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렇게 읽는 속도가 느린 걸까?' 하고 고민하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알고 지내는 작가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대부분이 '실은 나도 책을 느리게 읽는다'고 대답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같은 경우는 지금도 책을 읽을 때 책상에 똑바로 앉아 빨간 줄을 그으며 읽는다고 한다.
아마 현대작가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독서가인 오에 겐자부로도 속독은 절대 권장할 것이 못 된다며, 그것보다는 '다시 읽기'를 주장하고 있다. 몇 년 전 간행된 그의 소설 ' 우울한 표정의 동자' 에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노스럽 프라이가 언급한 바르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롤랑 바르트는 모든 진지한 독서는 '다시 읽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꼭 두 번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 전체를 시야에 넣고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갖고 탐구하는 것이다."
슬로 리딩이란, 바꿔 말하면 득을 보는 독서, 손해 보지 않기 위한 독서라고 할 수 있다.
고바야시 히데오
시험문제는 '본문의 작자' 의도를 이해하기 보다는, 문제의 '출제자'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본문과 문제를 하나의 연속된 문장으로 보고 읽기로 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내 국어 성적은 순식간에 상승했다. 수험생에게 어떤 답을 기대하고 있는지, 철저히 출제자의 시점에서 시험문제를 읽어가다보면, 어떻게 답을 써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한 달에 책을 백 권 읽었다느니 천 권 읽었다느니 자랑하는 사람들은 라면 가게에서 개최하는 빨리 먹기 대회에서 십오 분 동안 다섯 그릇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속독가의 지식은 단순한 기름기에 불과하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한 권을 쓰기 위해 20년을 들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스위스 비평가 스타로뱅스키가 몽케스키외를 포도재배자에 비교해서 한 말이 있어요.
"여기,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질, 기후, 수목의 질, 시기에 맞는 수확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는 어느 정도의 완만한 압력으로 과즙이 포도송이에 축적되는지, 어느 정도의 인내와 어떠한 행운이 이와 같은 성숙을 촉진시키는지 잘 알고 있다. 작가인 그 역시 마찬가지로 좋은 책을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