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환타지의 느낌으로 읽었다. 환타지 소설에 꼭 등장하는 것이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그것이 뒤주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새벽 2시20분에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환상의 세계로 출발~

민제네 집에 시골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오셨다. 트럭에 뒤주 하나만 달랑 싣고서. 좁은 연립주택에 놓을 곳도 마땅치 않은 뒤주를 보며 고민하고 있는 엄마에게 할아버지는 민제와 둘이 쓰게 된 방에 뒤주를 들여 달라고 한다. 방이 좁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쓸모없는 뒤주의 모습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이 좋아 어머니도 그러라고 한다. 쓸고 닦고 보물처럼 뒤주를 다루는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생각하던 어느날, 민제는 잠결에 뒤주에서 나오시는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 때부터 민제의 활동이 시작이 되는데...,

돌아누워 잠이 든  할아버지를 확인하고 뒤주의 길다란 열쇠를 꽃아 문을 열고 뒤주 속으로 들어간다.  뒤주 바닥에 놓인 엽전을 드니 과거의 세계가 펼쳐진다. 첫 만남이 사도세자와의 만남. 환타스틱하다. 물을 갖다주러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니 사도세자는 온데 간데 없고 배비장이 나온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사도세자와 배비장에 대해서 자료를 찾게 된다. 더욱 더 궁금해지는 뒤주의 비밀.

할아버지가 알게 되신 후, 민제는 할아버지와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할아버지의 많은 경험으로 일정한 시간에 들어가게 되면 같은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벽 2시 50분. 할아버지의 과거로 들어가는 시각.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뒤죽박죽이다. 큰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때문에 죽게 된 것이 너무나 가슴이 사무쳐 과거를 바꿀 수는 없을까, 형님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일념으로 할아버지의 과거로의 여행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흘러온 사건들은 변하지 않은 체, 그 순간을 지혜롭게 넘겨 상황을 바꾸어야 만 하는 고민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과거 속으로 민제는 동행을 하게 된다. 집에 제사가 있어 산 속에 숨어 있던 큰 할아버지가 내려오게 되고, 집안 식구가 모여 있는 그 시간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군대에 나갈 청년을 착출하고 있었는데, 뒤주 속에 숨어있는 큰 할아버지의 행방을 민제의 할아버지가 이야기 해 주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잡혀간 큰 할아버지의 소식을 몰라 집안은 쑥대밭이 되고, 할아버지는 그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살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과거로의 여행에서 다치게 되고 그 비밀을 공유한 민제의 활약이 펼쳐지게 된다. 뒤주속에서 만난 미국인 비행사에게 자기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건네게 되는데, 그것으로 할아버지가 된 미국인 비행사가 민제를 찾는다는 에피소드가 살짝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현실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은 채 큰 할아버지를 구하게 되는 민제의 활약상. 뒤죽박죽인 상황을 퍼즐을 맞추듯 풀어나가는 구성이 긴장감이 넘친다.

새로운 설정과 구성이 지루함을 더하지 않으며,   6.25한국전쟁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그 시대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려 줄 수 있다. 고학년 남자아이라면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는 우리시대의 환타지  <할아버지의 뒤주>를 강추합니다~*

김소연님의 명혜를 읽고 집어들었습니다. 그림 또한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김동성님의 작품입니다. 표지에 격식을 갖춰서 차려입은 주인공 선예의 모습이 하얀 눈위에 소담히 서있습니다. 저는 표지의 비단 꽃신에 의미있는 시선을 던지며 책장을 넘깁니다. 노란 속표지를 지나 한장을 더 넘기면 짚신을 예쁘게 말린 민들레 꽃으로 꾸민 달이표 꽃신이 제목밑에 예쁘게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그림의 의미를 알지못하고 내용을 읽기에 바빴습니다. 다시 보니 그림이 말을 해주고 있더군요.

이 책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꽃신> , <방물고리> , <다홍치마> 의 세편으로 되어있습니다.

꽃신의 주인공 선예는 엄마 현씨 부인과 처음으로 절나들이를 나섭니다. 꿈에 부풀어 아껴두었던 꽃신을 꺼내신고 절의 천왕문 지붕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청지기 용수 아범이 달려와 아버지와  두 아들이 역모죄로 잡혀가고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전하게 되죠. 첫나들이가 펼쳐지기도 전에. 엄마는 유모와 선예만을 절에 남겨두고 닷새가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유모의 시골로 내려가 있으라고 전하고는 한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엄마의 소식을 기다리는 지내는 산사에 눈이 내렸습니다. *** 선예의 눈에 대웅전 마당을 쓸고 있는 작은 아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여름 부모가 역병으로 죽고 혼자 살아남은 달이라는 아이였지요. 부모님의 위패를 모셔놓고 땔감도 가져오고, 짚신도 삼아서 오는 골짜기 너머 화전 마을에 사는 달이. 작은 키에 맨 발에 짚신만 신고 눈길을 헤쳐 온 달이에게 선예의 주홍빛 꽃신은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었어요. 선예는 걸친 거라고는 누더기 밖에 없는 달이의 당돌한 눈빛과 당당함에 자신의 처지를 비춰보게 됩니다. 어머니의 소식이 없으면 유모의 시골인 강원도 산골에 가서 숨어지내야 하나~ 아니면..., 언제까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될지.., 선에는 짚신하나만 신고도 대웅전 앞마당을 다 쓸던 달이를 떠올리며 태어나 처음으로 비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함박눈이 온 지 나흘째, 조광조의 역모사건으로 한양이 발칵 뒤집히고 선예의 아버지도 연루되었다는 소식에 선예와 유모를 길 떠날 차비를 합니다. 선예의 옷가지를 구해야겠다던 유모는 선예에게 꽃신을 두고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소중한 꽃신이 군졸들에게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해야겠지만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한편 심심한 달이는 설피를 꺼내어 신고 절로 향합니다. 절에서 보았던 선예도 궁금하고, 매일 같이 오르내리던 절에도 가고 싶고 싶습니다. 때 마침 유모가 달이가 입던 옷가지를 팔라고 하자 달이는 선예의 꽃신을 달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선예는 잡혀갔으면 갔지 저런 아이에게 신을 내어 줄 수는 없다고 대격구도로 들어가게 됩니다. 선예가 어떤 아인지를 스님에게서 들은 달이는 말린 민들레꽃을 얻어서 집으로 내려 갑니다.

다음날 아침 선예의 방 앞에 무명옷과 새끼줄 사이사이에 말린 민들레 꽃이 엮여있는 꽃신 한켤레가 얌전히 놓여있습니다. 선예는 뛰어 내려와 달이에게 꽃신을 전해줍니다. 부모님 만나러 올 때 신으라고, 자기도 달이가 만들어준 꽃신을 신고 부모님 만나러 갈 거라고,  두 아이의 웃음 너머로 아침 햇살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춰줍니다.

선예는 부모님의 위패가 모셔진 절이라고 맨 발에 짚신만 신고 절 마당을 다 쓴 달이를 보고, 세상에 나갈 힘을 얻게 됩니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선예에게 화이팅~!을 보냅니다.

2008년 여름방학.

그동안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쌓아놓고 다 읽어내리라 작정하고 명혜를 펼쳤다~*

책표지의 명혜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 세밀화로 그려져 있다. 섬세한 선에 표정이 맑아보이는 소녀가 축 처진 아이를 업고 밝은 빛이 들어오는 창앞에서 뭔가를 내다보고 있다. 지친표정도 아니고 뭔가를 생각하며, 결심하는 듯 다문 입술. 저 뒤편으로 간호사가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를 모시고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그림이 명혜가 의사가 되는 계기가 된 중요한 순간임을 알았다. 그림이 너무 좋다.

명혜는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 여성들의 삶을 잔잔히 보여주고 있다.

큰 집에 아들이 없어 장남을 큰 집 양자로 들여 놓고, 집안의 제사나 명절 때만 애틋하게 바라보는 명혜의 어머니 안씨 부인의 삶. 일본으로 유학보낸 작은 아들이 3.1운동에 앞장서 죽게 되자 큰 집에 보낸 아들을 데려오라 울부짖는 어머니, 아버지가 하는 일에 순종적이며 여자는 시집을 가는 것이 삶이라 여겼던 어머니가 작은 아들을 치료하는 명혜의 손길을 보고 큰 후원자가 되어 의사공부를 하라고 밀어주는 어머니. 물론 명혜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였다면 꿈도 꾸지 못하였겠지만, 다행히 있는집이다.

유학을 가서 의사 공부를 하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한이 되었던 의사 신선생님. 병원에 통역해 줄 봉사자로 갔던 명혜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고 유학을 갈 때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던 깨어있는 신여성 신선생님. 외국인 의사 밖에 없어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않아 안타까웠던 그 시절에,  당당한 실력있는 유학파 의사선생님이다.

명혜의 경의 여학교 친구인 낙경. 활달하고 대범하고 세상돌아가는 일도 잘 아는 진취적인 성격이다. 처음부터 외국인 선생님에게 영어로 대화 할 정도로 능통했고, 성격도 좋은 아이이다.자신의 꿈이 고향에 내려가 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어했기에 방학이면 고향인  연백에 내려가 야학을 열고, 3.1운동때는 앞장서서 태극기를 그리고 만세 운동을 하다 고초를 당하기도 하였다.  외국 유학을 가고 싶어 사진신부가 되어 떠나는 낙경이. 미국에 이민가 있는 조선 총각에게 사진만 보고 시집을 가는 것이다. 혹 공부를 할 수 있을 까 희망을 품고서.  얼마나 많았을까 잘 살고 있을까? 

명혜의 동생 명선. 부모님의 말대로 시집가서 잘 사는 것이 여자의 삶이라 생각하는 명선은 명혜의 학구열에  힘입어 함께 경의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언니와는 다르게 여리고  수학고 물리, 영어를 배우는데 힘들어도 하며, 명혜를 시집보내려는 부모님의 뜻을 알고 자기가 먼저 시집을 가겠다고 나서는 착한 동생이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잔잔히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많은 여인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명혜. 일본 유학을 간 둘째오빠 명규의 생활에서 희망을 보았고, 시집가라는 부모님의 성화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진취적인 여성상이다. 여린것 같으나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하고자 목표한 일에 대해 끝없이 도전하는 박수받을만한 우리의 주인공이다. 조선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조국에 필요한 것이 어떤 일인지. 어수선하고 가혹한 상황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의사가 되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 명혜의 떠나는 길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의 삶이 이만큼이나마 발전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울 수도 결코 잊을 수도 없는 우리의 과거의 한 부분을 예쁘게 빛을 발하게 해 주신 김소연 작가님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려주신 장호님. 명혜가 있었다면 정말 이렇게 생겼을것 같아요. 여린듯하나 맑고 다부진 모습. 섬세한 터치가 선생님의 열정을 드러내 주고 있네요.

첫 번째로 손에 들었던 명혜를 끝내고, 김소연님의 꽃신으로 들어갑니다.~~