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위의 욕구를 채우면 상위의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고 한다. 가장 아래의 욕구는 가장 본능적인 부분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려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 다음의 욕구는 안전의 욕구로 자신이 살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으려고 한다. 하기야 배가 고프고 안전하게 쉴 곳이 없다면 자아실현의 욕구 같은 것이 싹틀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지구 상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일어나는 전쟁은 사람들에게서 상위의 욕구에 대한 희망조차 앗아간다.
머리 위로 수없이 폭격이 떨어져 내려 그들이 사는 집은 안전한 곳일 수 없고 전쟁이 일어나면 물자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가난이 넘치게 된다.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전쟁이 일어난 시점부터 전쟁은 그만의 생명력을 품고 번져간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피 묻은 대지만이 남을 때까지 말이다. 처음 전쟁의 목적은 남의 것을 탐하려는 욕망이었을 수도 있고 종교나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배가 너무 고파서 참다못한 광분이 불러 온 것일 수도 있다. 처음이 무엇이었든 전쟁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소모시키며 끝이 없는 암담한 절망 속으로 밀어 넣는다.
허나 전쟁의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해외에 관한 뉴스를 보여줄 때나 나오는 소재 중에 하나일 뿐이다. 반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하야 한 사람이 전쟁을 멈출만한 힘을 가질 수는 없으니 참다못한 사람들의 선택은 보통 비슷하다. 전쟁의 품으로 뛰어들거나 그 바람에 휘말리지 않도록 밖으로 도망친다. 자신의 가족, 친구, 고향을 떠나 다른 곳을 떠돌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선택했지만 동시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이 책 '드니로의 게임'은 이미 제목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배경이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베이루트인데다가 1만개의 폭탄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 제목도 영화 '디어 헌터'의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가 하는 러시안 룰렛을 말한다고 하니 피할 수 없는 폭력적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가게 된 길을 의미심장하게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책에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바쌈과 조지로 어려서부터 친구였다. 사실 조지의 이모가 바쌈에게 지금이라도 학교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비슷한 연배의 죽은 남자가 실은 17세인 것으로 보아 이들은 소년이거나 아직 앳된 청년에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만개의 폭탄이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이미 어른이었다. 어른들은 죽고 그들은 살아남았으니까.
의용군이 운영하는 카지노에서 일하는 조지와 부두에서 기중기를 움직이는 바쌈은 카지노에서 돈을 빼돌리기 시작한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도 돈은 필요했고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더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의용군 측에서 그 사실을 알아낸다면 두 사람은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을 것이다. 계속되는 폭력에의 노출은 두 사람을 무뎌지게 하고 있었고 바쌈은 로마로의 탈출을 계획한다. 언젠가 돈을 모아 반드시 떠나리라고 계속 생각하고 카지노에서 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그의 어머니와 연인 라나였다. 어머니는 폭격이 일어날 때마다 바쌈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제발 방공호로 내려가서 숨자고 말이다. 바쌈은 그 제안을 매번 거절했다. 지하로 내려가 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라나는 그와의 만남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정식으로 청혼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그녀에게 청혼해서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바쌈은 결코 방공호로 내려가지도 않았고 라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부유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생활에 문제가 일어난다. 조지와 바쌈이 카지노에서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자가 생긴 것이다. 의용군 소속의 칼릴이었다. 아직 로마로 떠날 만한 여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그들의 행동을 눈치 챘다는 것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바쌈은 이제 다시 선택을 하고 시간은 다시 천천히 흘러간다.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1만개의 폭탄과 함께. 그 과정에서 두 친구는 제각기 다른 선택을 하고 무정하게도 드니로의 게임이 시작된다. 무정한 운명의 여신 앞에 눈을 감고 행운만을 빌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폭탄을 비유적으로 말한 1만개의 폭탄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 책은 폭력적 현실에 처한 한 젊은이의 어지러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소녀를 병원으로 옮기는 와중에 바쌈은 이런 생각을 한다. 피는 따뜻한 비눗물 같은 느낌이라고 말이다. 최소한의 욕구만을 간신히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바쌈도 조지도 그저 살아남기 위해 버텼을 뿐인데 두 사람의 길은 점차 멀어지고 만다.
그들의 일상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고 읽는 사람 역시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1만 개의 폭탄이 떨어진다는 표현에서 이미 감각이 마비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바쌈이 그리고 조지가 벌이는 폭력을 그저 무방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후회도 죄책감도 드러나지 않는다. 본능에 따라 짐승처럼 움직이고 폭력성만이 드러날 뿐이었다. 전쟁이 인간성을 거두어가고 폭력성만을 극대화시켜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비된 감각 사이로 책의 글도 1만개의 폭탄이 떨어지듯 계속 흘러내려 한 번에 읽게 되었다. 단 번에 읽을 만큼 흡입력이 있기는 했지만 다 읽고 나서 입맛이 씁쓸한 책이기도 했다. 현실은 잔인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피엔딩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드니로의 게임' 인상적이었다. 결코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이 원망스러워질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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