심리를 추구한 <백야행><환야>, 사랑의 비극이 담긴 <잠자는 숲><악의>, 복수의 고통을 담은 <방황하는 칼날><공허한 십자가> 등을 대표작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의 미스터리를 모조리 담았다는 <라플라스의 마녀>는 수리학, 물리학 및 뇌의학과 SF, 가족 관계, 황화수소를 이용한 범죄, 두 주인공의 사랑과 복수 등 여섯 가지 주제를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평했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할지 더욱더 기대된다는 점에 있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라플라스,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라플라스는 프랑스의 수학자 이름이다.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물리학을 활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인물. 하지만 그 존재에는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황화수소 사고에 의해 뇌 수술이 필요했던 겐토는 수술 이후 뛰어난 예측 능력을 발휘하면서 라플라스의 악마가 되었고, 그런 예측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고자 했던 인간의 이기심은 또 다른 존재 라플라스의 마녀 마도카를 만들게 된다.

현재 과학의 발달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뉴스로 보는 게 다는 아닐 것이라는 것쯤은 알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선 어떤 예측 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필요한 곳이 아닌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우리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과학의 발달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소설로 만나는 추리 가능한 이야기는 불안한 우리 미래를 예측해 보게 한다. 그 이야기의 끝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은 과연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소망했던 미래일까. 어떤 과학도 미래의 답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미래도 또다른 과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래는 모르는 채로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는 꿈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